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의 코미디 프로가
모두 사라졌다 한다
그 판에 웃던 코미디언들은
다 어디로 팔려 갔을까
맨땅에 머리 박고
구두코에 광을 내도
더 이상 빛날 곳 없는
웃음, 팔 곳 없는 웃음들
모두 울음이 되었을까
땡볕 들끓는 저 허공 속
7년 질긴 어둠으로 담금질한
창창한 악보 내걸고
울음과 웃음 사이
목숨줄 당겨 활을 켜는
매미들의 열창 앞에서
무대 잃어버린 코미디언처럼
나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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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인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모든 텔레비전 방송에서 코미디 프로그램이 사라졌다. 실은 사라진 줄도 몰랐으나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오래된 기억 속의 어느 개그맨이 그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코미디 프로그램이 사라졌다고 해서 내 삶에 하등의 변화가 있을까마는 아쉽고 섭섭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
어린 시절의 '웃으면 복이 와요'로부터 최근의 '웃찾사', '개그 콘서트'에 이르기까지 코미디 프로그램은 대한민국 중장년 세대에게 잊힐 수 없는 일상의 무늬로 각인되어 있다. 코미디언과 개그맨들이 온몸을 부려 던지는 해학과 풍자는 힘에 부치고 추레한 우리들의 삶에 활력소가 되기에 충분했다. 코미디나 개그 프로그램이 방영되는 시간만큼은 얽히고설킨 삶의 미로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활짝 웃을 수 있었는데, 이제 그들의 자리가 모두 먹방이나 (잡담 수준의)토크 등속의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예능(?) 프로그램으로 변질되고 말다니!
그렇다면 웃음판을 주도했던 그 많던 코미디언과 개그맨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라디오 방송에 출연했던 그 개그맨의 말로는 코미디를 대신할 다른 예능 프로그램을 찾아 방송가 주변을 기웃거리거나, 그도 아니면 궁벽한 소도시 주점의 날품팔이로, 심지어 구두닦이로 생계를 이어가는 이도 있다고 말하며 쓸쓸하게 웃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영속할 수 없다. 하지만 갑자기 나와 나의 가족을 지탱하던 삶의 터전이 송두리째 사라지는 충격적인 경험은, 몇 마디 짧은 웃음을 위해 울음으로 몸부림친 그들의 길고 험난한 무명의 시간을 생각하면 허무하다 못해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의 웃음은 대중을 웃기기 위해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특별하고 애달프다. 그들의 웃음은 자연발화가 아니다. 그들은 웃음을 의도하고 구상하고 기획하고 연출한다. 단계마다 치열한 고민과 열정, 뼈를 깎는 노력을 투입한다. 그들이 만들어 낸 웃음의 원천은 웃음이 아니라 울음이다. 그들의 몸은 울음을 투입해 웃음을 생산하는 공장, 공장 노동자에 다름 아니다. 울음으로 웃음을 만들고 웃음을 팔아 생존한다. 울음과 웃음 사이에서 그들의 삶이 힘겹게 버티고 있다. 그들의 울음은 길고 웃음은 짧다. 짧은 한철 생존하는 매미를 닮았다. 7년 동안 땅속 깊이 박혀 있던 울음을 단 며칠 만에 한꺼번에 토해내는 매미의 열창이 뜨겁다. 뜨거운 열창의 한가운데에서 코미디언들의 울음을 듣는다. 그런데 그들에게 울음을 토해낼, 웃을 자리가 없다니! 묵힌 울음을 데리고 경쾌한 웃음의 자리로 다시 돌아올 그들이 몹시 기다려지는 하루가 저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