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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요 6:3-15절
제 목 : 예수님이 모든 문제의 해답이다
일 시 : 2020. 10. 4.
요6:3-15/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4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12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14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15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알고 믿느냐? 하는 것은 한 개인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며, 또한 삶의 모든 부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예수님을 위대한 스승이나 사대성인 중의 한 사람 정도로만 알고 있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제대로 아는 것도 아니며 예수님을 믿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런 식으로 예수님을 아는 것은 예수님을 모독하고 짓밟는 일이며, 전능하신 구원자 예수님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수돗물을 공급하는 거대한 저수지 안에 있으면서도 물 한 모금도 마실 수 없는 비참하고 안타까운 삶과 같습니다.
예수님을 바로 알고 믿는 개인과 나라는 모두가 잘되고 복을 받지만 그렇지 못한 개인과 나라는 고통과 저주와 가난 속에서 지옥같은 삶을 살게 됩니다. 세계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선진국들은 다 복을 받아서 잘살고 있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교나 유교나 이슬람 국가들은 가난과 내전과 인권유린으로 지옥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인류역사의 한복판에 서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탄생을 중심으로 역사를 B.C와 A.D로 나누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역사 속에서 모든 나라와 민족들과 함께 계시고 또한 모든 사람들 곁에서 그를 도와주시기 위해서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면서도 우리를 돕기 위해서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구원자로 일하심으로 예수님을 믿는 각 사람에게 구원과 기적과 능력과 복을 주십니다. 지금도 여전히 살아 계시는 구원의 예수님을 날마다 만나고 경험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 예수님의 관심은 굶주린 사람들의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시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그 유명한 오병이어의 기적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이신 놀라운 기적은 예수님은 영육간에 굶주린 사람들의 배를 채워 주시는 영원한 공급자이심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필요에 대해서 민감하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몰려 오는 것을 보시고 그들의 굶주린 배를 채우고자 제자 빌립에게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이렇게 질문하심은 빌립을 시험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을 시험하시는 목적은 예수님이 원하는 믿음을 소유하고 있는지 보시고 예수님과 함께 일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즉 자신의 동력자로 삼으시려고 시험하십니다. 예수님은 혼자 일하시는 것보다 믿음과 순종의 사람들과 함께 일하시는 것을 매우 좋아하십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오늘 저와 여러분과 함께 일하고 싶어하십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예수님의 기쁨과 성공과 승리를 함께 나누고 싶어하십니다. 빌립을 시험하신 목적도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빌립에게 질문을 하실 때 벌써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다 아시고 질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찾아오셔서 질문을 던지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에게 질문하셨고, 사마리아 여인에게 질문하셨고, 니고데모에게 질문하셨고, 부자청년에게 질문하셨고,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서 찾아온 바리새인들과 서기관에게 질문하셨고, 율법 교사들에게 질문하셨습니다. 지금 이 시간도 여러분에게 질문하고 계실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나에게 질문하시는 음성을 듣는 것이며 거기에 바르게 대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질문을 하시고 물어 보시는 이유는 몰라서 질문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해답과 방법을 알고 계시면서 질문하십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계속해서 묻고 질문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싶어서입니다.
예수님은 전지 전능하셔서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과거도 아시고 현재도 아시고 미래도 아시는 알파와 오메가가 되십니다.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에 우리를 도와주시려고 질문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문제(사명)를 주시고 질문하신다면 당황하거나 고민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자신의 지혜나 경험이나 계산방법으로 성급하게 대답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예수님께 어떻게 하면 될까요? 하고 여쭈어 보아야 합니다. 답도 없고 알지 못하는 것을 성급하게 대답하려고 하지 말고 오히려 주님께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하고 다시 여쭈어 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모든 것을 아시고 나의 모든 문제의 해답을 가지고 계시는 주님, 나는 아무 것도 모르지만 주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시오니 가르쳐 주세요. 라고 말입니다.
2. 그런데 빌립은 예수님을 아는 것과 믿는 일에 초보라서 그만 실수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보면 빌립은 크게 두 가지 실수를 했습니다. 1) 첫 번째 실수는 예수님께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요14:8-11/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11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고 했습니다. 빌립은 오래 동안 예수님을 쫓아다녔지만 예수님 안에 아버지가 계시고 아버지 안에 예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즉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2) 두 번째 실수는 본문에서 볼 수 있듯이 자신에게 답이 없으면 예수님께 여쭈어 보아야 하는데 마치 자기가 무엇을 아는 것처럼 성급하게 대답했습니다. 아마도 빌립은 자신의 계산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남들보다 계산능력은 뛰어났을지 모르지만 예수님이 원하시는 대답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거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배불리) 먹고도 12바구니가 남을 것을 이미 다 알고 보고 계시는데 빌립은 각 사람으로 조금씩만 먹어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할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예수님은 먹고도 남는 것을 바라보시는데 빌립은 부족한 것만 바라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의 특징이 바로 이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항상 부족한 것만을 생각하고 안되는 것만을 생각합니다.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되고 무엇이 부족하고 하면서 안되고 못하는 핑계거리를 찾습니다. 사탄 마귀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전형적인 수법입니다. 비전교회 성도들은 결코 마귀에게 쓰임 받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하고자 할 때나 또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무슨 일을 시키실 때, 전지전능하신 주님의 시각으로 바라보아야지 무능한 빌립의 시각으로 보면 안됩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배불리 먹이고도 12바구니가 남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모자라고 부족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부정적인 생각부터 합니다. 즉 안될 것부터 생각합니다. 왜 어떤 사람들은 빌립처럼 안 될 것이라고만 생각합니까?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자신이 문제를 해결해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광야에 길을 만드시고, 사막에서 샘(오하시스)을 만드시는 구원자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길을 만드시는 주 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길을 만드시는 분이시며 큰 기적을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기적을 만드시고 광야에 길을 내시는 주님의 일에 방해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면서 왜 안 되는 것부터 생각합니까? 그것이 과연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모든 일을 안되게 하는 사탄 마귀를 믿는 것입니다.
아직도 무슨 일이든지 안될 것이라고 믿는 사탄의 믿음을 가지고 근심 걱정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인간의 이성은 하나님의 전능성과는 정반대로 작용합니다. 빨리 인간의 이성과 계산방법을 버려야 합니다. 정말 예수님을 믿는다면 무슨 일을 하든지 항상 잘 될 것이고, 무슨 일을 하든지 쓰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안드레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함으로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도록 했습니다.
이것을 안드레식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안드레는 빌립과는 정반대로 접근했습니다. 빌립은 안될 것부터 찾았지만 안드레는 할 수 있는 것부터 찾았습니다. 두 사람의 접근방법은 전혀 다른 결과를 나았습니다. 안드레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라고 말입니다. 빌립은 안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계산만 하고 있었지만 안드레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았습니다. 믿음이 있고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알고 있다면 할 수 있다는 믿음의 가능성을 가지고 답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안드레는 군중들을 헤치고 다니면서 혹시 먹을 것이 있는지 찾아보았습니다. 드디어 한 아이에게서 작은 도시락을 찾아냅니다. 보리 떡 다섯 개와 작은 생선 두 마리를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아이와 아이의 부모님께 양해를 구하고 예수님께로 가지고 왔습니다. 작은 도시락이 예수님의 손에 들려졌습니다. 기적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작은 도시락이 어린 아이의 손에 있을 때는 자기혼자서만 먹을 수 있는 작은 도시락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예수님의 손에 들려졌을 때는 남자 장정만 오천 명이 먹고도 12바구니가 남았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가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기쁨으로 드리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무엇이든지 아까운 마음이나 욕심을 가지고 움켜쥐고 있으면 나 한 사람만 먹을 수 있고 나 한 사람만을 만족시켜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것을 양보하고 하나님께 드리면 나도 먹을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도 함께 먹는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산 방법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창조주이십니다. 아무 것도 없는 것에서 우주만물을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렇게 보면 안드레가 가지고 온 어린아이의 작은 도시락인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하나님께서 보실 때 엄청난 자원이었습니다. 결코 보잘 것 없는 존재가 아닙니다. 오병이어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이 보실 때는 매우 크고 많은 양입니다. 우리는 숫자가 많아야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께는 숫자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보리 떡 일곱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는 4천명을 먹이고 일곱 광주리만 남겼습니다. 많은 재료를 가지고 오히려 작은 기적과 결과를 남겼지만 반대로 작은 재료를 가지고 더 큰 기적과 더 많은 결과를 남겼습니다. 우리는 그와 같은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고 질책하셨습니다. 마16:9-10/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 10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이던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비전교회가 숫자가 적은 데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 라는 믿음 없는 생각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교회보다 더 크고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큰 일을 생각하는 습관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왜 항상 작은 일만 생각합니까? 큰 일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더 많은 것을 바라고 더 큰 것을 구하고 더 위대한 일을 행할 것을 꿈꾸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하고 하나님의 지혜가 부족해서 일을 못하십니까? 아닙니다. 자신의 믿음의 그릇이 부족하기 때문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크고 놀라운 일을 행하실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크고 위대한 일을 계획하고 생각하고 구해야 합니다. 크고 놀라운 부흥을 꿈꿔야 합니다. 목사님, 지금까지 기도하고 전도해도 안되었는데요? 아닙니다. 아직 응답해 주시기 않는 이유는 주님께서 주시려는 크고 놀라운 부흥과 복에 못 미치는 생각과 계획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복과 부흥을 주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과거에 시골에 있을 때 가끔씩 어른들이 시장에서 맛 있는 과자나 떡을 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흙더미에서 소꼽 장난을 하고 노는 아이에게 떡과 과자를 주려고 하다가 아이의 손이 더럽고 너무나 작아서 맛있는 떡과 과자를 줄 수가 없어서 안타까워했던 일을 기억합니다. 그것처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슨 복을 주시고 싶어도 우리는 너무나 손이 작고 믿음이 작고 생각하는 것이 작아서 하나님께서 마음껏 부어 주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수준에서 바라고 기도하고 구하십시오. 빌립처럼 나의 머리와 나의 수준으로 생각하지 말고 안드레처럼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주님께 맡기세요. 그러면 주님은 오병이어의 기적과 같은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중요한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안드레나 어린아이처럼 자신의 작은 것을 주님의 손에 올려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전능하신 예수님께서 일하시도록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멋지게 일하시고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기적을 만드실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 하십시오. 그리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주님께 맡기세요. 반대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지 않으면서 마치 하나님을 종처럼 부려먹으려고 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용당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래서 마지막 절을 보세요.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15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자신을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나쁜 의도를 아시고 혼자 산으로 떠나가셨습니다. 예수님을 자신의 종으로 삼으려고 하지 마세요. 예수님은 우리의 종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고 만주의 주가 되십니다. 내가 주님의 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께 귀하게 쓰임 받고 크고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주님께서 시키시는 일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주님께서 무슨 일을 시키든지 아멘 하고 순종하십시오. 결과와 열매가 있든지 없든지 무조건 순종하십시오. 그리고 나머지는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 맡기세요. 주님께서 스스로 일을 하시도록 주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해 드리세요. 잔꾀를 부리지 말고 하나님께서 스스로 크고 위대한 일을 행하시도록 주님의 권세와 능력과 주권을 인정해드리세요. 그러면 주님께서 일하십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처럼 예수님을 억지로 붙잡아서 임금 삼으려고 하지 마세요. 그렇게 한다고 주님이 우리의 종이 되실 분이 아닙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나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있다면 즉시 순종해야 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어린 아이의 작은 도시락을 드리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작은 것을 드려야 합니다. 내가 전도한다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오겠습니까? 내가 헌금을 드린다고 해서 얼마나 드리겠습니까? 집을 팔아서 드린다고 해도 그것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사실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드려 보아야 대기업 재벌들의 껌 값도 못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나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있다면 기꺼이 드리고 순종해야 합니다. 기도하라고 하면 열심히 기도하고, 전도하라고 하면 하루도 쉬지 않고 전도하고, 물질을 드리라고 하면 비록 작은 것이지만 기쁜 마음으로 드리세요.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으로 순종하는 그 믿음과 순종을 보시고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크고 놀라운 기적을 행하실 것입니다. 상상이상의 기적을 행하시고 기대이상의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문제의 해답은 예수님께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면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드디어 오병이어의 기적과 같은 기적을 행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댓글 ♠ 홀로 앉으십시오.
1. 요6:3-15절을 읽고 빌립, 안드레, 군중들 중에서 어디에 속하는지 생각해 봅시다.
★ 함께 나누십시오.
1. 예수님을 바로 알고 믿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2. 세상 사람들을 향한 예수님의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3. 사람들을 향해서 질문하시는 예수님의 질문목적은 무엇입니까?
4. 제자로서 빌립이 행한 두 가지의 실수는 무엇입니까?
5. 빌립과 안드레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과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6. 하나님의 기적은 언제, 어디에서부터 시작됩니까?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아멘
1.한 개인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며 또한 삶의 모든 부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기때문입니다
2.굶주린사람들의 의식주문제를 해결하시는것
3.우리의 문제를 해결 해 주고 싶어서
4.1)예수님께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달라고 부탁한것과 2)자신에게 답이 없으면 예수님께 여쭈어 보아야하는데 마치 자기가 무엇을 아는것처럼 성급하게 대답을 한것입니다
5.빌립은 안될것부터 찾았지만 안드레는 할 수 있는것부터 찾았습니다 결과로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예수님께 갖다 드렸을때 5천명이 먹고도 12바구니가 남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6.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고 그 일에 최선을 다 할 때 입니다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