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봉 대기자]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총을 잡지않겠다는 종교적 신념에 따라 군대 입영을 거부하는 것은 ‘정당한 병역거부 사유’에 해당하므로 형사처벌 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종교적 신념을 ‘소극적 양심실현의 자유’로 인정하고 이를 처벌하는 것은 양심자유에 과도한 제한이 되거나 본질적 내용에 대한 위협”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장을 포함한 13명의 대법관 중 9명이 무죄에 찬성했고, 4명만이 유죄 의견을 보였다. 이로써 ‘정당한 병역거부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유죄를 선고한 2004년 판결을 14년 3개월 만에 뒤집은 것이다. 양심적 병역거부가 헌법 정신에 맞을지 모르지만 다수의 혼란과 갈등을 유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남북이 대치하는 안보 상황과 병역 특혜에 민감한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그동안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을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사법부는 과거 일관되게 병역거부 처벌을 정당한 것으로 봤다. 대한민국 헌법 39조는 국민개병제의 원칙을 명시한다. 대법도 2004년 7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내세운 양심의 자유 등 권리가 병역의무와 같은 헌법적 법익보다 우월한 가치라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번 판결은 이 모든 것을 뒤집었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종교적 양심적 신념에 따라 병역 의무를 이행할 수 없다고 주장했고, 대법원은 이에 대해 헌법상 규정된 양심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 되거나 ‘양심의 자유의 본질적 내용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며 병역거부자의 손을 들어줬다. 헌법 제19조는 국민의 기본권으로서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20조는 종교의 자유를 명시하고 있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지난 6월 병역거부를 처벌하는 조항은 헌법에 위배되지 않지만, 대체복무제 규정이 없는 병역법 조항은 헌법에 불합치한다는 결정을 내리면서 2019년 말까지 병역법 개정을 판시했다. 이에 따라 대체복무제를 검토해온 국방부·법무부·병무청 합동실무추진단은 2020년 1월부터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소방서나 교도소 합숙근무로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인한 혼란은 적지 않다. 현재 대법원에서 심리 중인 종교·양심적 병역거부 사건 227건은 대부분 무죄 판결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유죄 확정판결을 받고 형을 집행중인 경우에도 가석방 요구할 것이다. 이미 처벌을 다 받은 이들의 구제 요구도 적지 않을 것이다.
안보와 병역의무는 경시될 수 없다. 종교적·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어떤 대안적 정책이 나오든 신성한 국방의 의무에 대한 본질을 깨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대체복무의 방식을 도입하더라도 국방의 의무에 나선 대한민국 청년들의 의욕과 의지를 꺾거나 침해하지는 말아야 한다.
핵심은 형평성과 공정성이다. 현역 복무 부담을 수행하는 대다수 젊은이 사이에서 특혜 시비가 일지 않아야 할 것이다. 정부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떳떳하게 국가에 기여하고, 병역특혜 논란이 일지 않도록 현역 복무와 형평성이 맞는 합리적인 대체복무 방안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