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
성당 광장의 오벨리스크
로마에 있는 수많은 성당들 가운데서도 특별히 위풍당당한 앱스를 자랑하는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 이 앱스는 17세기 말 바로크 건축가인 카를로 라이날디가 추가한 것이다. 또한 이 앱스의 외부뿐 아니라 내부에도 놀랄만한 장식들이 많이 숨겨져 있다
광장의 중앙에 서 있는 기둥 블로그 > ordinary or extraordinary 역시 다른 유적들처럼 재활용한 것으로서 포룸의 콘스탄티누스의 바실리카에 있던 고대 대리석 기둥에 마리아와 아기예수의 동상을 첨가한 것이다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져 앱스 만큼이나 화려하고 장엄한 퍼사드
퍼사드 전면
야경
전면
전면 조각
대리석 바닥 타일
내부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에서 가장 아름다운 예배당으로 여겨지는 시스티나 예배당은 도메니코 폰타나가 교황 식스투스 5세를 위해 만들었으며 교황의 무덤이 있다
내부
천장
내부 돔
성당 내부 조각
발다키노
발다키노
발다키노
교황만 집전할 수 있었던 발다키노. 붉은 반암과 청동으로 이루어졌으며 지붕과 네개의 기둥에 화려한 금장식이 되어 있다. 산타 마리아 마조레의 우물형 천장과 돔, 반지하의 예배당, 특별한 양식의 발다키노는 마치 이보다 후에 지어진 성 베드로 성당의 축소판처럼 보일 정도이다. 하지만 발다키노의 기둥 양식이 성 베드로에서는 다소 변화된 것을 알 수 있다. 성당 내부 양쪽의 예배당으로부터 약간의 공백을 두고 로지아가 있는 것도 특이하다. 이 로지아의 기둥들은 이오니아 양식으로 제작되었으며 아랫 부분의 모양이 모두 다르다. 이 기둥을 따라 베르니니 가문의 사람들의 묘가 있다. 로지아 윗쪽과 발다키노에 이르는 거의 모든 벽은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으며 성당의 앱스 부분에는 유명한 '동정녀 마리아 대관식 모자이크'가 있지만 주제단에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이 성당은 431년 마리아의 신성 선언 이후 마리아에게 헌정된 최초의 성당이다
발다키노의 아랫 쪽 (반지하)있는 특이한 양식의 무덤은 로드리궤츠 추기경의 것으로 1299년 고딕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중앙을 향해 무릎을 꿇고 있는 추기경의 대리석상 때문에 정말 특이한 느낌이 드는 곳이다 ( 블로그 > ordinary or extraordinary)
중앙 제대 (아래사진 출처- http://blog.daum.net/duaworld 세포네)
아기 예수가 누우셨다는 말구유
15세기 나무십자가
예수 성심 성화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 성모 마리아 대성당 /성모 설지전 성당 (Basilica di Santa Maria Maggiore)
로마의 7개 언덕 중 하나인 에스뀔리노(Esquilino) 언덕 위에 352년에 세워진 이 성전은 서방 가톨릭 교회에서는 처음으로 성모님께 봉헌된 성전이다. 이 성전이 여기에 세워진 이유에 대해 눈(雪)에 얽힌 유명한 기적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리베리오(Liberius, 352~366년) 교황 때의 일이다. 로마에 '요한'이라는 독실한 신자 귀족이 있었다. 그는 경건한 아내를 맞아 평화스럽게 원만한 가정을 이루어 나날을 보내었으나, 그 가정엔 자녀가 없는 아쉬움이 있그리하여 이들 부부는 막대한 재산을 성모께 바치기로 결심하였다. 그런데 어떤 방법으로 바쳐야 되는지를 모르던 두 부부는 열심히 기도하며 자선행위도 하고 단식과 금육의 재계를 지키며 주의 계시만 기다렸다. 그들의 소원은 참으로 기이하게 이루어졌다. 즉 8월 4일이 지나 5일로 접어든 밤중에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 마리아께서 이들 부부 각자의 꿈에 나타나시어 "로마의 에스뀔리노 언덕에 나를 위한 성당을 세우라. 그 장소는 눈이 하얗게 내린 곳이니 즉시 알 것이다" 하셨다. 아무리 꿈이며 묵시라고는 하지만 둘에게 동시에 나타난 현상이요, 찌는 듯한 이 삼복 더위에 과연 눈이 내렸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나, 날이 새자 즉시 그곳으로 달려가 보니 과연 눈이 하얗게 와 있지 않는가! 그것도 꼭 성당을 지을 장소에만 눈이 내려 있었다. 신기하고도 형언하기 어려운 감동으로 두 부부는 곧 교황 알현을 청해 자초지종을 말씀드리니, 교황도 다른 사제들과 함께 그곳으로 향했다. 이 소식을 듣고 모여든 수많은 군중들도 삼복더위 8월중에 내린 백설을 보고 이는 거룩한 동정 성모님의 순결을 상징함이라 하며 경탄하면서 감동되어 하느님께 찬미를 드렸다. 그래서 늘 기도 중에 자녀를 원하는 간절한 소망을 말씀 드렸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은 딴 데 있었음인지, 둘이 다 연로하여 이제는 자녀에 대한 희망을 더 이상 갖지 못하게 되었다. 이런 경로를 거쳐 세워진 성당이라 처음엔 교황 이름을 따라 '리베리오 성당'이라 불렸고, 그후 예루살렘에서 예수 아기가 누웠던 말구유가 이 성당에 안치된 뒤에는 '말구유의 성모 성당'이라고 불렸으나, 로마의 다른 성모 상당과 구별하기 위하여 '대 성모 성당'(Basilica of Santa Maria Maggiore)이라고 하였다. 그런가 하면 8월 5일 삼복더위 중에 내린 백설을 기념하기 위해 '성모 설지전'(聖母雪地殿)이라고 한다.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무엇보다 다양한 양식으로 표현된 예술작품들에 있다. 바로크 양식의 성당 정면, 로마네스크 양식의 종탑, 성서 내용을 담은 모자이크화, 다양한 조각 작품들과 부조들 말이다. 우선 입구 정면의 한가운데에는 성모님의 삶이 조각되어 있으며, 맨 왼쪽의 나무로 된 작은문이 성문이다. 내부로 들어가면, 격자무늬로 장식된 천장이 보이는데, 줄리아노 다 상갈로가 1489년에 완성한 작품이다. 천장 외부에 입힌 금장식은 콜럼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돌아오면서 가져 왔던 금으로 만들어졌는데,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이 교황 알렉산드로 6세에게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한편, 성당의 입구 오른쪽 경당에는 '칠십인역 성서' 를 번역하는데 일생을 바쳤던 예로니모 성인의 무덤이 있다. 그리고 중앙에 있는 제대의 오른편 모퉁이에는 나폴리 출신의 예술가 존 로렌조 베르니니가 잠들어 있다. 또한, 중앙 제대 아래에는 아기 예수가 유다의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때 누웠다는 말구유 중 일부가 보존되어 있으며, 그 앞에는 성모 신심이 각별했던 교황 비오 9세의 동상이 있다. 중앙제대에서 왼쪽으로 가깝게 있는 소성당은 교황 바오로 3세와 바오로 5세, 쉬피오네 추기경을 배출한 보르게제 가문에서 봉헌한 곳이다. 소성당에서 제단 위를 바라보면 '눈의 전설'이 금색 부조로 새겨져 있으며, 제대 아래에는 보르게제 가문에서 나온 교황들의 무덤이 있다. 성당에서 왼쪽 중간 부분을 보면, '평화의 모후(Ave Regina Pacis)' 조각상이 있다. '평화의 모후'라는 이름은, 제1차 세계대전 동안 교회를 이끌었던 교황 베네딕도 15세가 처음으로 성모님을 그렇게 부른 데서 비롯되었다. 교황은 전쟁으로 고통 받는 인류를 성모님께 의탁하면서, 망명자, 포로, 부상자, 억류자들을 돕기 위해 여러 단체들을 조직하는 등, 그리스도의 박애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한다. 그는 또, 유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의 통치자들이 무장을 해제하고 협상 테이블에 모일 수 있도록 전력을 기울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전쟁이 끝난 후, 그가 타개했을 때, 터키의 회교도들은 그의 박애정신에 감탄하여 이스탄불의 중심에 그의 기념비를 세우기도 했다 |
출처: 성화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bae sung s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