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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동러시아 여행을 다녀와서
기우현
준비 과정 이야기
우리 모임인 동사모에서는 초창기부터 해외여행지로 러시아를 가고자 했다. 그런데 많은 비용과 긴 여정 때문에 무산된 뒤에 한 동안 꿈으로 남아 있었다. 소수가 참가했지만 남미 여행도 다녀왔다. 이정헌 님도 퇴직했고 이제는 갈 수 있는 여건이 된 것 같았다. 러시아 여행지를 검색해 보니 마침 롯데관광의 알뜰 코스인 바이칼 호수와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4박 6일 코스가 있었다. 나는 이것이면 가능하겠다고 생각하고 의견을 제시해 보았다. 그러나 개별 사정이 다 있기 마련이어서 생각대로 다 참석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의논하여 출발 날짜를 6월 28일로 정했다. 갈 수 있는 분이 확정될 때까지 예약을 미루었다. 최종적으로 이 교장님, 홍 교장님, 남복우님, 이정헌님만 갈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안사람에게 같이 가자고 설득해서 6명을 관광회사에 예약했다. 그 날짜도 처음에는 성원이 안 되더니 20명이 되어 출발확정이 되었다. 여행비 149만원을 입금했다. 그런데 추후 누가 취소했는지 16명이 최종적으로 여행을 갈 수 있게 되었다. 여행하기 전에 최대 관심사가 그곳 날씨였다. 여기보다는 10도 아래인 가을 날씨인데 일교차가 크고 바람이 세며 바이칼 호수는 겨울처럼 차갑다고 했다. 인솔자 서대희 씨의 안내에 따르면, 요새 낮은 여름처럼 덥고 바이칼 호수는 겨울처럼 차가우니 외투가 필요하다고 했다. 또 러시아 가게에서는 루블화가 필요하며 개인당 10만 원 정도 준비하면 된다고 했다. 그렇게 회원에게 안내했다. 가기 전에 막상 루블화를 환전하려고 했더니 은행에서도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곳이 많았다. 여기를 여행하려면 먼저 은행에 전화 확인한 뒤 환전을 해야 할 것 같다. 이번에도 러시아 여행 안내프린트를 만들어 카페에 게시했다.
이번에도 기행문을 일기를 쓴다는 생각에서 썼다. 또 여행하면서 사진을 많이 찍었다. 그 사진을 기록으로 보관하겠다는 뜻도 있었다. 작문을 했다기보다는 기록을 했다고 보는 편이 더 맞는 말일 것이다.
6/28(목) 러시아 여행 출발하다
7시에 기상해서 아직 가방에 넣지 않은 물건 등을 챙겨 넣었다. 안사람은 더 일찍 일어나서 준비하고 있었다. 아침밥은 먹지 않고 주스 등으로 때웠다. 나는 8시 출발 시간이 다 되었다고 안사람을 재촉한 뒤 가방 등을 들고 먼저 집 밖으로 나왔다. 좀 늦게 안사람이 나왔다. 10시까지 리무진 버스를 타고 가기에 좀 늦은 듯했다. 다행히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탈 수 있었다. 타기 전에 습관처럼 내 주머니에 물건을 제대로 가지고 있는지 확인했다. 그런데 어르신 카드가 주머니에 없었다. 집 밖으로 나가기 전에 분명 내가 그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소파에 그냥 놓고 나왔는지 짐 가지고 나오는 과정에서 떨어뜨렸는지는 잘 알 수 없었다. 찜찜한 상태로 롯데 앞에서 내렸다. 거기서 리무진 버스를 기다려 타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10시 10분이 지나서 롯데관광 데스크 앞에 도착했다. 이 교장님, 홍 교장님, 남복우님, 이정헌님은 이미 와 있었다. 롯데 데스크 앞에 가서 서대희 인솔자를 만나 서류 등을 인수했다. 남복우님을 통해 교장에게 부탁한 5,200 루블화를 받았다. 10만원을 수고하신 이 교장님께 드려야 하나 어제 돈을 썼기에 드릴 수가 없었다. 주변의 신한은행 인출기에 가서 10만원을 인출하여 교장님께 드렸다. 러시아 항공 앞에 가서 짐을 부친 뒤 자동 심사를 거쳐 출국장에 들어갔다. 거기 식당에서 낙지덮밥, 순두부로 식사했다. 내가 식비를 낸다고 했으나 홍 교장님은 공동경비로 하자고 했다. 그런데 식비는 이번에도 이 교장님이 냈다. 예정대로 1시 5분 비행기에 탑승하고 출발했다. 기내에서는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제공했다. 샌드위치에는 몇 조각으로 썬 고기와 오이가 들어 있었다. 4시 5분에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했다. 운항 시간은 두 시간 소요가 되나 시차가 1시간이 난다. 시계를 맞춰 놓았다. 자동으로 휴대폰의 시간이 조정이 되지 않았다. 남복우님에게 보아 달라고 했으나 일단 휴대폰 전원을 끈 뒤에 다시 시작하면 되는 문제였다. 블라디보스톡 공항은 인천공항만 훨씬 못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국제공항이지만 이곳도 지방 공항이 아니던가. 인솔자와 여자 현지가이드 그리고 16명의 관광객이 탑승했다. 70대 중후반의 여자 단체 6명, 가족 팀 4명, 그리고 우리 팀 6명이었다. 이곳은 젊은이에게는 매력적인 관광지는 아니었다. 아직 초창기에 가깝다고 했다. 러시아 발레 관광에 대해 물었으나 시간상 어렵다고 했다. 겨울철에는 공연이 자주 이루어지고 있고 그때는 공연을 볼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짠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에 낼 선택관광비는 킹크랩 및 곰새우 50달러와 하바롭스크 유람선 30달러가 전부였다. 비용이 적게 든 점은 마음에 들었다. 먼저 한식당에 들러 이른 저녁을 먹었다. 동태찌개로 식사를 한 뒤 가번호텔에 도착해 체크인 했다. 옛날에는 이만한 호텔이 없어 김정일이 러시아 방문 길에 묵었던 숙소라고 했다. 인솔자는 우리에게 여권을 달라고 해서 가져갔다. 우리는 301호부터 303호까지 배정을 받았다. 와이파이 비밀번호도 얻었다. 공동경비로 3천 루블화씩 걷기로 했으나 내가 가져온 돈으로는 두 사람 분 6천 루블화를 낼 수 없었다. 2,000루블만 내자고 했다. 총무는 홍 교장님이 자발적으로 맡으셨다. 덕분에 신경 쓰지 않아 편했다. 가이드와 함께 인근 마트에 가서 맥주와 안주를 사가지고 왔다. 안사람은 피곤하다고 쉬고 나만 남복우, 이정헌님 호실에 갔다. 거기서 모여 담소를 나누고 돌아왔다. 맥주 용량이 많아 한 캔으로도 취했다. 호실로 돌아와 잤다.
6/29(금) 블라디보스톡 시내 관광하다
약속된 7시 반에 호텔 식당에 모여 식사를 했다. 조식은 단출했다. 오늘 9시 반에 모여 관광을 시작한다. 시간이 남아 여유 있게 자리에 누워 있다가 호텔 로비에 모였다. 가이드에게 가이드 팁 60달러와 킹크랩 비와 유람선비 80달러, 도합 140달러를 주었다. 안사람은 킹크랩을 먹지 않겠다고 해서 90달러를 주었다. 그리고 리무진 버스를 타고 블라디보스톡 관광을 시작했다. 노인네가 많아 우리는 뒷자리에 탔다. 오는 내내 그리했다.
블라디보스톡은 ‘동방을 지배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러시아 동해 연안의 최대 항구도시이며 군항이다. 또한 시베리아 철도의 종점이기도 하다. 1856년에 러시아 인이 발견했고 1903년 시베리아 철도가 완전히 개통되어 모스크바와도 이어지게 되었다. 유명한 배우 율 브린너의 출생지이기도 한 곳이다. 현재 무역항의 기능은 나홋카로 옮겨졌다고 한다.
우리는 먼저 철로 앞에 도로에서 내렸다. 철로를 따라 걷기도 했다. 남북 철도가 이어지게 되면 기차를 타고도 여기를 올 수 있는 곳이다. 그러기에는 아직도 먼 미래 이야기 같기도 하다. 또 그때를 기다려 마냥 여행을 늦출 수도 없는 것이다. 잠시라도 철로를 걸으며 동심에 젖었다.
영원의 불꽃, 전쟁영웅참전비를 보았다. 세계 제2차 세계대전 시 희생된 러시아 전쟁 영웅과 군인을 기리는 장소다. 다음으로 잠수함 내부를 견학했다. 45명의 승무원이 35일간 잠수했다가 떠올라 히틀러 군함을 격파했다는 전설의 잠수함이다. 잠수함 내부의 석면에 물을 뿌려 거기서 나오는 산소로 견뎠다고 한다. 홍 교장님은 거기서 안내인의 도움을 받아 함장의 제복을 입어보기도 했다. 그리고 나와서 정교회 사원을 지나 개선문에 가 보았다.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블라디보스톡 방문 기념으로 세워진 문이었다. 개선문치고는 아담해 보였다. 그리고 극동함대사령부 건물을 지나 해변으로 내려왔다. 명칭은 많이 나열했지만 다 인근에 있는 것들이었다.
해변에 동상이 하나 서있었다. 러시아말로 쓰여 있어 누구를 지칭한지 몰랐다. 홍 교장님이 지나가던 러시아 인에게 물으니 솔제니친이라고 했다. 그 유명한 노벨문학상 작가 솔제니친이 아닌가. 우리는 그 동상 앞에서 단체 기념사진을 찍었다.
다시 리무진으로 이동했고 걸어 독수리전망대에 올라섰다. 골든 혼 베이(Golden Horn Bay) 해변과 금각교가 잘 보였다. 금각교는 2012년 아페크 회담을 기념하여 건설한 블라디보스톡의 랜드마크다.
다시 리무진으로 이동해 식당으로 가 점심 식사를 했다. 거기서 빵과 스프 보르쉬를 먹은 뒤 킹크랩과 곰새우를 먹었다. 인솔자는 곰새우 먹는 법을 시연해 보였다. 양이 많아 다 먹지 못했다. 나중에 열차에서 먹으려고 남은 킹크랩과 곰새우를 박스에 담았다. 무려 네 박스나 되었다.
식후 해변 산책하러 나섰다. 산책하러 가는 길 도중에 과일가게에 들러 체리 등을 샀다. 그리고 해변에서 여유 있게 산책한 뒤 맥도날드 가게에 들어가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 약속된 시간에 모여 리무진이 주차한 곳을 찾아가는데 안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안사람은 오른쪽 뺨에 꽃나비 문신을 한 얼굴로 나타났다. 전에 인도에서 헤나 체험을 한 경험으로 한 것 같았다. 기념으로 사진을 찍어 주었다. 저녁은 현지식으로 했다. 전채 샐러드에 수프에 고기, 감자가 주 메뉴였다. 가이드에게 들으니 러시아는 식사가 늘 이런 식이란다. 보드카에 고기와 감자로 식사를 하니 중년이 되면 비만해지고 단명하다고 한다. 러시아 거리에 노인이 없는 주된 이유라고 한다.
그 다음에는 인솔자의 제안에 따라 신한촌 기념비가 있는 곳에 가보았다. 옛날에 우리나라 독립운동가 및 이주민이 많이 살던 곳이었다. 스탈린이 일본인 첩자를 두려워하여 이주민 주택을 강제로 철거하고 이주시켰다. 그 장소에 세운 기념비였다. 평소 여기를 관리하던 분이 오늘 따라 없어 그냥 가이드 설명만 듣고 돌아왔다.
리무진으로 이동해 혁명광장으로 갔다. 그날 저녁에 공연이 있는지 무대 설치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거기서 동상 사진을 몇 장 찍고 다시 리무진으로 이동했다. 하루 종일 이런 식으로 블라디보스톡 시를 뺑뺑 돌았다.
그리고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시발점이자 종착역인 중앙역에 도착했다. 먼저 기념물로 서있는 옛 시베리아횡단열차를 보고 기념비도 본 뒤 기차에 탑승했다. 4인 1실이었다. 4분이 한 실에 탑승하고 우리 부부는 다른 팀 부부와 다른 한 실을 사용했다. 객실 내부는 비좁았다. 중국 실크로드 여행 할 때 탑승했던 침대실보다 훨씬 비좁아 보였다. 다른 팀 부부는 대화를 나누고자 하는 의사가 없어 보였다. 우리는 식당실에 가서 맥주 두 병을 사왔다. 차장에게 기념품도 사 주었다. 산 물건을 홍 교장님이 안사람에게 주었다. 그리고 싸 온 킹크랩과 곰새우를 간식으로 먹었다. 잘 시간이 되어 돌아와 자리에 누웠다. 바깥 경관은 한결같아 좀 보다가 그만두었다. 아침이 되어 차장이 도시락을 갖다 주었다. 그러나 인솔자가 하차한 뒤 아침 식사를 한다고 해서 빵 한 개만 먹고 말았다.
6월 30일(토) 하바롭스크 시내 관광하다
기차는 밤새 달려 8시 반에 하바롭스크에 도착했다. 새 남자 현지 가이드를 만났다. 전 여자 가이드는 달변이고 말을 조리 있게 하는 타입이었다. 결혼하지 못하고 사는 노처녀의 삶의 이야기를 손님들이 재미있게 듣는다고 생각하는 듯 하소연하듯 풀어 놓았다. 그런데 이 남자 가이드는 과묵한 편이었다. 물어 봐도 대답 없이 때가 되면 설명하겠다는 식이었다. 일단 우리를 하바롭스크를 발견한 하바로프를 기념하여 만든 동상에 데려 가는 것으로 시작했다. 아마도 시 명칭이 이 인물에서 연유한 듯했다.
하바롭스크는 러시아 극동 지방에서 가장 큰 도시다. 철도 부설과 함께 러시아 극동 진출의 거점이 되었다. 제조업이 성하게 이루어지고 광물자원도 풍부하다고 한다.
우리는 리무진으로 이동하여 식당으로 갔다. 조식이라 그런지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나왔다.
식사를 마친 뒤 리무진으로 이동하여 성모승천사원에 갔다. 아무르 강변이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있는 사원으로 깨끗하고 아름답게 보였다. 사원 주변에는 혁명내전 영웅 기념탑이 서있었다. 우리는 사원에서 나와서 아무르 강변 쪽으로 내려갔다가 전망대가 있는 쪽으로 산책 겸 걸어갔다. 전망대 앞 낮은 언덕에 러시아인 동상이 서있었다. 아무르스크 동상이라고 러시아 화폐 5,000루블에 나오는 인물이며 극동개척에 앞장선 인물이라고 한다. 아마도 아무르 강이라는 말도 이 인물 명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 전망대 입구 옆에는 김정일이 블라디보스톡에 방문했다는 기념 팻말도 서있었다. 우리는 전망대에서 아무르 강 경관을 조망했다. 그리고 걸어서 인근의 향토 박물관에 갔다. 1895년에 설립되어 연해주에서 가장 규모가 큰 박물관이라고 한다. 2개의 건물로 되어 있었다. 첫 건물은 자연관이었다. 매머드 뼈, 공룡 뼈, 물개 등을 전시하고 있었다. 두 번째 건물은 역사관이었다. 레닌, 스탈린 등의 역사적 인물 사진과 그림 및 포로 감시 초소 등 유물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이동하여 식사를 한 뒤 유람선을 탔다. 철교 있는 데까지 한 시간 남짓 배를 타며 아무르 강과 수변 건물을 감상했다. 도중에 현지 가이드가 와서 이정헌님을 찾았다. 어제 호텔에 맡겼던 여권 중 호텔 측에서 이정헌님의 여권을 빠뜨렸다고 했다. 절차에 따라 여권을 회송해야 하는데 이를 설명할 인수서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런 일은 생전 처음 겪는 일이었다. 설명서는 가이드가 러시아어로 작성했다. 그리고 쓴 내용을 이정헌님에게 번역해 설명해 주었다. 나는 이것이 사건이라고 생각하고 이정헌님이 사인하는 장면을 찍었다. 내 나름 순발력을 발휘한 것이다. 그 내용을 모르는 사람은 이 사진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겠지만.
다음에 리무진으로 이동해 명예 광장으로 갔다. 2차 세계대전의 승리를 기념하는 광장이다. 혁명내전영웅기념탑이 서있었다. 거기서 다시 영원의 불, 무명용사의 묘비가 서있는 곳으로 내려갔다. 거대한 규모였다. 2차 세계대전의 가장 큰 희생자는 러시아 군인이라고 하니까 그럴 만도 하다. 우리는 다시 이동해 아이스링크 장으로 갔다. 아이스링크 안 시설을 본 것이 아니라 그냥 공용화장실만 이용하고 나왔다. 인근에 북한 러시아 영사관 건물이 있다고 해서 호기심에 가보았다. 홍 교장님, 이정헌님, 안사람과 건물 앞으로 갔다. 작은 팻말에 ‘로씨아련방 하바롭스크시 주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총령사관 지부’라고 쓰여 있었다. 깃발이 안 보여 옆쪽으로 돌아 나오니 깃발이 서있었다. 건물 내에서 북한여자 두 명이 나와 우리를 흘깃 쳐다보았다. 별것도 아니었지만 북한영사관에 가까이 가본 것도 기념이 된다. 작은 흥분도 느꼈던 것 같다.
다시 리무진으로 이동해 레닌 광장으로 갔다. 광장 중앙에는 큰 분수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2018 러시아 월드컵 기념비가 서있었다. 건물 가까이에는 레닌 동상이 서있었다. 다시 이동해 시장에 들렀다가 저녁 식사하러 갔다. 오늘 저녁은 한식으로 육개장을 먹는다고 했다. 그런데 가보니 당구장이 설치돼 있는 곳에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또 조명도 밝지 못해 어두컴컴했다. 예약했던 좌석이 이미 만석이 되어 임시변통으로 차렸다고 했다. 우리는 당연히 항의했다. 인솔자도 식당 측에 항의하고 사진을 찍고 본사에 연락했다고 했다. 식당 측에서는 미안하다는 뜻으로 디저트를 마련해 주었다. 이 교장님은 필시 이 가격이 육개장 가격보다 비쌀 것이라고 했다. 러시아에서 많이 목격한 일이지만 여기는 융통성이라고는 찾을 수가 없다. 원칙대로 고지식하게 묵묵히 수행할 뿐이고 국민들은 여기에 잘 길들여져 있다. 그리 생각했다. 오랜 만에 화장실에 갔다. 여행을 하다보면 긴장을 아무래도 하게 되나 보다. 화장실이 어디냐는 말은 러시아어로 ‘그제 뚜왈렛’이라고 한다. 감사하다는 뜻인 ‘스파시바’라는 말 외에 처음으로 써먹어 보았다. 훌륭히 잘 통했고 직원인 아가씨가 친절히 나와서 안내해 주었다.
비보가 메시지에 떴다. 간단히 사촌 동생이 별세했다는 내용이었다. 동생 친구가 보낸 메시지였다. 사연이 궁금해서 그 친구와 국제 통화를 했다. 그리고 여동생과 통화해 내가 외국에 나와 있으니 대신 조문을 부탁한다고 했다.
남자 가이드와 헤어졌다. 별로 설명해주지 않는 말수 적은 가이드였다. 언제 헤어졌는지도 기억에 없었다. 다만 기억나는 말은 있다. 러시아 삼대 명품은 보드카, 흑빵, 여자라고 했다. 삼대 불량품은 도로, 날씨 그리고 남자라고 했다. 공감이 가는 말이어서인지 술은 좋아하지 않지만은 보드카는 사가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리무진을 타고 공항으로 이동했다. 10시에 이르쿠츠크 향발 비행기에 탑승했다. 운항 시간은 3시간 35분이 소요된다고 한다. 그러나 시차가 작용해서 이르쿠츠크 공항에 한밤중인 11시 35분에 도착했다. 그리고 리무진을 타고 숙소인 델타호텔로 이동했다.
7/1(일) 바이칼 호수에 가다
결국 새벽 1시가 다 되어서야 체크인을 하고 호실을 배정받을 수 있었다. 오늘은 늦었기에 내일은 10시에 출발한다고 했다.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받았다. 이틀간 이 호텔에서 숙박한다기에 짐 꾸릴 필요가 없어 좋았다. 나는 차 속에서 잘 자는 편이다.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도 숙면하였으니 7시 반 식사하기 전에 일어나도 졸리지 않았다. 10시에 리무진을 탔다. 인솔자가 새 가이드를 소개했다. 가이드는 다시 여자로 바뀌었다. 광주에서 한국어 연수를 받았다지만 한국어가 서툴렀다. 글을 구어체로 바꿔 전달하지 못하고 그대로 읽는 수준이었다. 그 전 가이드는 감기로 못 나오고 실습 겸 나온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인솔자가 가이드가 한 말을 다시 알아들을 수 있게 요약하여 전달하곤 했다. 1시간 정도로 바이칼 호수로 흘러가는 앙가라 강을 따라 라스트 반카로 이동했다.
먼저 앙가라 강의 샤먼 바위를 보았다. 강엔 안개가 짙게 끼어 샤먼바위가 보일락 말락 했다. 이 바위에서 바이칼 신에게 제사 드리는 의식이 진행되기도 하며 과거에는 범죄자를 심판하는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했다. 안개가 살짝 걷힐 때 사진을 찍었다. 바위 형상이 작아서 이 사진을 그냥 본 사람은 강 위에 바위가 있었는지 또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를 것이리라.
그리고 바이칼 호수의 유람선이 있는 선착장으로 갔다.
바이칼 호수는 ‘풍요로운 호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크고 가장 깊은 호수다. 세계 최고의 담수량을 자랑한다. 약 2,500만년의 역사를 지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한다. 물감과 같은 호수 빛으로 ‘시베리아의 진주’라고 불린다. 한 여름에도 호수의 온도가 영상 2 – 5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유람선을 타기 전에 호수 물에 손을 담가 보았다. 시릴 정도는 아니지만 차가웠다. 한 척당 10명밖에 승선하지 못한다고 하여 우리 배에 가족 팀 4명이 탔다. 가이드도 왔다. 배가 작아 선내에는 쉴 공간이 없었다. 선미의 테이블에 앉아서 보드카에 바이칼 호수에서 나온다는 생선인 ‘오물’ 두 마리를 안주 삼아 먹었다. 멀리 연무가 낀, 끝없이 이어진 호수의 산자락을 바라보며 승경을 즐겼다. 홍 교장님이 선두에 올라서서 양 팔을 펼쳐 보였다. 남복우님도 다른 포즈를 취해 보였다. 그 사진을 찍었다. 잠시 뒤에 안사람 사진도 찍으려는데 선원이 나와서 위험하다고 올라가지 말라고 했다. 맑고 푸른 물결 위에 무지개가 떴다. 육안으로는 선명히 보이지만 카메라에는 잘 안 잡혔다. 도수를 높여 찍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돌아왔다. 바이칼 호수가 바다같이 드넓은 곳이어서 1시간 이상 배가 돌았어도 아주 일부를 돈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인솔자가 바이칼 호수는 바람도 세고 날씨가 겨울처럼 차가워서 외투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런데 오늘 날씨는 그렇지 않았다. 봄 날씨 같았다. 배에서 내리니 다시 날씨는 여름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점심 식사하기 전에 재래시장을 둘러보았다. 물론 관광시장이다. 생각보다 비싸고 특별히 살 것도 없어 그냥 둘러보기만 했다. 여기서 구운 빵이 싸고 맛있다고 사는 분도 있기는 했다. 가이드가 아이스크림을 관광객들에게 사주었다. 그리고 걸어서 식당으로 이동했다. 현지식으로 식사했다. 그리고 리무진으로 이동하여 딸지목조건축박물관으로 갔다. 17세기 시베리아에 정착했던 러시아인들의 가옥을 재현한 곳이다. 그 외관을 감상하고 내부에 들어가 보기도 했다. 첫 번째 군인의 집을 견학했다. 거기에 가수가 한 분 있었는데 중국인 관광객 다수가 들어오기 시작하자 노래 솜씨를 선보였다. 두 번째로는 학교에 갔다. 교실과 선생님이 머무르던 호실이 자그마한 건물 내에 같이 있었다. 초등학교 교실 같이 보였는데 걸려 있는 그림에는 어른들이 의자에 앉아 선생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농부의 집에도 찾아갔고 딸 부잣집의 민간 가옥에도 들어가 보았다. 그리고 옛날에 반야 사우나를 하던 집에도 들어가 보았다. 반야 사우나를 하는 방식을 소개한다. 뜨겁게 달구어진 돌무더기에 물을 끼얹고 그 증기로 사우나를 한다. 이때 잎이 달린 자작나무 줄기 다발로 몸을 두들기며 땀과 노폐물을 빼낸다. 이것이 러시아의 전통 사우나 방식이다. 내일 우리는 그런 체험을 하게 된다. 인솔자는 여기서 내일 사용할 자작나무 가지를 몇 개 꺾어가지고 가라고 했다. 그리고 마을 공동체를 이루었던 건물 내에도 들어가 보았다. 여기에도 중국인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곳에 있던 직원이 흥이 났는지 멋진 듀엣 중창을 했다. 그리고 1시간 동안 자유 시간이었다. 우리는 인근의 앙가라 강까지 산책 겸 걸었다. 그리고 풀밭에 놓여 있는 의자에 앉아 쉬고 있었다. 나는 풍경 사진을 더 찍으려고 좀 떨어져 있는 낡은 배와 모래 속에 묻혀 있는 배 있는 곳으로 갔다. 찍은 뒤 돌아오는데 다섯 분이 앉고 서 있는 모습이 퍽이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아름답게 보였다.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이 밀레의 그림처럼 아름답다는 호평도 받았다. 이번 여행에서 사진을 참 많이 찍었다. 주로 승경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사진을 이번 러시아 여행 중 가장 만족스러운 최고의 작품으로 꼽고 싶다. 저녁은 원래 계획과 달리 중국 음식점에 가서 중식을 했다. 북경오리점이었다. 어제 저녁 고객들에게 당구장에서 식사하게 된 것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본사에서 제공한 식사라고 했다. 점심을 늦게 먹은 터이라 시장하지 않은 상태였는데 음식은 계속 나왔다. 상당한 음식을 남긴 채 식당에서 나왔다. 리무진을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마트에 가서 술도 사오고 안주도 사서 마지막 밤을 맞이하자고 했다. 그런데 오늘까지 졸업식 시즌이라 술을 팔지 않는다고 했다. 과일과 주스만을 구입했다. 인솔자가 밤에 다른 마트에 가서 보드카를 사온다고 했지만 그 역시 성공하지 못했다고 한다. 우리는 9시에 다시 모여 담소를 나누었다. 그리고 호실로 돌아왔다. 여행 전 컵라면을 준비해 왔지만 그간 포식을 해서 먹을 기회가 없었다. 이 교장님이 주신 컵라면도 한 개 남아 있었다. 이번에는 그 컵라면을 먹으리라. 물을 끓였다. 안사람도 먹고 싶다고 해서 한 개를 나눠 먹었다. 안사람은 지친 여정 탓인지 몸이 안 좋다고 소화제 활명수와 감기약 판콜을 마시고 잤다.
7/2(월) 이루쿠츠크 시내 관광을 하다
오늘도 7시 반에 식사를 했다. 우리가 가장 먼저 식사를 시작한 팀이 되었다. 10시 출발하기 전에 인솔자가 오늘은 보드카를 구입할 수 있는지 마트에 가보자고 했다. 그래서 다 같이 걸어서 마트에 갔다 왔다. 이정헌님은 보드카 두 병을 구입했다. 안사람은 가방을 산다고 하더니 물건에 하자가 있다고 환불하고 말았다. 이렇게 장을 본 뒤에 출발을 했다.
먼저 카잔스키 대성당으로 갔다. 건물의 앞모습도 아름다웠지만 옆에서 본 모습은 더 멋있었다. 여기저기 학생들이 성당을 배경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성당을 나와서 옆에 있는 동물원에 갔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동물원의 수준이 아니었다. 가축 몇 마리가 살 수 있는 여건을 좀 마련해 준 우리에 지나지 않았다. 이어서 리무진을 타고 즈나멘스키 수도원을 찾아갔다. 수도원 앞 인근에 콜차크 제독의 동상이 서있었다. 그 사진을 찍은 뒤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이 수도원은 시베리아의 첫 여자 수도원이라고 한다. 원래는 목조 건물이었는데 불에 타서 지금과 같은 석조 건물로 준공되었다고 했다. 아름답다기보다 정결한 느낌이 들었다. 수도원에서 나와서 인근의 앙가라 강가를 산책했다. 먼저 ‘모스크바로 가는 문’ 건축물의 사진을 찍었다. 실제 통로라기보다는 기념물 성격을 띤 건물이었다. 여기서 다시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강변을 산책했다. 햇볕이 강렬해 아래 둑길을 걸었다. 걸어가는 도중에 대형 벽화가 여러 장 그려 있었다. 이 그림도 사진을 찍었다. 강가 난간에는 굵은 자물쇠가 쭉 채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둑 위로 다시 올라와 이르쿠츠크 도시를 설립한 인물의 기념 동상을 지나 성당으로 갔다. 내부를 관람한 뒤 공원을 지나 영원의 불꽃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이곳의 불꽃은 그간 본 불꽃 중 크고 활활 타올랐다. 기념으로 이 사진도 찍었다. 공원 숲 그늘에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걸었다. 이르쿠츠크 주청사를 지나고 대학 건물을 옆에 두고 키로프광장으로 들어갔다. 공원이었다. 시원한 분수가 있고 많은 사람들이 가로수 밑 벤치에 앉아 담소하거나 책을 읽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다시 걸어 알렉산드르 3세 동상 앞으로 갔다. 수많은 업적이 있었다고 하나 가이드 지식이 부족해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 중에 시베리아 열차를 놓은 것은 그의 확실한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리무진으로 이동해 중앙시장으로 갔다. 단체로 잣과 호두를 샀다. 홍 교장님과 이정헌님이 흥정을 했다. 이번에도 이 교장님이 회원들에게 사주셨다. 부족한 돈은 홍 교장님이 채워 주셨다. 이정헌님과 남복우님은 운동화를 구입했다. 짝퉁이지만 아주 싸게 사셨다. 안사람도 아이에게 줄 가방을 구입했다. 그리고 리무진을 타고 반야 체험하는 곳으로 이동했다. 월요일은 보통 휴업일인데 예약한 지라 오늘 사장이 나왔다고 했다. 우리로서는 고객이 적은 것이 호젓해서 좋았다. 남탕은 2층에, 여탕은 지하에 있다고 했다. 여자분들의 탕에 대한 질문이 쏟아지자 인솔자가 직접 먼저 들어가 보겠다고 했다. 사물함에는 모자와 아래를 두를 천과 수건이 놓여 있었다. 먼저 세면실에 가서 샤워를 하고 탕실에 들어가서 달궈진 돌에 물을 끼얹어 증기욕을 하는 곳이었다. 나는 뜨거운 탕이 싫어 평소에 가지 않지만 어떤 곳인지 알고 싶어 시험 삼아 한 번 들어갔다 나왔다. 이것도 기념이다 싶어 샤워하는 모습과 탕실에서 반야 체험하는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샤워 하는 도중에 밖에서는 폭우가 쏟아졌다. 교장님은 이정헌님과 가져온 컵라면을 드셨다. 원래 두 개 가져 왔는데 여기 여사장이 한국 음식을 좋아해서 그 중 한 개를 사장에게 주었다고 했다. 사장은 잘 먹는데 한 입 얻어먹은 러시아 여직원은 매워 죽을라고 했다고 한다. 반야 체험을 마치고 길로 나오니 길가에 물이 흥건했다. 리무진으로 이동하여 ‘김치’ 상호의 한식당에 갔다. 거기서 김치, 된장찌개와 돼지고기볶음요리를 먹었다. 상추는 컸지만 여기서는 추가 신청해서 먹어야 하는 음식이라고 했다. 식사를 마친 뒤 뜨거운 물을 달라고 하여 믹스커피 한 잔을 마셨다. 이정헌님으로부터 회비 10만원을 받았다. 그 돈에서 이 교장님에게 빌린 1,000루블화 대신에 2만원을 드렸다. 그리고 리무진으로 이동하여 백화점 앞으로 걸어갔다. 우리는 거기서 타이거 상까지 산책 겸 걸어가 보고 돌아왔다. 여기 타이거는 ‘Babr’라 불리는 시베리아 상징 동물이다. 사나운 모습은 있지만 우리나라 조각가가 만들었다면 더 사실적으로 아름답게 형상화했을 것이다. 여기는 여름에다 이곳의 위도가 북쪽에 있는지라 9시가 되어도 날이 훤했다. 백화점 가게에 들어가 홍 교장님과 남복우님은 모자를 구입했다. 안사람도 그 가게에 들어가 손녀 성윤의 옷을 샀다. 그리고 약속된 시간인 9시 반에 다시 백화점 앞에 모였다. 그리고 리무진을 타고 공항으로 이동했다. 하바롭스크 행 국내선은 새벽 1시 5분에 있었다. 그 동안 이정헌님은 기나긴 기다림 끝에 여권을 손에 쥘 수 있었다. 러시아의 만만디도 중국 못지않다. 우리는 대기하고 있다가 시간이 되어 같이 탑승했다.
7/3(화) 귀국 길은 멀었다
여기서 하바롭스크 공항까지는 3시간 10분이 소요된다. 기내식이 제공되었다. 4시 10분에 도착했다. 이제 도착하면 다시 짐을 찾아서 국제선으로 이동을 해야 한다. 우리 부부는 비행기 앞좌석에 앉아 있었기에 일찍 비행기에서 내려왔다. 그런데 우리를 공항까지 실어 나를 버스가 두 대가 앞에 서있었다. 그런데 행선지가 달랐다. 한 버스 앞에서 직원이 표를 확인하고 있었다. 나는 그 버스가 아닌 것 같아 다른 버스에 올라탔다. 그런데 같이 내렸던 안사람이 버스 내 안 보였다. 다른 버스 앞에서 계속 서성거렸다. 왜 그런가 했더니 안사람이 그 버스 앞 직원에게 표를 건네주는 과정에서 바람에 날려 짐표가 버스 타이어 안쪽으로 들어가 버렸다는 것이었다. 안사람은 그 직원에게 표를 찾아 달라고 부탁했으나 그 여직원은 방법이 없다는 식으로 거절했다. 안사람이 아직 버스에 타지 않아 출발하지 않고 있는 사이에 그 차가 먼저 떠났다. 안사람이 달려가 그 짐표를 찾아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버스에 탑승했다. 안사람이 그리 한 이유가 있다. 여기서는 짐을 찾으면 짐표와 짐을 직원에게 확인해 보인 뒤 가지고 나갈 수가 있다. 의사가 잘 전달이 안 되는 상황에서 융통성이 없는 러시아 직원에게 확인 받기는 힘들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짐을 찾은 뒤 국제선으로 이동해야 한다. 여기는 국내선과 국제선의 환승 제도가 아직도 제대로 정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짐을 손수 옮겨야 한다고 했다. 짐을 끌고 거기까지 600미터를 걸어갔다. 거기서 다시 인천에 갈 비행기 표를 끊어야 한다. 한참을 기다려서 짐을 부칠 수 있었다. 그간 공항 면세점에서 그간 못 산 보드카 두 병을 구입했다. 그리고 안사람이 선물로 드릴 양주 한 병을 구입했다. 가져온 달러로 계산했다. 9시 55분 인천발 비행기에 탑승했다. 여기서도 기내식을 주었다. 약 3시간이 소요되었다. 12시가 다 되어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드디어 공항버스로 이동하지 않고 바로 공항에 들어올 수 있었다. 시설면에서 인천 공항이 으뜸임을 새삼 깨닫는다. 짐을 찾은 뒤 서로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우리는 다 같이 전철을 타고 가다가 헤어졌다. 우리는 차 속에서 어제 못 보내 사진을 여기저기에 보내는 카톡 작업을 했다. 집에 오는 도중에 여기 서울 날씨가 한여름 더위임을 실감한다. 더워서 한동안 웃통을 벗고 짐 정리를 한 뒤에야 샤워를 했다. 사실 집에 와서 내가 제일 먼저 찾은 것은 어르신 카드였다. 금년에 카드를 받은 뒤 여기저기 다니면서 잘 사용했다. 거기에 티머니도 얼마간 저장되어 있었다. 그간 애지중지한 보람도 없게 되었다. 잃어버린 듯. 찾기를 그만 포기하고 점심을 먹었다. 가져간 컵라면을 이제야 가방에서 꺼내서 점심 식사로 대용했다.
돌아보니 짧은 기간에 참으로 긴 여정이었다. 맨 사원에 혁명 기념비만 본 것 같았어도 많은 사건과 에피소드가 있었다. 인솔자 서대희 씨가 카톡으로 사진을 찍어 보내며 인사를 해 왔다. 자기 관리에 철저한 분 같았다. 여행하기만 하면 나는 살이 쪄가지고 돌아온다. 여행 중에 잘 먹고 잘 자니 살 찔 수밖에 없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저녁은 간식으로 때우고 내가 좋아하는 야구 경기를 시청하는 것으로 휴식을 대신했다. 그리고 시청을 마친 뒤에 그간 쓰지 못했던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일기를 단 시간에 다 쓰기는 어렵다. 그래서 여행 중 보며 겪은 내용을 위주로 간단히 메모부터 했다. 그것으로 오늘 하루를 가름했다. (끝)
첫댓글 시베리아 여행기 잘 읽었습니다.
상세하게 잘 정리하셔서, 내가 여행을 다녀온 듯 하였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시 읽어 보니 오타도 있고 문맥이 어색한 것도 있네요. 퇴고하여 다시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