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한반도와 일본열도가 바다로 갈라져 있지만 약 1만 5천년 전까지만 해도 육로로 연결되어 있었다고 한다. 끝없는 길을 걷고 걷다보면 어디든 갈 수 있었으리. 지역적으로는 가깝고 감정적으로는 먼 일본에 가기로 결정한다.
위험한 바닷길을 건너서 일본열도에 간 한반도인들은 초기 일본인, 일본문화의 형성으로부터 고대국가의 성립에 이르기까지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일본에서는 이들을 도래인(渡來人)이라고 부른다는데 그들의 흔적을 더듬어보기로 한다.
수원에서 출발해야하므로 서둘러 준비한다. 남편이 공항버스타는 곳까지 데려다준다. 가족들을 모두 두고 나혼자 나서는 길이 가볍지많은 않지만 여행은 언제나 설레임을 동반한다.
06:15 인천공항 도착, 환전소에서 환전했는데 10배 가까운 차이가 나서 금방 적응못한다. 셈도 느리고 적응도 느려서리... 07:00 여행을 같이 할 선생님들과 아이들을 만나 인사나눈다. 처음엔 서먹서먹하지만 금방 한국인의 정으로 똘똘 뭉칠것이다. 09:00 24gate앞이다. 눈이 내린다. 비행기 커다란 몸체위에 하얗게 쌓였다. 언제 저렇게 많이 쌓였담? 떠나는 설레임, 전율..이렇게 느낄 수 있어 너무 행복해. 비행기에 탑승하니 떠나는 것이 좀 더 실감난다. 좁은 자리에 앉아서 중학교 2학년인 나경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웃는다. 집에서 자고 있을 딸아이가 생각난다. 창쪽이면 더 좋았을걸.. 비행기안에서 차가운 빵과 오렌지쥬스, 진한 커피를 마셨다. 배고프고 졸렸는데 둘 다 해소되었다. 구름과 부딪치는 소리를 듣는다. 모든 감각이 다 깨어있나보다. 12:00 기상사정으로 예정보다 늦게 오사카 칸사이공항에 도착. 일본의 이미지답게 깨끗하고 정갈하며 세련된 느낌이 드는 공항의 모습이다. 하늘이 파랗다. 눈이 시려! 거리에 차가 적어서 이상하다. 넘실대는 바다와 흰구름. 다시 푸른하늘. 계절을 넘어온 것 같아. 정수걸 가이드가 일본에서의 유의사항을 들려준다. 개인행동금지, 오른쪽 먼저 살피고 길 건너기, 전기는 110V사용한다고, 화장실에서는 변기에 휴지를 버린다. 상대에 대해서 배려하는 문화이다보니 눈치보는 경향이 있다한다. 식당으로 가는 길에 건물을 보니 작고 높지 않다. 밭에는 농작물이 있다. 우리나라 밭에는 황량한 바람뿐일텐데... 오사카는 먹거리가 풍부한 곳이라고 한다. 자동차의 표지판 설명을 들었는데 경차는 노란색표지판, 영업용버스는 녹색표지판, 자가용은 흰색표지판이라고. 소형차기술이 발달되었다고 하였다.
우리가 처음 간 곳은 법륭사. 아스카지 이후로 일본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절이라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 금당에는 중국의 운강석불, 경주의 석굴암과 함께 세계 3대 예술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유명한 벽화가 있다. 고구려스님으로 610년에 고구려왕의 명에 따라 일본에 건너온 담징이 그린 벽화이다. 1949. 1월에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그 후 호오류사와 아사히 신문사가 벽화재건사업을 통해 새롭게 재현한 그림이 모셔져 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 하지만 잘 보이지 않는 것이 어찌 그 벽화뿐이랴.
내 얼굴의 표정조차도 잘 보지 못하지. 눈으로 자신을 볼 수 있다면 우린 좀 더 아름답게 살아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벽화는 석가정토, 아미타정토, 약사정토로 이루어진 것으로 묘사선이 정확하고 치밀하다고 한다. 천년이 훨씬 넘는 옛날에 이런 그림이 그려지고 벽화로 남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탄할만하다. 하물며 한반도조상인 고구려스님이라잖은가~ 담징은 오경(五經)을 알고 있었으며 채색 및 종이, 먹을 잘 만들었고 맷돌도 만들었다고 기록은 전한다. 그때에도 맷돌손잡이인 어처구니라는 말이 있었을까? 세계적인 공예예술품 비단벌레 불상궤를 보았다. 세공의 기법은 금동금구밑부분을 비단벌레인 옥충의 날개들을 깔아서 붙인것이라고 한다. 이 옥충주자는 단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칠공예 유품으로서만 아니라 건축 및 회화사등에서도 인정받는 작품이라고 하는데 궁전모양을 하고 있다. 주자의 재료는 녹나무. 옥충을 해석하면 황금빛을 발하는 우아한 벌레라는 뜻. 이 벌레의 날개를 공예장식에 응용하는 기법은 고대 한반도의 고구려, 백제, 신라에만 있었다고 하니 일본에 도래한 기술자에 의해 제작된 것이 확실! 그러고 보니 국립중앙박물관 고구려전시관에서 비단벌레날개장식을 본 생각이 났다.
세계으뜸의 조각예술이라는 백제관음상은 정면도 훌륭하지만 측면에서 보면 더욱 아름답다고 한다. 녹나무의 둥치 하나를 가지고 깎아 조각한 불상이다. 앙드레말로라는 사람은 이 관음상을 꼭 건질보물이라고 찬탄했다고 하는데 내 느낌은 눈이 작아서 옹졸해보이고 몸에 비해 팔의 균형이 맞지 않는 듯, 게다가 다리는 뭐그리 기노? 괜한 질투심에 작은 흠집이라도 내보려고 안간힘^^ 16:30 법륭사에서 나옴. 바람이 몹시 불어 춥다고 느끼더니 바람과 친해진다. 왕인박사묘로 향하는데 날이 저물어 어두워진다. 도착했을때는 깜깜했다. 왕인은 백제에서 건너와 일본에게 논어 10권과 천자문1권을 전해주었다고 한다. 어둡거나 춥거나 우린 목적지에 온 확인을 하기 위해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나는 제대로 살고 있는건가.. 우리의 조상들이 바다 건너 일본에 와서 문화를 꽃피운 것을 바라보며 그 후손이라 할 수 있는 나는 무슨 생각으로 현재를 살아가고 있단말인가.. 조상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내 가족을 떠올려보자. 나를 너무 사랑해주고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족을 생각해보면 나는 더 열심히 살아야 하고 맑게 살아야 한다.
08:35 숙소에서 출발하여 청수사로 향한다. 함박눈이 내린다. 30년만에 최고한파라고 한다. 지구촌의 이상기온이 여기에도 따라왔네~ 교토는 우리나라 경주처럼 고도이다. 현재 2000개가 넘는 절과 신사, 궁궐 및 수십개의 정원이 있다고. 794년에서 1868년까지 일본의 수도였던 교토.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총공격때 폭격대상에서 제외되었던 곳으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며 보존된 도시라고 한다.
청수사는 798년에 처음 세워졌고 1633년에 재건되었다. 단청을 입히지 않은 모습이 아름다워보인다. 세개의 물이 떨어지는 곳에서 물을 받아마셨다. 기원하는 바가 다 다르지만 난 믿지 않기에 아무거나 받아 마셨다. 그 물 마시고 다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웃긴 일이다~ 임진왜란때 조선의 병사들의 귀를 베어오라는 것이 시초가 되어 나중에는 코를 베어오게 했다고 한다. 상하지 않게 소금물에 절구어서 운반했다고 한다. 끔찍한 역사. 역사는 미치광이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굴러가는 것 같다. 91세 되신 노인분이 한국에 속죄하기 위해 지키고 계셨다. 60년간을 돌보고 계신다고 하였다. 어디든 양심은 살아있어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
조금 떨어진 곳에 커다란 종하나만이 남아있는 방광사가 있다. 도요토미가 천하통일 후 어머님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은 절이 그 후 화재로 불타버리고 그의 아들 히데요리가 방광사를 재건하는 과정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모함에 넘어가 가문이 멸망하는 계기가 되었던 유명한 절이라고 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미천한 신분. 15세 때 무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고 집을 나와 여러지방을 돌아다닌 끝에 18세 때 오다 노부나가의 말을 관리하는 일을 하였다. 19세때에는 오다 노부나가의 신을 들고 따라다니는 일을 맡았다. 어느 추운 겨울날 주군인 노부나가가 긴급히 출동하기 위해 신발을 신었는데 훈기가 배어 따뜻하여 알아본즉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신발을 밤새 품속에 안고 자신의 체온으로 따뜻하게 하여 감동했다고- 주군을 위해 열심히 일했던 히데요시의 생활태도나 유머와 인정미 등이 주군의 마음을 끌어 지휘관으로까지 오르게 되었다. 히데요시는 노부나가의 최대의 라이벌 모리를 공격하였으나 고전하자 자신을 도와주려고 오던 주군이 부하에게 불의의 습격을 당해 자살한 것을 알고는 적장인 모리와 강화를 맺는다. 즉시 군대를 되돌려 반란을 일으켜 주군을 자살하게 한 미쓰히데 군대를 공격하여 무찔러 주군의 뒤를 이어 천하의 실권을 잡게 되었다. 그리하여 1590년 전국을 통일하고 다도를 보급시켰으며 농민들의 봉기를 방지하고 경작에만 전념하도록 하기 위해 일체의 무기를 빼앗는 [가타나가]를 실시하였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다음으로 간 곳은 금각사. 금분을 입힌 곳. 눈이 더 아름답더이다. 세심하게 꾸며진 정원을 돌아 나왔다. 춥고 배고프다. 광륭사는 일본 국보 1호가 모셔져 있는 절이다. 몇 군데의 절을 돌아다니며 스님을 보지 못했는데 일본의 스님은 절에서 기거하는 것이 아니라 출퇴근한다고~ 우리의 국보 금동미륵반가상과 매우 비슷하게 생겼고 고대 일본에는 없는 적송으로 만들어져 신라(혹은 백제)가 왜 황실에게 선물한 것으로 학계에 알려져있지만 안내문에는 절대로 적혀있지 않다고 한다. 그 옆으로는 우는상투머리 불상, 광륭사를 짓고 불상을 안치시켰다는 신라인 진하승 부부상이 안치되어 있으나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고 기록되었단다. 우리의 국보는 유리안에 전시되어 있는데 이곳의 국보들은 그런 테두리가 없다. 저렇게 보존해도 되는건지..다른 기술적인 것이 숨어있는건지 궁금해진다. 저들의 기술력이 얼만큼인지도 모르면서 웬지 뭔가가 더 있을것만 같으이... 14:40 니조성도착. 1601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축성을 명령하여 1603년에 입성하였다고 한다. 마루를 밟으면 소리가 나는데 우구이수바리(꾀꼬리마루)라고 하였다. 마루판을 밟으면 꺾쇠가 위아래로 움직이고 꺾쇠와 못의 마찰음이 마치 휘파람새 소리처럼 나도록 하여 적이 침입할 경우 이 소리를 듣고 즉시 반격할 수 있는 용도로 쓰였다고 한다. 빈틈이 없는건지 그만큼 자리가 위태로웠던건지.. 그렇게 해서라도 그 자리를 지켜야하는 것. 새삼 한숨이 나온다. 15:50 성에서 나와 버스로 교토민자역사로 감. 16:20 자유시간주어서 관광. 계단을 오르고 또오르고..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그들의 발전상이 부럽고 얄밉기까지하다. 120엔짜리 커피를 마시고 속이 메스꺼워지기 시작한다. 17:30 버스가 있는 곳에서 일행을 만나 숙소로 향함. 이틀동안.. 어떻게 하면 먼지를 털어내듯 내 머릿속을 털어낼 수 있을까.. 생각한다. 밤시간에 아이들과 라면을 먹으러 갔다. 한국의 라면맛과는 엄청 차이가 있는 느끼한 맛이다. 골목길에서 뿜어져나오는 음식냄새가 메스껍게 느껴진다. 싱싱한 생선회를 상상했던 내게 이 고약한 냄새는 또다른 서글픔을 안겨준다.
2005 겨울- 비몽사몽 일본행3
08:30 출발예정이라 로비에 앉아 출발을 기다린다. 처음보다 많이 친해진 아이들. 어젯밤 일본라면에 만족하지 않고 컵라면에 도전한 아이들. 대단해요~ 라면은 역시 신라면이야!! 친절한 일본사람들. 버스타는 곳까지 따라나와 손흔들어주며 미소를 잃지 않는 모습. 속마음이 어떻든 밖으로의 모습은 상대방의 마음을 열게 해주는 친절이다. 무뚝뚝한 우리가 본받아야 할 모습이라 생각된다. 특히 나~~
10:05 동대사 도착함. 세계 최대의 목조건물과 함께 최대불상이 안치되어 있는 곳이다. 들어가는 길에 커다란 사슴들이 어슬렁거려서 흠칫 놀란다. 사슴공원이라고 해서 울타리 안에 있는 것인줄 알았는데 아무곳이나 배회한다. 동대사는 가람의 총책임자로 고구려인 고려복신이 맡았고 대불의 주조는 백제인 국중마려, 대불전 건축은 신라인 저명부백세가 만든 삼국인의 합작품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나 잘 만들어 보존했으면 좋았을텐데... 사천왕의 표정은 험악하기 이를데 없다. 우리나라 사천왕의 표정은 애교에 가깝다. 그럼 이 절을 만든 고대 삼국인의 마음이 본토에 사는 삼국인의 마음과 달랐단 얘긴가요? 안다는 것은 무엇인지.... 표출하는 것만이 다가 아닌데 우리는 종종 오류에 빠져든다. 표현되고 있는 것만이 전부인양.. 동대사의 그 커다란 비로자나불은 금동불로서 두번의 병화를 입어 나라시대 면모를 전하는 것은 무릎 부분이나 대좌의 연꽃 등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윤선생님이 좋아하는 숫자놀이 해볼까요? 대불전의 높이는 47.34m, 길이는 57.01m. 금동좌불상의 높이는 14.98m, 무게는 452t, 눈 길이가 1.02m..... 나라 지역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큰 불상이라는 명성을 얻는다고 한다. 불교에 의한 국가진흥을 바라던 쇼무천황이 일본 전국의 구리를 모아 9년에 걸쳐 8차례의 주조 끝에 만들어진 대불이라고- 대불 오른쪽에 있는 굵고 커다란 기둥 구멍의 크기가 대불의 콧구멍 크기와 같다고 하는데 이 구멍을 빠져나가면 1년치 액땜을 할 수 있고 소원성취가 이루어진다고. 저마다 구멍을 통과했는데 오덕만 선생님만 통과를 못했대요~ 오덕만 선생님이 이런말을 해주셨다. 성장의 두려움. 가장 큰 장애는 내부의 두려움이다. 자기자신의 꿈을 이루는데 가장 큰 방해는 자신이다. 아이들은 알아들었을까요? 말의 의미를 깨달아야만 수용할 수 있고 바뀔수 있는건데 때때로 내부에서 철컥~하고 빗장이 걸릴때는 어쩌지.... 나라박물관에서는 여러가지 전시유물을 보았는데 저는 너무 지쳐서 제대로 보이질 않더이다. 특별전으로 중국의 청동기를 볼 수 있었는데 제대로 보지 못해서 이제와 안타깝네요. 잘 따라다니는 아이들보며 무지 부러웠어요*
13:10 나라를 출발해서 14:15 오사카성에 도착. 그 사이에 버스에서 지쳐 떨어졌는데 윤선생님이랑 초등학생들은 아주 열심히 얘기하며 놀더이다. 대단한 체력이다. 처음 오사카 성을 들어갈 때 해자와 어우러진 성벽을 보며 감탄을 했다. 성벽에는 130톤짜리 돌을 통째로 사용한 것도 있다고 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오사카성을 축성한 이후 천수각은 여러 번 전란에 의해 불탔다고 한다. 천수각은 진도 7의 지진에도 견딜 수 있도록 보강되었으며 오사카상의 상징적인 건물로 알려져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생애를 소개하고 있는 전시실. 그가 만든 황금의 다실을 실물 크기모형으로 복원해 놓았는데 차를 아주 즐기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당시 최고의 귀족문화는 차문화였고 조선 도자기로 차를 마시면 상류집단에 속했다고 한다. 전쟁터에도 막부를 설치하고 차를 마셨다고 하니 분위기를 즐기는 사람이였을까, 아님 상류문화에 대한 컴플렉스였을까.. 옛날 일본에서 일본도를 차는 것은 무사에게만 허락되던 특권으로 일반 상인과 농민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고 한다. 무사들은 일본도를 신성한 것으로 생각하여 집안의 영예를 나타내는 보물로 여겼기 때문에 칼을 항상 빛나게 하여 소중하게 취급했다고 한다. 16세기 중반에 총포가 전래되기까지 일본도는 전쟁시에 아주 중요한 무기였다. 서양의 칼은 찌르는 목적이기때문에 양쪽에 날이 있는 검이 대부분. 일본칼은 자르는 목적이기 때문에 한쪽 날 칼이 대부분이다. 사천왕사는 백제계 양식의 목탑이 있는 곳. 강당에 많은 사람을 수용 못하므로 야단법회가 열려지는 곳. 유네스코에 등재. 서울의 조계사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곳. 하지만 내게는 가고 싶은 화장실을 못간 곳. 시간이 늦어서 탑안으로 입장을 못해 더욱 아쉬운곳. 저녁을 회전초밥으로 하고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를 마셨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우측통행을 해서 자꾸 부딪쳤다. 습관이란 무서워서 머릿속으로는 인지하면서도 몸이 말썽이다. 숙소는 ILGRANDE 비지니스 호텔이란다. 지하철도 타보고 쇼핑도 가보았지만 우리나라랑 크게 다를바가 없는데다 돈도 없어서 별 의미를 느끼지 못했다. 택시타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서 일찍 잠자리에 든다. 꿈을 꾼다. 빛이 내게로 온다. 따스한 빛이다. 그 빛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2005 겨울 - 안절부절 일본행4
07:30 호텔에서 아침식사로 빵 몇조각과 진한 커피 2잔을 마시며 피로를 느낀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어도 새벽에 깨어 뒤척였더니 머리가 맑지 못하다. 게다가 하나의 명제가 나를 짓누르듯 주어졌으니.. 09:00 호텔 로비에서 기다림. 전력이 110V만 사용된다는데 그 이유를 알지 못하고 간다. 가이드도 모른다고. 일본어를 알면 물어보면 좋으련만~ 09:10 호텔 출발하여 일본 최초로 천체 관측할 수 있는 자료관인오사카시립박물관으로 간다. 우리나라 IT WORLD에서 본 것보다 훨씬 해상도가 뛰어난 영상을 보다가 따뜻하고 편안한 의자에서 잠깐 잠이 들었다. 아이들은 재미있어 하며 이것저것 체험을 해본다 김형미샘과 윤영선샘이 지구와 달나라와 화성에서의 몸무게를 실험해본다. 나도 달나라에 가서 살까? 오사카는 항구로 유명하다고 한다. 관서지방의 중심지이고 무역항. 12:11 샤브샤브요리로 점심식사를 한다. 우리 테이블에는 오윤정샘, 윤영선샘, 김형미샘, 그리고 나 넷이 앉았다. 야채를 가져오는데 미모순으로 가져오자고 하며 오윤정샘이 나선다. 역시 예쁜사람이 매너도 좋군요~ 며칠 야채도 제대로 못먹은 터라 야채로 배를 채운다. 다음 미모는 김형미샘이어서 두접시의 야채를 가져온다. 윤영선샘은 수전증이 있으니 밥을 가져오겠다고 하셔서 추월해서 내가 가져와 또 푸짐하게 먹었다. 미모가 뛰어난 분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니 너무 맛있었어요~ 다음에 또 가요 ^0^ ATC(아시아태평양트래이드센터)방문하여 견학을 하는데 고령화시대에 맞는 여러가지 기구들을 선보였다. 건강하게 살아야지.. 저런 것에 의지하며 살지 말아야 할텐데... 뭐 이런저런 생각으로 지나쳐왔다. 15:30 칸사이 국제공항도착하여 출국수속 이제 집에 가는데..너무나도 아이들이 보고 싶은데.. 머릿속은 갈 때보다 더욱 복잡해져 얼굴표정이 자꾸 굳는다. 나를 이곳에 두고 가자. 제대로 사는 방법은 뭔지.. 내 가진 것을 감사하게 여기며 살아야함에도 열등의식을 가지며 마음 시려지는 혼란속에서 나는 맥없이 웃는다. 누가 떠밀지 않았어도 내발로 걸어온거야. 여기까지. 하지만 그거 아니? 한쪽발만 떼면 벼랑끝이라는 것. 그 벼랑에 독을 품은 약초가 산다는구나. 네가 거기에 있으니까 내가 여기 위태롭게 서 있는거야. 19:10 비행기가 정확한 시간에 인천공항에 도착하였다. 새삼 더 반가워지는 일행들의 모습과 마지막 인사를 한다. 앞에서 이끌어주신 오덕만 선생님과 윤영선 선생님 애 많이 쓰셨어요. 덕분에 살랑살랑 잘 놀고 왔답니다. 몸만큼은 아주 가뿐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