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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오의 여유2( 安貧樂道를 꿈꾸며 )
오후에 휴가를 하기위해 공장 문을 나섰다. 휴가를 하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한 마음의 휴식을 갖는데도 의미가 있지만 또 한편으론 직장의 문화 때문이다.
밖에는 겨울을 재촉하는 늦가을 비가 하염없이 내리고 있었다. 사전 별다른 계획없이 막상 나오고 보니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어디로 갈 것인가? 순간 내가 예전에 좋아하였었고 많이 따라 불렀던 감미로운 목소리를 가진 가수 김세환님의 ‘길 잃은 사슴’이란 노래가 생각났다.
「어디로 가나 어디로 갈까
길을 잃고 헤매던 사슴 한 마리
네온사인 반짝이는 갈림길에서
밤하늘에 빛나는 별을 보고
잃었던 그리운 님 찾아서 가네.
어디로 가나 어디로 갈까
길을 잃고 헤매던 사슴 한 마리
밀려왔다 밀려가는 낯설은 거리
밤하늘에 우뚝 솟은 빌딩 사이로
잃었던 그리운 님 찾아서 가네.」
그래 어디론가 무작정 가보는 거야!
지금은 노래 가사속에 숨어있는 애틋한 마음대신 가슴속 깊은 곳까지 누적되어 시도때도 없이 분출되는 이 혼란스러운 삶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밤하늘에 별이 반짝이거나, 그리운 님은 없더라도 내가 갈 곳은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산을 쓰고 거리로 나왔다. 가을비 치곤 제법 많이 내리는 탓인지 사람들의 발걸음도 무겁다. 그러나 느낌이 그런한지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는 맑은 날보다 칙칙한 소리를 내면서 속력을 가하는 것 같다.
택시가 그렇고, 복잡한 좁은도로를 들어선 덤프터럭 한대가 많은 차들의 통행을 가로 막는다. 흔히 그들은 자신들이 도로 통행이 우선되어야 함을 주장하며, 그것은 '먹고 살기 위해서'라는 말을 강조해댄다. 요즘처럼 바쁜 세상에 누군 놀러 다닌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라는 것도 알아야 된다는 것을 이해하기를 거부한다.
점심시간이라서 많은 직장인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저마다 맛나는 먹을 거리, 값싸고 맛있는 곳을 찾아 헤맨다. '값싸고 맛있는 것' 정말 좋은 것이다. 그러나 한끼 먹는 걸 가지고 너무 과민한 반응을 가지는 걸 아닌지? 하긴 놓친 한끼는 평생 못 찾아 먹는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그런데 나는 어디로 가서 또 한끼를 때워 넘길까? 고민하며 길을 걷고 있었다. 한참을 걸어 시장통으로 드디어 들어섰다.
나는 솔직히 먹는 것의 질에 대한 것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편이다. 그렇다고 내가 먹는 것이 사료의 역활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서너번 이 길을 지나다 점심시간이면 들렀던 돼지국밥집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비가 오는 탓인지 서너개의 테이블이 다 차있다.
평소에는 손님이 한테이블정도 있다가도 내가 들어서면 이내 테이블이 다 비어버릴 정도로 손님이 뜸하였었다. 하여간 내가 자리를 잡지 못하여도 이런 영세한 곳에 손님이 많다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일단은 집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비가 점차 많이 오기 시작하여 집으로 가서 옷이라도 제대로 챙겨입고 산을 가자는 속셈이었다. 넓은 차도를 빠져나와 이면도로를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고급승용차 한대가 쏜살같이 달려오더니 바퀴로 나에게 물을 팅기고 달아났다.
물팅기는 사회...우리 사회는 가진 사람(돈, 권력)들은 자신들끼리 물을 팅기며 살아간다. '우리가 남이가'라고 흥겨운 표정을 지어가면서 말이다...그런데 못가진 사람들은 그들이 팅기는 물을 맞고 비켜서서 살아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저 참고 견디며...흙탕물과 오염된 물까지도...
바람에 은행나무 잎이 하나 들 떨어져 보도에 내려쌓인다.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카메라로 그 모습을 찍고있다. 요즘 젊은이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감성의 소유자라는 생각이 든다.
열두시 반을 넘기자 배가 고프다는 것을 느꼈다. 이젠 아무데서라도 점심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앞쪽을 바라다보니 해장국집이 보인다. 어제는 술을 먹지 않았지만 웬지 해장국도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조금은 사람들 발걸음이 뜸한 곳이라 손님이 전혀 없을 줄로만 알았는데 안으로 들어서니 한테이블의 손님이 있었다. 그리고 이내 그 테이블에 앉았던 예쁘장하게 생긴 50대 초반의 여자는 주인에게 값을 치르고 또 다른 손님들이 올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얼마지나지 않아 70대로 보이는 할머니 두분이 머뭇거리다 식당으로 들어섰다. 대략 눈치를 살피는데 좀전에 나갔던 여자가 문을 열고 들여다보고서는 두 할머니들에게 아무 것이나 식사를 시켜 잡수시라는 말을 하고 떠난다.
그러자 할머니들은 갈비탕을 시키면서 '얻어먹을바엔 잘 먹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이야기를 듣자하니 먼 곳으로부터 왔는데 식당이 어딘지를 몰라 택시도 타지 못하고 빗속에 한참을 헤맸단다.
나는 세상에 공짜는 쉽지 않은데 앞서의 그 얼굴 번지르한 여자가 모집책인지, 아니면 무슨 이유로 밥을 사는지는 알 필요가 없으되, 하여간 세상엔 밥먹는 이유가 참으로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고 말았다.
나는 해장국을 시키고 평소 잘 쳐다보지 않았던 신문을 펼쳐들었다. 대략 제목만 읽어보면 내용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몇면을 넘기자 눈에 띄는 기사가 있었다.
영화 '도가니'의 작가인 공지영님이 우리나라에서의 성폭력자들에 대한 사법기관의 미온적인 형량적용에 대한 불만스러움을 나타내고 있는 내용과 그 다음 장에서는 작가 박범신님이 서울을 떠나 고향인 논산으로 이사를 떠나 그곳에서 작품활동을 할 것이라는 기사였다.
박범신님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으로써 나의 그분의 결정이 참으로 잘 한 것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예전에 그분이 해방후에 서울로 돌아와 생활한 이야기를 책에서 읽고는 글 쓰는분이 뭣하려 서울에서 생활하는가?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강원도에서 글을 쓰신 박경리님이나 이외수님, 그리고 해산토굴에서 생활하는 홍성원님처럼 한적한 곳에서 사는 맛도 좋을 것 같았다.
문득 눈앞에서 보았던 소시민들의 삶을 생각하니 나는 문득 안빈낙도( 安貧樂道 )라는 옛말이 생각났다. 안빈낙도란 경제적으론 어려운 과정에서도 마음을 편하게 가지려고하는 옛선조들의 바람직한 마음가짐이다.
예전엔 사람들이 구차하고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편안한 마음을 가져 도를 즐기고 자기의 분수에 만족하는 생활태도를 가지며, 옛날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선비들은 안빈낙도를 하나의 생활신조로 삼았었다.
또한 대개의 사람들은 가난하면 비굴해지기 쉽고, 분수를 지키지 못하며 지조를 팔기 쉬웠었다. 그러나 대인군자는 아무리 가난할 지라도 비굴해 지거나 초조하지 않고 도를 즐길 줄 알았었다. 나도 그러한 군자의 모습이 부러웠었다. 무슨 대인놀음을 하잔 애기는 아니고...
공자님이 말씀하신 「나물 먹고 물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어도 낙이 그 가운데에 있으니, 의롭지 않는 부와 귀는 나에게는 뜬구름과 같을 뿐이다(飯蔬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라고 한 것은 안빈낙도의 심경을 잘 나타낸 것이었다.
유가의 선비들 중에는 이러한 안빈낙도를 좋아하는 경우가 많았단다. 중국 진(晋)나라 때의 죽림칠현이라 불리우는 완적·혜강·왕융·향수·완함·유령·산도 등은 안빈낙도의 대표적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안빈낙도를 즐기는 사람들은 대개 현실도피적·은둔적·소극적·조소적인 경향이 있었다. 따라서 그러한 판단은 안빈낙도를 즐기려는 사람들의 진정한 사상을 모르는 사람들의 편견일 뿐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안빈낙도에 대한 생각을 하다 나의 언행이 세상을 살아가며 의식적이든, 아니면 무의식적이든 남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태어 어려운 도미노이론이니, 마피의 법칙이나 나비효과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어째든 악영향은 가까운 곳부터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살아가며 말과 글을 골라쓰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 하려고 노력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무조건 듣기좋은 글과 말로서만 대한다고 좋는 것은 아닐 것이다. 왜내하면 사람들은 그저 긍정적인 것에만 취우치다보면 정말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력을 잃어버린다는 사실이다.
점심을 먹은 후 우산을 쓰고 나는 다시금 길을 나섰다. 점심값으로 말하자면 돼지국밥은 6,000원이고, 해장국은 5,000원이다. 그러나 내용면을 보면 돼지국밥이 실속이 있어보인다.
사실 해장국이란 차리기 나름이기 때름이다. 실제로 그 내용물을 보면 원가가 뻔해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1,000원이란 가격차가 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내 호주머니에는 1,000원이 남았나?
집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 입었다. 그러나 빗방울이 점차 세차게 들려온다. 텔레비젼을 켰지만 나의 마음은 창밖에 다가가 있었다. 가벼운 집안일을 하는 등 한시간정도 시간을 보내다가 드디어 집을 나섰다. 빗줄기가 약해졌다거나 그러한 것은 아니었다, 무조건 밖으로 나가야겠다는 역마살기가 발동하였기 때문이다.
빗줄기가 점차 강해지고 있었다. 안가면 안되나? 어느 누구도 반대할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나는 가야헀다. 왜 가야하는지 그건 솔직히 나 자신도 모르는 일이다.
가는 길에 평소 할아버지 할머니가 노시던 곳을 바라다보니 그곳엔 비로 인하여 아무도 보이질 않는다. 비가 온다고 세월이 그냥 지나가질 않는 법이다. 그렇다면 다른 곳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안타깝고 우리에게 다가오는 현실이라는 생각도 들고...
과수원길을 지나 산마루로 올라섰다. 평소에는 멀리 바라다보인 천왕봉도 검은 구름에 가려 보이질 않는다. 기후탓인데 누굴 원망하랴. 나는 안개에 가려진 도심을 바라다 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혼탁한 도심은 안개에 가려져 더욱 혼란스러워 보였다.
비가 세차게 내려도 기분은 그만이다. 혼란스러운 도심을 탈출하였다는 쾌감이 가슴속을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앉으면 눕고 싶다고 어디 안빈낙도를 꿈꿀만한 무릉도원이나 샹그릴라는 없는 것일까?
누군가가 나에게 정말 안빈낙도를 꿈꾸는 것인지에 대하여 '너 진심이니?' 하고 묻는다면, 가슴에 손을 얹지 않아도 '그래 나 진심이다.'라고 쉽게 답해져 버릴 것만 같았다.
한참을 멀리 지리산과 주변의 산허리를 바라다 보다 산을 내려오기를 결심했다. 시간이 흘러 어느듯 해가 있어도 서녂하늘에 기울 것만 같은 시간이다.
5시가 조금 넘었을 뿐인데 날씨탓인지 주변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나는 시내의 여기저기 불빛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아래편을 보니 양복을 입은 중년 남성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 빗속에 양복을 입은 채로 어디를 가는 것일까? 나처럼 역마살이 낀 것일까?
그때 갑자기 아래 주머니에서 휴대전화가 울렸다. 직장에서 온 전화인가? 전화를 꺼내어 받으니 학교 후배님의 전화였다. 어디냐? 고 물어와 뒷산이라고 하였더니 비오는 날에 산을 무슨 산이냐는 것이었다.
산을 내려와 친구와의 약속이 있어 시내로 향했다. 신발은 이미 거의 다 젖어 질퍽거리고, 겉옷은 그래도 방수기능이 되는지 속까지 배어 들지는 않는다. 몰골이 말이 아니다. 그래도 친구와의 약속장소를 향하여 발걸음을 재촉했다.
친구는 유달리 자녀에 대하여는 처절하게도 희생심이 강한 녀석이다. 그깟 자식이 뭐라고? 제발 너무 애착심을 가지지 말라고...그래서 가끔 나와는 그러한 세상살이에 대한 의견대립으로 말다툼도 자주하는 편이다. 지난 번에도 술을 먹고 대판으로 말싸움을 하였었다.
이 나이에 옳고 그름에 대한 의미가 도대체 뭐가 필요하단 말인가? 그래도 둘이 성질이 비슷하다 보니 그러한 결과가 발생한다. 그래서 부딪히고 또 사과를 하고...
솔직히 그게 인생이 아닌가 싶다. 술잔을 나누며 아무 말도 하지 말자고 하였다. 뭐가 그렇게 중요하단 말인가? 서로가 말하지 아니하여도 마음속으로 이해를 하면 그만인 것이 아닌가?
둘이 한참동안 술잔을 나누며 할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가려하느라 한동안 말문이 막히기도 하였었다. 그러나 결국 중요한 건 우린 서로가 속을 뒤집어 보일 수 있는 사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솔직히 길을 나설때 앞에서의 안빈낙도에 가까운 생활을 해 볼 수 있는 많은 생각을 해보고자 마음을 먹었었다. 우리 나이또래가 되면 노후에 대한 것이 코앞에 다가와 있다.
그래서 필요한 정보를 살펴보기도하고, 실지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구상도 해보지만 막연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안빈낙도라는 하기쉬운 생각을 해 보았는데, 정말 그것은 어쩌면 구호에만 그치는 것이 아닌가? 하여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당장 좋아하는 막걸리 한잔 이라도 먹으려면 경제라는 문제에 부딪치기 마련이다.
진정으로 그러한 것을 실천하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면서 세상사를 너무 편하게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빈낙도' 정작 모든 버리고 떠나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정작 세상을 살아가면서 마음 가는대로만 살아 가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세상에 모든 것을 맡겨 버리기엔 나 자신이 너무 무책임 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도 친구는 자식들에 대한 일이라면 자신이 아무리 어려워도 자신을 희생해가며 살아가고 있고, 나는 세상의 깊이도 잘 모르면서 그저 감상적인 생각으로 혼자 판단하며 그게 그럴 것이라는 막연한 판단을 하며 살아가는 게 아니냐는 생각도 해 보지만, 그래도 어쩌면 그게 종교보다도 더한 신념이 아닌가? 하는 마음도 든다.
우리들의 탁자위에 소줏병이 늘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술잔을 기우리며 점차 말이 적어졌다. 그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먼저 이야기를 이어가기를 바라고 있었다. 염화시중의 미소인양 구태어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를 알 수 있다는 것인가?
점차 빗줄기도 약해져 간다. 나는 그 안빈낙도에 대하여 어떠한 결론도 내리지 못하고 말았다. 그저 머리속이 혼란스럽기만 할 뿐이었다.
마치 처녀애가 신이들려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처럼 세상사람들이 일방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생겨나듯 말이다.
다음 순간, 나는 내왕객 적은 사방이 빗물로 둘러쌓인 이 칙칙한 거리에서 빈약한 술잔을 앞에 놓고 마주앉은 지금의 이 자리가 안빈낙도를 꿈꾸는 무릉도원이고, 샹그릴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댓글 하루 일과를 요렇게 길게도 글을 쓸수 있다니,,참으로 부럽네요 게다가 현장 사진까지 보여주니 ,,쉽게 범접 못할
수준까지 올라 가는거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