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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발라, 창조의 알파벳
창조의 알파벳
‘우주(다른 사람들은 ‘도서관’이라 부르는)는 부정수 혹은 무한수로 된 육각형 진열실들로 구성되어 있다.‘
보르헤스의 단편 소설 <바벨의 도서관>의 서두 문장입니다. 이 글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소설에 등장하는 도서관은 우주를 상징합니다. 소설 속에서 이 도서관은 육각형의 진열실들이 끝도 없이 무한히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소설에서 그는 도서관의 육각형 구조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지요. ‘
'관념론자들은 육각형의 방들이 절대적 공간, 또는 적어도 공간에 대한 우리들의 직관을 표상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형상이라고 주장한다.’
보르헤스는 우주를 상징하는 도서관의 기본 구조를 육각형으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카발라적인 우주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육각형 도서관
카발라의 경전 <세페르 예치라(창조의 서)>에 보면 신은 히브리어의 12단자 중 세 개의 문자, 요드, 헤, 바우로 공간의 여섯 방향(위, 아래, 동, 서, 남, 북)을 봉인하여 우주의 경계를 만들었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앞서 살펴 본 바 있듯이 이 세 문자는 테트라그라마톤을 구성하고 있는 문자임을 알 수 있지요. 다시 말해 신은 자신의 이름으로 우주 공간을 창조하고 봉인한 것이죠.
이 세 문자와 여섯 방향 사이의 구체적인 대응에는 여러 설들이 존재합니다. 가장 단순한 형태의 <세페르 예치라> 버전(이른바 숏 버전)에 나온 대응관계를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위 YHV, 아래 YVH, 동쪽 HYV, 서쪽 HVY, 남쪽 VYH, 북쪽 VHY.
우주 공간의 창조와 육방향 봉인
신이 우주를 여섯 방향으로 봉인하였기 때문에 카발라에서 우주는 육각형으로 상징되곤 하지요. 세피로트 나무 역시 전체적으로 육각형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죠.
육각형 구조의 생명나무
동서양의 고대 신화에서 우주는 공통적으로 거북이 등 위에서 창조된 것으로 나옵니다. 고대인도, 중국, 아메리카 인디언 등의 신화에서 거북이가 등 위에 세계(우주)를 이고 있는 것으로 나오죠. 이런 고대 신화가 물상적으로 구현된 것이 흔히 볼 수 있는 거북 비석입니다.
고대 인도의 우주도(거북 등 위에 메루산이 놓여 있다)
거북이의 몸은 머리와 꼬리 그리고 네 발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육각형의 구조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등껍질 역시 육각형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죠. 소설에서 보르헤스가 말하고 있는 바벨의 도서관의 구조는 우주의 표상인 거북이 등껍질의 육각형이 무한히 연속된 형태로 보면 이해하기 쉽지요.
거북 비석 (태종무열왕릉비)
보르헤스는 소설에서 이 형이상학적인 도서관의 구조를 다음과 같이 부연 설명합니다. ‘
'각 육각형 진열실의 각 벽마다 다섯 개의 책장이 놓여 있다. 각 책장에는 똑같은 모형으로 된 서른 두 권의 책이 꽂혀 있다.’
이 글에 나온 32권의 책이라는 수(32) 속에서 우리는 세피로트 나무의 구조를 찾아 볼 수 있지요. 카발라의 생명나무는 10 세피로트와 22 개의 길(라인)로 이루어져 있고, 이 양자를 합쳐 ‘지혜의 32 길’이라 부릅니다.
지혜의 32 길(10세피로트 + 22 길)
이 32길의 본질과 기능을 쉽게 이해하려면 그것을 인간의 32개 이빨과 관련지어 생각하면 쉽습니다. 우리는 32개의 이빨로 음식을 씹어 먹습니다. 32길은 그 이빨과 같다고 할 수 있죠. 우리는 그 형이상학적인 이빨들로, 매일 우리가 받는 영적인 자양분들을 씹어 섭취합니다. 우리가 지혜를 얻는 것은 그러한 영적인 저작(詛嚼)행위를 통해서인 것이죠. 지혜롭게 된다는 것은 우리가 매일 부딪히는 경험들을 씹어서 그 속에 포함된 영양소들을 섭취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까요.
우주창조의 히브리 22 문자
또 이 도서관에 있는 책은 모두 스물다섯 개의 문자로 적혀 있는데, 이 25 문자는 띄어쓰기에 따른 공백, 마침표, 쉼표, 그리고 스물 두 개의 알파벳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22 개의 알파벳은 우리에게 다시 히브리 22문자와 세피로트 나무의 22 길을 상기시켜 주지요. 결국 도서관은 전체적으로 카발라의 생명나무 구조로 돼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소설에서 이 도서관의 어느 육각형 진열실, 어느 책장엔가 나머지 모든 책들의 암호임과 동시에 그것들에 대한 완전한 해석인 책이 존재하며, 어떤 사서가 그것을 보고 신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는 얘기가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고 나오지요. 그리고 또 이런 구절도 나옵니다.
“육각형 진열실에 가면 그 어떤 개인적 문제나 세계 보편적 문제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찾을 수가 있었다. 우주는 그 존재 이유가 밝혀졌고, 우주는 순식간에 무궁무진한 희망의 차원을 획득하게 되었다.”
조하르와 생명나무
여기서 우주의 비밀이 담긴 이 ‘총체적인 책’을 바로 세피로트 나무의 또 다른 상징적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도서관, 책 등의 개념과 세피로트 나무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요?
<세페르 예치라(창조의 서)>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신은 세 권의 책(세파림Sepharim), 즉 텍스트(세페르Sepher)와 숫자(세파르Sephar)와 말(시푸르Sippur)을 통해 우주를 창조하였다.”
히브리어로 책은 세페르, 그 복수형은 세파림입니다. 이 세 권의 책(텍스트, 숫자, 말)은 32의 길이 표현되는 세 가지 길(또는 방식)로서 각각 문자의 형태, 숫자 값, 문자의 발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기도 하고, 공간, 시간, 영을 각각 상징하는 것으로 보기도 하지요.
또 다른 해석 방식으로는, 텍스트를 문자(히브리 22 알파벳), 숫자를 생명나무를 구성하는 10수, 말을 창조의 진동을 불러일으키는 신성한 말씀(즉, 문자의 발성)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생명나무를 구성하는 세피라(복수는 세피로트)라는 단어의 어원적 정의를 이 세 권의 책, 즉 세페르, 세파르, 시푸르에서 찾기도 하죠.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먼저 텍스트로서의 세피라는 그 안에 우주에서 발생한 모든 것들이 기억되는(즉, 적히는) 신성의 메모리 뱅크(은행) 구실을 합니다.
다음, 숫자로서의 세피라는 수학적이고 기하학적인 창조와 계산을 하는 우주 컴퓨터 구실을 합니다. 마지막으로 말로서의 세피라는 신이 피조물과 통신하는 스피커의 구실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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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발라의 가르침에 의하면 창조의 순간에 10개의 원리(세피로트)가 만물에 앞서 탄생합니다. 카발리스트들은 숫자로 원리를, 원리를 숫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문자를 숫자로, 숫자를 문자로 바꿀 수 있죠.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자기 자신과 신을 아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카발리스트는 숫자로 법칙을 이해할 수 있고 문자로 원리를 조명할 수 있습니다. 카발리스트에게 있어서 문자는 일반인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죠. 카발라적인 관점에서 볼 때 각 문자는 우주법칙과 상응합니다.
신은 자신으로부터 원리를 창조하고 나누고 배열하여 우주법칙을 만들었다고 하죠. 이때 신은 문자를 만들고, 문자로 숫자를 만듭니다. 이렇듯 문자와 숫자는 서로 상동관계에 있습니다. 문자와 숫자는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에 이르기까지 전체 우주를 상징합니다.
히브리 22 문자와 숫자 대응
카발라의 관점에서 볼 때 숫자는 법칙입니다. 기본 10수(1에서 10까지 수) 각각은 모든 기본 원리들의 가장 지고지순한 형태이죠. 카발리스트는 10 수의 조합을 통해 상응하는 기본 원리에 도달합니다. 카발라 힘의 말씀, 공식들을 구성할 때 이 지식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숫자에 의해 표현된 말씀들은 그것과 연결된 법칙과 힘을 표현하기 때문이죠.
말씀의 비의, 즉 말씀에 대한 지식과 진정한 사용법의 신비는 카발라의 최고급 비전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모든 말씀은 문자(알파벳)로 구성돼 있고, 각각의 문자는 하나의 개념을 상징하며 그것을 통해 힘, 속성 등이 표현됩니다. 카발라의 말씀(마법 공식)을 만들기 위해서는 문자와 숫자의 상동성에 대한 정확하고 완벽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히브리 22 문자 - 숫자 - 생명나무 22 길 대응
실천적 카발라에서 문자는 시각, 청각, 직관의 순으로 발성합니다. 시각은 의지, 컬러, 빛, 영의 첫 번째 속성인 의지 원리입니다. 문자의 보편적 표현은 형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컬러에 있습니다. 각각의 문자는 발음은 물론 상응하는 컬러와 키노트(음고)을 가지고 있지요. 실천적 카발리즘에서 말씀의 비의는 이런 요소들의 적절한 조합과 그 사용법을 가르치지요.
생명나무 22 길 - 타로 22 메이저 카드 - 칼러 대응
이처럼 신이 우주를 창조하는 데 사용한 숫자와 문자와 말씀이라는 세 권의 ‘책’의 개념을 살펴보면 우주를 상징하는 바벨의 도서관(또는 총체적인 책)과 세피로트 나무 사이에 의외로 밀접한 관련성이 있음을 알 수 있지요.
소설에서 주인공은 바벨의 도서관이 육각형의 구조로 되어 있지만 그것은 꼭 그렇게 단정 지을 필요는 없고, 빵도 피라미드도, 그 어떤 것도 될 수 있다고 말하지요.
“도서관은 빵 또는 피라미드 또는 다른 어떤 것이 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보르헤스가 우주의 육각형 구조에 대한 다른 변형 구조를 언급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카발리스트들은 우주를 상징하는 육각형 심벌을 대체하는 물상 중 하나로 정육면체를 언급하고 있지요. 이 정육면체는 흔히 '스페이스 큐브Cube of Space'라 불립니다.
스페이스 큐브와 히브리 22문자 대응
정육면체는 여섯 개의 면과 세 개의 축으로 이루어져 있는 입체입니다. 정육면체의 외곽을 형성하고 있는 여섯 면은 우주의 여섯 방향에 상응합니다. 그리고 세 개의 축은 히브리어의 삼모자, 알레프, 멤, 쉰에 대응됩니다. 또 세 개의 축은 중앙의 중심점과 그것으로부터 방사된 여섯 개의 선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것들(중심과 여섯 선)은 7복자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정육면체의 외곽선을 이루고 있는 12개의 선은 12 단자를 상징하지요.
이렇게 볼 때 정육면체를 통해 히브리어의 22 문자(알파벳)가 모두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지요. 물론 이 22 문자는 카발라 생명나무의 22 길의 표현에 다름 아닙니다. 그리고 스페이스 큐브 속에 내재된 22 구조는 다시 22장으로 이루어진 타로의 메이저 카드에 각각 대응되지요.
스페이스 큐브와 타로 22 메이저 카드 대응
스페이스 큐브와 타로 22 메이저 카드 대응
위에서 언급한 대로 보르헤스는 소설에서 도서관의 육각형 구조를 대체할 수 있는 예 중 하나로 피라미드를 들고 있지요. 하지만 여기서 보르헤스가 말하고 있는 피라미드는 정확히 이중(더블) 피라미드입니다. 이중 피라미드는 스페이스 큐브와 형태만 다를 뿐 동일한 구조로 돼 있지요.
이중 피라미드는 스페이스 큐브와 마찬가지로 세 개의 축(위와 아래를 잇는 수직선, 그리고 두 피라미드의 접면을 이루고 있는 사각형의 네 꼭지를 대각선으로 가르는 두 개의 선)으로 구성돼 있지요.
이 세 축은 3모자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축의 중심과 그 중심으로부터 여섯 방향으로 방사돼 나가는 여섯 선(1+6)은 7복자를, 피라미드의 외곽선을 형성하고 있는 12개의 선은 12 단자를 각각 나타냅니다.
이중 피라미드와 히브리 22 문자 대응
바벨의 도서관에 있는 책들은 모두 22개의 알파벳으로 적혀 있지요.
“이러한 일례들은 한 천재적인 사서로 하여금 ‘도서관’이 가진 기본적인 법칙들을 발견하도록 만들어 주었다. 이 사상가는 모든 책은 서로 얼마나 다르건 간에 동일한 원소들로 되어 있다고 판단했다. 즉 띄어쓰기에 따른 공백과 마침표와, 쉼표, 그리고 스물 두 개의 알파벳.”
위에서 살펴본 스페이스 큐브와 이중 피라미드는 생명나무의 32길 중에서 특히 22길 즉, 히브리 22 알파벳(문자)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죠.
단편 소설 <바빌로니아의 복권>에서 보르헤스는 히브리 알파벳을 작품의 작은 소재로 등장시킵니다.
“보세요, 이 망토의 찢겨진 틈으로 내 배에 나 있는 주홍빛 문신이 보일 겁니다. 이것은 두 번째 상징인 베트Beth입니다. 이 글자는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기멜Gimel을 의미하는 문신을 가진 사람들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줍니다. 그러나 반대로 알레프Aleph 문신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지배를 당하게 됩니다. 알레프 문신을 가진 사람들은 달이 뜨지 않는 밤이면 기멜의 문신을 가진 사람들에게 복종을 해야 합니다.”
여기서 베트는 히브리어의 두 번째 알파벳이고 숫자로는 2를 나타냅니다. 그리고 기멜은 히브리어의 세 번째 알파벳, 숫자로는 3을, 알레프는 히브리어의 첫 번째 알파벳, 숫자로는 1을 각각 나타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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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 알파벳은 22문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우주를 창조할 때 신은, 22문자로 하여금 자기 앞을 열병하게 하였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합니다. 신의 인가를 받은 그 문자들은 성스럽게 여겨졌고 각각은 하나의 개념 또는 원리, 하나의 소리를 상징하게 됩니다.
이 문자들의 형상은 특정한 사물들을 닮았죠. 예를 들어 알레프는 황소를, 쉰은 이빨을, 자인은 칼을 닮았지요.
히브리인들에게는 숫자를 나타내는 별도의 특별한 기호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각 문자에 숫자값이 주어지게 됩니다. 알레프는 1, 베트는 2, 김멜은 3, 이런 식으로요. 고대 현자들은 이러한 특성을 이용해 게마트리아라는 수비학(數秘學) 체계를 발전시키죠.
히브리 문자와 숫자 대응
우리가 기초적인 카발라를 배우기 위해 반드시 히브리어를 알아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흔히 카발라는 세피로트 카발라와 문자 카발라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전자는 생명나무를 이해하고 그것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이것만을 위해서는 굳이 히브리어를 배울 필요는 없겠지요. 왜냐하면 생명나무는 우주적인 관계 체계로, 시대와 언어를 불문하고 표현 가능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좀더 깊이 카발라를 공부하려면 히브리어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이 요구됩니다. 카발라 사상이 처음 히브리어로 표현되었다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후대의 오컬트 자료들에서 그 이론의 기초와 행법이 히브리 문자와 그 의미들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지요.
히브리 문자 장미(3모자, 7복자, 12단자)
히브리어에 대한 기초 지식을 갖출 경우 공부에 도움이 되는 두 번째 이유는 이렇습니다. 수많은 세월동안 무수한 오컬티스트들은 자신들의 명상과 행법, 의식(儀式) 등에 히브리어를 일종의 초점으로 만들어왔습니다.
즉, 오컬트 전통의 집단 무의식 속에서 히브리어는 하나의 초점이 되어온 것이죠.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그 문자들에 대해 명상함으로써 바로 그 고대로부터 형성되어온 사상과 체험의 대양과 보다 쉽게 교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어의 22 문자는 요한이 복음서에서 말한 ‘말씀’ -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 과 직접 연결됩니다. 여기서 그는 신성한 말씀이 만물의 근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요한이 쓴 계시록은 히브리 22문자에 상응하는 22장(章)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마지막 장에서 그리스도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알파와 오메가는 그리스 알파벳의 첫 자와 마지막 자입니다. 이 문장에 그리스어가 등장하는 것은 신약이 그리스어로 씌어졌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여기서의 알파와 오메가는, 예수가 살았던 이스라엘의 히브리어로 바꾸면 알레프와 타우입니다. 알레프는 히브리 22 알파벳 중 첫 번째 문자이고 타우는 마지막 문자이죠. 그러므로 ‘나는 알파와 오메가이다’라는 말은 사실 ‘나는 알레프와 타우이다’인 것입니다.
알파와 오메가, 알레프와 타우 이 두 문자는 전체 알파벳을 상징합니다. 시작과 끝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죠.
알레프와 타우의 무한 순환
알파벳을 구성하는 문자들의 순서는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창조의 문자들에 대한 비유적 표현이죠. 히브리 알파벳의 문자들은 원소, 힘, 덕성, 속성, 영 등을 상징합니다.
소설 <알렙>에서 보르헤스 역시 이렇게 말하죠.
“모든 언어는 상징들의 알파벳이다.”
신은 우주를 창조하기 위해 그것들(알파벳)을 조합하였습니다. 이 살아있는 문자들을 통해 신은 단어와 구(句)들을 구성하였고 지금도 계속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계가 창조된 방식이며, 이런 방식으로 창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죠.
카발리스트가 히브리 문자의 카발라적인 의미를 공부할 때, 그것은 우주의 살아있는 언어를 읽고 이해하기 위해 배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나는 알파와 오메가이다’라고 말했을 때 그 진정한 의미는 이런 것입니다. ‘나는 우주를 창조한 22 말씀이다.’
카발라 알파벳의 모든 문자들은 상호간에 연결되어 우주를 감싸는 하나의 망을 형성합니다. 그리고 각각의 문자는 기하학적 형태와 밀접한 상응관계를 가지고 있지요. 따라서 모든 기하학적 도형의 이면에는 특별한 힘들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죠.
카발리스트들에 의하면 각 문자에 상응하는 보이지 않는 힘들을 아는 자들은 우주의 흐름을 작동시킬 수 있다고 하지요. 즉, 힘과 형상과 문자 사이의 상응관계와 그것들을 다루는 법을 배운 자들은 천상과의 유대를 만들어,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의 존재들과 접촉할 수 있다는 겁니다.
<세페르 예치라> 제2장에는 ‘22문자와 그 소리는 만물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고 씌어 있죠. 이렇듯 히브리 알파벳은 창조의 신성한 도구로써 전체적으로 만물의 기초를 이루고 있습니다. 히브리 알파벳은 3모자, 7복자, 12단자의 세 부분으로 구분됩니다.
3 모자, 7 복자, 12 단자
3모자는 알레프, 쉰, 멤으로서 그 각각을 통해 공기, 불, 물이 창조되었습니다. 3모자는 원소의 상징 이외에도 계절을 지배합니다. 알레프는 봄과 가을, 쉰은 여름, 멤은 겨울에 각각 상응하죠. 이 세 문자는 인체의 세 주요 부분에도 대응됩니다. 카발라에서는 인체 중, 머리는 쉰, 배는 멤, 가슴은 알레프에 의해 각기 형성되었다고 가르칩니다.
7복자는 베트, 카프, 기멜, 페, 달레트, 레쉬, 타우입니다. 이 7복자를 통해 일곱 혹성이 창조되었습니다. 이 문자들은 각각 두 가지로 방식으로 발음되지요. 예를 들어 기멜과 지멜. 그래서 복자라고 하는 것이죠.
위의 이중 피라미드 그림에서 내부 선들이 각각 이중으로 그려진 것도 바로 그 때문이죠. 이 7복자는 우주를 구성하는 대대(對待)를 상징합니다. 각 문자가 양극성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단위를 상징하는 것이죠.
삶과 죽음, 평화와 전쟁, 지식과 무지, 부와 빈곤, 자비와 죄악, 풍요와 불모, 힘과 굴종, 이렇게요.
7복자는 공간상의 일곱 방위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동서남북 그리고 위, 아래, 중앙. 이밖에도 신은 이 문자들을 통해 일주일의 7일, 얼굴의 일곱 구멍(혼의 창)- 두 눈, 두 귀, 두 비공, 입- 을 만들었습니다.
12단자는 헤, 바우, 자인, 헤트, 테트, 요드, 라메드, 눈, 사메크, 아인, 차데, 코프입니다. 신은 이것들을 통해 황도대의 12궁을 창조하였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열두 감각(시각, 청각, 후각, 소리, 미각, 성(性), 활동, 운동, 분노, 환희, 심상, 수면.)과 인체의 12 장기를 형성시켰습니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우주법칙이라는 추상적 원리들의 표현인 히브리 22알파벳은 대우주와 소우주의 창조 전체를 포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지요.
신은 만물을 엄밀한 우주 법칙에 따라 창조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신을 깨달을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은 그 모든 법칙과 속성들을 알고 체현하는데 있을 겁니다. 불완전한 인식력을 가진 우리 인간들은 신을 이해할 수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오직 신이 펼쳐 놓은 파노라마를 통해 신에 대한 개념의 한 단편들을 얻을 수 있을 뿐이죠.
기성 종교 체계들은 한 가지 속성의 법칙만을 인정하고 다른 모든 것들은 무시(심지어 반대)하는 경향이 있죠. 카발라의 스승들은 말합니다, 많은 성자들이 우주법칙의 몇몇 일면들을 발현시키고는 자신의 영적 발전의 관점에서만 우주법칙을 바라봐 왔다고. 그리고 전체 면을 보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들은 우주법칙의 완전한 그림을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를 못했으니 당연히 설명도 하지 못했다고.
진정한 카발리스트들은 모든 신성의 속성들을 동등하게 바라보고 실현시키고자 합니다. 따라서 카발라의 길은 여타의 종교체계보다 길고 어려운 길이죠. 그래서 한 화신의 기간동안 카발라를 다 공부하기란 지극히 어렵다고 일컬어지고 있죠.
우주법칙을 따르는 자들은 자신의 작은 세계뿐만 아니라 우주까지 마스터하게 됩니다. 실천적인 비전은 그러한 길, 특히 카발라의 지식을 제시하지요. 그러한 비전의 지식을 통해 진정한 카발리스트는 우주 법칙을 완전히 이해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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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벳의 진의
보르헤스가 카발리즘에서 특히 주목하는 것은 문자에 대한 특이한 관념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말들이 처음에는 소리였다가 나중에 글자로 기록되었다는 역사적 관점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반면에 카발라에서는 글자들이 소리 이전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글자들은 하느님의 도구였지, 말을 표시하기 위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카발라의 이런 사상에 보르헤스는 ‘충격적’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스페인의 작가 사아베드라 파하르도(1584-1648)의 다음과 같은 말이 카발리스트들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고 보았다.
“하나님의 말씀들은 하나님이 만드신 작품의 도구였으며, 그 말씀들을 통해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였다.”
알파벳과 창조의 관련성에 대해서는 이미 앞서 “창조의 알파벳” 편에서 살펴본 바 있다. 여기서는 거기서 언급하지 않은 부분을 말해 보고자 한다.
비교(秘敎)에서는 세상에 존재하는 알파벳들이 애초 인간들 사이의 의사소통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우주와 인간의 창조를 위해 신이 사용한 일종의 만트라(또는 얀트라)였다고 가르친다.
즉, 그것은 대우주와 소우주의 창조에 감추어진 비밀의 열쇠인 것이다. 따라서 그것을 올바르게 발성할 경우 특별한 힘의 진동을 일으키고, 특정한 에너지들을 각성시키고, 영적인 문과 채널들을 열게 된다고 한다. 그것은 결코 상실되어서는 안 될 중요한 오컬트 비밀 지식이었다.
하지만 고대의 영적인 스승들은 그러한 무가보의 지식을 시대에서 시대로 끊이지 않게 전승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책 같은데 적어서 보존할 경우 멸실의 위험이 너무 크다. 심지어 언어조차도 수백 년만 지나도 본래의 형태에서 많이 변화된다. 그 이상의 세월이 흐를 경우 심지어 언어 자체가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알파벳은 다르다.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언어가 변화어도 알파벳은 남는다. 그래서 선택된 방식이 그 신성한 비밀의 만트라들을 알파벳으로 만들어서 보존하는 방식이었다.
그것은 장구한 세월의 흐름을 이겨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알파벳은 인간들이 현실 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사용하기 때문에 잊혀지거나 멸실될 우려가 거의 없다.
물론 알파벳 속에 그런 비전적인 의미가 비장돼 있다는 것을 일반인들은 전혀 모른다. 그런 사실을 알려주지도 않거니와, 알려줄 필요도 없다.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다. 신성한 우주의 열쇠는 그렇게 등잔 밑에 가장 안전하게 보존되었고, 그 결과 오랜 세월 동안 상실되지 않고 남아 있게 된다.
보르헤스는 히브리 알파벳이 창조를 위한 신의 도구였고, 언어적 관련성은 사후적이고 부차적인 것이라는 카발리스트들의 주장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지만, 사실 이런 측면은 히브리 알파벳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다른 알파벳들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산스크리트 50문자 역시 그 안에 특정한 우주 법칙과 관련된 신비가 감추어져 있다.
그러나 알파벳이 원래 언어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창조의 도구였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것을 논리적인 체계를 갖춘 고도의 영적인 ‘과학’으로 승화시킨 것은 카발리스트들이었다. 그들은 일반인들이 전혀 상상 할 수 없는 관점과 차원에서 알파벳을 연구하고 영적인 목적에 적극 활용해 왔는데, 이것은 다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특별한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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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문제와 카발라 팔찌
악의 문제
(악의 기원과 신의 불완전성)
보르헤스는 악의 기원에 대한 카발라 사상을 옹호합니다.
“그들(영지주의자와 카발리스트)은 우주란 불완전한 신의 작품이라고 선언하면서 그 문제(악의 기원에 대한 문제)를 해결합니다.”
이 말은 <데미안 카발라>에서 이미 살펴보았듯이 ‘신은 완전하지 않다, 다만 현재 우주에 존재하는 것 중에서 가장 완전할 뿐이다.’라는 카발라 가르침과 일치하지요. 그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불완전한 신의 개념을 수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느님은 만들어지고 있다’라고 말한 버나드 쇼의 생각에 이를 것입니다. 우리가 똑똑하고 명민하다면, 우리는 하느님을 만드는데 일조하게 될 것입니다.”
이 말 역시 <데미안 카발라>에서 고찰한 바 있듯, ‘신은 인간이 성장한 만큼 성장한다.’라는 카발라적 관념과 그대로 부합됩니다.
아리(이삭 루리아)의 카발라 사상에 따라 악의 기원에 대한 문제를 간단히 보면 이렇습니다.
태초에 아담 카드몬의 눈으로부터 빛들이 분출되었을 때, 그 빛들을 포착, 수용하도록 준비되었던 그릇들(세피로트)이 그 빛들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파괴됩니다. 그 결과 그 빛들은 무수한 입자들로 산산조각이 나서 어둠의 세계로 떨어지게 되었고, 본래의 신성을 상실하게 되지요.
그리고 신성의 불꽃들이 암흑의 껍데기들(클리포트)에 의해 붙잡히게 됨으로써 세상에 악이 생겨나게 됩니다. 껍데기의 암흑에 갇힌 신성의 불꽃들에 대한 구원은 곧 인간 영혼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신성을 회복하는 것과 동일한 의미이죠.
인간들 개개인의 신성 회복은 곧 신에게 있어서는 곧 자기 자신의 성장, 진화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영혼은 신이라는 거대한 화염에서 나온 한 불꽃이기 때문이죠.
보르헤스도 표현만 조금 다를 뿐 이와 똑같은 의미의 말을 합니다.
“우리 각자 안에는 극히 작은 신의 입자가 있습니다. 이 세상이 전능하고 정의로운 하느님의 작품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카발라가 우리에게 남겨주는 가르침은 바로 그것입니다. (...) 그 가르침에 의하면 모든 피조물, 심지어 카인과 악마도 기나긴 윤회가 끝나면 그들을 출현하게 만들었던 신과 합일하게 될 것입니다.”
카발라에서는 근원적 합일을 다시 회복시키는 것은 신의 영역에만 놓여 있는 것이 아니며 인간들 또한 그 회복의 작업에 동등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우리 각자 안에는 에덴 동산으로부터 추방되어진 아담이 있어서 본래 상태로의 회복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지요.
카발리즘의 목표는 죽어야 할 운명의 인간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지닌 신성한 인간을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카발라 팔찌, 레드스트링
카발라 홍사 팔찌, 레드 스트링
레드 스트링
이제까지 카발라적인 관점에서 악의 문제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카발라에서는 악을 어떻게 방어할까요? 악에 대한 방어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오늘날 가장 대중화된 방법은 카발라 홍사(紅絲) 팔찌의 착용입니다.
이 부분은 보르헤스 소설과 직접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악과 관련해 참고로 살펴보도록 하지요.
카발라 홍사 팔찌는 레드스트링으로 불립니다. 레드스트링의 착용은 타인의 ‘악의 눈’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입니다.
‘악의 눈’이란 타인의 비우호적인, 불친절한, 질투어린, 악의에 찬 시선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타인이 우리에게 보내는 악의에 대한 상징적 표현이지요. 살다 보면 아무 이유 없이 누군가로부터 우리에게 전해지는 악의가 감지될 때가 있지요.
레드스트링은 바로 그런 타인의 부정적인 영향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할 때 착용하는 팔찌입니다.
라헬
카발라 홍사 팔찌의 기원은 이스라엘 민족의 여조상인 라헬과 관련돼 있지요. 라헬은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의 두 번째 아내로, 요셉과 베냐민를 낳았지요. 그녀는 베냐민을 낳다가 죽어 베들레헴에 묻힙니다.
이스라엘인들은 관습적으로 라헬의 무덤 주위에 홍사(붉은 실)를 일곱 번 두른 뒤, 그 실을 잘라 팔에 묶으면 여조상 라헬이 그들을 악으로부터 보호해 준다고 믿었지요. 이것이 오늘날 서양(특히 미국)에서 유행하는 레드스트링 착용의 기원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야곱은 하란 땅으로 피신하여 외삼촌인 라반에게 의탁합니다. 그때 그는 라반의 딸 두 명과 결혼하게 됩니다. 그것을 위해 그는 7년 씩 두 번에 걸쳐 라반의 집에서 일하면서 섬겼지요. 첫 번째 7년 동안의 봉사를 통해 라반의 첫째 딸 레아를 얻게 되었고 다음 7년 동안의 봉사를 통해 둘째 딸 라헬을 얻게 되죠.
야곱과 라반의 두 딸 (레아와 라헬)
야곱의 14년 봉사와 두 아내
이것은 생명나무상에서 이루어지는 신성의 함입과 인간의 진화 단계를 상징합니다. 여기서 레아는 말쿠트를, 라헬은 케테르에 해당되지요.
신성이 말쿠트에 강림하기까지 거치게 되는 7단계는 개체 인간 속에 신성의 불꽃이 강림하게 되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말쿠트에서 케테르로 귀환하는 7단계는 신성의 불꽃을 품고 있는 개체 인간이 7단계에 거쳐 진화의 완성을 이루는 것을 의미하지요.
야곱과 라헬
라헬의 두 아들, 요셉과 베냐민
라헬은 두 아들, 요셉과 베냐민을 낳습니다. 라헬은 베냐민을 낳다가 죽게 되지요. 야곱은 임종의 자리에서 요셉에게는 번영을 약속하는 축복의 말을, 베냐민에게는 물어뜯는 이리라며 저주의 말을 주지요. 여기서 라헬의 요셉은 생명나무, 베냐민은 암흑나무를 상징합니다.
레드 스트링을 착용할 때 외우는 벤포라트Ben Porat 기도는 창세기 49장 22절 이하에 나오는 야곱의 축복의 말씀입니다.
“아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활 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그를 쏘며 그를 군박하였으나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 입음이라.”
‘벤 포라트’는 이 축복의 말씀의 첫 두 단어입니다. 벤은 ‘아들’, 포라트는 ‘무성한’이라는 뜻이죠. 유대 카발라에서는 이 벤 포라트 축복이 우리를 핍박으로부터 보호해 주고 우리로 하여금 도전들을 극복하고 번성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생각하지요.
요셉에 대한 야곱의 축복은 곧 생명나무에 대한 찬양입니다. 이 벤포라트 기도는 생명나무의 힘을 현현시키는 힘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지요.
팔찌의 실 색깔이 붉은 것은 악마에 대한 보호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스펙트럼의 일곱 색상 중 붉은 색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가장 낮은 진동수입니다. 하지만 클리포트의 세계에서는 지극히 초월적인 진동수에 해당되죠. 따라서 클리포트의 악마적 존재들은 붉은 색을 두려워합니다. 부적을 붉은 색으로 그리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레드스트링은 왼손에 착용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우리 신체의 왼쪽은 외부의 에너지를 받아들이는 부분입니다. (오른쪽은 에너지를 방출하는 부분) 따라서 외부로부터 오는 부정적인 에너지가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왼쪽 팔목에 착용하는 것이죠.
오늘날 레드스트링이 서구에서 유행하게 된 것은 필립 버그의 카발라 센터를 통해서입니다. 카발라 센터에서는 라헬의 보호력이 담긴 레드스트링을 만들기 위해 이스라엘에 있는 라헬의 묘에 직접 가서 그 주위를 일곱 번 두른 홍사를 이용한다고 하지요.
하지만 레드스트링의 힘은 이스라엘 민족의 여조상 라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생명나무와 컬러와 힘의 말씀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라헬은 신성의 상징에 불과합니다. 라헬과 생명나무의 관련성만 인식하고 있으면 충분합니다. 따라서 유대인이 아닌 사람이 레드스트링을 착용해도 보호의 힘이 작동하게 되는 것이죠.
레드 스트링을 통해 생명나무의 힘을 얻기 위해서는 팔찌를 착용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먼저 타인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나 말을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해야만 합니다.
레드 스트링
레드스트링 착용이 서양(특히 미국)에서 유행하게 된 것은 팝 스타 마돈나의 영향이 큽니다. 카발라를 신봉하던 마돈나가 먼저 착용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유행되기 시작했죠. 마이클 잭슨, 데미 무어, 브리트니 스피어스 등 많은 스타들이 레드스트링을 착용하였거나 착용하고 있지요.
유독 인기 스타들이 그다지 멋도 없는 레드스트링을 착용하길 즐기는 것은 대중이나 라이벌들의 적의감을 그만큼 많이 느끼기 때문에 그런 부정적인 영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싶은 방어 본능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