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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2__눈 건강. 우남 이승만과 윌슨 대통령. 1933년 제네바 국제연맹 회의--- 뚱보강사 이기성 Lee Ki-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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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2__눈 건강. 우남 이승만과 윌슨 대통령. 1933년 제네바 국제연맹 회의--- 뚱보강사 이기성 Lee Ki-sung
이기성
2023.02.07. 10:53조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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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2__눈 건강. 우남 이승만과 윌슨 대통령. 1933년 제네바 국제연맹 회의--- 뚱보강사 이기성 Lee Ki-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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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2__눈 건강. 우남 이승만과 윌슨 대통령. 1933년 제네바 국제연맹 회의--- 뚱보강사 이기성 Lee Ki-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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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2__ 눈 건강. 이승만과 윌슨. 1933년 제네바 국제연맹 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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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2__눈 건강. 우남 이승만과 윌슨 대통령. 1933년 제네바 국제연맹 회의---8ok
뚱보강사 이기성
662__ 눈 건강. 이승만과 윌슨. 1933년 제네바 국제연맹 회의
'컴퓨터시각증후군'... 디지털시대에 혹사당하는 눈을 보호할 방법과 식품들이 있다. 혹사당하는 눈... 눈 건강 유지법, 그리고 좋은 식품... 녹황색 채소, 오메가-3 생선 등... [코메디닷컴] 권순일 기자가 보도했다(2023년 1월 29일).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각종 전자기기의 확산으로 현대인의 눈은 지하철, 버스 안에서도 쉴 틈이 없다. 전문가들은 "미국에서는 업무와 관련된 안과 질환으로 매년 수십억 원의 노동 생산비가 낭비되고 있다"며 "대부분의 눈 손상은 건설이나 제조업 분야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에는 전자기기에 의한 눈 건강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고 말한다.
--- '컴퓨터시각증후군'... 눈의 피로, 시력 저하, 두통, 눈이 뻑뻑하고 따가운 증상 등, 전자기기를 장기간 사용했을 때 나타나는 눈의 불편함을 통틀어서 지칭한다. '컴퓨터시각증후군'은 모니터를 집중해서 보기 때문에 보통 1분에 20, 30회 정도하는 눈 깜박임의 횟수가 40% 정도 줄어들기 때문에 생긴다. 미국 건강·의료 매체 '웹 엠디' 등의 자료를 토대로 디지털시대 눈 건강법과 눈 건강에 좋은 식품에 대해 알아본다.
--- 디지털시대 눈 건강법... ① 20분 모니터를 본 뒤, 20초는 휴식시간을 갖고 6, 7m 먼 곳 바라보기... ② 이동식 기기들의 모니터 글자 크기를 키워, 눈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멀찍이 보기... ③ 너무 밝지도 어둡지도 않게 모니터 화면 밝기 조정... ④ 손전화나 이동식 기기 화면을 이동 중에 볼 때, 머리 바로 뒤나 앞에서 빛이 직접적으로 비치면 눈이 부시다. 빛이 직접적으로 눈에 조사되지 않도록 빛의 방향에 신경 쓰기... ⑤ 컴퓨터나 이동식 기기 모니터를 눈높이보다 약간 아래 두기...
⑥ 눈 건강에 좋은 식품... 루테인(Lutein) 성분이 많이 있는 녹색과 황색 채소. 제아잔틴(Zeaxanthin, 지아잔틴) 성분이 많은 밝은 색깔의 과일과 채소. 오메가-3 지방산이 많은 생선. 6-1: 비타민A가 풍부한 식품... 6-2: 녹황색 채소에는 눈 망막의 피해를 막는 루테인 성분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 케일, 브로콜리, 시금치 등이 이에 속한다. 6-3: 밝은 색 과일, 채소. 루테인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것으로 여겨지는 제아잔틴이 많은 음식으로, 옥수수, 귤, 오렌지 같은 밝은 색깔의 과일과 채소가 이에 해당한다. 6-4: 오메가-3 지방산.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한 연어, 삼치, 참치, 고등어 등의 생선은 노인성 황반변성 같은 눈 질병을 막아 주고, 병의 진행 속도를 늦춘다. 6-5: 비타민A. 비타민A가 풍부한 당근과 달걀은 눈에 좋은 건강을 제공한다. 전문가들은 "아무 생각 없이 먹는 음식이 시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비타민A, C, E, 루테인 등이 많은 균형 잡힌 음식을 먹으면, 실명의 원인이 되는 질병을 줄이고 진행을 늦출 수 있다"고 말한다.
미국 대통령 까지 한국을 괄세할 수가
한민호 공자학원실체알리기운동본부 대표가 글을 올렸다. 국부 이승만대통령 기록관... 출처는 Sook Koo님의 글... 🔵 우남 이승만(1875~1965)- 방황의 계절... 우드로 윌슨(1856~1924) 미국 대통령은 예상 외로 이승만을 반갑게 맞이하였다... 윌슨은 이승만이 프린스턴 대학에 장학생으로 있었을 때부터 관심을 갖고 있었던 학생이었다는 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닥터 리..." 그는 이승만의 손을 덥석 잡으며 두 눈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이승만도 윌슨이 지난날 프린스턴 대학의 은사였으며 미국의 대통령(제28대, 재임:1913∼1921)이라는 것을 잠깐 잊은 듯, 윌슨의 눈을 노려보고 있었다...
"닥터 리... 먼저는 정말 미안했소." "... ... ..." 이승만은 윌슨의 말을 듣기 전에 먼저 화두를 꺼내었다... “저는 우리 국토를 일본이라는 해적에게 빼앗긴 나라의 국민입니다.” “아무리 우리나라가 힘이 없어서 나라를 빼앗겼다지만, 미국 대통령까지 그렇게 한국을 괄세할 수가 있습니까?”... 우리 고종 황제도 그동안 미국에 대하여서는 매우 우호적으로 대하여 오지 않았습니까? “그 예로 우리 임금께서는 그동안(1883년, 고종 21)에 미국에 보빙사(푸트 미국공사의 조선 부임에 답례하여 미국에 파견한 사절단)를 보내는 등, 얼마나 미국을 믿었습니까?”... 저를 방금 애국자라 하셨는데, 미국에 건너 온 우리 동포들은 애국자가 아닌 사람은 없습니다.
이승만과 윌슨 대통령
저는 애국자라는 말을 듣기 위하여, 대통령을 찾아뵈려 한 것이 아닙니다. 내 나라를 찾아서, 나도 남의 나라처럼 버젓이 자유롭게 살아가는 나라를 만들어 보자는 것뿐입니다... 그런 연고로, 애국만 가지고 나라를 건질 수 없기 때문에 각하를 뵙고자 한 것입니다. “저는 대통령께 단 한마디로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미국이 한국을 도와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조선 왕국이 일찌기 청나라의 그늘에서 벗어나, 개화의 눈을 일찍 눈을 떴더라면 정말 이곳에 까지 와서, 미국 대통령께 구차하게 사정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일전에 윌슨 대통령 각하를 꼭 뵙자고 한 것은, 파리 강화 회의에서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는 발언을 해 주셨으면 해서입니다... 만일 그날 저의 주장만 파리 강화회의에서 반영시켜 주셨다면, 제가 얼마나 감격했었겠습니까? 정말 원망스럽습니다... 이승만은 거침없이 세계무대를 좌지우지하는 미국 대통령이라는 것도 잊은 채, 말을 이어 나갔다... 윌슨도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닥터 리, 정말 파리로 떠나 던 날, 나도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하고 한숨 아닌 깊은 숨을 내쉰다... 이승만은 다시 말을 꺼냈다... “일본이 정말 동양의 평화를 원하는 나라라고 보십니까?”... “닥터 리... 내가 한국을 전혀 모른 척 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시다면 파리 강화회의 참석하러 가실 때, 나를 피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 ... ...” 윌슨이 대꾸를 안 한다... 윌슨 대통령은 무엇인가 분명히 이승만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구석이 있는 것을 느꼈다... “닥터 리는 처음 미국 땅에 왔을 때, 고종황제의 밀사로 오셨었다 했었지요?”... “그렇습니다만”... 그런데 프린스턴 대학 시절에, 그것을 왜 나에게 밝히지 않았소?... 그 당시는 각하가 대학 총장이기 때문에, 밝힐 이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닥터 리를 만나는 것을 망설였소...” 내가 파리회의에 나가기 직전, 우리 정보기관에 닥터 리에 대하여 접견 필요성을 알아보라고 했었는데... 닥터 리를 만나 볼 필요가 없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제가 우리 고종황제의 밀사라서 그렇습니까?”... “지구상에서 없어진 나라의 밀사 자격이라 그렇다는 것입니까?”... “보고서에 의하면, 닥터 리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밀사를 빌미로, 조선왕국의 왕족이라는 것을 내 세워 일본으로 부터 독립하여 보려는 사람임으로, 미국의 국익에 반하는 위험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 대답에 이승만은 더욱 긴장한다... “미국 정보국이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얼마나 안다고 그런 허무맹랑한 보고를 한답디까?” “내가 왕족이라 조선 왕정을 복고하기 위하여 대통령을 만나려 한다고요? 그런 중상모략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면 닥터 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까?”... “대통령께서는 나 이승만이라는 한국 사람을 잘 모르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나는 미국에 와서 민주시민으로서 프린스턴, 하바드 대학을 두루 섭렵한 사람입니다... 왕정복고라니요? 나는 그런 생각은 꿈에도 꾸어 본적이 없습니다... 나는 장차 우리 한국 땅에 ‘민주주의 뿌리를 내려’ 미국처럼 자유롭고 복된 나라를 세워 보자고 하는 것뿐입니다...
그런 사람인데, 각하는 내가 고리타분한 왕조국가를 복원하려는 한낱 사리사욕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으로 의심하셨습니까?... “닥터 리는 우리 미국 정보기관의 보고를 모르고, 발언을 하시는데...” “한국 문제만큼은 정확한 정보 보고를 받고 있습니다.” “... ... ...” 이승만은 분명 누구인가 자기를 모략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다. 일본공사관의 장난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아도, 윌슨은 자기가 1918년에 발언한 민족 자결주의(‘Principle of National Self-determination’) 주장에 촉각을 세우고 있는 일본을 자극하지 말아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때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을 면회 허락을 하셨습니까? 납득 할 수 없습니다”... “그런 말이 나올 줄 알았습니다.”...
일본의 내막, Japan Inside Out
사실 나도 파리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생각해보니, 약소국가를 대변한다는 ‘민족자결주의을 주장하던 내가’ 결국은 강대국만의 도움을 주는 발언만 하고 온 결과가 되어서, 내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말바꾸기꾼이 되어 버린 내가 왜 이렇게 되었나 반성한 것이지요.”... 이상하게도 돌아오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사람이 ‘닥터 리’였습니다. 얼마 전 닥터 리가 쓴 <<일본의 내막, Japan Inside Out>>이라는 책 생각이 났기 때문입니다.
그 책에서, 닥터 리가 일본은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영토권을 인정하는 대신, 한국 문제를 거론하지 말아 달라는 문구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내가 그들의 농간에 넘어간 것이, 그들에게 당한 사람 같아서, ‘일본을 과연 믿어야 하나’하는 생각을 하던 중에... 마침 닥터 리 요청이 있어서, 면회를 허락한 것입니다... 이승만은 윌슨 대통령의 해명을 듣고 나니, 더욱 분통이 터졌다. “사실은 대통령께서 파리로 떠나시던 날, 내가 할 말이 많이 있었습니다만, 정말 섭섭합니다.”... 이승만은 더 이상 말해 보았자, 소귀에 경 읽기나 다름없다는 것을 알았다... 힘이 없는 민족은 어디 가든지, 말 발이 서지 않는 비애를 맛보는 것이다...
일본의 한국 지배를 정당화 시킨 윌슨 대통령과 대화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이승만은 이제 미국보다도 세계 각국에 직접, 한국의 억울함을 알리는 것으로 방향을 바꾸기로 작정하였다... 이승만은 그 길로 발걸음을 돌려, 마침 미국 뉴욕에서 체코슬로바키아가 주축이 되어 열리고 있는 ‘피압박 민족 약소 국가 대표회의’에 참석하였다... 이승만은 다시 서재필을 찾았다... 그는 미국도 믿을 수 없다고 토로하고, 이제는 직접 발 벗고 나서서 여러 나라에 한국의 사정을 알리고, 강대국을 압박하는 수순 밖에 없다며...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독립 만세 운동을 적극 세계에 알려, 일본을 외교적으로 고립시켜서 한국의 독립을 유도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뚱보강사 컬럼 ‘#660__ 백년전쟁. 미주 3·1운동 필라델피아 한인대회’에서,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미국의 이승만 참석이 좌절되자, 상하이의 김규식이 참석했고... 한국이 파리에서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을 강조하면서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외교 활동을 가동한 무대는 1919년 파리강화회의였다... 이승만은 서재필에게 세계 각국의 한국의 독립운동을 알리기 전에, 우리 교포들부터 단결을 시킨 다음에, 다음 단계로 들어 갈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드디어 그는 1919년 9월 19일 미국내 있는 한국인 교포들을 상대로 전 한인회의를 조직하였다... 필라델피아를 필두로, 한인 동포들만의 대회를 열리도록 주선 한 것이다. 이 자리에서 이승만과 서재필은 열변을 토하였다...
미국 교포들은 감동하였다... 이역만리 미국 땅에서 처음 맛보는 통쾌한 발언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승만은 구라파와 미국 등 열강은 일본에 강점된 한국을 ‘즉시 독립국으로 인정하라’는 결의문을 작성하여, 각국 원수들에게 보내기로 결의하였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이렇게 미국 한인들이 ‘한풀이 집회’를 열고 있는 동안에도, 일본의 한국 지배는 더욱 강화되어 가고 있었고, 이승만의 이름은 교포사회에서 본격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국내에서도 일본 경찰의 심한 감시 속에서도 비밀히 서울에서 13도 애국자들이 모여서 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미국에 있는 동포들 주축으로 하는 ‘망명정부’를 만들도록 하자는 안이 가결되어, 본국으로부터 전 한인회 앞으로 보내 왔다... 실효성은 없는 망명정부 명단이었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망명정부를 인정한 13도 대표의 용기는 대단한 것이었다.
당시 13도 대표가 일방적으로 보내 온 망명정부 요원 명단은 다음과 같다... 집정관 총재 이승만, 국무총리 이동휘, 외무 총장 박용만, 내무총장 이동녕, 군무총장 노백린, 교통총장 문창범, 참모장 유동열, 재무총장 이시영, 재무차장 한남수, 학무총장 김규식, 노동총장 안창호... 서울에서의 13도 대표의 회동으로 이루어진 망명정부 명단은 어떤 경로로 들어갔는지 일본 총독부에도 흘러 들어갔다... 일본 조선 총독부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국내 13도 대표에 대한 내사가 시작되었다. 즉시 체포령을 내린 것이다. 물론 이승만과 박용만, 안창호는 국내에 없었기 때문에 체포할 수 없었으나, 다른 사람들은 신상의 위험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재 빨리 피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13도 대표들은 조국을 등지고 뿔뿔이 중국 상해로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미국과는 별도로, 상해 망명정부가 정식으로 들어섰다... 이 소식을 듣고, 미국 필라델피아에서는 전한인회의가 돈을 모아 중국 상해로 송금 하자는 안이 가결되어, 모금에 들어갔다... 이승만과 서재필도 세계 각국에 한국 독립 역설의 기회가 적어지자, 다시 미국 의회에 힘을 빌리기로 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 미국 의회에서는 영국에 합병된 아일앤드 독립 문제로 매일 같이 시끄러웠다. 상원의원이며 친한파인 토마스와 존 쉬로스 두 의원을 찾아가, 미국 의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영국의 아일랜드 독립에 곁들여, 일본이 강점하고 있는 한국 독립도 권고하는 결의안을 제출해 달라는 청원서를 내었다... 아울러 아일랜드와 한국 두 나라도 국제연맹에 가입하는 결의안을 제출 해 달라고 청원한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미 상원의회에서는 일본과 영국의 눈치를 보느라고, 아일랜드는 물론 힘없는 한국 편을 들어 주지 않았다... 결의안은 미국은 미국 아닌 나라의 내정을 간섭 할 이유가 없다는 이유로 54대 22로 부결되고 만 것이다... 부결은 되었으나, 미국의회에서 22명이라는 한국 독립 지지 의원을 확보한 것은 이승만으로서는 큰 소득이었다. 한편 상해 임시 정부에서는 대한제국을 대한민국 임시정부라고 명명하여, 이승만을 임시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는 통보가 왔다. ‘대한민국’... 얼마나 갈망하던 나라였던가?... 이제는 대한제국이라는 나라는 사라졌다.
이승만은 벅찬 가슴을 가누지 못하고, 창 넘어 나부끼는 성조기를 바라 보다가 태극기로 변하는 모습으로 잠시 착각까지 하였다... 이승만은 프리스턴 대학시절 연설 때마다, 한결같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이름을 주장하던 사람이었다... 우리 민족이, 국민이 주인이 되는 자주적인 독립 국가... 그런 연고로, 그가 임시 대통령을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승만도 대통령 제의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다만, 요사이 이승만이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민족의 독립을 빙자하여, 일부 재미 한인들 젊은이들 사이에 번지고 있는, 소위 칼 맑스의 공산당 선언 이론이었다... 그것은 조국이 해방되면 소위 인민 국가를 만들자는 이론이었다.
인민국가 이론을 강조한 사람은 한길수라는 한인 청년이었다. 그는 앞으로 한국이 독립하여 나라를 세우려면, 민족의 이익만을 위하는 나라가 아니라 전 세계 인민과 공유 할 범세계적 인민의 나라를 세워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이를 위해서는 민족만을 너무 내 세우지 말고, 세계 각국과 손을 잡되, 심지어는 일본과도 손을 잡되, 독립을 보장 받아야 한다는 이상한 변을 늘어놓았다... 한길수(1900~1976)는 1933년 4월부터 그는 이용직과 함께 한인혁명당이라는 사설 조직을 만들어 리한(W. K. Lyhan)이란 코드명으로 비밀정보요원으로 자칭하며 활동하였다. 그 해 7월 김규식의 하와이 방문을 계기로 개인적인 인연을 맺은 후, 그는 1935년 2월 15일자로 김규식이 속한 중한민중대동맹의 미주대표 신임장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그는 중한민중동맹단을 설립해 스스로 대표가 되어 강력한 반일 및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에 대하여 이승만은 목적을 위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국가 체제 이론은 용납할 수 없다고 하였다.
“나 이승만은 일부 국가에서 요사이 번지고 있는 공산주의 이론을 절대 앞으로 독립할 내 나라에 받아 들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칼 맑스는 공산주의 이론에서 뭐라고 했습니까? 공산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듯이 공산주의자들이 나라를 세워서, 개인은 재산을 갖지 못하게 하고, 모두 국가 소유로 독점하여 개인의 자유를 말살하겠다는 것입니다... 말로는 골고루 잘사는 사회, 계급이 없는 사회라고 떠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할 것 같지만, 그것은 공허한 이론일 뿐입니다... 개인들의 재산을 모두 몰수하여 국가 소유로 만들면, 누가 나라를 사랑할 것 같습니까? 개인의 재산을 몰수하여 관리한다는 공산 지배자 들인 집권자들은 자칭 애국자가 되겠지만, 피 지배자인 국민들은 재산을 빼앗기고도, 과연 애국자가 될 수 있을 까요? 그것은 사육되는 동물 농장이나 같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이 말하는 인민 국가라는 것은 자기들은 결코 인민의 지배자가 아니며, 인민의 심부름꾼일 뿐이라고 감언이설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말 끝마다 자기들은 인민을 위하여 살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미국 사람들 같으면 그런 꼴을 보고 뭐라고 하였을 까요? 지배자인 조선 왕조와 앞으로 지배자가 될 공산 지배자들과 무엇이 다를까요? 조선왕국 시대의 피지배자인 백성과 한길수가 말하는 공산주의자들 밑에서 사는 인민과 무엇이 다릅니까? 원래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무엇인가 내 것을 갖기를 원하면서 태어납니다... 소유욕이라는 것이지요. 인간이 태어나 살아 나가면서, 무엇이든지 내 것이 되지 않으면, 열심히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나 이승만은 앞으로 독립 할 우리 나라는 자유롭게 누구든지 노력만 잘하면 잘사는 나라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자면 지배자인 국민의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세울 나라 이름을 대한제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고 부르자고 제의하는 바입니다...
공산주의자 한길수가 인간 사회를 차별 없이 똑같이 잘사는 나라로 만들겠다고 주장하는 말에 홀딱 넘어갔다가, 이승만의 연설을 듣고 나서야 그제서야 무엇인가에 홀렸다 깨어난 것처럼 술렁거렸다. 기독교를 믿고 있는 교포가 대 다수인 한인들은 하느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한길수에 대하여 의아 해하고 있었던 참이었다... 이승만의 꿈은 ‘자유스럽고 잘사는 국민의 나라, 대한민국’, ‘다시는 외국의 침략을 당하지 않을 부국강병의 나라’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었다. 1919년 이승만은 필라델피아를 떠나, 미국 심장부인 워싱턴에다 한국 임시정부 구미위원부(歐美委員部)를 차려 놓고, 중국 상해 임시정부와 연락할 사무실까지 마련하였다.
이승만 Extracts from the Lytton Report
--- ‘만주의 한인들’(The Koreans in Manchuria) ---
[자유일보] 류석춘 기자에 의하면, 이승만은 국제연맹 회의를 활용해 한국의 독립이 필요함을 국제적으로 알리기 위해 1933년 1월 5일부터 제네바로 넘어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제네바 국제연맹 회의 전권대사’ 자격으로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했다. 그는 한국의 독립이 만주 평화의 핵심이라는 주장을 담은 ‘만주의 한인들’(The Koreans in Manchuria)이라는 영문 소책자를 만들었다. 출판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파리주재 외교특파원 서영해가 운영하는 고려출판사(Agence Korea)가 맡았다. 전체가 35쪽 분량인 이 소책자는 표지 상단에 ‘이승만 박사가 논평을 붙인 리튼 보고서 발췌’ (Extracts from the Lytton Report with Comments by Dr. Syngman Rhee)라는 부제(副題)를 달고 있다. 이승만은 이 소책자 머리말에서 출판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이 소책자의 목적은 중국과 일본 간의 갈등에 대한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 국제연맹 회의에 참가한 각국 대표, 언론, 그리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해 정의의 편에 서고자 하는 모든 사람과 단체들이 극동의 문제에 대해 올바른 해결책을 마련하는 데 중요한 쟁점이라고 ‘리튼보고서’가 지적하고 있는 ‘한인문제’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함이다."
이승만은 국제연맹 사무국이 이 소책자를 각국 대표들에게 배포토록 하는 한편, 관련된 언론 인터뷰를 적극 수행해 국제사회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제네바를 여행 중이던 평범한 오스트리아 여성 프란체스카(Franziska Donner Lee, 1900~1992)도 신문을 보고 이승만의 활동을 알게 되어 결국 지지하게 되었다.
[참고] [코메디닷컴] 권순일 기자, 2023. 1. 29.
https://v.daum.net/v/20230129100518075
[참고] 한민호, 공자학원실체알리기운동본부 대표
https://www.facebook.com/minho.han.752
[참고] ‘#660__ 백년전쟁. 미주 3·1운동 필라델피아 한인대회’, 뚱보강사,
2023-02-03, 조회 44.
https://kg60.kr/cmnt/2342/boardInfo.do?bidx=927202
[참고] [자유일보] 류석춘 기자, 광화문연구소 소장, 2022.08.07.
[참고] 한길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458681&cid=46628&categoryId=46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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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2__눈 건강. 우남 이승만과 윌슨 대통령. 1933년 제네바 국제연맹 회의--- 뚱보강사 이기성 Lee Ki-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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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2__눈 건강. 우남 이승만과 윌슨 대통령. 1933년 제네바 국제연맹 회의--- 뚱보강사 이기성 Lee Ki-sung
https://kg60.kr/cmnt/2342/boardInfo.do?bidx=927448
662__ 눈 건강. 이승만과 윌슨. 1933년 제네바 국제연맹 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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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2__눈 건강. 우남 이승만과 윌슨 대통령. 1933년 제네바 국제연맹 회의--- 뚱보강사 이기성 Lee Ki-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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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2__눈 건강. 우남 이승만과 윌슨 대통령. 1933년 제네바 국제연맹 회의--- 뚱보강사 이기성 Lee Ki-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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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2__눈 건강. 우남 이승만과 윌슨 대통령. 1933년 제네바 국제연맹 회의--- 뚱보강사 이기성 Lee Ki-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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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g60.kr/cmnt/2342/boardInfo.do?bidx=927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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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2__눈 건강. 우남 이승만과 윌슨 대통령. 1933년 제네바 국제연맹 회의--- 뚱보강사 이기성 Lee Ki-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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