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열자'라는 사람이 있었답니다. 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답니다. 사람이 왜 악착스럽게 사는가? 악착스럽게 사는 사람은 4가지를 얻으려고 그렇게 악착스럽게 산다. 첫 번째, 장생, 즉 오래 살려고 악착스럽게 산다. 생명을 지키려고. 용봉탕, 토룡탕, 뱀탕, 몸에 좋다는 것은 다 먹으면서, 생명을 지키고 오래 살려고 악착스럽게 산다. 두 번째, 벼슬을 얻기 위해서, 높은 지위를 얻기 위해서 악착스럽게 산다. 판사, 검사, 변호사, 의사, 국회의원, 장관, 대통령, 사장, 등등 높은 사람 되기 위해서 악착스럽게 산다. 세 번째, 명예를 얻기 위해서, 그리고 네 번째, 재화 곧 돈을 벌기 위해서, 돈을 모으기 위해서 악착스럽게 산다.
자, 그럼, 이렇게 악착스럽게 사는 사람은 그러면 결국 어떤 사람이 되는가? 무서워서 벌벌 떠는 사람이 된다. 무엇을 무서워하는 사람이 되는가? 2가지를 무서워한다. 첫째, 귀신을 무서워한다. 왜 그런가? 자기를 언제 데려갈 지 모르니까 무서워한다. 악착스럽게 오래 살려고 바둥바둥 거리는데, 귀신이 언제 와서 데려갈 지 모르니까, 귀신이 무서워서 늘 벌벌 떨면서 산다. 여기서 말하는 귀신이란, 곧 하느님을 말합니다. 즉, 하느님을 무서워하는 사람이 된다. 잘 묵상해 보세요. 하느님을 그리워하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아, 하느님을 무서워하는 하는 사람이 된다고 말합니다. 두 번째, 사람을 무서워한다. 자신의 지위, 명예, 돈, 이것을 악착같이 지키려고 살기 때문에, 언제 그것을 빼앗길지 모르니까, 사람이 무서워서 벌벌 떨면서 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자는 말합니다. 이렇게 4가지를 얻으려고 악착같이 사는 사람은 바로 둔자이다. 즉, 어리석은 사람이다. 이와는 반대로, 하늘의 이치에 맞게, 하늘의 이치에 따라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사람을 순자라고 부릅니다. 우리에게 순자로 살아가라는 것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노심초사하면서 하루 하루를 살아갑니다. 걱정과 두려움 속에서 살아갑니다. 어떤 신학자가 성경에 두려워하지 마라, 걱정하지 마라, 라는 말씀이 도대체 몇 번이나 나오는지 궁금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하나 세어보았답니다. 그랬더니 몇 번이 나올까요? 365번이 나온대요. 우리는 셀 필요가 없어요. 이렇게 다 알아서 세어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라. 두려워하지 마라, 라는 말이 365번이 나온다는 것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줍니다. 우리가 얼마나 걱정과 두려움을 달고 살면, 하느님께서 매일 매일 우리에게 걱정하지 마라, 두려워하지 마라하고 말씀을 하시겠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하느님하고 유일하게 맞짱을 뜰 수 있는 것이 돈이기 때문입니다.
제사 때에 절하고, 어디 신전에 가서 절하고, 제사 음식 먹으면 안된다고 말하는 일부 사람들이 많이 있지요? 그것은 우상숭배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이 우상숭배가 아니에요. 그럼 진정한 우상숭배란 무엇일까요? 하느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 하느님은 안계시고, 다른 무엇이 그 하느님의 자리에 있으면 그것이 우상숭배입니다. 그리고 그 하느님의 자리에 가장 많이 가 서 있는 놈이 누구냐? 바로 돈입니다. 돈이라 놈은 하느님하고 맞짱(?)을 뜰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거듭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걱정하지 마라고, 두려워하지 마라고 말씀하십니다. 걱정하지 마라.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들풀과 하늘의 새들도 하느님께서 잘 돌보시지 않느냐? 너희는 그 꽃보다도 새들보다도 하느님께 훨씬 귀하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얼마나 더 잘 보살펴 주시겠느냐? 그러니 그런 것들보다도 가장 먼저, 가장 우선적으로,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하느님을 내 인생의 첫 번째 자리에 모시고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은 너무 불쌍합니다. 우리의 삶을 한번 되돌아 보세요. 하느님을 우리 삶에서 가장 첫 번째 자리에 모시고 살아간 적이 얼마나 있습니다. 하느님 불쌍합니다. 하느님은 늘 두 번째, 세 번 째, 심지어는 맨 꼴등 자리, 마지막 보루, 마지막 보험의 자리에 가 계시는 적이 거의 대부분일 겁니다.
하느님을 내 인생의 첫 번째 자리에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이 순자요 지자(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고 엉뚱한 것을 하느님의 자리에 모시고, 그것을 쫓아 사는 사람이 둔자,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첫 번째 자리에 모시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두려움의 반대말이 무엇일까요? 두려움의 반대말은 믿음입니다. 마찬가지로 걱정의 반대말도 믿음입니다. 우리가 오늘 미사 봉헌하면서 믿음을 청해야 합니다.
오늘 제1독서에 말씀하고 있는 바와 같이, 나를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설령 나를 낳아 기른 어미가 나를 잊는다고 하더라도, 하느님만은 절대로 나를 잊지 않으신다는 믿음을 청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한시도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시며, 내 인생길의 동반자가 되어, 나에게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시는 분이라는 믿음을 청해야 합니다.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해 사는 둔자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서 나와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하느님을 위해서 시간을 쓰고, 하느님을 위해서 봉사하며, 하느님과 함께 인생 길을 걸어가는 품위있는 사람, 곧 순자요, 지자가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