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냉면집에 비하면 을지면옥은 그다지 오래 된 집이 아니지만 드나드는 손님들의 나이대가 가장 높은 집일 듯하다. 그만큼 전통적인 냉면 맛을 구현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냉면은 참으로 단순해 보이는 음식이다. 하지만 면과 국물만으로 빼어난 조합을 만들어내기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을지면옥의 냉면(5500원)은 이런 단순한 조합을 명쾌하게 보여준다. 큼직한 스테인리스 대접에 담긴 면은 약간 위압적이다.
시각적으로 단순하다. 차가운 국물, 메밀로 뽑은 면, 그 위에 살짝 뿌려진 파와 고춧가루. 맑은 국물을 한모금, 입 안을 촉촉하게 적신 후 그 날 국물의 상태를 감안하면서 초와 겨자를 친다. 그러면 국물 맛이 화사하게 살아난다. 시원하고 개운한 쇠고기 육수의 느낌이 초와 겨자의 더해짐으로 향긋함을 지닌다. 면을 이빨 사이에 갖다 대면 메밀 특유의 투박함을 지닌 면이 약간은 꾸들꾸들한 느낌을 던지면서 툭 끊어진다. 간결하면서도 시원하고, 깊은 냉면 맛이다. 냉면을 먹기 전에는 제육(8000원)을 주문하는 것도 좋다. 기름기가 많은 부위를 원한다면 주문할 때 미리 이야기를 해야 한다. 매콤한 양념장에 기름진 돼지고기 한 점 찍어먹으면 소주 생각이 절로 난다. 실제로 그렇게 혼자 드시는 이북 출신 노인분들도 많다.
▶ 찾아가는 길: 종로 3가에서 을지로 3가 방향으로 길을 건너면 대로 왼편에 간판이 보인다. 을지로 3가역 5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앞 / 주차: 일방통행로라 어려움 / 카드: 가능 / 영업시간: 오전 11시30분~오후 9시 / (02)2266-7052
●미스터 차우(홍콩요리)/중구 태평로
홍콩 번화가 음식점이 서울 한복판으로 이동했다. 광화문 코리아나호텔 1층 ‘미스터 차우(Mr.Chow)’. 전형적 홍콩 식당의 모양새다. 정면 유리창 뒤로 붉은 돼지고기 덩븜리, 갈색 통오리구이 등이 주렁주렁 걸려 있다.
평일 점심시간에는 런치세트(9000원)가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다. 일품요리 중 하나를 선택하면 볶음밥과 함께 접시에 담겨 나오고, 수프가 딸려 나온다. 일품요리는 요일별로 바뀐다.
홍콩의 대표적인 요리라고 하면 ‘차시우’(叉燒·베이징 표준어 발음으로는 차샤오·레귤러 1만1000원, 대 1만5000원)를 들 수 있다. 유리창 뒤에 걸려 있는 붉은 돼지고기가 바로 그것이다. 메뉴판에는 ‘바베큐 포크’로 적혀 있다. 돼지고기 목살에 꿀과 간장 등의 양념을 발라 구운 바비큐 요리다.
미스터 차우의 또다른 대표요리로는 ‘통오리구이’(레귤러 1만2000원, 대 1만6000원)가 있다. 감초, 월계수잎, 진피 등 13종의 향신료를 섞어 만든 소스를 고기에 잘 스미도록 재어 숙성시킨 후 통째로 오븐에 구웠다가 말리고, 다시 구웠다 말리는 과정을 두세 차례 반복한다. 25년 경력의 홍콩인 주방장 차우쉬만(周永文)씨의 특기라고 한다. 미스터 차우라는 음식점의 상호도 차우 주방장의 성(姓)에서 따온 것이다.
▶ 찾아가는 길: 광화문 코리아나호텔 1층 / 주차: 코리아나호텔 주차장 2시간 무료 이용 가능 / 카드: 가능 / 부가세 10% / 영업시간: 점심 오전 11시 30분~오후 2시, 저녁 오후 5시~밤 10시 (토·일요일에는 오후에만 개점) / (02)730-5656
●하동관(곰탕)/중구 수하동
정문과 후문 양쪽에 걸려 있는 간판에는 ‘곰탕 전문 하동관’이라고 적혀 있다. 설렁탕이 대세를 잡고 곰탕은 기세가 꺾였음에도 오로지 곰탕으로 50년 넘는 전통을 지켜오고 있는 집이다.
메뉴는 수육과 곰탕(보통 7000원, 특 8000원)뿐이다. 가게 안에 들어서면 바글거리는 사람들, 인근의 샐러리맨들은 다 몰려든 듯 넥타이 부대들도 많다.
가게 안에는 오랫동안 밴 기름진 냄새가 은은하게 풍긴다. 점심시간에 합석은 기본, 자리에 앉아 식권을 내주면 누런 놋쇠대접에 담긴 곰탕을 들고 온다. 그릇이 무척 뜨거운데도 스스럼없이 손으로 들어서 테이블에 내려놓는다. 많은 이들이 “가끔은 손톱 맛으로 먹는 거죠”라며 농담삼아 이야기한다. 흰 가운을 입은 남정네들이 서빙을 담당하므로 동작들이 거침이 없다.
국물에는 기름기가 동동 떠있고, 뽀얀 국물에서는 쇠고기 국물 냄새가 풍긴다. 양지머리, 내장, 뼈 등을 계속 끓여낸 진국이다. 소금 간만 하는 걸로 모자라면 ‘깍국’을 더 요청하면 된다. 깍두기 국물을 줄여 부르는 이 집만의 은어인데, 주전자에 담아와서 따라준다. 맑은 국물과 적당히 익은 깍두기 국물 맛이 잘 어울린다.
아침부터 점심까지 영업하고 오후 4시 정도면 문을 닫아 버린다. 곰탕 한 그릇 얻어먹으려면 서둘러야 한다.
▶ 찾아가는 길: 을지로입구역에서 조흥은행 본점 쪽으로 나오면 오른편에 45도 각도로 꺾어진 골목이 있다. 이 길을 따라 100m 정도 들어가면 오른쪽에 간판 / 주차: 골목안이라 어려움 / 선불을 하면 식권을 준다. 딴 데서는 보기 드문 시스템이다. / 영업시간: 오전 7시~오후 4시 / (02)776-5656
●평안도집(족발)/중구 장충동
장충동 족발이라는 단어가 고유명사화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장충동은 족발로 유명하고, 족발집들 또한 많다. 근처에 있는 가게들이 다 몇십 년씩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어서 여러 집들이 오랫동안 경쟁을 벌이다보니 자연스럽게 장충동 족발촌의 맛도 유지가 되고 있는 듯하다.
또한 이 동네를 주름잡아온 할머니들은 대부분 이북 출신이다. 돼지고기 다루는 솜씨는 이남보다 이북 쪽이 훨씬 나았던 것도 족발집들이 유명해진 이유다.
평안도집에는 오랫동안 족발을 삶아온 솥이 있다. 그 안에 담겨 있는 건 족발을 삶으면 항상 같은 맛이 나도록 유지해주는 족발 삶는 국물이다. 족발에서 빠져 나오는 기름기와 양념 맛으로 간이 유지된다. 시원스런 주인 할머니가 족발을 씩씩하게 썰고 있는 모습만으로도 맛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렇게 썰어낸 족발은 야들야들하고, 쫄깃쫄깃하다. 겉보기에도 먹음직스러운 발그레한 족발들, 보기 좋게 가지런히 썰어낸 족발이 쟁반에 담겨 나온다. 족발 자체가 먹을 게 많고, 뼈를 잡고 뜯어 먹는 재미까지 있으니 소주 한 잔 곁들여 먹기에는 참으로 푸짐한 안주거리답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나라식 족발을 먹다 보면 독일식의 아이스바인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든다. 외국인들에게 추천해도 경쟁력 있는 음식이 아닐까.
▶ 찾아가는 길: 장충동 족발집 촌 좁은 골목 안쪽으로 간판 / 주차: 어려움 / 카드: 가능 / 영업시간: 오전 10시~밤 11시 / (02)2279-97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