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1차 광제산(廣濟山)-520m
◈산행일:2005년07월03일 ◈날씨:오전-비/오후-비
◈위치: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면사무소 광장
◈참가인원:42명 ◈산행소요시간:7시간30분(08:55~16:25)
◈교통(태양고속관광제웅식기사):마산(07:13)-산인요금소(07:23)-문산휴게소(07:46-08:18)-서진주요금소(08:30)-명석면사무소광장 하차(08:43)
◈산행구간:명석면사무소→208.1봉→광제봉→신기고개→550봉→무너미고개→집현산→동봉→월명암→미천면안간리
◈산행안내 : 전체(김기수) 선두(전임수), 중간(박장식), 후미(신종섭)
◈특기사항 : 경상남도 의령군 의령읍소재 혜성사우나에서 목욕
◈산행메모: 장마기간이라 우중산행이 될 거라는 각오는 벌써 되어있었다. 어제오후에 오늘은 전국적으로 100㎜내외의 강우량을 보이겠다는 예보가 내려졌다. 집을 나서니 한두 방울 내리는 비라 우산을 받칠 상황은 아니다. 서진주요금소를 나와서 3번국도를 따라 산청함양방향으로 진행한다. 명석면내 기관들의 위치를 알리는 표지판을 만나서 우회전하니 명석면사무소다. 면사무소에서 하차하니 장대비가 시작된다.
면사무소 현관에서 배낭을 손질하여 면사무소를 오른쪽에 끼고 직진하니 개소리가 시끄럽다. 웰빙등산로 안내판 앞에서 좌로 흙계단을 따라 5분 가까이 가파르게 오르니 널찍한 길이 가로지르는 능선갈림길이다. 오른쪽으로 밋밋하게 올라간다. 왼쪽에서도 올라오는 길이 있었다. 토종 솔숲 아래 능선 따라 자갈을 깔아 가볍게 오르내린다. 체육기구도 설치된 쉼터를 사이사이에 조성하였다. 자갈길로 오르내리지 않고도 소나무 숲으로 우회하는 오솔길도 있다. 진주시에서 의욕적으로 설치한 웰빙등산로로 전국에 걸쳐 알려진 곳인데 과연 이름에 걸맞다는 느낌이다. 산행시작 30분인데 지도상의 208.1봉을 만난다.
여기서도 체육시설이 있는 쉼터다. 빗줄기가 약해져 모자를 벗으니 날아갈 듯한 기분이다. 바람 한 점 없다. 가스로 시정거리는 100m안팎이다. 10분 후 명석3㎞↔광제산7㎞ 이정표를 만난다. 어느새 자갈길은 산길로 변했다. 왼쪽으로 틀면서 내려가서 치고 오른다. 빗줄기가 강해지며 우의에 달린 모자를 다시 쓰고 그 위에 등산모자를 눌러쓴다. 작은 오르내림이 반복되며 광제산5㎞ 이정표를 만난지 22분만에 광제산4㎞ 이정표다(10:30). 바람은 없고 우의의 모자라도 벗었으면 하는 마음인데 비의 협조가 없다. 30분 후에 광제산2㎞ 이정표를 만나며 정면으로 구름이 걷히고 높은 봉우리가 다가온다. 시설물도 있는 듯한 게 광제산 정상이라고 생각하는데 구름에 다시 둘러싸인다. 정상1㎞ 이정표에서 빗줄기가 굵어진다. 힘차게 올라가서 잘록이를 지나니 넓은 길이 되며 위로 치솟는다. 잠시 주저앉기도 하면서 10분간 숨차게 오르니 약샘 갈림길이다. 오른쪽에 돌담을 좌로 끼고 따라가니 작년에 복원했다는 광제산봉수대다. 올라서니 앞서간 일행들이 기다린다(11:50-12:20).

봉수대표석에서 기념촬영을 한다. 어느새 비가 그치고 더 이상 내리지 않을 듯하여 우의를 접어서 배낭에 넣는다. 이른 시각이지만 식당을 차린다. 돌이 깔려있는 장소라 식당자리로 안성맞춤이다. 식사가 끝날 무렵에 B코스를 택한 회원들이 올라온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수월한 코스를 택한다는 것이 결과는 고생길이었단다. 봉수대 가장자리를 따라 둥글게 돌아가며 쌓은 돌담 안으로 조망안내판도 있다. 봉수대표석 왼쪽에 있는 전망안내판에는 월아산, 망진산, 와룡산, 금오산이, 세 개의 돌탑 왼쪽 전망안내판에는 지리산천왕봉, 웅석봉 아래에 경호강, 둔철산, 황매산이, 봉수대표석 뒤에 있는 전망안내판에서는 집현산, 신기리저수지, 자굴산, 신기마을, 방어산이 조망된다는데 구름으로 싸여있어 그 방향만 보며 짐작만 할 뿐이다. 광제산봉수대 안내판도 서 있다.
〈진주시명석면 덕곡리에 있는 광제산봉수대는 경상남도기념물 제158호로 지정되었다. 봉수는 횃불과 연기로 국경지방과 연안에서 적의 동태나 민정의 긴급한 정황을 중앙정부나 鎭營에 신속하게 알리기 위하여 정치, 군사적인 필요에 의하여 설치한 통신제도이다. 광제산봉수대는 조선세종때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며 남산↔동래선인 直烽을 보조하는 間烽으로 남으로 망진산, 북으로 단성의 입암산 봉수와 상응하였다. 현재는 火口와 봉수대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돌더미가 사방에 흩어져있다.〉
그 옆으로 요즘 세워진 듯한 ‘광제봉수대를 아십니까’라는 안내판이 발걸음을 붙잡는다.
〈광제산의 특징 ☞명석은 보국충석으로 널리 알려진 자웅석(도민속자료제12호)의 애국혼을 바탕으로 태동한 고장으로 자연생태계가 살아있는 아늑한 광제산자락에서 순박하고 근면한 사람들이 소박하게 살아왔습니다. ☞광제산은 백두대간인 덕유산에 뿌리를 두고 금원산, 황매산을 거쳐 집현산을 일구었고 두줄기로 나뉘어져 동쪽으로 달려나간 진주비봉산세와 함께 서쪽으로 부드러운 형상으로 뻗어나가 후덕한 봉우리를 이룬 산입니다. 이 산세는 진주숙호산으로 이어져 이현, 신안, 평거, 판문동일대를 품에 안고 있습니다. ☞廣濟라는 말은 넓게 백성들을 구제한다는 의미로 큰 덕을 의미하는 덕곡마을이 산아래 남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북쪽의 집현산봉우리 사이 고개를 무넘이고개 라고 하는데 전설에 의하면 천지개벽시 물이 넘나들던 고 개라는 의미이며 당시 물에 잠기지않은 산이 집채만큼 남았다 고하여 집현산, 광주리만큼 남았다 고하여 광제산이라 전합니다. 광제봉수대의 역사 ☞조선시대봉수는 경봉수, 연변봉수, 내지봉수로 구분되어 모두 서울남산으로 연결되었으며 직봉402, 간봉271개가 있었습니다. ☞봉수대는 정세의 완급에 따라 평상시 1거, 적이 해상에 나타나면 2거, 적이 해안가까이 오면3거, 병선과 접전하면 4거, 왜적이 상륙하면 5거씩 올렸습니다. ☞광제봉수대는 전국의 5개 직봉가운데 동래다대포진에서 서울에 이르는 제2간봉으로 남쪽으로 남해금산→창선대방산→사천각산→사천안점→진주망진산과 북쪽으로는 산청신안 벽계봉수대→합천금성산→충주망이산으로 전달되었습니다. ☞봉수대는 수령이 관장하고 오장과 봉수군인 방정2명 백정30명이 근무하였으며 녹봉은 평전1결씩을 지급하였습니다. 봉수군은 출퇴근 교대근무를 위해 부근 주민을 채용하였고 봉화간이라는 낮은 신분을 주었습니다. ☞광제봉수대는 420M높이의 낮은산에 소재하지만 주변의 시야가 완벽하고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이 접근하지 않아 봉수대가 비바람에 무너진 채 원형을 유지하고 있어 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특히 당시의 돌을 사용 2004년 복원을 완료함으로써 광제봉수대의 원형을 알 수 있는 이고장의 자랑스러운 유산으로 우리모두가 아끼고 가꾸어야할 소중한 문화재입니다.〉
되돌아가 갈림길에서 약샘 방향으로 내려가니 집현산6㎞ 이정표를 만나는데 작은 봉에 오르니 광제산0.3, 집현산6㎞ 같은 이정표다(12:25). 오르내림이 이어지며 전체적으로는 표고가 낮아진다. 집현산4㎞ 이정표에서 5분간 진행하니 비포장 찻길이다(12:55). 지도상으로는 신기고개다. 오른쪽에서 올라와 여기서 멈추는 자갈길이다. 길따라 내려가서 왼쪽 산길로 올라 작은 봉을 넘으니 집현산3.5㎞ 이정표를 만나고 진행하니 칠편산이다. 오른쪽으로 밋밋하게 가서 아래로 쏟아지니 임도를 만난다(13:34). 지도상의 청현고개다. 임도를 가로질러 숲길로 올라간다. 장대비가 시작되며 길이 삽시간에 물도랑으로 변한다. 우의를꺼내려니빗줄기가 약해져 그대로 올라간다. 묘지를 지나니 무릎이 가슴에 닿는 가파른 오름길이 시작된다. 나무허리로 매어진 줄을 만나고 줄을 당기며 숨차게 올라간다. 네 번째 줄까지 통과하니 시야가 트여 긴장을 풀려는데 새로운 봉이 또 기다린다. 묘지를 지나는 편평한 길(14:00)에서 숨을 골라 다시 오르니 또 줄이다. 잠시 쉬기도하며 숨차게오르니 갈림길인 550봉이다(14:20). 왼쪽은 집현산이란다. 직진길로 8분쯤 내려가니 무넘이고개 표지판이다. 왼쪽에 봉을 끼고 밋밋하게 산허리를 돌며 8분간 내려가서 왼쪽으로315도로 꺾어 올라간다. 빗방울은 멈췄는데 바람한점없고 안개가 자욱하다. 20분가까이 오르니 능선갈림길이다. 왼쪽은 무넘이고개에서 올라오는 직진길로 여겨진다. 오른쪽으로 5분간 밋밋하게 올라가니 표지석이 있는 집현산이다(15:00-10).

안개로 방향감각이 없다. 약한 빗방울이 떨어진다. 산불감시초소와 돌탑이 있고 집현산의 유래 안내판도 서 있다.
〈집현산은 해발572m로 우리시 관내에서 가장 높은 산이며 국시봉과 집현산 동봉을 중심으로 북으로는 산청군신안면, 생비량면과 경계를 이루고 진주시 행정구역상으로는 집현면, 미천면, 명석면의 3개면에 걸쳐있는 산이다. 이 산에는 전통사찰 제61호로 지정관리중인 웅석사를 비롯하여 월명암 등 많은 암자가 있고 예로부터 민간신앙과 관련하여 구전되어 오는 설화가 있는데 그중 집현산의 소나무에 얽힌 전설은 다음과 같다. ‘옛 고려시대에 한 선비가 이곳을 지나다가 산세가 험하고 웅장한 것을 보고는 이 세상에 태어나 이렇게 요상한 산세를 본 일이 일찍이 없으며 용이 승천한 것이 틀림없다고 혼자말로 중얼거리며 지나가는데 마침 어린 꼬마가 그 말을 엿듣고는 선비를 붙잡고 이 지역에 가뭄과 수해 등의 재해가 많이 일어나는데 왜 그런지 가르쳐달라고 통사정하였으나 이곳 백성들이 죄를 범하여 지금 벌을 받고 있다고만 말하고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그 후에도 계속되는 가뭄과 수해로 농사는 안되고 주민들은 병들어 죽어가며 주민들의 수가 점차 줄어들고 있었는데 그 때의 어린 꼬마가 어느덧 청년이 되어 그때 선비가 말한 것을 회상하고는 무엇인기 짚이는 데가 있어 집현산으로 입산하였다. 청년은 집현산 구석구석을 헤매다가 큰바위 옆에서 그때 그 선비가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어 기도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두 손 모아 무릎을 꿇고 빌며 선비에게 재난을 풀어주도록 울면서 호소하자 마침내 선비가 입을 열어 이야기를 했는데 그 이유인즉 내가 바로 승천할 용인데 내가 승천할 때는 아무에게도 그 모습을 보이지 않아야 하는데 이곳 주민들이 나를 보고는 승천하는 용을 보라고 고함을 질렀기 때문에 나는 이승에서 고생을 하고 주민들은 벌을 받고 있다고 말하고는 번개와 함께 사라졌다. 그 후 청년은 매일같이 집현산에 올라 기도를 올렸는데 100일이 지날 즈음 청년은 지쳐 그 자리에서 죽고 마을주민들은 청년의 애절한 심정을 애도하고 추모하는 뜻에서 계속 집현산에서 빌고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번개가 치면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나기가 대지를 적시자마자 농작물은 일시에 소생하고 병든 주민도 회생하여 평온을 되찾게 되었다’ 이 전설로 지금도 집현산에는 집안에 우환이 있거나 걱정거리가 생기면 산 정상 소나무 밑에서 기도를 올리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여기서 동봉까지 1.4㎞란다. 동봉을 향하여 진행방향으로 밋밋하게 내려가니 억새밭이 이어지며 헬기장도 서너 곳 만난다. 왼쪽으로 후어지며 밋밋하게 오르니 소나무숲 아래 갈림길인 동봉이다(15:40). 월명암1.0㎞ 방향으로 우회전한다. 밋밋하게 진행하다가 왼쪽으로 틀어 키보다 낮은 솔밭을 내려가니 비포장도로다(15:57). 왼쪽으로 내려가니 시멘트길로 변하며 월명암갈림길을 만나고 여기서 오른쪽으로 향하니 가파르게 쏟아지는 길이 구불구불 지겹게 이어진다. 2005년의 첫 매미소리가 들려온다. 경사가 작아지며 오른쪽 개천은 흙탕물이 힘차게 내려간다. 미천면안간마을을 지나니 33번국도를 만나며 산행이 끝난다(16:25). 월명암2.4㎞ 이정표를 보니 오늘 걸어온 거리가 계산된다. 명석←10.0→광제산←6.3→집현산←1.4→동봉←1.0→월명암←2.4→33번국도삼거리. 차량이동시간이 짧고도 산행시간은 넉넉한 실속 있는 코스였다.
☆조대호회원제공 후렴잔치(17:00~18:18)-미천면소재지(18:20)-양천휴게소통과(18:25)-목욕(18:55-20:05)-의령요금소(20:19)-산인요금소(20:30)-마산도착(2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