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나는 애도한다, 고로 존재한다
— 빈센트 반 고흐, 《까마귀가 나는 밀밭》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까마귀가 나는 밀밭(Wheatfield with Crows)>1890, 캔버스에 유채, 50.2 x 103 cm, 반 고흐 미술관(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소장.
① 눈부신 풍경이 건네는 잔인한 위로
세상이 온통 무채색으로 변해버린 것만 같은 날이 있다. 삶의 가장 거대한 존재가 영원히 사라진 자리, 그곳에 남겨진 슬픔은 사방의 모든 색채를 단숨에 앗아가 버린다. 그런데 참 잔인하게도, 그런 날일수록 창밖의 햇살은 더욱 눈부시게 쏟아진다.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계절의 옷을 갈아입고, 야속할 만큼 아름다운 빛을 품어낸다. 그 찬란한 풍경 앞에 홀로 서 있을 때면 마음속 슬픔은 오히려 더 선명해지고, 폐부 깊숙이 스며든다.
빈센트 반 고흐의 《까마귀가 나는 밀밭》을 오래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주하게 되는 것도 바로 그 감정이다. 너무 아름다워서 더욱 슬프고, 너무 눈부셔서 차마 오래 바라볼 수 없는 풍경. 이 그림은 죽음을 그린 그림이라기보다, 상실 이후에도 여전히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는 인간의 운명을 그린 풍경처럼 다가온다.
② 단 2년의 불꽃, 그리고 밀밭의 미스터리
우리가 사랑하는 화가 고흐의 삶은 서른일곱 해라는 짧은 여정이었다. 그는 스물일곱의 늦은 나이에 그림을 시작했고, 불과 10년 남짓 붓을 들었다. 그러나 미술사는 그의 가장 위대한 작품들이 생애 마지막 2년 동안 폭발하듯 탄생했다고 말한다. 가난과 외로움 속을 헤매던 그는 프랑스 아를의 강렬한 햇빛을 만난 뒤 비로소 누구와도 닮지 않은 자신만의 색채와 붓질을 얻었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은 그가 생애 마지막 시기를 보냈던 프랑스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제작한 대표작 가운데 하나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이 그림을 죽음을 예감한 화가가 남긴 마지막 절규처럼 읽어왔다. 먹구름 아래를 가로지르는 까마귀 떼와 어디에도 닿지 못한 채 끊어진 세 갈래 길은 절망과 불안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또 다른 해석도 존재한다. 고흐의 죽음을 둘러싸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기존의 견해와 함께, 마을 소년들의 총기 오발 사고였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연구도 이어지고 있다. 진실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지만, 총상을 입은 고흐가 경찰에게 "누구도 원망하지 마시오. 내 뜻으로 한 일이오."라고 말했다는 기록은 여전히 깊은 여운을 남긴다.
만약 오발 사고설이 사실이라면, 그 말은 소년들의 삶을 지켜주려는 침묵이었을 수도 있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 태도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였다. 그 한마디에는 인간 존재가 감당해야 하는 고독과 연민이 함께 스며 있다.
더욱이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무렵의 밀밭 연작에 대해 슬픔과 극도의 고독을 담고자 했지만, 동시에 시골 풍경이 지닌 건강함과 생명의 위로 또한 그리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그렇기에 이 그림은 죽음의 예고장이 아니라 절망과 생명, 어둠과 빛이 끝없이 맞서는 인간 존재의 초상으로 읽힌다.
③ 슬픔을 환대하는 법, 애도가 증명하는 실존
이러한 시선으로 그림을 다시 바라보면, 화면을 가득 메운 황금빛 밀밭은 죽음의 그림자가 아니라 강렬한 삶의 의지로 다가온다. 여름의 생명력으로 넘실거리는 밀밭은 바람을 따라 거칠게 흔들리고, 깊고 푸른 하늘과 황금빛 들판은 서로를 더욱 찬란하게 빛낸다.
그 눈부심이 오히려 너무 서글퍼서, 이 그림 앞에서는 말없이 눈시울이 젖는다. 비극의 한복판에서도 삶은 여전히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고흐는 마지막까지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죽음을 그리기 위해 붓을 든 것이 아니라, 허락된 시간을 끝까지 살아내기 위해 붓을 놓지 않았다.
동생 테오의 품에서 숨을 거두며 빈센트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슬픔은 영원하다."
(La tristesse durera toujours.)
그가 말한 영원한 슬픔은 극복해야 할 감정이 아니라 인간 존재가 평생 품고 살아가야 하는 근원적인 고독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에게 슬픔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지형 자체를 바꾸어 놓고, 남은 생애 동안 함께 걸어가야 하는 또 하나의 운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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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애도 철학을 빌려 표현한다면, "나는 애도한다, 고로 존재한다." 애도란 떠나간 이를 망각하는 일이 아니다. 부재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부재를 품은 채 살아가는 일이다. 고흐가 캔버스 위에 인간의 고독과 운명을 끝내 외면하지 않았듯, 애도 또한 상실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이 끊어진 길 위를 날아오르는 까마귀들은 더 이상 불길한 징조가 아니다. 그것은 먼저 떠난 이가 남겨둔 기억의 파편이며, 사랑했던 사람을 잊지 않으려는 존재의 가장 깊은 그림자다.
슬픔은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슬픔을 품은 채 한 걸음씩 다시 걸어가는 사람 안에서 애도는 삶이 되고, 기억은 사랑이 된다.
어쩌면 인간은 살아가는 존재이기 이전에, 끝없이 애도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바로 그 애도 속에서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완성해 간다.
첫댓글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_()_
기억은 사랑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
“나는 애도한다.고로 존재한다”
…고맙습니다.나무아미타불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_()_
<까마귀가 나는 밀밭>을 배경으로 들려주신 고흐 이야기, 슬픔과 기억, 그리고 삶에 관한 이야기 곱씹어봅니다. 제가 함께 동고동락한 분들 가운데 몸을 벗은 이들을 추억해봅니다. 그러노라면 또렷하게 영상이 떠으르고 그분들의 에너지가 느껴지니, 여전히 함께 하고 있음이겠지요. 새롭게 고흐의 그림을 새겨보고, 고인들을 추억하게 해주신 미재님, 고맙습니다.아미타불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