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사칭 유부남 데이팅앱서 사기, 피해 여성만 수십명..업체
"우린 잘못 없다"
앱 약관에 '면책 조항', 피해는 이용자에게 넘어가
피해 여성 "다른 피해 없길"
게티이미지뱅크
결혼·재혼 전용 데이팅앱에서 알게 된 여성들을 대상으로 사기행각을 벌인 남성이 법의 심판을 앞두고 있다.
이번 사건은 피해자만 무려 50여명에 달하는데 그중 한 여성이 용기를 내 실상을 고발했다.
6일 세계일보와 만난 30대 여성 A씨는 지난해 2월 결혼·재혼 중개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30대 남성 B씨를 만나게 됐다.
자신을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의사라고 소개한 B씨는 수억 원대의 보유자산과 억대 연봉을 받는다는 거짓말로 A씨에게 접근했다.
문제의 앱에는 B씨가 직업, 연봉, 학력, 차량을 비롯해 개인정보를 증명한 것처럼 표기돼 있었고 혼인 관계에서도 미혼임을 인증했다.
A씨는 호감을 드러내며 먼저 연락해오는 그와 연락을 주고받다가 얼마 후 연인 관계로 발견하게 됐다.
하지만 A씨의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B씨는 정체는 모두 꾸며낸 거짓이었다.
B씨가 데이트 앱에 올린 자기소개. 제보자 제공
B씨의 거짓말은 A씨 부모님의 걱정으로 드러나게 됐다.
A씨 부모님은 이른바 조건 좋은 신랑감으로 꼽히는 B씨가 아직 미혼인 점을 미심쩍게 생각했고 이에 병원에 근무하는 지인을 통해 알아본 결과 B씨가 의사가 아닌 게 드러났다.
업체는 ‘까다로운 인증 절차를 거친다’고 광고하지만 실제론 본인 인증조차 하지 않았다는 게 A씨 주장이다.
그의 거짓말은 직업뿐만이 아니었다. 대학원을 졸업했다고 했지만 실제론 고졸 학력이 전부였고 더구나 자녀가 셋이나 있는 유부남이었다.
B씨는 처음부터 여성들에게 마수를 뻗치려고 작정하며 치밀한 준비를 했다.
그는 의사임을 주장하기 위해 의사 가운을 준비하는가 하면 의사 신분증, 졸업 증명, 호적 등을 위조해 A씨를 포함한 피해 여성들에게 과시하듯 건넸다. 또 함께 사는 아내에게조차 자신의 범행을 드러내지 않는 등의 치밀함도 보였다.
A씨를 포함한 50여명의 여성이 속을 수밖에 없던 대목이다.
B씨가 위조한 의사 신분증. 제보자 제공
이런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A씨는 B씨를 공문서위조와 사문서위조 등으로 경찰에 고발하고 해당 업체에 사실을 알리며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업체 측은 약관을 통해 ‘개인의 신뢰도 및 정확도는 책임이 없고 보증도 하지 않으며 이를 사용자에게 동의받았다’고 주장하며 자신들 잘못은 없다는 입장이다.
더 큰 문제는 피해 사례가 일부 접수됐지만 신원확인이 되지 않는 탓에 B씨는 가입에 가입을 반복하며 여러 명의 피해자가 발생했고 업체 측은 해당 사실조차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제2의 제3의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 제보자 역시 “다른 여성의 추가 피해가 있을 수 있다”고 크게 걱정했다.
B씨는 이같은 수법으로 약 50명의 여성들에게 사기행각을 벌이며 이 중 일부와는 결혼까지 준비하는 등의 지울 수 없는 큰 상처를 입혔다.
피해 여성들의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B씨를 불러 조사를 벌였다. 그런데도 그는 조사는 받는 도중에도 다른 피해자를 물색하기에 바빴다.
휴대폰이 압수되자 일명 대포폰을 만들어 해당 사이트에 재가입해 여성들에게 마수를 뻗쳤다.
이같은 사실은 확인한 경찰은 그에게 공문서위조와 사문서위조 등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다.
A씨는 “비록 앱이지만 좋은 만남을 기대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며 “앱 가입된 여성들을 상대로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어떻게 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이어 “나는 그나마 빨리 거짓을 알게 돼 피해가 다른 여성들보다 적었다”며 “피해 여성들이 느꼈을 상실감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이용해 잊히지 않는 상처를 줬다”며 “업체 측의 수수방관에 더 화가 치민다. 더 이상 나 같은 피해자가 없길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업체 측은 ‘까다로운 인증 절차로 검증된 회원만 서비스를 이용하도록 했다’고 홍보하지만 피해가 발생할 경우에는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다.
결국 이용자 스스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으로 피해가 발생할 경우 업체에 대한 책임을 묻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다. 사용 전 이들이 정한 약관에 동의했다는 이유에서다.
수십명의 피해가 발생한 데이팅 앱은 사용자가 지불하는 이용요금으로 운영되고 성장한다.
하지만 현란한 광고를 앞세우며 A씨 같은 피해가 재발하거나 사전에 방지하는 모습은 부족한 게 현실로, 피해자에 대한 구제를 비롯해 불량이용자에 대한 제재 등이 절실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