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내 35도를 넘나드는 더위 때문에 풀을 뽑지 않았더니
잡풀들이 제 집인양 무성하게 자라나 떡하니 자리를 차지했다.
꽃밭인지 풀밭인지 길이 있는건지 없는건지 구분이 어렵다.
조금 서늘해졌으니 이틀간 종자골 텃밭 정리를 하기로 작정하였다.
비가 내린 뒤인지라 자두잎들이 바람에 날려 여기저기 많이 떨어져
젖어 있어 어수선하고 축축한 뒤뜰부터 정리에 들어갔다.
잔디깎기 기계를 햇볕에 내다놓고 뒷간을 청소하고 비질을 시작했다.
비질을 나는 좋아한다. 어려서 안마당 바깥마당을 쓰는 일도
내가 주로 하였지 싶다. 아버지가 만드신 내 키만한 싸리빗자루로
마당을 쓱쓱 쓸어내면 빗자루 자국만 남겨지는 말끔한 마당이
그렇게 좋았다. 지나가던 동네 어른들의 칭찬에 으쓱해졌다.
텃밭 책임자인 그는 그동안 텃밭에서 파밭을 새로 만들어 파 모종을 옮겨심었다.
고춧대를 뽑아내고 먹을 수 있는 고추들을 알뜰하게 땄다.
두번째로는 앞뜰 잡풀과 수돗가 주변 잡풀을 뽑아냈다.
나가는 길이며 텃밭 둘레길, 바깥뜰의 둘레쪽 잡풀을 뽑아냈다.
그동안 그는 무 씨 파종할 땅을 만들었다. 씨 파종할 땅을 그가 정성들여
곱고 포슬포슬하게 만들어놓을 때마다 나는 상상한다.
거기에 내가 엉덩이를 붙이고 앉는 상상을.
나이 먹어 수분이 부족한 내게도 머리며 손이며 발에서 푸른 싹이 돋는 상상을.
이만큼 일하는데 네시간 걸렸다. 오랜만에 실컷 일했다. 땀을 비오듯 쏟아냈지만
그가 정성들여 키운 수박, 끝물이라 작지만 달고 시원해서 우리의 갈증 해소에는
최고가 아닌가. 땀에 범벅인 채로 시원한 수박을 먹는 재미는 평소의 스무배다.
다음날 일찍 일어나
꽃밭을 정리하고 무성한 옆길을 말끔하게 치웠다. 바깥뜰 잔디밭에 잡풀도 뽑았다.
그동안 그는 무씨를 뿌리고 고구마 줄기를 수확하고 잔디를 깎았다.
어디 그것뿐이랴. 그의 꼼꼼함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농부일기에는 이틀동안
무려 서른가지도 넘는 일을 기록했다.
누가 감히 귀농을 말하는가. 부지런하지 않은 사람은 뒤도 돌아보지 말고 물러서라.
오랜만에 실컷 일했다. 덕분에 종자골이 목욕과 이발을 끝내고 빙긋이 웃으며
현관문을 들어서는 그처럼 멋지다. 와우 십년은 젊어보여! 그 말을 기대하는
막내아들같은 그처럼 오늘 종자골도 혹 내 칭찬을 기대하는 것은 아닐까.
와우!! 멋진데. 말끔한데. 십년은 젊어보이는데!
기분 최고인데
움직이는 동물보다 오히려 생명력이 강하다는 잡풀들이 자신들을 무작위로
뽑아낸 나를 향해 시위라도 하는가
여름내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어 막 종족을 땅에 떨구려는 찰나에 목숨을 잃은
잡풀들의 반란인가.
얼굴만 내놓고 긴 팔에 긴 바지에 고무장갑까지 낀 내 팔 안쪽이 잡자기
따끔 하더니 벌레에 물린 듯 가렵고 아프다. 옷을 벗어봐도 물린 자국도 없고
벌레도 없는데. 뭐지?
하룻밤 자고났더니 웬걸. 오른쪽 팔과 가슴과 배에 굵직굵직한 붉은 돌기가
홈빡 솟아있고 가렵다. 한밤중에 가려워 긁느라 잠을 설쳤다.
풀의 공격이란다. 풀독이 몸 안으로 침입한거란다. 일주일 죽도록 고생하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