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한(恨)
<신천성경p57> 하나님은 심정(心情)의 주체(主體)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무한(無限)히 슬픈 감정(感情)을 갖고 계시며 무한히 기쁜 감정(感情)도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이라고 해서 기쁜 감정(感情)만 갖고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슬프다면 인간(人間)이 도달(到達)할 수 없을 정도(程度)로 깊고 넓은 슬픈 감정(感情)을 갖고 계시는 분입니다.
<신천성경p56>기독교(基督敎)에서 ‘하나님 아버지!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신 아버지!’라고 하는데 전지전능(全知全能)한 하나님도 원칙기반(原則基盤)위에서 전지전능(全知全能)이지 무원칙(無原則) 기반(基盤) 위에서 전지전능(全知全能)이 아닙니다. 마음대로 하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자기(自己)가 법(法)을 세워 놓았으면 영원(永遠)하신 분이 제정(制定)한 법(法)은 영원(永遠)한 것입니다. 자기(自己)가 세워 놓은 법(法)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천지(天地)의 모든 존재물(存在物)은 법칙(法則), 대원칙(大 原則)에 의(依)해서 작용(作用)합니다. 제아무리 하나님이라도 이 원칙(原則)을 파괴(破壞)하고 행동(行動)할 수는 없습니다. 이 나라의 대통령(大統領)이라도 헌법(憲法)을 위주(爲主)로 하여 제정(制定)된 모든 법(法) 입법기관(立法機關)을 통(通)해 제정(制定)된 법(法)을 중요(重要)시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절대자(絶對者)이고 영원(永遠), 불변(不變), 유일(唯一)의 존재(存在)이기 때문에, 그 분이 정(定)한 법(法)은 절대(絶對) 유일(唯一), 불변(不變)이라는 것입니다, 이 법(法)에 일치(一致)될 수 있는 상대자(相對者)가 필요(必要)합니다. 상대자(相對者)가 있어야 됩니다.
<신천성경p69> 참(眞)이 무엇이냐 하면 절대적(絶對的)인 사랑입니다. 절대적(絶對的)인 하나님도 참사랑에는 절대복종(絶對服從)해야 됩니다. 우리 남자(男子) 여자(女子)가 사랑 길을 찾아 갈 때는, 그 남자(男子) 그 여자(女子)가 아니면 안 되겠다고 할 때는 자기(自己) 생명(生命)을 넘어서 움직이려고 합니다. 그 사랑하는 상대(相對)를 위해서는 내 생명(生命)을 바치려고 하고. 자기(自己) 모든 것을, 과거(過去)· 현재(現在)· 미래(未來)를 몽땅 희생(犧牲)해서라도 그 사랑과 하나 되려고 합니다. 이것은 타락(墮落)한 사랑이라도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본연(本然)의 하나님이 원(願)하였던 완성(完成)한 사랑이라면 얼마나 강(强)하겠습니까? 생명(生命)이 문제(問題)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자체(自體)의 생명(生命)까지 부정(否定)시킬 수 있는 것이 참사랑의 힘(力)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사랑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평화(平和)의 세계(世界)가 안 됩니다.
독재적(獨裁的)인, 독재세계(獨裁世界)의 단일세계(單一世界)가 될는지 모르지만, 화합(和合)하고 상대자(相對者) 입장(立場)에서 주고받을 수 있는, 서로서로 위(爲)할 수 있는 사랑이 없게 되면 평화(平和)의 세계(世界), 하나님의 세계(世界)는 안 되는 것입니다.
<신천성경p150>아담 해와가 타락(墮落)하기 이전(以前) 하나님의 소망(所望)에는 무엇이 있었느냐? 아담 해와가 본연(本然)의 참부모(眞父母)를 중심삼은 참혈족(血族)으로써 종족(宗族), 민족(民族), 국가(國家), 세계(世界)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천국세계(天國世界)를 이루는 것이 본래(本來)의 하나님의 창조이상(創造理想)인데 인간(人間)이 타락(墮落)함으로써 부모(父母)가 깨져 나가고 자녀(子女)가 깨져 나가니 결국(結局) 오늘날과 같은 세계(世界)가 되고만 것입니다.
이 지구상(地球相)에 살고 있는 인류(人類)가 하나 같이 참부모(眞父母)의 혈통적(血統的) 인연(因緣)을 거치지 못하였기 때문에 현세(現世)의 이런 상태(常態)로는 하나님과 관계(關係)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참부모(眞父母)의 인연(因緣)을 가지고 오시는 분이 재림주(再臨主)입니다, 6000년 역사(歷史)를 잃어버린 참부모(眞父母), 즉 아담 해와의 완성기준(完成基準)을 복귀(復歸)하는 역사(歷史)였습니다.
<신천성경p152> 인류역사(人類歷史)는 참부모(眞父母) 복귀역사(復歸歷史)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부모(眞父母)를 복귀(復歸)하지 않고는 참다운 자녀(子女)가 있을 수 없고 참다운 자녀(子女)의 인연(因緣)을 세우기 전(前)에는 참다운 가정(家庭)과 참다운 종족(宗族)과, 참다운 민족(民族), 국가(國家), 세계(世界), 천주(天宙)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이 기준(基準)을 세우기 위해 6천년이라는 기나긴 세월(歲月)을 수고해 나오셨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前)에 오셨던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처음으로 참부모의 영광(榮光)으로 오신 분입니다. 예수님이 참부모(眞父母)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즉 참부모(眞父母)는 역사적(歷史的)인 결실체(結實體)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역사적(歷史的)인 결실체(結實體)로 서기 위해서는 일면적(一面的)인 승리(勝利)를 해서는 안 됩니다. 아들의 사명(使命)만을 해서도 안 됩니다. 부모(父母)의 사명(使命)을 해야 됩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서 육적(肉的)으로는 아들의 입장(立場)을 복귀(復歸)하는 노정(路程)을 거쳐야 했고 영적(靈的)으로는 부모(父母)의 입장(立場)을 복귀(復歸)하는 노정(路程)을 거쳐나가야 했습니다. 이렇게 양면적(兩面的)인 입장(立場)에서 책임(責任)을 다하여 하나님과 하나 될 수 있는 기점을 세워야 했습니다. 그 기점은 개인적(個人的)·가정적(家庭的)· 민족적(民族的)· 국가적(國家的)인 이스라엘의 기반(基盤)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었더라면 영적(靈的)· 육적(肉的)으로 참부모의 기준(基準)을 세울 수 있었는데 이스라엘 민족(民族)이 예수님을 불신(不信)함으로써 그 기준(基準)을 세울 수 없었습니다. 이 땅에 다시 오시는 주님(主任)은 영적(靈的)인 부모(父母)의 입장(立場)을 복귀(復歸)해야 되고, 육적(肉的)인 부모(父母)의 입장(立場)을 복귀(復歸)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신천성경p151>예수님은 신랑(新郞) 방(房)을 준비(準備)해야 했고 신부(新婦)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금식기도(禁食祈禱)를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한(恨)이 되었으며 예수님의 한(恨)이 되었습니다. 인류(人類)를 살리는 것이 소망(所望)이요. 목적(目的)이었기 때문에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십자가(十字架)에 돌아가신 예수님은 재림(再臨)하셔야 합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무엇을 먼저 해야 되느냐? 제자(弟子)들을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신부(新婦)를 찾아야 합니다. 이 신부(新婦)가 오늘날 신랑(新郞)이 오기를 고대(苦待)하며 준비해 온 기독교(基督敎)입니다.
<신천성경p153>예수님이 신랑(新郞)으로서 부모(父母)의 자리에 나아가는 데는 신부(新婦)가 있어야 합니다. 그 신랑(新郞) 신부(新婦)는 타락(墮落)하지 않은 인간조상(人間祖上)으로서 인류(人類)의 참부모(父母)가 되어야 합니다. 참아버지격(格)이 되는 분이 예수님입니다. 이 땅에서 인류(人類)의 참아버지로 서려면 참어머니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아들의 사명(使命)을 완결(完結)지었으나 참어머니가 될 신부(新婦)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영적(靈的)으로만 부모(父母)의 인연(因緣)을 남기고 간 것입니다.
예수님은 신랑(新郞)으로 하늘을 대신(代身)하고 성신(聖神)은 신부(新婦)로 땅을 대신(代身)하여 영적부모(靈的父母)의 기준(基準)을 세운 것입니다. 본래(本來) 부부(夫婦)란 실체(實體)를 쓰고 평면적(平面的)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본래(本來) 이루어야 할 목적(目的)이었습니다.
영적(靈的)으로만 이루어졌기 때문에 영계(靈界)와 육계(肉界)가 하나 되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신랑(新郞)되신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고 신부(新婦)되신 성신(聖神)은 땅에 내려와서 영계(靈界)와 육계(肉界)를 하나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천성경p154>아담과 해와가 사춘기(思春期)를 지나 성숙(成熟)하여서 인생(人生)의 봄절기를 맞이하게 되면 하나님이 결혼(結婚)시켜주셨을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이 그들의 결혼식(結婚式)을 해주어야 했습니다. 그것을 못해 주었기 때문에 기독교(基督敎)를 중심삼고 어린양잔치라는 명사(名詞)를 세운 것입니다.
성경(聖經) 요한계시록 맨 나중에 보면 어린양잔치라는 말이 나옵니다. 어린양잔치가 무엇이냐? 6000년 전에 하나님이 결혼(結婚)시켜주어야 할 아담 해와가 사탄을 중심삼고 결혼(結婚)해서 악(惡)의 조상(祖上)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그것을 복귀(復歸)하기 위하여 역사적(歷史的)인 끝 날에 하나님이 새로운 신랑(新郞) 신부(新婦)를 세워 다시 결혼식(結婚式)을 해 주는 잔치(殘置)가 있어야 합니다. 그 잔치(殘置)가 어린양잔치입니다. 이 잔치(殘置)를 함으로써 참부모(眞父母)가 탄생(誕生)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린양잔치를 할 때가 왔기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世界大戰) 이후(以後) 세계는 달라지고 있습니다. 유엔기구가 나와서 세계(世界)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1차 대전(大戰) 후(後)에는 전승국가(戰勝國家)가 패전국가(敗戰國家)를 마음대로 학대(虐待)하고 마음대로 지배(支配)하였지만 2차 대전(大戰) 후(後)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2차 대전(大戰) 이후(以後)에는 전승국가(戰勝國家)가 패전국(敗戰國)을 전부(全部) 해방(解放)해 주었습니다. 부모(父母)가 올 때가 되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수많은 유엔국가들은 전부(全部) 형제국가(兄弟國家)입니다. 큰 나라 작은 나라 할 것 없이 모두 형제(兄弟)입니다. 그러니 유엔(UN)을 중심삼고 전부(全部)가 일대일(一對一)의 권위(權威)를 가지고 동등(同等)하게 한 집안의 형제(兄弟)와 같은 입장(立場)이 되어야 합니다. 거기에 평화(平和)의 기수(旗手)로 참부모(眞父母)가 와야 됩니다.
이상세계(理想世界)의 참된 기준(基準)은 참부모(眞父母)입니다. 그러니 참부모(眞父母)의 역사(歷史)가 시작(始作)되어야 합니다. 참부모(眞父母)가 와서 세계(世界) 사람을 전부(全部) 하나의 심정기준(心情基準)으로 일치(一致)시키고, 악(惡)한 것과 선(善)한 것을 가르쳐주어 새로운 부모(父母)의 전통(傳統)을 세워야 됩니다. 그래서 새로운 혈족(血族)을 이루고 세계(世界)의 새출발(出發)을 벌어지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오시는 주님(主任)은 새로운 가정(家庭)을 편성(編成)하기 위해 오시는 것입니다. 그 오시는 분이 기독교(基督敎)에서 말하는 재림주(再臨主)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