학생 85%, 학부모 90%, 교사 97% 이상이 교육적 체벌 찬성
서울 초중고 체벌 전면금지… 교사 95% "학생지도 힘들어졌다" 호소
최근 설문조사에서 학생 85%, 학부모 90%, 교사 97% 이상...감정 배제된 교육적 체벌 찬성

초보 여교사가 있었다. 서울 초등학교 5학년을 맡은 이 교사는 3~4년차 교사 특유의 열정과 사랑으로 가르쳤다. 말썽 부리는 학생이 있으면 손을 꼭 잡고 타일렀다.
지난해 5월 수업시간에 한 남학생이 과자를 꺼냈다. "나중에 먹으라"고 해도 듣지 않자 과자를 빼앗았다. 학생은 갑자기 "먹는데 네가 무슨 상관이냐"고 반말하며 교사를 때리기 시작했다. "우리 선생님 죽어요"라는 말을 듣고 옆반 여교사가 달려왔지만 힘을 당하지 못했고, 남자 교사가 와서야 겨우 사태가 진정됐다. 여교사는 우울증으로 휴직하고 6개월 동안 병원을 다녔다.
지난해 서울 A고 남학생의 여교사 성희롱 동영상 유포, 경기도 의정부의 한 중학교에서 학생이 여교사의 머리채를 잡고 폭행한 사건 등이 보도됐다. 두 사건은 그래도 중·고교에서 발생했다. 그런데 학생들은 빨리 성숙하고 여교사 비율은 해마다 높아져 초등학교에서도 교사가 폭행·폭언을 당하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고 한다.
지난 5월 교총이 발표한 2009년 교권침해사건 중에는 이런 사례도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이 휴대폰을 크게 틀어놓고 수업을 방해해 담임이 휴대폰을 압수하자 학생은 '×××아! 남의 휴대폰 왜 가져가? 내놔! ×××아!'라고 욕하면서 담임의 팔·가슴을 의자로 폭행해 옆 반 교사가 겨우 진정시킴."
교총은 지난해 학생·학부모에 의한 초·중·고 교사 폭행·폭언 사례를 108건으로 집계했는데, 이는 빙산의 일각이고 상당수 교사가 폭행을 당하고도 학교의 무마로, 또는 스스로 너무 창피해 쉬쉬하고 넘어가고 있다고 교사들은 전했다. 해마다 연초 초등학교에서는 5~6학년을 맡지 않으려는 교사들과 학교가 승강이를 벌인다. 꼭 수모를 당하지 않더라도 덩치 큰 5~6학년이 눈을 흘기며 "왜 나한테만 그러는데요"라고 반항하면 위압감을 넘어 겁이 난다는 것이 여교사들의 얘기다.
문제는 초등학교는 학생들을 징계할 수단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의무교육인 초등학교에서는 큰 잘못을 저질러도 정학이나 퇴학 처분을 할 수 없다. 몇몇 초등학교 '학교생활규정'을 보니 징계는 학교 내 봉사, 사회봉사, 특별교육 이수밖에 없었다. 한 교사는 "지금 학교 제도는 교사들에게 무조건 사랑으로 가르치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부족한 경우가 너무 많다"고 말했다.
학생인권도 중요하지만 행동에는 책임이 따르고, 잘못에는 징계가 따른다는 점도 배워야 하는데, 초등학교의 경우 반성문 쓰게 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어느 초등학교에서는 구타한 학생을 겨우 설득해 반성문을 쓰게 했더니 '병원으로 보낼 수 있었는데…'라고 써서 교사들을 경악하게 했다. 현실성 있는 가장 강한 처벌은 전학을 보내는 것이지만 학부모가 반대하면 불가능하다.
요즘 진보 성향의 교육감들은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얼마 전 교총이 실시한 조사에서는 일선 교원 10명 중 7명 이상이 '학교 생활지도의 어려움'을 이유로 반대했다. 그러면서 93.4%는 '학교 질서와 기강이 무너졌다'는 데 동의했다.
자기 자식이 최소한의 윤리도 무너진 학교에 다니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초보 여교사 사연을 들으면서 학생인권조례 논의도 필요하겠지만 교권(敎權)조례, 현실성 있는 학생 징계 방안도 함께 논의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체벌 대체방안 정착 안돼… "때리면 안되는거 아시죠?" 대드는 아이들에 곤혹
11월 1일부터 서울지역 모든 초·중·고교에서는 가벼운 체벌을 한 교사도 처벌(징계) 대상이 된다. 서울시교육청의 '체벌 전면금지' 지침에 따라 서울지역 모든 초·중·고교가 이 같은 규정을 담은 교칙 제정을 완료한 데 따른 것이다. 서울교육청은 31일 "문제학생에 대한 상황별 대응 매뉴얼을 제작해 일선 학교에 전파하고 시교육청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지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전면적 체벌금지가 시행됨에 따라 교육계에서는 "그동안 일부 교사들이 감정에 따라 학생을 체벌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런 교사들이 줄어들 것"이라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서울교육청은 문제학생을 별도의 '성찰교실'에 격리하거나 학교가 학부모를 소환해 면담하고, 봉사활동 명령을 내리는 등 체벌 대체 프로그램을 학교별로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면적 체벌금지 발표 이후 학생 생활지도가 힘들어졌다는 현장 교사들 목소리도 적지 않다. 교육당국이 마련한 체벌 대체방안이 현장에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학생을 격리시킬 공간과 이를 운영할 교사 인력을 따로 마련하기 어렵고, 학부모에게 자녀 잘못을 지적해도 '우리 애는 잘못 없다'는 식으로 나오기 일쑤라고 현장 교사들은 본지 취재에서 주장했다.
한국교총이 지난달 서울 시내 322개 초·중·고교 교사 33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서울시교육청의 체벌금지 발표 이후, 학생 생활지도에 부작용이 있다"는 응답이 59%(193명)에 달했다.
실제로 교총에는 다음과 같은 '체벌금지 이후 부작용 사례'가 속속 접수되고 있다.
#서울 은평구 A중학교 2학년 담임 여교사는 반 아이들이 교내 후미진 곳에 모여 담배를 피우는 걸 보고 주의를 줬다가 한 학생으로부터 "벌도 못 줄 거면서 시끄럽기는…"이라는 말을 들었다. 이 여교사는 서울교육청이 권장한 학생 지도 매뉴얼에 따라 해당 학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면담을 청했지만 학부모로부터 "왜 나한테 훈계를 하느냐, 당신이 우리 애 선생이지 내 선생이냐"는 항의를 들었다고 주장했다.
#서울 강서구 B초등학교 교사는 4학년 수업시간에 휴대전화 문자를 보내는 학생에게 주의를 주자, 그 학생이 피식 웃은 뒤 교사를 쳐다보며 "선생님, 때리면 안 되는 거 아시죠?"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고 교총에 신고해 왔다.
서울 C중학교 생활지도부장 이모 교사는 "요즘 각 학교 생활지도부장이 모이면 체벌금지 발표 이후 '흡연·지각·과제 불이행이 훨씬 늘었고, 교사가 훈계해도 아이들이 자리를 떠 버려 지도가 제대로 안 된다'고 한탄하기 바쁘다"며 "물리적 체벌을 대체할 현실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무대책 체벌금지´ 학교 현장이 ´막장 드라마´
치마 길이 주의 준 교사에게 "왜 내 다리 쳐다보냐" 대꾸
"반항 학생들 영웅시…교사인권조례도 만들라" 논란 확산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은 과도한 체벌이 최근 사회 문제가 돼왔던 만큼 다른 방식의 계도가 필요하다는데 공감하면서도 역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앞서 서울시교육청은 곽노현 교육감의 체벌 금지 방침에 따라 서울 초·중·고교가 체벌을 금지하는 규정을 담은 새 학교생활규정을 마련했다고 31일 밝혔다. 이에 따라 가벼운 체벌이라도 이를 가한 교사는 징계 대상이 된다. 시 교육청은 경미한 체벌은 학교가 새 교칙에 따라 처리토록 하고 집단체벌이나 지속적인 체벌은 교육청이 주의·경고(행정조치)를 주거나 징계할 방침이다.
대신 체벌을 대체할 수 있는 성찰교실, 학부모 소환 면담, 봉사활동 대체 프로그램, 생활평점제 등을 시행하는 한편, 상황별 대응 매뉴얼을 마련해 일선학교에 전파, 혼란을 최소화한다는 계획이다. 시 교육청은 담임교사와 전문상담사, 학교관리자 등이 함께 학생들의 생활을 지도할 수 있도록 전문상담원 운영 계획서를 보내는 학교에 대해 예산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같은 방안이 학교 현장에서 실효성이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악습을 없애야 하지만 실효성있는 대책이 수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체벌을 전면 금지하고 이후의 대체방안을 준비한다는 것은 학교 현장의 혼란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상당수의 학교가 체벌 대체 방안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상황이다. 성찰교실을 위한 공간 확보가 여의치 않은데다 교사 한 명이 담당해야 할 학생수가 적지 않기 때문에 선진국식의 상담 및 생활지도는 어렵다는 것이다.
곽노현 교육감의 체벌 금지 의지에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교사들이다. 학생과 학부모, 교사 사이의 신뢰가 무너지고 교권이 추락한 지금의 교실에서 학생들을 통제, 지도할 수 있는 방안이 마땅치 않다는 게 교사들의 하소연이다.
교사들은 생활지도의 고충을 토로하고 학생들은 교사들의 생활지도 중 체벌 금지에 해당되는 행위가 없는지 문제삼고, 이를 성토하는 민원이 이어지고 있다. 학부모들 역시 과도한 체벌이 근절될 것이라고 반기면서도 처벌을 두려워한 교사들이 학생지도에 소홀해져 학습권이 침해받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당장 체벌 금지에 따른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밝힌 실태조사에 따르면 시 교육청의 체벌금지 발표 이후 학생생활지도 방법에 부작용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58.5%가 ‘있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각이나 의도적인 수업불참, 수업 방해는 비교적 애교적인 수준의 ‘반항’이라는 게 한국교총의 설명이다.
△머리염색과 짙은 화장의 여학생에게 주의를 줬더니 “내 개성을 찾는데 선생님이 무슨 참견이냐”라고 대들고 △짧은 치마길이를 지적하는 교사에게 “선생님은 왜 제 다리만 쳐다보세요”라고 말해 성추행범으로 몰릴 뻔한 사례 △떠들거나 잠자는 학생을 지도하려는 교사에게 ‘신고하겠다’고 협박하거나 심지어 발로 찬 사례 △큰 귀걸이를 한 학생에게 주의를 줬더니 학부모한테 ‘시대를 모르는 구태의연한 작태’라는 항의전화를 받은 사례 등 학교 질서가 흔들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계 내에서도 입장이 첨예하고 갈리고 있다. 한국교총은 “교육자는 ‘포퓰리즘 정책’의 대상이 될 수는 있어도 결코 동화돼선 안 된다”며 교육적 체벌을 한 교사에 대해 징계가 내려질 경우 대법원 판례에 근거해 소송을 하는 등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토론장을 비롯해 블로그, 카페 등에서도 체벌 전면 금지에 대한 찬반양론이 뜨겁다.” “학생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그들에게 민주적 방법의 소통방식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는 찬성론과 “벌써부터 선생님들에게 대놓고 대들려는 아이들도 있는데 선생님들이 문제를 만들지 않으려 방관하려고 해 무고한 다른 아이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모든 행동에는 책임이 뒤따른다는 걸 보여주지 않으면 난장판이 될 것”이라는 반대론이 팽팽하다.
현직 초등교사임을 밝힌 한 네티즌은 “체벌에 대한 입장은 반대이지만 (체벌 금지에 따른) 징계 절차도 법제화돼야 한다”며 “지난해 우리 학교 5학년 남학생이 선생님 멱살을 잡고 욕을 퍼부어서 선생님이 쇼크로 쓰러진 적이 있다. 그러나 부모를 소환해도 바쁘다고 학교에 오지 않고 해당 학생은 영웅 취급을 받는다”고 전했다.
일부 네티즌들은 “인기끌기 정책이 아니냐” “학교 내에 영창을 만들든지 아니면 교사인권조례도 만들라”고 성급한 시행을 질타하기도 했다.
학생들의 반응은 원칙적인 체벌 금지에는 찬성이 우세했으나 감정적인 체벌이 배제된 교육적인 체벌은 필요하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우려도 이에 비례했다. “욕설도 체벌이냐” “벌점이 쌓이면 운동장을 10바퀴 이상 뛰게 하는데 이건 체벌 아니냐”는 질문이 올라오는 반면, 유급이나 정학, 퇴학 등 강력한 조치가 전제되지 않는 체벌 금지는 ‘학교를 막장화시키는 일’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고등학생이라고 밝힌 다른 네티즌은 체벌이 교사의 권위를 세워주는 도구가 될 수 없다며 “학교에서 싸우거나 잘못하는 애들은 퇴학을 시키는 게 나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초중교에서는 의무교육이기 때문에 정학, 퇴학 자체가 인정되지 않아 고교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다.
고교 재학 중이라는 한 네티즌은 “우리 학교에는 벌써 눈에 힘 팍 주고 선생님 그림자 밟는 녀석들이 하나둘씩 나오고 있다”고 했고, 또다른 네티즌도 “학교의 노는 애들이 날뛰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