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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령 사진전
웃음 _ 말 없는 말
장소/사진위주 갤러리 류가헌
기간/4.15 ~ 4.27
#01 오진령_ 웃음 40x50inch Archival Pigment Print 2014
■ 보도의글
‘오진령’이 돌아왔다.
여전하면서 또한 전혀 새로운 사진을 안고
사진가 ‘오진령’은 귀에 설다. 그런데 언젠가 들은 적이 있는 것처럼 이름에 여음이 남는다. 참 진眞)에 방울 령(鈴). 이름자의 뜻인 방울이 그렇듯이. 그때 누군가 ‘곡마단’이라고 힌트를 주면, “아, 그 곡마단.” 하고 이내 눈앞에서 몇 장의 이미지가 스쳐 지난다. 찰나의 환상처럼 방울방울 번지던 공기방울, 천막, 장대에 매달린 채 공중에 정지해있는 곡예사... 물론 이러한 연상은 2003년에 연 오진령의 첫 개인전 <곡마단 사람들>과 연이어진 <어릿광대와 사랑에 빠지다>를 보았거나 이듬해 책으로 낸『곡마단 사람들』을 보았을 때 가능하다.
오진령은 겨우 열일곱 살 여고생이던 90년대 후반부터 쇠락해가는 동춘서커스단을 6년간 쫓아다니며 ‘곡마단 사람들’을 찍었다. 단순히 그 이유 때문이었다면, 그녀의 이름은 울림 없이 잊혔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서커스’를 깊은 향수와 놀라운 가벼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처럼, 오진령의 사진들은 그 자체로 일정한 보편성을 획득하며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오늘에서도 많은 이들이 곡마단과 오진령을 연관 짓는 이유다.
2006년 금호미술관의 ‘영 아티스트’ 전시지원작가로 선정돼 세 번째 개인전 <거미여인의 꿈>을 열면서 사진가로서의 정체성을 확실히 했다. 스스로 ‘서커스 소녀의 밧줄 타는 모습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밝힌 것처럼 여전히 ‘곡마단 사람들’과 이어져있는 전시작들은 밧줄을 타는 중인 소녀처럼 아슬아슬한 구도로 현실과 상상,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넘나들었다. 그런데 이 환영과도 같은 이미지를 남긴 후, 오진령은 돌연 종적을 감추었다.
일곱 번째 개인전, <웃음 _ 말 없는 말>
4월 16일부터 류가헌에서 열리는 사진전 <웃음 _ 말없는 말>은 오진령이 8년 만에 한국에서 여는 사진전이다. 사진계 바깥으로 벗어난 것처럼 여겨졌던 그녀는, 먼 미국 땅에서 여전히 사진을 지속하고 있었다. 대학에서 사진으로 학업을 이어가며, 2008년 <자유변형>(Diego Rivera Gallery, 샌프란시스코), 2010년 <몸짓> (De Santos Gallery, 휴스턴) 등 미국에서 세 번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몸짓>시리즈로 미국의 Fotofest 2012 Discoveries Artist로 선정되었고 프랑스 파리에서 Gallerie Camera Obscura로 조명을 받으며 국제 무대에서 사진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임종하시면서, 아버지가 웃으셨어요. 오랜 병마의 고통으로 늘 얼굴을 찌푸려야만 했는데, 마지막 순간에 웃음을 지으신 거지요. 그 웃음이 뇌리에서 오래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웃음>은, 그 웃음에 대한 탐색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작가의 말처럼, 이번 전시작 <웃음 _ 말없는 말>시리즈는 한 인간이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 웃음 짓는 모습을 경험하면서 시작되었다. 사진 속에서, 익명의 사람들은 저마다 검거나 흰 천 밖으로 얼굴과 손 만을 내밀고 있다. 레퀴엠과 웃음소리의 조합처럼, 설정이 왠지 불편하다. 예민한 눈에는, 손과 얼굴이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거나 광고사진을 찍듯 실내 스튜디오 세트에서 촬영했을 법한 사진의 조명이 인공적이지 않은 것까지 포착될 것이다.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얼굴로 시선이 옮아가면 시각적인 확신은 더욱 약화된다. 얼굴들은 하나같이 웃고 있지만 웃음의 표정은 저마다 다르다. 마치 웃음 그 자체의 초상(肖像) 같다. 그런데 기쁜가 하면 기이하고, 즐거운가 하면 일견 고통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웃음이 지니고 있는 보편적인 의미체계가 무너지면서, 이때 웃고 있는 이와 바라보는 이 사이에 새로운 웃음의 총합이 생겨난다.
“흰색과 검은 색의 천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 또는 세상의 안과 밖을 의미할 수도 있고, 그저 웃음의 초상을 위한 배경막 자체일 수도 있습니다. 해가 비스듬히 눈높이까지 내려 와서 인물의 눈을 부시게 비출 무렵에 찍었어요. 그러니까 야외공간에서 태양을 조명 삼아 찍은 것이죠. 얼굴과 손은 자연 그대로의 빛, 바람, 온도, 습도에 따라 반응한 것입니다.”
사진가로서 오진령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당돌하다. 아니, 당돌함의 스케일이 가공할 정도다. 아예 이 세상을 터 삼아 거대한 천막을 치고, 태양을 스포트라이트 조명으로 삼아, 익명이면서 저마다 제 삶의 주인공인 사람들, 때론 자기 스스로를 배우로 무대에 세우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가 보게 되는 기이하고 아슬아슬하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사진 속 생의 여러 국면들은 오직 ‘오진령의 장르’다. <거미여인의 꿈>이 그랬고, 사막이라는 거대한 자연공간에 인간과 사물을 세워두고 시간의 흐름에 따른 그 변화와 변형을 기록한 세 번째 시리즈 <몸짓> 또한 그랬다. 현재 작업 중인 다섯 번째 시리즈 '매달린 사람들(People Hanging) 또한 마찬가지다.
사진가 오진령에 의해, 사진이라는 화법으로, ‘서커스’는 계속되고 있다.
전시 중 연계 행사
출판기념회
오진령 사진집 <몸짓 Zi-it>이 IANN 출판에서 출간된다. 4월 16일 오프닝 행사 시 이 신간의 출판기념회가 함께 열린다.
사진가의 서재 02 _ 오진령 편
류가헌 사진책도서관 내 자리한 <사진가의 서재>에 3월 25일부터 두 달 여간 사진가 오진령 편이 펼쳐진다. 오진령의 초기작인 ‘곡마단 사람들’ 시리즈를 중심으로 <거미여인의 꿈>과 <몸짓>의 전시작 일부가 오리지널 프린트로 전시되고, 사진가의 서가에서 옮겨 온 책 일부와 소품들이 함께 갖추어진다. ‘작가와의 만남’ 포럼이 연이어진다.
* 류가헌 사진책도서관 안에 꾸려진 <사진가의 서재>는, 한 사진가의 정신과 정서가 형성되기까지 책이 관여한 부분을 살핌으로써 사진과 인문학의 만남을 도모한 기획전이다. 전시실이라기보다 실재 사진가의 방처럼 아늑한 이 공간은 해당 사진가에게 전시기간 내내 개방된 공간으로서 일종의 레지던시의 성격을 띤다. 두 달에 한 번씩 1년 동안 총 여섯 사진가의 서고 중에서 담론화 할 책 일부를 <사진가의 서재>에 옮겨서 나누어보고, 그 책을 중심으로 작가와의 만남, 포럼 등을 이어가는 형식이다. 전시 오프닝이 아니고서는 좀체 만나기 어려운 사진가들과 일반인들이 좀 더 친밀하게 소통할 수 있는 접점의 역할을 해나가는 공간인 것이다.
■ 작가 소개
오진령
1980년 서울출생
학력사항
2013 홍익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 사진학 전공
2009 샌프란시스코 예술대학, 석사, 순수미술(사진) 전공
2003 국민대학교, 예술학사, 입체 미술(조각) 전공
1999 서울예술대학, 예술학사, 사진 전공
주요 전시경력
2014 [개인전] 웃음 '말 없는 말', 류가헌 갤러리, 서울 (4월예정)
Long Live Humanity!, 기획 ART제안, 북정미술관, 서울 (5월예정)
2013 The Story of Creative, 기획 아파쳐, NYC Gallery, 뉴욕
Interactive Action, 콜로라도 주립대학 미술관, 콜로라도
2012 C’est l’ete, Galerie CAMERA OBSCURA, 파리
Discoveries of the Meeting Place, 10명의 예술가 지원전시,
Wendy Watriss기획, FotoFest2012, 휴스턴
2011 NO.45금호 영 아티스트 전, 금호미술관, 서울
2010 [개인전] 몸짓, De Santos Gallery, 휴스턴
2009 National Juried Photography Exhibition 2009, 전시기획자 Julian Cox, 1212Gallery, 리치몬드
2008 [개인전] 자유변형, Diego Rivera Gallery, 샌프란시스코
2007 Friends of Kumho,금호미술관, 서울
2006 [개인전] 거미 여인의 꿈, 금호미술관, 서울
2004 Desrencontred'Arles,ArtFestival, 아를르, 프랑스
[개인전] 내가 만난 그들, 강남 교보문고 1층 전시관, 서울
2003 [개인전] 어릿광대와 사랑에 빠지다, 룩스 갤러리, 서울
출판물
몸 짓 Zi-it, 사진집, IANN 이안출판
거미여인의 꿈, 사진집, 금호미술관
곡마단 사람들, 사진에세이, 호미출판
소장
콜로라도 주립대학 미술관, 콜로라도
Galerie CAMERA OBSCURA, 파리
De Santos Gallery, 휴스턴
금호미술관, 서울
수상
Discoveries of the Meeting Place, FotoFest2012 전시지원, 휴스턴, 2012
19th Annual Faces of Woman, National Juried Art Exhibition Winner, 전시지원, 라스베이거스, 2009
Depth of Perception, Honorable Mention of Linda Connor, Marin Museum of Contemporary Art, 노바토, 2009
Inspiration, SPE West Contest Winner, 전시지원, 샌프란시스코, 2008
금호 영 아티스트, 전시지원, 금호미술관, 서울, 2006
■ 작업 노트
웃음
사람들은 웃는다.
살며 웃고, 사랑하며 웃고, 감사하며 웃고, 행복하며 웃고, 기쁨에 웃고, 슬픔에 웃으며, 울다가 웃고, 헤어질 때 웃고, 머쓱해서 웃고, 주고 받고 웃으며, 절망에 웃고, 실패하여 웃고, 절규하며 웃고, 진심을 담아 웃고, 진실을 감추고 웃으며, 웃기 위해 웃고, 그렇게 너와 내가 만나 웃는다.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의 삶 속에서 그렇게 웃음짓는다. 얼굴, 그 헐벗은 곳에서, 마치 인생을 대변하듯, 주름진 굴곡들 바람을 맞아 흔들리고 날리면서, 견디고. 차갑고 강한 바람, 뜨거운 태양아래 눈물, 콧물, 그리고, 땀. 반복하여 호흡한다.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치니 너의 얼굴, 그 곳에서 나를 만난다. 너의 웃음과 나의 웃음이 만난다. 나의 얼굴과 너의 손도 만난다. 그 누구의 것도 아닌 것으로. 젊음은 젊음대로, 늙음은 늙음대로, 그대로의 흔적을 드러내고 감추며, 다시한번, 감추고 드러나고 마는 것을. 눈빛은 끝내 진실을 감추지 못한다. 이 세상의 호흡하는 웃음이다.
한 사람이 웃는다.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웃음, 현재의 웃음이 아닌 웃음, 이 세상을 향하고 있지 않은 그런 웃음, 생의 터널 밖을 향한 소멸의 순간에 웃음, 시간이 멈추어 버린 호흡하지 않는 웃음을 본다. 세상의 수많은 웃음들, 그 이유들로부터 벗어난 웃음, 어떤 것도, 그 무엇 때문도, 누구의 것도 아닌 것으로. 너의 웃음과 나의 웃음이 만날 수 없는 그 곳에서, 내려놓음, 그 마침으로부터, 그 웃음 진정한 자유로부터 왔을까.
사람들은 웃는다.
강렬한 태양의 눈부신 빛을 향해, 보이지 않는 어둠의 그 무언가를 향해, 저 비어있는 공간과 그 넘어 크고 작은 형체들을 향해, 끊임없이 삶의 목적을 찾아 헤매며, 대상 없는 그 무언가를 좇아가며 그렇게 웃는다. 이 웃음의 조각들, 언젠가 누군가와 조우하며, 눈을 마주치고, 만나고, 헤어지고, 친구가 되며, 격려하며, 소리 내어 웃고, 숨 죽여 속삭이면서 그렇게 웃어 줄 수 있게. 순간이 영원히 되도록.
그들이 누구이고 왜 웃는 지는 중요하지 않다. 웃음은 웃음으로. 영원한 순간이 되도록.
고인이 되신 아버지를 기리며.
2014년 2월 진령(眞鈴)
■ 전시 서문
웃음, 말 없는 말 ‘말 없는 말’(‘말 없는 말’: 자크 랑시에르의 용어이다.)
최연하 : 전시기획, 사진비평
오진령이『곡마단 사람들』을 전시와 책으로 엮어낸 지 10년이 흘렀다. 서커스를 촬영하기 시작한 나이가 열일곱 살이었고 그 결과물을 모아 스물세 살에 첫 번째 개인전을 치른 후 <거미여인의 꿈>과 <몸짓>, 그리고 신작인 <웃음>까지 사진이력으로 삶의 절반을 채웠다. 대개의 작가들에게 첫 번째 작업은 이후 성장과정에 아리아드네의 실이자 자양분이 되는데, 오진령에게 사진의 첫 만남인 ‘곡마단 사람들’이야말로 직접적이고 확실하게 그 위력이 발휘됨을 알 수 있다. 걱정스러울 정도로 재능을 보였던 이 무서운 신인이 이번엔 명쾌하고 성숙한 ‘웃음’을 선보인다. 지난 십 칠년 동안 잘 훈련되고 정련된 테크닉과 깊은 사유가 명징하게 빛나는 작품이다. 처음부터 그녀의 사진 속엔 생생하게 살아있는 사람들의 몸짓이 있었다. 무엇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 이 몸짓은 비동질적인 실연(實演)의 세계이고, 꼭 한 번만 일어나는 사건이기에 카메라가 담아내기엔 더 없는 소재(주제)이다. 삶의 다채로운 무대에서 펼쳐지는 사람의 공연(행위)들은 기계적인 반복운동 같지만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떠한 몸짓도 무엇으로 일반화 할 수 없는 고유함으로, 사진인화지의 표면위에서 반짝거리게 되나보다. 오진령이 주객의 자리를 와해시키며 존재의 부름에 계속해서 응답해온 이유가 한 순간 반짝이며 튀어 오르는 저 사랑스러운 몸짓들 때문이 아닐까.
이번엔 그 몸짓의 주인인 얼굴들이 웃고 있다? 한 겨울, 한 낮의 태양아래 차갑게 빛나는 얼굴들은 내가 바라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나를 쳐다보는 듯하다. 사진 속의 인물들은 오직 얼굴과 손만을 내놓으며 수동적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관객이 해독할 수 있는 것은 다만 젊거나 주름진 피부, 머리카락의 컬러와 얼굴의 조형적인 윤곽 혹은 표정뿐이다. 외모에 사로잡혀 계속 얼굴을 살펴보지만, 얼굴을 증명할 수 있는 형식과 서술의 무력함을 깨달으며 이내 탐색을 멈추게 된다. 이처럼 보는 이를 무장해제 시키고 비공격적으로 만드는 이 얼굴은 그저 드러나 있을 뿐 아무런 말없이, 하지만 아주 ‘시끄럽게’ 웃고 있다! 사진 속의 얼굴은 사진이 표상하고자 하는 바를 피하고, 오히려 관객이 그에게 부여하는 시선에 대해 끊임없이 물음을 던지고 있다. 얼굴의 철학자 레비나스는 ‘내 안에 있는 타자의 관념’을 뛰어넘어 타자가 나타나는 방식, 그것을 얼굴이라고 불렀다. 레비나스라면, 흔히 주체인 사진가의 위치에서 대상을 찍어 왔던 기존의 포트레이트의 범주로 결코 귀속될 수 없는 것이 ‘얼굴’일 것이다.
그래서 이 얼굴을 마주하는 것은 드러날 수 없는 것이 드러남과 동시에 나를 타자에게 노출하는 일이기에 약간의 고통과 난해함이 따른다. 즉 타자를 대상화하지 않고 어떠한 비전도 지식도 없이 그저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오진령의 다만 웃는 것처럼 보이는 얼굴사진의 함정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이제껏 중요하게 생각되었던 몸통은 사회적, 미적, 정치적 코드들을 박탈당한 채 커튼 뒤로 물러나 있고, (화장을 하였어도)살갗이 헐벗은 채로 숨김없이 드러난 얼굴은 웃고 있는 것이 아닌 생생한 뉘앙스로 상황만을 전달한다. 다만 ‘본다’는 개념을 거부하며 바라볼 때, 비로소 보인다는 역설을 오진령의 <웃음>사진이 시끄럽게 말하려는 것이다. ‘말없는 말’의 강력함을 오진령의 소리 없는 <웃음>사진에서 보게 된다.
■ 전시작 이미지
#02 오진령 _ 웃음 40x50inch Archival Pigment Print 2014
#03 오진령 _ 웃음 40x50inch Archival Pigment Print 2014
#04 오진령 _ 웃음 40x50inch Archival Pigment Print 2014
#05 오진령 _ 웃음 40x50inch Archival Pigment Print 2014
자료 원문 출처/류가헌 네이버 블로그 http://blog.naver.com/noongamgo
첫댓글 좋은글 정보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