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남극이고 매일 눈이 내리고
―허들링*
이을
무언가를 넘으려 했던 게 아니다
앞에서 뛰니까 따라 뛰다가
뒤에서 미니까 밀려서 밀었다
영하의 중심에 제 몸을 조립하는 펭귄 무리에 끼어 있다
거대한 십자드라이버가 우리의 정수리를 돌리고 있다
똑같은 양복을 입고 조금씩 박히고 있다
어쩌자는 거야 잘 좀 보라고
나는 펭귄이 아니야
발등에 가방을 올려놓고 도망간 여자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가방 안에서 지퍼를 열고 나오려는 꿈을 꾼다
맙소사! 나는 무엇입니까
펭귄은 아닌데요
나는 매일 남극이고 눈이 내리고 도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
하나둘, 하나둘
밖에서 안으로 안에서 밖으로
목숨을 길게 늘여가면서
목이 사라지니까 슬픔이 사라져서 좋은데
바깥에서 안쪽으로 파고드는 추위를 막을 수 없다
서로가 서로를 주머니에 밀어 넣으며 이렇게 계속 돌아도 될까
거죽을 방패 삼아 서로를 가두는 놀이
누군가 넘어지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 계주
여기선 아무도 뺨을 때려주지 않는다
몽유를 놓치는 순간 발등의 지퍼를 열고 끽끽 우는 얼굴을 꺼내줘야 하니까
짧은 팔로 배를 쓰다듬으며 돌다 보면 이제 정말 인간이 아닌 것 같다
펭귄이 다 된 것 같다
*허들링: 펭귄이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무리를 지어 도는 행위
약력
이을 (본명:최윤정)
2014년 김유정 신인문학상
2026년 경상일보 신춘 문예 시 당선
-《아토포스》 2026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