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 '마라케시(Marrakech)'에서의 하룻밤
멍하니 서 있던 인야의 눈에 띈 건, 세관 안에 서서 뭔가를 하는 사람 몇이었는데... 환전하는 모습 같았다.
'그래, 이 안은 그래도 안전한 곳일 테니... 환전부터 해 두자! 그건,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니까.' 하면서 그 쪽으로 갔다.
일단, 어제 바르셀로나에서 찾아 두었던 600유로 중 100유로만 바꾸기로 했다.
그랬더니 1,400 '디르햄(DH)'을 주는데, 그 돈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보니...
'이걸, 어떻게 써야 할지......' 다시 막막해지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현실이었다. 어떻게든 뭔가 헤쳐나가야만 하니까.
공항 대기실로 나간 인야는, 우선 '안내소(i)'를 찾았고, 호텔 안내를 부탁했다.
컴퓨터 한 대를 앞에 둔 뚱뚱한 직원이,
"어떤 호텔을 원하는데요?" 하고 영어로 물어,
"글쎄요, 중간급?" 하자,
하루에 약 30유로 정도의 호텔을 알려주었다.
아무리 첫날이라지만, 호텔 가격은 비싼 것 같았다.
"그럼, 조금 낮은 건요?" 하고 물으니,
다른 호텔 하나를 가르쳐주더니, 거기로 찾아가라고 했다.
그래서 이름과 위치를 물어, 그가 조그만 쪽지에 적어 주어... 인야는 마라케시 공항 밖으로 나왔다.
다시 막막해졌지만,
'내가 이런 여행이 한두 번도 아니고, 여기라고 뭐... 대단히 특별한 곳은 아니겠지?' 하면서 보니, 경찰이 있었다.
그 쪽으로 다가가,
"어딜 가야 '메디나'까지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지요?" 하고 묻자, 택시 뒤에 있는 버스를 가리켜 주었다.
그래서 버스를 타러 가는데, 여러 명의 택시 기사들이 부르고 난리를 쳤지만... 우선 말이 통하지 않으니, 인야는...
"버스! 버스!" 하고 그저 '버스'만 외치며(나는 버스를 타니 택시는 필요없다), 결국 경찰이 가르쳐준 버스에 올랐다.
왕복은 50 디르햄, 편도는 30이라고 하는 것 같아... 편도 요금만 지불하면서 버스에 올랐다.
그렇게 버스 좌석에 앉게 되자, 그제야 그 부근의 집들과 건물들이 보였다.
'야, 꼭 멕시코 같네!'
그랬다.
인야에게는, 그 주변의 색감 자체가... 바랜 자주색에 잿빛, 건조하고 더운 날씨까지... 정말 멕시코에 내릴 때를 떠올리게 했던 것이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시내로 진입하는데, 도로 사정도, 정비된 모습도,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시민들의 모습마저도... 확실히 조금 못사는 나라라는 게 느껴져 왔다.
그거야 뭐, 그리 중요할까만(사람들이 행복하면 되는 거니까)... 그래도 스페인에서 바로 바뀐 풍경은, 실제가 그랬다.
그저 거리의 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들(아무래도 더우니까 축 늘어져 있는 모습들), 가끔씩 서구 사람들로 보이는 관광객들의 모습이 뒤섞인 도심...
버스 기사의 친절한 안내로 도심에 내렸는데, 인야가 짐을 들고 내리자... 벌써부터 몇 명의 삐끼(?)들이 들어붙기 시작했다.
인야는 호텔을 찾아가야 했기에, 바짝 긴장한 상태로도 그들을 상대할 수밖에 없었는데...
웬 젊은 녀석 하나가 친절을 자청하고 나서기에, 언뜻 인상도 선해 보여 따라갔는데... 호텔에 도착하자, 결국 그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런 걸 예상하긴 했지만, 기분 좋을 리는 없었는데...
"얼마를 줘야 하는데?" 하고 영어로 묻자,
"100 디르햄이라도 괜찮으니, 알아서 주세요."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잠깐 돈 계산을 해 보니(평소의 인야는 돈 계산에 몹시 서투르다), 거의 8유로에 가까웠다.
'뭐라고? 길 좀 안내했다고, 그 돈을 요구해? 1유로만 줘도 충분할 것 같은데...... 좌우간 여긴 도둑놈들의 소굴이 분명해.' 하긴 했지만, '허긴, 어디 이런 게 여기만 그럴까? 그리고 내가 당한 게, 어디 한두 번인가?' 하면서,
그가 요구했던 100 디르햄을 주고 말았다.
그렇게 도착한 호텔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독방을 쓰려면 250 디르햄을 달라고 했는데, 그 정도면 그런대로 괜찮을 것 같았다.
호텔에 짐을 풀기 전에 일단 인터넷부터 연결해 놓고, 샤워를 하고 나니 몸이 풀렸다.
스페인에서 막바지 며칠을 바쁜 일정에 쫓겼으면서도 아무 이상 없이 견딘 건 다행이었다. 그런데 모로코에 도착하자마자, 아니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그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와, 그 안에서 얼마나 졸았는지 몰랐다.
샤워를 한 뒤 잠깐 누워 있는데, 좁은 골목으로 오토바이가 얼마나 시끄럽게 다니는지... 게다가 어디선가 노래를 틀어놓은 것도 모자라 북소리까지 울려댔다.
시끄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하도 답답하고 시끄러워서, 인야는 밖에 한 번 나가보기로 했다.
아래층 프런트에 가니 오전에 일하던 친구가 아닌 다른 젊은이로 바뀌어 있었다. 그는 불어와 영어만 한다고 하더니, 밖에 있던 스페인어 하는 사람을 불러 주었다.
그래서 인야는 시원한 물 한 병부터 산 뒤, 그 사람에게 여기 상황을 조금 물어보았다.
과일은 어디서 사는지, 시장에 나가는 게 위험하지는 않은지 등등.
그는 인야를 광장까지 데리고 가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그렇게 광장 한 바퀴를 도는데, 이 근방에 시장이 있어서... 볼거리 먹을거리는 풍성해 보였는데, 오토바이며 자전거들이 휙휙 지나가는 바람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자세히 보니, 아닌 게 아니라 코브라를 놓고 나팔(피리)을 부는 사람도 보이고... 점을 보는 여자들도 보이고, 완전 난장이었다.
그게 봐야만 할 볼거리일 수도 있었다.
일단 식당 쪽에서는 호객행위도 했고, 그 안에서 식사를 하는 관광객들도 보이고... 많은 사람들이 정신없이 얽히고설킨 모습이었다.
그런데 햇살이 어찌나 뜨겁던지, 그렇잖아도 눈이 좋지 않던 인야는...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아닌 게 아니라 조금 슬픈 기분도 들었다.
'왜 사람들은 이렇게 아우성을 치며 살아야 하는지……'
광장 반 바퀴 도는 것으로 일단 눈인사를 한 뒤, 인야는 다시 과일점으로 가서 과일만 사 들고... 돌아오기로 했다.
세레사가 1kg에 25 디르햄이니, 상당히 싼 편이었다. 옆의 살구를 물으니, 그건 10 디르햄이라는데...
그렇다면 1kg에 1유로라는 말이니, 싸도 너무 싼 편이었다.
그렇게 두 과일을 1kg씩 샀더니, 양이 많아서(인야는 늘 많이 사는 편으로, 그 자리에서... '반kg만 살 걸......' 하는 후회가 되었다)... 다소 부담스럽기까지 했다.
호텔 방에 돌아오자마자 세레사 반절쯤을 수돗물에 씻어 먹어 보니, 새콤한 게 맛이 제법 들어 있었다.
살구도 먹어보니 그런대로 맛이 괜찮았다.
아무래도 여기는 열대지방이라 햇볕이 좋다 보니 과일이 맛있을 터였다.
수박도 크고 탐스러웠지만, 살 수가 없었다. 혼자서 그 큰 걸 먹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보관할 데가 없기도 했지만.
그런데 과일을 먹으면서야, 인야는 비로소 조금 편안해지면서 안정감을 찾을 수 있었다.
'근데 왜, 과일을 먹으면서 안정감을 찾는다지?'
본인도 의아했지만, 그런 느낌이었다.
그리곤 얼마나 잤는지 모른다.
자는 중에도 계속 도시의 소음이 들려왔지만(그 소리는 지겹도록 어떤 진부함을 주었다), 모처럼 풀린 긴장에 계속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렇게 겨우 일어나 보니 컴퓨터 시간상으론 자정이 가까워졌나 본데,
'여기를 자러 왔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놈의 북소리와 이들의 노랫소리는 여전히 그치지 않았다.
일어나 저녁 대신으로(저녁을 먹지 않았는데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아마 세레사와 살구 때문일 터였다) 또다시 남아 있던 과일의 일부를 먹었다.
낮에, 아침에 까르멘이 싸 줬던 보까딜료를 먹었기 때문에 굳이 식사를 하지 않는다 해도 이상은 없을 터였다.
요 며칠 하도 잘 먹어서 그런지, 배가 고프지도 않았다.
며칠 뒤, 인야의 까페에는 이런 글이 올라왔다.
사실 바르셀로나에서 모로코 항공권을 사는 도중,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른 채 비행기표를 알아보는데... '마라케시(Marrakech)'라는 도시가 눈에 띄었습니다.
알고 보니, 여기 모로코의 수도는 '라바트'고, 영화로 유명한 '까사블랑카'도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는데요, 나라가 크기 때문에, 여기저기에 분산되어 큰 도시들이 있는 것 같더라구요. 북쪽에는 '땅헤르'라는 곳도 있고...
처음엔 스페인에서 배를 타고 14km의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볼까도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무거운 짐을 들고, 가뜩이나 동양 관광객을 노리는(?) 놈들이 많은 곳을 돌아다니기가 겁이 나서... 그걸 피하려다 보니, '마라케시'가 걸렸던 것인데......
여기도 알고 보니, 여행서적인 '죽기 전에 꼭 가 봐야 할 100곳'에 포함된 곳이라고 할 정도로 유명한가 봅니다. 그만큼 이 주변에 관광 명소가 많다는 뜻이기도 할 터였습니다.
그렇지만 나에겐 그런 건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지금, 내가 관광할 사람입니까? 어떻게든 빨리 안정된 공간을 마련해서(?), 내 일을 해야만 하는 게 우선인지라...
그런 상황에서 비행기에 올라, 마라케시로 향했는데... 마라케시 공항은 썰렁하고 어설펐습니다.
마치 내가 옛날에 멕시코에 도착하는 기분이 그대로 떠오르드라구요.
버스에서 바라본 도심의 색깔도 그렇고, 내려서 처음 느껴지는 냄새도... 어쩐지 멕시코 느낌이 나드라구요.
아메리카 대륙과 아프리카는 아주 먼 거리인데도요......
그래도 관광객들은 많아 보였는데, 나는 그중 한 중급 호텔을 소개받아... 관광지구의 호텔에 묵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호텔에 온 것까지는 아무 이상이 없자, 나는 그동안 스페인에서 정신없이 며칠을 보냈던 것에 따른 긴장과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오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샤워를 하고 누운 게, 잠이 들어... 눈이 떠졌는데도, 계속 잠에 이끌려... 그저 잠만 자고 일어났을 뿐입니다.
그리고 밖에 나가 보니, 열대(사막)의 열기가 확! 느껴지던데... 여기 중앙 광장은, 1년 내내 왁자지껄 축제 분위기라고 합니다.
낮에야 그렇다고 해도, 밤까지 이런저런 소리와 음악 그리고 차량들의 소음까지... 별의별 사람들과 일들이 벌어지고, 자전거 오토바이 차들이 사람과 뒤엉키기도 하는 등, 너무나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곳으로 보였습니다.
아무 정신이 없어, 나는 과일 파는 상점에 가서... '세레사(체리)'와 '살구'를 1kg씩 사 들고 돌아왔답니다.
근데요, 멍청하게 1kg씩을 샀더니... 그 양이 얼마나 많은지, 그걸로 대충 저녁을 때우기까지 했답니다.
세레사는 맛이 좋았고, 살구도 이제 맛이 막 들어가는지... 그것 역시 맛있드라구요.
낮에, 바르셀로나를 떠나올 때 까르멘이 싸 줬던 보까딜료를 먹기도 했지만, 요 며칠 스페인에서 하도 잘 먹어서 그런지... 배가 고프지도 않드라구요.
근데, 아무튼... 무엇보다도 과일값이 싸서, 여기는 정말 부담없이 과일을 사 먹을 수 있겠드라구요.
정말, 난생 처음 와 보는... 아프리카이자 무슬림 국가인 모로코에 와서, 아무것도 모르는(아무 정보도 없이..) 상태에서, 일단 여기 호텔에 머물면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연구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제, 여기서도 집을 얻어야 하는 일이 날 기다리고 있고, 집을 얻게 되면 또 몇 달(?) 지내게 될 텐데...
일단은 '또 하나의 모험(?)'이라고 생각하며, 지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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