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왔다간 자리에서 입을 가리고 웃는다
이 화 은
커피를 지독히 사랑한 죄로
하얗게 가지런한 웃음을 잃었다
변색한 세월을 숨기기 위해
손으로 입을 가리거나 고개를 숙이고 웃어야 했다
그 겨울 아가베는 결국 목을 꺾었다
물을 너무 많이 준 탓이라고 한다
많이 주는 게 사랑인 줄 알았다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사랑했던 그녀는 지금
식당 주방에서 얼어 터진 손으로 불판을 닦는다
닦고 또 닦는다
사랑 때문에 모든 걸 잃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정의正義의 정의를 사랑했는데 친구를 잃었다
또 다른 정의가 있는 줄 그때는 몰랐다
하마터면 원수를 사랑할 뻔했다
새벽을 사랑한 탓이다
새벽미사를 사랑한 탓이다
오래 동거하던 유다를 잃을뻔 했다
잠을 유난히 사랑한 탓에 많은 시험을 잃었지만
이젠 사랑할 잠이 없다
잠이 내게 오질 않는다
누가 사랑하다 떠난 집인지 담장이 허물어진 마당에
하얀 망초꽃이 가지런히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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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결> 여름호 2024년
첫댓글 제목이 우선 눈을 확 끌어잡아다닙니다.
폐가를 이리 묘사를 하시는 선생님 역시 엄지 척입니다.
꾸~벅
하마터면 원수를 사랑할뻔 했다
새벽을 사랑한 탓이다
와! 진짜 멋진 시 한편이네요!
ㅎ 이쁘게 봐주시니 감사! 시를 너무 심각하게 쓸 필요 없는것 같아요 그렇지 않아도 우리 인생 너무 심각하거던요
맞아요 선셍님
인생도 심각한데 시 까지 심각한거 보면 머리 아파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