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학궁에 대한 여휘님과 꼬비에뚜님의 글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듭니다.
현재 고고학적 측면에서 안학궁의 건설시기에 대한 논쟁이
흥미롭군요. 안학궁이 고구려의 수도 평양성의 위치를 알려주는
증거라고 주장하는 글에 대해 꼬비에뚜님은 고구려의 멸망 이후에도
안학궁이 계속 건설, 개축되었을 거라는 주장을 하시네요.
그 증거로 안학궁의 기와양식 중에 통일신라, 고려 시대에 제작된 게 있다고 하시는데...
문득 이런 의문이 들더군요.
고구려의 평양성이 점령되면서 멸망은 되었지만...여전히 지방의 세력들은
당과 신라의 지배에 저항을 했다고 하죠.
여휘님은 안시성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벌이는 국가가 존재했을 거라는
가설도 주장하셨죠.
안학궁이 고구려, 신라, 고려 시대를 거쳐서 건축, 개축되었다고 한다면
고구려의 멸망 이후에 평양일대를 차지한 세력은 누구였을까요?
흔히 나당전쟁 이후에 통일신라는 대동강 아님을 차지했고
발해가 등장한 이후에 가서 옛 고구려의 땅이 모두 발해에게 속하게 되었다고
한국학계에서 추정을 하죠.
그런데, 꼬비에뚜님의 글을 보면 안학궁의 기와는 통일신라의 양식을 보입니다.
이걸 보면 신라가 대동강 이북의 지역까지 다 지배했던 것은 아닐까요?
흔히 알려진 발해와 신라의 남북국 영토 경계가 틀린 것은 아닐까요?
고구려의 멸망 이후 발해가 등장하기 전까지 어떤 세력들이 고구려에 존재했는지에
대해서 궁금해 집니다.
안학궁의 유적은 평양성의 함락 이후에도 안학궁을 건설하고 개축할 정도의 안정적인
권력체가 존재했다는 증거인거 같아요!
첫댓글 1. 안학궁 관련 내용은 모두 제가 인용한 내용인데 오해하신 듯합니다. (초록색으로 인용부분 수정)
2. 통일신라 양식 귀면기와 그림은 제가 여휘님께 고고학용어를 질문하기 위해 올린 것이고, 안학궁에 쓰인 기와가 아닙니다. 미안합니다.
아..제가 오독한 듯 합니다. 그래도 고구려가 멸망한 이후에도 건설, 개축된거 같다는 주장인 건 맞죠?
제가 안시성을 중심으로 독립국가가 있었다는 말을 했었던 적이 있었나요??
몇 년 전에 안시성 무장독립국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어요. 아..이런 다시보니 아름다운 청년님의 글입니다. ㅎㅎ
워낙 방대하고 난해한 글들이 많아서. 대충 여휘님, 꼬비에뚜님 글들만 기억이 나서 실수한 거 같아요. ㅎㅎㅎ
@찰리브라운 http://cafe.daum.net/yeohwicenter/4ulL/267 이 글이네요. 사실 확인을 정확히 해야할 것 같아 정정합니다. 안시성 무장독립국설에 대해 글을 쓰신 분은 서영교 선생님이고, 아름다운 청년님은 그 서영교 선생님의 안시성 무장독립국설에 대해 비판하는 글을 쓰신 거죠. 오해의 소지가 있기에 정정합니다. 온라인 상에서는 자칫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 오해가 생길 수 있으니 조심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서영교 선생님의 안시성 무장독립국이라는 표현도, 찰리브라운님이 쓰신 <안시성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벌이는 국가가 있었다>와는 전혀 다른 의미인 것 같습니다. 음...사실 확인에 좀 더 신경을 쓰셔야...
@麗輝 서영교 선생님의 안시성 무장독립국이라는 표현도, 찰리브라운님이 쓰신 <안시성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벌이는 국가가 있었다>와는 전혀 다른 의미인 것 같습니다. 음...사실 확인에 좀 더 신경을 쓰셔야... <<<
핑계같지만 방대하고 전문적인 내용인데다 활자가 작아서 읽기가 좀 힘듭니다. ㅡㅡ
@찰리브라운 꼬비에뚜님이 얼마전에 화면을 크게 키워서 보는 법을 알려주신 것 같은데요...찰리브라운님도 분명히 그 글을 읽어보신 걸로 기억하는데...그리고 저걸 활자가 작아서 착각했다고 보기에는 좀 의심이 갑니다만(제목이랑 글쓴이만 봐도 알수 있는데 -.-a), 암튼 알겠습니다. 앞으로는 활자를 키워서 정확히 보고, 글을 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런 별것 아닌 사소한 것까지 일일히 말씀드리면 서로 불편하지 않겠습니까...
@麗輝 암튼 알겠습니다. 앞으로는 활자를 키워서 정확히 보고, 글을 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런 별것 아닌 사소한 것까지 일일히 말씀드리면 서로 불편하지 않겠습니까... <<<
아무래도 안시성 무장독립국에 대한 오해를 했나 봅니다. 앞으로 좀더 주의깊게 읽고 써야 겠습니다. 좋은 밤 되시길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