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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el Petrucciani - Solo Live (1999) <펀글로 짜깁기함>
1999년 1월 6일 프랑스는 단 한 사람, 당대 최고의 재즈피아니스트였던 미셀 페트루치아니의 별세를 애도했다.그는 국제적인 재즈 학교를 프랑스에 설립하는 꿈을 접은 채 36년간의 짧은 일생을 마쳤다. 그는 지난 20년간 가장 파워풀한 재즈 피아니스트였고 정력적인 빠른 템포의 연주, 뛰어난 기교로 청중들에게 지금까지 결코 경험해보지 못한 열정과 흥분을 선사했다. 또한 그가 남긴 열 두 장의 앨범은 유럽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쟈크 시락 프랑스 대통령은 장례식에서 열정적인 예술, 용기있고 음악의 천재였던 페트루치아니는 자신을 바치고 재즈를 부활시켰다고 찬사를 바치며 페트루치아니야말로 모든이의 표상이라 칭했다. 미셀 페트루치아니는 칼슘 부족으로 뼈가 골절되기 쉽고 성인 체격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골형성 부전증을 안고 태어났다. 다 자란 키와 몸무게가 1m 도 채 되지 않았고 약 29.5킬로그램 이었으며 일생 동안 수많은 뼈 골절을 당해야 했다. 부러지기 쉬운 뼈로 인해 피아노 의자에 앉은 채 무대 위로 옮겨져야 했고 페달을 사용할 수 없었기에 페달과 발을 연결하는 특수장치를 사용해야 했다. 그러나 이런 불쾌한 과정들은 연주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나의 열정입니다. 나는 가능한 한 기술적인 측면들은 우회하려고 했습니다. 나는 내 열정 속에 있는 빌 에반스(Bill Evans)로부터 내 연주를 끄집어 내려 했습니다. 기술적인 면들이 일정한 수준에 이르자 무엇인가를 더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는데 열정과 감성과 지성이 그것을 충족시켜 줬습니다." 나는 천재를 믿지 않는다. 나는 열심히 연주하는 것을 믿는다. 일찍부터 나는 내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는지 알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내 앞에는 해야할 일을 위한 시간이 더 많이 남아 있다. 결국 나는 75세가 되었을 때 내 임종의 책을 쓸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약속했던 수명의 절반도 채우지 못하고 1999년 1월 6일 맨하탄의 베스 이스라엘 병원에서 폐렴으로 사망했다. 그는 유가족으로 아내 어린다와 두 아들을 남겼다. 이어듣기입니다 다 들으실 수 없으신 분은 2번 트랙 베사메 무쵸를 함 들어보시져 |
첫댓글 감정이 풍부하고 아름다운 연주 이군요^^&~ 10 ,11번 곡은 아주 격정적이고 풍부한 열정이 가득 하군요 ,,감동적입니다,,,,,,,,,,,,
저도 아주 좋앗습니다.^^ (view plug in page 나오는거만 빼면요.^^) 잘 들어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