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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정치 유물’ 여의도서 현재진행형...여야 ‘집안싸움’에 민생 뒷전
- 與 당권파 ‘친윤계’ 사조직화 움직임...이준석·안철수도 세력화 도모
- 野 더미래, 처럼회, 민평련, 민주주의4.0 등 ‘금배지 모임’ 난립 양상
[일요서울 l 정두현 기자] 붕당(朋黨)은 정치적, 학문적 이념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결탁한 조선 시대 정치집단이다. 오늘날 여야 정당이나 당내 계파의 시초라고도 한다. 붕당은 왕(王)이나 특정 집단에 권력이 쏠리는 것을 견제하는 순기능도 있었으나, 민생을 외면한 이해당사자 간 주도권 분쟁이었다는 점에서 대체로 평가가 부정적이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붕당을 ‘망국적 정치현상’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현대 정치판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정당 간 진영갈등은 차치하더라도,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부쩍 수위가 높아진 여야의 ‘집안싸움’은 조선의 붕당 정치를 상기시킨다. 국민의힘은 친윤(親尹)과 비윤(非尹)으로, 더불어민주당은 친문(親文)과 친명(親明)으로 갈라져 제각각 ‘당권 파워게임’에 돌입했다. 현재‧미래 권력을 향한 줄서기 형태로 여의도 계파 정치가 최고조에 이른 모양새다. ‘이제는 당파 정치와 결별해야 한다’는 일부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조선 시대의 붕당 DNA를 온전히 걷어내며 선진 정치를 착근시키기엔 국내 정치판이 여전히 미숙하다는 평가다.
붕당 정치는 선조 시대에 동인(東人)‧서인(西人)으로 나뉜 것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중앙관료들 뿐만 아니라 지방의 유생들까지 이러한 붕당에 참여하면서 정치적 대립 구도가 대물림됐다. 당시 동‧서 붕당은 이후 강경파와 온건파로 또 다시 핵분열하며 ‘사색(四色)화’했다. 동인이 북인(北人)과 남인(南人)으로 갈라지고, 서인이 노론(老論)과 소론(少論)으로 갈라진 것. 지금의 여야가 친윤‧비윤, 친문‧친명으로 분화한 것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현대판 붕당정치, 민생과 무관한 ‘그들만의 리그’
어느덧 여의도에선 ‘민생 정치’가 실종된 모습이다. 정치 혁신과 세대교체를 열망하는 민심 속에 정권이 바뀌었지만, 여야는 저마다 당파적 이해관계가 충돌하며 내홍을 앓고 있다. 물가‧금리‧집값이 고공행진하고 있지만 여야는 민생 해법에 골몰하기보단 ‘집안 서열정리’에 허우적거리고 있다. 최근 국회에서 발의된 여야의 입법‧제도화 의제들도 민생 개선보다는 진영논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지적이다. 그야말로 조선 붕당정치의 현대판이다.
지난 17일 현재 여야는 교육부‧복지부 장관 후보자 인사 검증을 앞두고 있지만 국회 청문회는커녕 원(院) 구성도 하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대선‧지선에서 연패한 민주당은 8월 정규 지도부 선출을 앞두고 계파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고, 국민의힘은 당권파인 친윤계와 이를 견제하려는 비윤계 간 신경전이 수면 위로 부상했다.
민생은 하향곡선을 타고 있지만, 여야는 저마다 2024 총선을 겨냥한 내부 정지작업에 드라이브를 거는 모양새다. 단순히 정권이 바뀐 뒤 여야가 정치 섭리에 따라 내부 교통정리 수순을 밟고 있다고 보기엔 갈등 양상이 극단적인 데다, ‘금배지 사조직’이 대거 활성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도를 넘었다는 평가다.
중앙정치의 붕당화 현상은 민생과 반비례 관계에 있다. 당파 갈등이 심화할수록 국정 현안과 민생은 뒷전으로 밀려나기 마련이다. 이에 지금의 여의도 국회는 의원들의 이합집산과 사모임 출범의 장이자, ‘그들만의 리그’를 위한 무대로 변질됐다는 빈축이 자자하다. 결국 정치인들도 사람인지라 학연‧지연‧혈연이나 정치적 이해관계를 무시할 수 없다지만, 노골적인 ‘사당화’ 정치는 지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다선을 지낸 한 전직 의원은 본지와의 취재에서 “21세기 현대 정치판에서 의원들의 사모임 결성이나 계파라는 개념이 가당키나 한가”라며 “중국, 조선의 붕당 정치를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다. 미국은 민주‧공화당에 계파가 없진 않지만 그야말로 이념적 카테고리이지, 우리나라처럼 특정 권력에 줄을 대는 형태라고 보긴 어렵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 지금은 국민 정치의식 수준이 상향 평준화됐다며 “권력의 집중을 막기 위해서라도 여야 상호 견제는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당파가 갈리는 것은 다른 문제다. 민선인 국회의원들이 사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사조직을 결성했다면 배임이나 다름없다”며 “여당이든 야당이든 계파 논리에 집착할 경우 결국 구태 정치에 피로감이 큰 민심으로부터 도태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치권 ‘사조직’ 열풍, 당권 경쟁의 서막
최근 정치권에서 ‘사조직’ 열풍이 불고 있다. 국민의힘에선 지금은 탈퇴한 장제원 의원을 비롯해 이철규‧이용호 의원 등 친윤계를 주축으로 한 의원모임 ‘민들레(민심 들어볼래)’가, 민주당에선 ‘검찰 민주화 개혁’을 모토로 창설된 초선 모임인 ‘처럼회’가 정치권 화두에 올랐다. 처럼회는 민주당 최강욱‧김남국‧김용민 등 총 20여 명으로 구성된 원내 공부모임이다. 민주당 내부에선 사실상 친명계 모임으로 분류된다.
국민의힘은 민들레와 함께 당권주자로 꼽히는 안철수‧김기현 의원의 스터디모임도 출범을 앞두고 있다. 김 의원의 ‘혁신24, 새로운 미래’는 윤석열 정부의 싱크탱크를 자처한 만큼 범친윤계 모임에 가깝다는 평가다. 안 의원은 당내 중도 세력과 초‧재선 쇄신파 의원들을 주축으로 한 의원포럼을 준비하고 있다. 이에 국민의힘 내부에서 중도보수 이념과 당 쇄신 의제를 공유하는 ‘안철수계’ 출범이 임박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본지 취재에 따르면 안 의원은 최근 당내 ‘쇄신파’로 분류되는 초선 그룹과 접촉면을 늘리는 등 독자 세력 구축에 나선 상황이다. 국민의힘 내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지난 15일 “안 의원이 최근 초선 쇄신파 그룹과 접선을 시도하고 있다”며 “초선 의원 60여 명 중에서도 쇄신파 핵심으로 분류되는 10여 명과 우선 스킨십을 가지며 스터디(모임) 출범 등을 상의했다고 들었다”고 했다.
이와 함께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핵심 의제로 띄우고 있는 ‘혁신위원회(혁신위)’도 사모임은 아니지만, 사실상 이 대표의 친위대로서 여당 세력구도의 한 축을 맡게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당 최고위와 혁신위가 친윤의 맞수 성격을 지닌 ‘이준석계’의 양대 축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친윤’ 정진석 의원은 최근 혁신위가 이 대표의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다며 견제한 바 있다.
169석의 국회 입법 지분을 보유한 민주당은 다양한 의원 모임들이 난립한 만큼, 여당에 비해 조직도가 더욱 복잡하다. 8월 전당대회를 앞둔 야당에선 이들 사모임이 당내 분열의 도화선이 될 공산이 크다는 분석이다.
민주당의 대표적 의원 모임으로는 이재명 의원의 선봉대로 지목되며 해산 논란이 일고 있는 ‘처럼회’를 비롯해 홍영표‧김종민‧전해철 의원 등 친문 그룹이 주축인 ‘민주주의 4.0 연구원’, 민주당 최대 의원 모임인 ‘더좋은미래(민주연구원)’, 친문‧친명과는 거리를 두고 있는 중립 조직인 ‘민평련(경제민주화와 평화통일을 위한 국민연대)’ 등이 있다. 이밖에 정세균(SK)계로 분류됐던 ‘광화문 포럼’과 이낙연(NY)계 의원 모임도 있었지만 내홍을 부추길 수 있다는 세간의 시선을 의식해 최근 자진 해산했다.
이들 모임이 두각을 나타내자, 정가에선 당권 경쟁의 서막의 올랐다는 관측이 파다하다. 아울러 총선 공천권이 걸린 전대를 앞두고 여야 사모임이 결성되고 계파 분쟁이 촉발, 도태된 모임은 해체되는 수순을 밟게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친윤 VS 비윤’, ‘친명 VS 친문’ 與野 각축전
국민의힘은 윤석열 대통령을, 민주당은 차기 대권주자인 이재명 의원을 구심점으로 새롭게 당내 주류 그룹을 형성한 한편, 이를 견제하는 반대파의 세도 만만찮다. 특히 민주당은 이재명 의원을 지지하는 세력인 ‘친명계’와 문재인 정부를 지지했던 ‘친문계’로 양분화 된 상태다.
윤석열 정부의 출범으로 여당이 된 국민의힘에선 지난 대선 정국을 혼돈으로 몰아넣었던 이준석 대표와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의 갈등 뇌관이 재차 터졌다. ‘민들레’가 당내 주류 계파로 정치 세력화할 것이란 반발과 혁신위는 사실상 이 대표의 사조직이라는 비판이 교차한 것은 국민의힘 친윤-비윤 간 파워게임이란 해석을 낳고 있다.
결국 이러한 내부 신경전의 본질은 2022년 총선 공천권으로 귀결된다는 게 정치권의 중평이다. 차기 국회의원 선거는 사실상 여야 정계개편 수술대다. 공천권을 쥔 당 대표로 누가 선출되느냐에 따라 당내 권력지형도 크게 뒤바뀔 수 있다.
이 대표는 지난 12일 취임 1주기 특별 기자간담회를 통해 “본인들(친윤계) 사고의 틀로 보면, 저 자식(이 대표 본인)이 공천을 독점하려고 또 수를 쓰네, 뭐 눈엔 뭐만 보인다는 말 그대로, 머릿속에 공천권 밖에 없는 사람은 항상 공천권 생각밖에 안 드는 거다”라고 친윤계를 직격하기도 했다.
아울러 이 대표 측은 단순 반박에 그치지 않고, 혁신위 핵심 과제인 ‘공천개혁’을 통해 대대적으로 젊은 피 수혈에 나서겠다고도 천명했다. 이는 사실상 이 대표를 중심으로 한 ‘2030 청년혁신파’가 집권당 신 주류로 등극한 친윤계와의 전면전을 선포한 셈이다. 이에 정치권에선 국민의힘이 공천권을 놓고 계파 간 전초전에 돌입한 게 아니냐는 말도 돈다.
일반적으로 집권 초기 여당은 대통령을 향한 구심력이 높아지며 단일대오를 갖추기 마련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정통 정치인 출신이 아니다 보니 상대적으로 당내 장악력이 공고하지 못하다는 평가다. 집권 초부터 표출된 여당 내 ‘친윤 대 비윤’ 계파 갈등이 그 방증이다.
굵직한 선거에서 모두 패한 ‘골리앗 야당’ 민주당의 내부 사정은 더욱 복잡하다. 3.9 대통령선거와 6.1 지방선거를 연전연패한 이후 민주당은 사실상 리더십 공백 상태에 놓였다. 이재명 의원의 당내 장악력과 대권주자로서 존재감이 실추되면서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은 이 의원이 전대 출마로 차기 당권을 쥐고 당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친명계와, 선거 패배 책임을 이 의원에게 돌리며 당권 수복에 나선 (범)친문계로 첨예하게 갈린 실정이다. 당장 오는 8월 전당대회가 예정된 만큼, 야당의 내부 반목은 더욱 극심하다. 이른바 ‘수박’ 논란에 강성 지지층의 문자폭탄, 대자보 테러 등 당내 곳곳에서 파열음이 터져 나오고 있다.
민주당 최대 모임이자 86그룹이 주축인 더좋은미래는 급기야 지난 15일 대선‧지선 패인이 이 의원에 있다는 ‘이재명 책임론’을 공식화하며 전대 불출마를 권고하기에 이르렀다.
뒤이어 그 이튿날인 지난 16일에는 더미래 소속 의원 41명이 공식 입장문을 내고 “이번 전당대회는 시대 변화를 반영한 가치와 철학, 당의 노선을 재정립하는 전기가 돼야 한다”며 “동시에 다르게 생각하고, 새로운 구상을 갖춘 세력과 인물이 부상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제3의 리더십을 배출해야 한다는 어젠다를 제시했다. 이는 민주당 대권‧당권주자인 이 의원을 향한 최후 통첩으로도 읽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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