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령의 대지도론 산책] <2> 무모한 도전-대반야경을 읽겠다고?
“겁먹지 마세요, 지금부터 대장경 산책이에요”
용수보살.구마라집 그분들마저도
어리벙벙…탐험가 심경이었을 것
큰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다소 무모한 도전이라고 불려도 좋았습니다.
어느 날 <대지도론>을 직접 펼쳐서 읽기로 결심하였거든요.
그런데 앞서도 말씀드렸다시피 대지도론은 용수라는 거장이
그저 자기 혼자 이런 저런 생각들을 논리적으로 적어 내려갔다기보다는
대반야바라밀다경의 구절과 문장과 사상에 대해 요리조리 설명하고,
혼자서 묻고 답하며 풀이한 책입니다.
대지도론을 접고 <대반야바라밀다경>을 꺼내들었습니다.
집에 가지고 있는 <대정신수대장경> 제5권부터가 반야부경전이기에 그 경을 펼쳐들었지요.
좁쌀만한 한자 18자(字)가 빽빽하게 29행(行)으로 적혀 내려갔는데
그게 상중하의 3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한 페이지 당 약 1500자가 훌쩍 넘는 한자가
대반야바라밀다경의 첫 페이지에서 배시시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대장경이야 원래 그런 것이려니…. 이렇게 생각하고 그저 눈으로 줄줄 훑어가면서
한 페이지씩 넘겨가는 데 도대체 대반야바라밀다경의 마침표를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1074페이지…. 결국 신수대장경 한 권을 끝까지 다 넘겼습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 페이지 마지막 줄에는 “다음 권에 계속”이라는 뉘앙스만 풍길 뿐이었습니다.
대정신수대장경 제6권 1073페이지를 모두 열어보았습니다.
제7권 1110페이지를 휘리릭 넘겼습니다. 간신히 끝!
신수대장경 세 권에 걸쳐 빽빽하게 적혀진 대반야바라밀다경은 총 600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물론, 600권이라고 해서 오늘날의 단행본 600권을 생각하면 안 됩니다.
종이가 없던 시절 죽간을 묶어서 글자를 쓰거나 새겨 한 묶음이 되면
그걸 제1권, 제2권…이라고 했으니, 경이 적힌 죽간 한 묶음을 의미한다고 보아야합니다.
그렇다면 이 어마어마한 대반야바라밀다경은 대체 무엇을 이야기하는 경인가 하면,
두말할 것도 없이 ‘반야’,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반야바라밀다’가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경입니다.
그것도 되풀이하고 또 되풀이해서, 나중에는 진력이 날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이렇게라도 되풀이해서 반야가 무엇인지를 설명해서
붓다의 제자들로 하여금 정말 털끝만큼이라도 의혹이 남아있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아무튼 이 어마어마한 대반야바라밀다경을 해석하고 풀이하고 논한 것이 대지도론입니다.
그러니 앞서 이 논을 아마존의 밀림에 비유하기도 했지만
사실, 대반야바라밀다경(줄여서 대반야경)을 앞에 두고 풀이하고 논하겠다고
작정한 용수보살이야말로 아마존의 밀림을 대면하고
어디서부터 첫걸음을 떼여야 할지 몰라 어리벙벙한 탐험가의 심경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대작을 풀이하고 중국사람들을 위해서 친절한 설명을 붙인
구마라집의 심경 또한 예외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대지도론은 용수 한 사람만의 저술이 아니라 시대를 두고
여러 사람의 작업이 덧붙여졌다는 견해도 유력하고,
구마라집이 한문으로 번역한 단순번역자가 아니라 지금의 체제로 완성했다는 견해도 유력합니다.
구마라집은 “진인(秦人)이 간결한 것을 좋아해서 줄였으며,
만약 대지도론을 완벽하게 다 번역했더라면 1000 여권이 될 것이다. …
다 냈다면 지금의 10배가 될 것이다”라고 소회를 밝히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아주 간단하게 대지도론을 정의합니다. -
“불교의 백과사전이다”라고! 반야바라밀다를 설명하는
대반야경의 구절과 문장을 설명하고 논하려니 대지도론은 시시콜콜
온갖 불교이야기를 다 끄집어내야만 했고,
그 덕분에 우리는 ‘반야바라밀다’라는 단어 앞에서 “헉!”하고 겁먹기 보다는
팔만대장경 속 이야기 숲을 산책할 수가 있습니다.
2012년 2월15일
이미령 동국역경원 역경위원ㆍ책 칼럼니스트
불교신문
[출처] 관문의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