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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복선 선생님께
01.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서울에서 선생님을 뵙고 나서 벌써 2주가 지났군요. 홍대 입구에서 맥주를 실컷 마시면서 우리교육 식구들과 떠들썩하게 웃고 놀던 기억이 아련하게 남아 있습니다. 생각 밖으로 선생님이 재미난 농담을 잘 하셔서 즐거웠습니다.
제가 더위에 약한 탓이기도 하지만, 이번 여름도 쉽지 않았습니다. 이곳 밀양이 올해도 이름값을 하느라 그랬는지, 날씨가 너무 더웠습니다. 교실에 에어컨을 틀고는 있지만, 고3인 아이들은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창문을 거의 한 번도 열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수업을 하러 교실에 들어가면 꼭 먼지구덩이 같아서 환기라도 시키려고 창문을 열면 불덩이 같은 기운이 훅 하고 달려들어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보충수업을 마치고 에어컨이 없는 집으로 돌아오면 아내와 아들이 땀으로 찐득한 얼굴로 앉아 있습니다. 가까운 계곡이나 강으로 튜브를 매고 나가면 또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지난 한 달사이 비가 드물어서 계곡은 말라 있는데 사람들은 바글바글합니다. 강으로 나오면 수중보로 막아놓은 강물이 조금씩 썩어 가고, 부유물이 둥둥 떠다닙니다. 결국 집에서 부채를 부치며 더위가 가시기를 기다리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한여름을 보내고, 어제 입추를 지나 오늘이 드디어 말복입니다.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선선한 기운이 목덜미에 와 닿습니다. 언제나처럼 과실주로 목을 축이며 백지 앞에 앉아 있으려니, 지난 여름동안 벼려온 여러 상념들이 이리저리 엇갈립니다. 두어 달 간 촛불의 기운 속에 신이 났었는데, 요즘은 다시 뉴스 보기가 두려운 시절로 되돌아 와 있네요.
오늘은 KBS 이사회가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정연주 사장에 대한 해임안을 가결시켰습니다. 한동안 국방부가 만들었다는 불온서적(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단어입니다) 리스트가 떠돌더니, 그저께는 경찰이 시위자를 검거하면 한 명당 몇 만원씩 포상금을 지급하겠다는 내부 방침이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경찰에게 촛불을 든 시민들은 그저 2만원짜리 사냥감일 뿐이었습니다. 정책 실패로 경질한 관료를 곧장 재외 공관장으로 앉히질 않나, 국무총리라는 사람은 국회 쇠고기청문회에 멋대로 불참하고는 사과도 하지 않습니다. 출범한 지 석 달만에 지지율 10%대로 추락해서는 지금껏 바닥을 기고 있는 정권이 뭘 믿고 저렇게 막 나가는지, 어떻게 저렇게 염치도 없고 겁도 없는지,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집니다.
8월5일자 경향신문에 보니 서울의 어느 분식집 할머니의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밀가루 같은 식재료 값은 치솟는데 경기는 바짝 얼어붙어서 하루 열 두 시간 일하고 3만원을 번다는…. 민중들의 삶은 이토록 고단한데, 비록 거짓부렁이었을지라도 경제를 살려 서민의 주름살을 펴주겠다는 약조로 당선된 이 정부가 민생에 어떻게 이토록 무심한지 기가 막힐 따름입니다.
이랜드, KTX ․ 새마을호 여승무원, 코스콤 같은 장기 투쟁 사업장 노동자들의 건강검진 결과를 다룬 기사를 혹시 보셨는지요. 세 명 중 한 명이 ‘죽고 싶을’만치 심각한 정신적 외상에 시달리고 있다고, 자다가도 생각이 나면 울고, 샤워를 하다가도 울컥 눈물이 난다고 합니다. 여섯 살배기 아들에게 ‘순간적으로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폭발하고 난 뒤에 정신과 전문의로부터 폭발장애 진단을 받고 치료중이라는 김경욱 이랜드 노조 위원장의 이야기까지…. 아, 세상이 너무나 참혹합니다.
지난 석 달 동안의 촛불 항쟁은 최소한 제겐 만해 한용운의 싯귀절처럼 “지리한 장마 끝에 언뜻 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신동엽 시인이 말했던 그 ‘하늘’을 6월 10일 밀양 영남루 앞 계단에서, 6월 29일 새벽 서울 광화문 네거리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함께 춤추며 놀던 어느 순간 저도 보았노라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조금씩 침몰하는 것처럼 가망 없어 보였는데, 촛불 항쟁을 기점으로 이제는 바닥을 친 것만 같아 보였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이런 순간이 오리라 생각은 했었지만, 촛불은 서서히 사위어들었고, 이제 우리는 원래 자리로 되돌아왔습니다. 저는 촛불 항쟁으로 뭔가 크게 ‘해결’되리라 기대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다 쓰러져가는 난파선이 반대편으로 크게 한번 휘청이는 정도의 파동과 그 여진은 있으리라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정권도 앞으로는 뭘 살피는 척이라도 하겠거니, 하는 기대 정도는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리석었던 것 같아요. 우리들 마음속에서 이 촛불이 바꾸어 놓은 것과는 별개로 저들은 앞으로 2년 동안은 선거가 없기 때문에 촛불이 다시 수십 수백만개가 되어도 별로 겁을 내지 않을 것 같아요. 저들은 ‘자리에서 끌어내려지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겁나는 게 없는 자들입니다.
02.
지난 번 서울에서 선생님을 뵈었을 때, 제가 이렇게 이야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가 앉아 있던 맥줏집 유리창 바깥 도로변에 공정택 후보와 주경복 후보의 선거 플래카드가 나란히 걸려있는 것을 보면서 제가 “설령 이번 선거에서 주경복 후보가 패배하더라도 촛불에 실망하지 않으려 한다”는 이야기를 선생님께 했었지요. 그 말을 요 며칠 곱씹어 보았습니다. 깊이 생각하고 던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건 제 진심이었고, 돌이켜보니 촛불에 대한 제 나름의 판단이 집약된 이야기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주경복 후보는 안타깝게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사실 이번에는 뭔가 될 것 같은 기대를 하고 있었던지라 속상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전체 유권자의 85%가 투표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강남 3구의 몰표가 있었다지만, 그들은 전체 유권자 중에서는 소수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쪽수 싸움’에서도 그들에게 휘둘리고 마는 현실이 속상했습니다. 공정택 후보가 당선 후 양양한 표정으로 내뱉은 첫 말씀(초등학교부터 경쟁 교육을 강화하겠다 운운)은 그래서 참 아득합니다. 이명박 씨는 이번 선거 결과에 한껏 고무되어 예의 그 착각의 늪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구요. 전체 유권자 6%의 선택을 받은 걸 두고 정부 교육정책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확인했다고 하니, 참….
선생님도 보셨겠지만, 진보적인 성향을 띠는 인터넷 게시판들을 다니다 보면 이번 교육감 선거 결과를 두고 전교조가 X맨 노릇을 한 것처럼 이야기하는 글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교조가 계속 이대로 간다면 진보진영은 (전교조를) ‘털고 가는’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분들도 있더군요. 서글픈 웃음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좀 자조적이지만, 우리가 뭘 한 게 있어야지요. 만약 전교조가 제 역할을 해 왔다면 전교조는 더욱 많은 적을 거느리게 되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들이 전교조를 희생타로 삼으려는 시도는 충분히 예상했던 거였고, 그래서 저는 선거 며칠 전 어느 밥집에서 동아일보 1면에 실린 광고(전교조에 휘둘리면 교육이 무너집니다)를 보고서도 그리 놀라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저들이 전교조 때문에 우리 교육이 (진짜로) 휘둘린다고 느낄 만치 우리가 이 강고한 체제에 뭔가 타격을 입혔다면, 그래서 아이들이 이 지옥 같은 현실에서 조금이라도 풀려났다면 저런 엉터리없는 마타도어가 조금도 억울할 리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력하기만 한데, 저런 덤터기까지 쓰게 되니 그게 속상할 따름이지요.
그런데, 여기 더해 지금도 이해가 안 되는 게 있습니다. 지금 전교조가 교사들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교원평가 ‘조차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제가 가끔 드나드는 진보신당의 당원게시판을 통해 확인한 거지만, 한미 FTA 반대 진영의 최일선에 서 있던 어느 진보 지식인조차 교원평가(그분은 ‘민주적’ 교원평가라고 했지만)는 반드시 필요하고, 이를 거부하는 전교조는 조합 이기주의에 함몰돼 있다고 이야기하더군요.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교원평가제가 갖는 교육적 함의에 대해, 전교조가 이를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 성찰한 흔적은 별로 없었습니다. 게시판에 오른 그 많은 글들 중에서 교원평가제에 대한 사실 관계조차 제대로 알고 있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이를테면 우리는 근무평정이라는 관리자들의 평가를 이미 받고 있는데도 교사들은 일체의 평가도 받지 않고 있고, 앞으로도 그 어떤 평가조차도 거부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이번 교육감 선거에 출마한 전교조 출신 이인규 후보의 정책을 입안했다는 이범이라는 학원 강사는 대학 교수들도 다 강의 평가를 받는데, 초․중등 교사들이 왜 이걸 거부하는지 알 수 없다고 말하더군요. 이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저는 정말 갑갑해집니다.
제 경험만 놓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아이들과 함께 뭘 먹는 걸 참 좋아합니다. 그래서 담임 맡은 반 아이들과 1년에 몇 번씩은 저희 집에서 같이 밥을 해 먹으며 놉니다. 그리고 일년에 너댓 번 정도는 토요일 3/4교시에 모둠 비빔밥을 해 먹습니다. 야간자율학습 감독이 있는 날에는 모둠별로 같이 자장면을 먹거나, 분식집에서 김밥 따위를 사서 같이 나눠 먹습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먹을거리에 헤픈 호구로 인식될지라도 괘념치 않으려 했습니다. 그것은 제가 아이들에게 특별히 자애로워서가 아니라, 지난 번 편지에서도 썼듯이, 천국이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같이 어울려 밥 먹는 곳에 이미 와 있다는 제 믿음 때문입니다. 아닌게아니라 저 뿐 아니라 아이들 또한 학년이 끝나면 그 시간을 가장 행복했던 시간으로 추억합니다.
그러나, 수업 평가로부터 시작되어 서서히 다른 영역으로 확대되면서 제 교육활동이 학생, 동료, 학부모, 관리자들로부터 평가받는 체제가 정착된다면 저는 제 선의로 벌였던 일들, 이를테면 아이들과 뭘 먹는 일들 따위를 못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것은 제가 유별난 양심가여서가 아니라, 아이들과 같이 먹는 자장면 한 그릇조차 아이들의 평판을 의식한 행위가 아닌지 자기 검열해야 하는 체제 속에서 저는 이런 일들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교사가 되고 싶었던 건 여러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다른 눈치 보지 않고 제 철학과 양심에 근거해서 아이들을 가르칠 ‘자유’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교사로서의 제 장점과 단점은 이미 우리 아이들이 잘 알고 있고, 동료 선생님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시로 저는 아이들에게 제 수업과 학급 운영에 대해 아이들에게 묻고, 아이들은 장난끼가 섞였을지언정 솔직하게 평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자유를 박탈해 가려 하지요? 저들은 이른바 부적격교사가 이런 평가 제도로 인해 솎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일까요? 그건 교원평가라는 제도의 실시 여부와 전혀 범주가 다른 문제가 아닌가요?
솔직히 저는 인터넷 동영상 강의처럼 아이들에게 쌈박하게 수업하는 제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루하지 않게 수업하기 위해 ‘개그’를 개발하고, 최대한 아이들의 삶에 가까운 이야기를 이끌어내기 위해 ‘삼천포로 빠지는’ 일에는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 저는 중학교, 고등학교 때 배운 지식들은 지금 거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분위기는 지금도 어젯일처럼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너그러운 선생님의 웃음 넘치던 수업을 떠올리면 지금도 행복해지고, 벌벌 떨면서 시를 외우거나 칠판 앞에서 수학 문제를 풀면서 매를 맞던 기억은 지금도 아프도록 생생합니다.
그러나, 이번에 교과부가 발표한 학교정보공개법 시행령이 정착되고, 교원평가가 법제화된다면 아이들 바짝 쪼아서 학교 평균 올려놓고, 아이들 성적 올려주는 기술자가 바로 ‘스승’이 될 것입니다.
물론 교원평가를 둘러싼 사회적 담론이 이렇게 왜곡된 것에는 전교조의 책임도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 다 평가받는데 너희들은 왜 못 받냐”는 이야기를 다름 아닌 진보연하는 이들로부터 듣게 될 때는, 이 진보라는 것에 대해 절망하는 기분이 되고 맙니다. 모든 직업인들이, 이를테면 청소부는 쓰레기 치우는 속도로, 선생은 아이들 쪼는 능력으로, 주부는 솥뚜껑 운전 솜씨로 서로 점수 매기고 매김 당하는 세상이 되면, 이 ‘평가의 왕국’은 완성될 것입니다. 그곳은 천국일까요, 지옥일까요?
03.
선생님. 이제 가을이 다가오고 있네요. 2학기를 준비해야 되는데, 아직 보충수업도 끝나질 않았으니, 참. 그래도 더위가 가시는 느낌만으로도 기운이 납니다. 요즘은 이런저런 일로 차분한 기분이 됩니다. 며칠 전 제가 겪은 작은 일 때문에 ‘인식의 원근법’이랄까, 이런 생각을 골똘히 하게 됩니다.
그날은 수능이 꼭 100일 남은 날이었는데, 저희 반 아이들 몇 녀석들이 우리 집으로 놀러온다기에 제가 반 전체로 문자메시지를 보내서 놀러 올 사람은 같이 오라고 했습니다. 날씨가 좀 선선해진 저녁 무렵에 집에서 밥도 먹고 과일 먹으면서 두런두런 앉아 있었는데, 작년부터 뇌종양을 앓고 있는 한 아이가 어머니의 부축을 받아 우리 집으로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 아이가 오리라고는 조금도 예상을 못했거든요.
그 아이는 항암치료를 받는 몸으로 빠짐없이 학교에 나오려 무지 애를 쓰는 녀석이었습니다. 그 이유를 저도 충분히 알지만, 고3씩이나 되는 아이에게 눈에 띄는 보살핌을 베푼다는 게 좀 멋쩍기도 해서, 음으로 양으로 조금씩 돕거나 마음 쓰고 있었지만, 실은 그 존재를 자주 잊고 지내던 아이였습니다. 한참동안 같이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친구들의 부축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녀석의 뒷모습이 자꾸 생각나서 그날 밤 잠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독한 항암제 때문에 한 달에 며칠씩은 잘 먹지도 못하고 토하면서 혼미한 정신으로 지낸다는 녀석에게 한 학기동안 담임으로서 나는 무엇이었나, 하는 아픈 자책이 마음을 때렸던 겁니다. 사실 그 아이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실상 별로 없습니다. 제가 어떻게 한다고 해서 그 아이의 병세가 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아픈 누군가를 위해 마음을 다해 기도해 주는 누군가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하늘과 땅처럼 크다는 것을 저는 신앙처럼 믿어왔습니다. 그런데, 정작 저는 그 신앙대로 하지 못한 것이지요.
결국, 제가 세상의 일에 관여해서 이러저러하게 활동하는 것 또한 하나의 ‘습관’이 아니었나, 결국 저 또한 특이한 ‘자기 몰두’에 젖어 있었음을 가까운 데서 겪은 일로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인식의 원근법(遠近法)이라는 것, 가까운 데서 벌어지는 일들과 먼 곳에서 벌어지는 세상의 일들을 치우침 없이 통찰하고, 이들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하는 것은 무엇보다 한 존재의 균형을 위해 중요한 일입니다.
어쩌면 예수님의 비유처럼, 강도당한 이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세상 앞에서 언제나 옳은 소리 주억거리면서 존경을 탐하는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아니라 착한 사마리아인의 정성스런 보살핌이듯, 가까운 곳에서 피부로 다가오는 구체적인 고통과 슬픔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하는 것이 더 온당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지금 경기도 의정부에서 중학교 국어 선생을 하는 제 절친한 친구는 법륜스님이 이끄는 정토회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불자인데, 작년 겨울부터 지금껏 줄기차게 북한 동포돕기를 위해 거리 모금과 단식을 하고 있습니다. 이 친구가 전해주는 북한 주민들의 참상은 믿고 싶지 않을 정도로 처참하네요. 친구의 호소를 들으며 저도 물질적으로 조금 돕는 시늉은 하고 있었지만, 촛불의 열기에 빠져 있던 사이 그 아픔을 얼마나 함께 감당하고 있었는지를 생각하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선생님, 이제 글을 마무리할 시점입니다. 이미 석 달 동안 촛불을 겪었고, 비록 해결된 것은 없지만 이전보다는 한껏 가벼워진 마음으로 이 가을을 향해 출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는 앓고 있는 우리 반 아이를 위해, 밥을 굶고 있을 북녘의 아이들을 위해 뭐든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밀양의 촛불은 이번 일요일 집회로 스물 네 번째를 맞습니다. 그 전에는 낯도 모르던 분들이었는데, 그 사이 친해진 스무 명 남짓한 분들이 집회가 끝나면 맥주도 한 잔씩들 하면서 어울리고 있습니다. 인터넷 카페도 만들었고 산행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명박이 물러가는 그날까지 5년 내내 촛불을 들 각오입니다. 그리고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촛불의 그늘까지 품으면서, 촛불이 더욱 넓고 깊어지기를 기다리겠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횃불이 되어 이 광막한 어둠을 살라먹으며 활활 타오를 그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뿌리내린 땅에서 일어나는 구체적인 고통과 슬픔을 잊지 않을 작정입니다. 평안을 빕니다.
이계삼 올림 (월간 우리교육 2008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