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81. 전주의 새벽을 열어 동고사로 간다. -동고사 – 치명자산성지 – 이목대 오목대 (자만벽화마을) - 완산벙커 더 스페이스
새벽을 열어 날이 밝아오는 것을 온 몸으로 흠씬 젖어 맞이한다는 것은 여유이다. 오늘은 전주 투어를 계획해서 아침 6시 30분 쯤 출발하자는 남편과의 약속을 두고 이른 새벽부터 고물고물 준비를 한다. 늙으면 잠이 없어진다지만 정녕 우리세대의 젊은 시절에 새벽세상은 학생들이나 젊은 직장인들이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역시 그 시절의 젊은이들 즉 수없는 새벽역사를 만들었던 그때 그 사람들이다. 바꾸어 말하면 요즘 사람들의 새벽은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도 않았을 시간이라 그때의 청년과 지금의 청년이 맞이하는 모든 일상과 더불어 새벽은 시대적 나이이며 여유라는 것이다. 어둠을 가르며 달리는 풍경 속에서 미세하게 낮으로 변해가는 것은 비단 시야에서뿐만이 아니라 새벽냄새로도 충분하고 몸으로 와 닫는 느낌으로도 충분하다. 까만 화선지에 붓과 먹으로 채색된 동양화처럼 그려지다가 점점 유채(油彩) 재료와 사실적 기법인 서양화로 옮겨가는 듯이 세상이 밝아오는 것을 지켜보는 순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한참동안 서로의 일정 때문에 남편과 동행할 기회가 없었다. 함께 여행을 하는 것은 먼 거리를 달리면서 자동차에서의 시간이 사소한 이야기를 자분자분 나누기에 좋다. 일상에 큰 영향력은 없을지라도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를 하염없이 늘어놓게 되며 서로 잘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시간이니 만큼 이러한 기회만으로도 나이 들수록 부부가 함께하는 여행의 필요함을 느낀다.
전주시 초입에 들어서도 아직 이른 아침 시간이다. 어디든지 새벽의 활기는 시장풍경이 아니던가? 전주 남부시장을 경유하여 한옥마을을 지나 전주의 시내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동고사와 치명자산성지로 이동하였다. 전주 동고사는 전주 승암산에 자리 잡은 한국불교태고종 사찰이다. 도옥사를 지나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면 치명자산성지이다 한편 동고사를 오르는 길목에 6.25전쟁당시 국가를 수호하다 전사한 군인들과 경찰분들을 안치하고 있는 전주군경묘지도 함께 둘러볼 수 있었다. 도옥사가는 길에는 차를 끌고 이동할 수도 있겠건만 우선 걸음을 걷는 일 또한 여행의 목적이라 군경묘지 바로 위에 차를 세우고 동고사까지 걷기로 한다. 단군성전 비석을 지나 공고산성까지는 편안한 길이 나 있어서 산책하기 좋았다. 이곳은 저녁 야경이 아름다운 명소로 꼽히는데 사실 밤길은 많이 위험할 듯싶다. 전주를 수호하는 4개의 사찰<동고사,서고사,남고사,북고사> 중 절 이름대로 동쪽에 위치한 사찰이 동고사란다. 동고사라 위치한 산이 원래 오래전부터 승암산이라 불렸는데 산정에 천주고 순교자들이 묻힌 이후로 치명자산으로 더 많이 불린다고 한다. 부담스럽지 않은 거리에 전망대가 있으며 내려 보는 전주천과 주변 산으로 둘러쌓인 전주 시내의 모습이 새롭다. 고층빌딩 없이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는 전주 시내의 모습은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치명자산 성지 전망대를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성모마리아상을 볼 수 있다. 한편 정상에는 1994년 건립된 기념성당이 자리하고 있었다. 오르는 길에 십자가의 길과 성직자 묘지를 지나는 길이 있다. 치명자산성지 담당 신부님이 관리하고 계신다는 기념성당의 넓은 터에서 전주 시내를 내려다보며 우리는 한 숨을 돌리고 다시 내려와 이목대와 오목대로 향했다. 오목대는 고려 말 이성계가 황산대첩에서 승리한 뒤 전주로 돌아와 승전을 자축했던 언덕이란다. 이후 조선을 건국한 뒤 이 언덕에 정자를 세우고 오목대라 불렀다고 한다. 역사적인 이야기 속에서 지금은 한옥마을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이자 야경 명소로도 사랑받는 곳이다. 전주 한옥마을에 들어가 골목골목 돌아보는 재미도 있지만 멀리서 내려 보는 한옥마을의 정취는 아름다움 속에 들어가 있음보다 훨씬 더 정겹다. 언젠가 혼자서 전주에 왔다가 이쪽 부근을 둘러보기는 하였으나 사실 이목대와 오목대에 관한 이야기는 몰랐다. 그래서 어디로 떠나든지 사전 인터넷답사는 필수인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이목대 지척에 자만 벽화마을이 있어 여유롭고 한적하게 도보로 즐기기에 좋은 코스이다. 우리는 약 1시간가량 이곳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 한옥마을에 들러 점심을 먹고 완산벙커 더 스페이스로 향한다. 보통 전주투어라 하면 한옥마을이 대표적이지만 사실 숨은 명소가 참 많다. 그중에서도 요즘 SNS에서 가장 뜨거운 곳이 이곳 전주 완산벙커 더 스페이스다. 한때 방공호로 활용되던 군사시설을 미디어 체험 공간으로 재탄생하면서 전주의 핫플로 주목받고 있다. 이곳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1973년에 만들어진 옛 방공호를 리모델링한 공간이라 내부가 긴 복도형 터널 구조로 되어 있었고 조명과 미디어아트 효과가 어우러져 마치 다른 차원에 들어온 듯 한 느낌이다. 10개의 콘텐츠 룸으로 이루어진 전시공간에 각 각 다른 컨셉과 조명과 영상으로 따끈한 재미로 들러볼 수 있었다. 개장한지 1년 정도라 주차장이나 주변 시설 또한 많이 협소하였으나 반짝거리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 색다른 여행의 경험은 신선하고 좋았다. 빛과 어둠의 대비와 또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주제로 하여 음악과 조명이 함께 움직이고 미지의 생물모습이 변하는 생소한 공간에서 빛과 공간 그리고 스토리가 조화된 전주만의 특별한 미디어아트를 즐기고 나왔다. 겨울은 하루가 너무 짧다. 여름이라면 이 시간 쯤 한참을 더 놀아도 좋을 시간이건만 가는 길에 고창 온천욕까지 계획된 일정이라 둥지를 향해 출발하기로 한다. 남편은 오랜만에 함께하니 좋단다. 아주 평범하고 혼자서 궁시렁거려도 될 만한 그 말이 여행을 계획한 내게는 동행해 준 남편이 내게 보내준 답례이며 큰 응원이다.
* 동고사 < 치명자산성지>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낙수정2길 103-100 * 이목대 오목대 – 전북 전주시 교동 * 완산벙커 더 스페이스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완산5길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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