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마음
綠雲 김정옥
택배차가 연신 들락거린다. 명절 즈음하여 평소보다 곱절은 늘었지 싶다. 너나없이 명절 때면 고마운 분들이 생각나는가 보다.
부지런한 그녀에게 선수를 놓쳤다. 우리 집에 선물이 먼저 당도한 것이다. 선물에 도타운 마음마저 얹혀 푼더분하였다. 고맙게 받고 달게 먹었다.
선물은 주거니 받거니 오가는 맛이다. 그녀에게 답례할 선물을 하루 반나절이나 고심해서 골랐다. 굴비 세트 꾸러미에 푼푼한 한가위 명절 되라는 바람도 함께 매달았다. 배송이 빠르기도 하지. 하루 만에 ‘배송 완료’ 문자가 왔다. 그런데 대여섯 시간이나 지났는데도 받았다는 기별이 없다. 송신증이 나서 기다리지 못하고 택배 받았느냐고 문자를 넣었다. 무슨 택배냐며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는 반응이다.
고객센터에 ARS로 송장 번호를 입력하니 역시나 본인에게 배달 완료가 되었다는 음성 메시지가 들렸다. 받을 사람은 받지 않았는데 누구에게 배달되었다는 말인가. ‘어디서 굴러다니다 상하면 어떡하지.’ 온갖 생각에 걱정이 해일처럼 밀려온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집배원에게 배달에 문제가 있는 것 같으니 알아보고 연락을 달라고 하였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주소를 잘못 쓴 줄은 꿈에도 몰랐다. “주소를 잘못 쓰셨네요.” 집배원 말이 투박하다. 사단은 나였구나. ‘행인임발우개봉行人臨發又開封’이라고 신중하게 보고 또 봐야 했다. 그나마 같은 아파트 라인으로 배달이 되었으니 그녀가 수고롭지만 거기서 찾아가면 되겠지 싶었다.
일이 꼬였다. 그 집에서 선물을 풀어서 구워 먹었단다. 주소가 맞아도 본인이 아니면 뜯지 말고 발신자에게 확인하는 것이 순서 아닌가. 곱게 정성을 담아 포장한 선물이 마구잡이로 뜯어져서 몇 마리는 먹고 나머지는 냉동실에 보관한 상태란다. 게다가 적반하장으로 주소를 틀리게 쓴 사람 잘못이니 남은 것이나 가져가라고 역정을 냈단다. 아무래도 그 사람은 탐심과 이성理性 두 마음 사이에서 혼선을 빚었나 보다. 선물을 찾으러 간 그녀가 어처구니없어서 그냥 돌아서 나왔단다. 이렇게 송구할 데가 있나.
얼마 후 뜬금없이 상품 발송업체에서 연락이 왔다. 수취인이 당신 주소로 온 상품이라 뜯었는데 전액을 배상하는 것은 억울하니 양쪽에서 반반씩 손해 보자고 한단다. 남의 물건을 가졌으면 그와 똑같은 물품으로 배상하는 것이 옳은 처사일 터인데 이게 무슨 경우 없는 망발인가. 잘못이 내가 크다느니 그쪽이 크다느니 하며 가리려니 번설을 늘어놓는 것 같아 구구하다. 종당에는 반값을 물을 수 없다고 딱 잘라서 말했다.
명판관이라면 어떻게 판결하였을까. 보낸 사람이 잘못 보냈으니 반값을 내라고 판결을 낼지도 모른다. 남의 물건에 손을 댔으니 그 사람에게 전액 배상하랄 수도 있겠다. 본인에게 발언하라면 모두 억울하다며 구구한 변명이 줄레줄레 나올 것 같다.
명절 즈음해서 택배 오배송으로 사회적 문제가 되는 일이 종종 있나 보다. 뉴스 사회면에서 남의 택배를 뜯어보거나, 내용물을 처리할 경우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기사도 뜬다. 처벌에 앞서 양심의 문제가 아닐까.
상품업체 사장도 난감했겠다. 한 개라도 물건을 더 팔아야 할 판에 반값만 받게 생겼으니 난처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한참을 이리저리 궁리하더니 체념한 듯 본인이 손해 보고 물건을 보내준다고 마무리를 짓는다. 중소 유통업체인 사장의 두 마음은 오죽 분분했으랴.
선물 소동은 진정이 되었지만, 기분은 내내 찝찝했다. 내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지 않는 것만 생각하고 업체가 손해 보는 것에 나 몰라라 한 이기심이 죄스럽다.
이기심이 이성을 자꾸 짓누른다. 타인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다가 나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다. 남에게는 칭찬에 인색하면서 나에게는 푸지게 해주길 바라고, 다른 사람의 장대 같은 아픔은 안 보이고 내 손톱 밑의 가시만 보인다. 내 권리는 꿋꿋하게 주장하면서 남은 적당한 선에서 양보하길 바란다. 다른 사람에게 해준 일은 대단하고 내가 받은 것은 시답잖다. 동전의 양면처럼 두 마음이 천양지차다.
탐심과 자족, 이기심과 이타심이 하루에도 열두 번씩 시소처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 오르락내리락하다가 안분지족安分知足에 머물기를, 하나라도 더 가지려 아등바등하지 말고 배려하며 살아가기를 갈망한다. 줄비가 쏟아지는 날, 빗방울이 제 몸에 차기 무섭게 일렁일렁하며 연신 덜어내는 연잎처럼 연방 차오르는 욕심보를 더끔더끔 비우기로 마음먹는다.
‘딩동’ 또 택배가 도착했다. 고마움의 씨줄과 나눔의 날줄을 촘촘히 엮고 사랑의 하트 무늬를 두툼하게 넣어 ‘명절’ 한 필을 짜야겠다. 100년 만에 뜬다는 가장 둥글고 큰 보름달이 내 품에서도 환하게 뜰 것 같다.
첫댓글 카스타고 바로 읽었어요. 간식 먹다 간식이 계속 입속에 머물다가 목매이고요.ㅋ
콩나듯 도타운, 더끔더끔 정겨운 단어가 보여요. 연륜도 느껴집니다.
단어를 정확히 몰라도 유추가 되면서 입가가 저절로 늘리네요.
고생하신 글 편히 읽었어요.
감사합니다.
담주 제 차례인데, 화투를 인쇄할까 어젯밤에 부랴부랴 쓴 감인 듯 인쇄할까 고민이에요.ㅡㅡ
답글 감사해요.
오랫동안 다져진 필력으로 쓰신 합평작품이 기대됩니다.
약간 해학적이면서도 마구 웃을 수 없을 정도로 인간의 내면을 세밀하게 파 헤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좋믄 맔씀 고맙습니다.
우리는 이기심과 이성 사이에서 늘 시소타기를 하지요. 두 마음이 나란할 때 정의로운 결정을 내리기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일상에서 흔히 겪는 두 마음의 갈등을 쉽게 풀어 공감을 얻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축하드립니다.
축하는 무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