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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절 후 여섯 번째 주일
성경 ; 삼하7:1-14, 엡2:11-22, 막6:30-34, 53-56
제목 ; 주님을 위하여 좋은 계획을 세우십시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공간 안에는 수많은 전파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물론이요, 각 나라 각 방송국에서 쏘아대는 엄
청나게 많은 전파가 계속 파도치듯 넘실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TV나
라디오를 가지고, 수많은 전파들 중에서 원하는 방송의 전파와 주파수를 맞추
면, 그 방송을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방송뿐이겠습니까? 오늘 우리에게
없으면 안 될 것처럼 되어버린 휴대폰도 사실은 전파를 이용해서 음성을 교환
하고 있습니다.
만일 전파가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우리 인간은 결코 살아남을 수가 없으
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수많은 전파는 그 주파수에 따라 색깔
이 다 다르게 나타나 보일 것이고, 그러면 그 형형색색의 전파들이 우리 주변
을 꽉 채우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전파에 의해서 완전히 갇혀
사는 느낌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우리는 도저히 답답해
서 살 수가 없을 것입니다. 참으로 다행히도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그런 일
은 발생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와 축복도 어쩌면 그와 같이 우리
인간에게 다가오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반면에, 악한 세력은 저주
와 파멸을 담은 메시지를 전파로 우리에게 쏘아대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
람들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축복의 주파수와 사이클을 맞추면 복을 누리게 되
는 것이고, 반대로 악한 세력이 보내고 있는 주파수에다가 우리의 사이클을 맞
추면 불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보내시고 있는 주파수가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그
주파수와 잘 맞추어서 동조(同調)하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도
록 방해하는 세력이 아주 많아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축복의 전파를 잘 잡으려면, 그 방법을 잘 익혀야 합니다.
전에 이곳 학운에서 살 때에는 일반 안테나만 가지고서도 TV를 얼마든지
깨끗하게 시청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일반 안테나 가지고서는 TV
를 제대로 시청할 수가 없습니다. 그만큼, 전파를 방해하는 것들이 많아졌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스카이라이프에서 제공하는 접시 안테나를 달아
야만 TV를 시청할 수 있습니다. 알다시피, 접시 안테나는 인공위성에서 보내
주는 전파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지금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도록 방
해하는 세력이 엄청 많아졌습니다. 무슨 계모임이나 동창회, 그리고 무슨 행사
든지 주일에 갖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결혼식과 회갑잔치도 대부분
주일에 갖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요즘에는 무슨 회식이 그렇게 많아졌
는지, 이제는 여자들까지도 2차 3차 갔던 이야기를 TV에 나와서 얼굴색 하나
붉히지 않고 스스럼없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과 코드를 맞추기가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더군다나, 하나
님께서 보내시는 축복의 전파를 제대로 수신하려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사이
클을 잘 맞추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흐트러진 마음자세와 혼미한 정신
을 가지고 어떻게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축복의 전파를 수신할 수 있겠습니
까?
어떤 사람들은 악한 세력이 보내고 있는 전파에다가 열심히 주파수를 맞
추어가면서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참으로 딱하기 그지없
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과는 전혀 다른 쪽을 향하고
있으면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축복을 받으려고 하니,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
까? 접시 안테나는 인공위성이 떠 있는 쪽을 향하여 설치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반대로 설치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다윗은 하나님과 함께 하려고 어지간히 애쓴 사람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
하면, 그가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삶을 살고자 무진 애를 썼다는 이야기입니
다. 지난 시간에는, 다윗이 오벳에돔의 집에 있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오
면서 엄청 기뻐했다는 말씀을 전해드렸습니다. 오늘은 다윗이 하나님을 모실
성전을 짓고자 계획했던 일을 통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사무엘하 7:2 말씀을 보면, 다윗은 나단 선지자에게 “나는 이렇게 송백으
로 지은 왕궁에서 호화롭게 살고 있는데, 하나님의 법궤는 아직도 천막 안에
있으니, 이래서야 되겠는가?”라고 말하면서 성전건축에 관한 계획을 밝혔습니
다. 그런데, 그날 밤, 하나님이 나단 선지자에게 나타나셔서 다윗의 성전건축
계획을 허락할 수 없다고 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다윗의 그 마음만은 좋게 여기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다윗이 하
나님의 마음에 드는 일을 하고자 애쓰는 그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은 기뻐하셨
던 것입니다. 다윗이 전쟁에서 사람을 많이 죽였기 때문에 거룩한 성전을 짓기
에는 합당치 않아서 허락하시지 않았지만, 그 마음만은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엄청난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다윗
이 성전건축을 하지 않았지만, 그 정성스러운 마음을 보시고 많은 축복을 하셨
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축복하신 내용이 사무엘하 7장 9절 이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선, 하나님은 다윗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네 편이 되어 무슨 일이든지
그 일이 잘되게 도와주었다.”고 하시면서 “앞으로도 계속 너를 도와주어, 네가
세상에서 영원히 위대한 사람들 중의 하나가 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
다. 그리고 이어서 축복하시기를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안전한 거처를 주고,
그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백성이 다른 나라를 두려워하거나 억눌림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해주
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다윗에게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네가 죽게 되더라
도, 나는 네 아들을 왕으로 세워 그 나라를 튼튼히 세워주겠다. 그리고 나는
그의 나라가 영원히 지속되게 할 것이다.”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은 다윗에게 엄청난 축복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약속을 이뤄주셨습니
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다윗이 이런 축복을 받게 된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마
음에 드는 삶을 살고자 모든 노력을 기울이며 애썼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다
시 말해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은혜와 축복의 주파수에 맞추어 살
려고 힘썼기 때문에, 그처럼 놀라운 축복을 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용규 선교사님의 ‘내려놓음’이라는 책에 대해서 잘 아실 겁니
다. 그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우리는 인생의 계획표를 백지인 채로 하나님께 넘겨드리는 것을 주저한
다. 그 대신, 우리가 작성한 계획표를 하나님께서 보시고 결재해주시기를 바란
다. 마치 사장실 문 앞에서 결재 서류를 들고 조마조마하게 기다리는 직원들처
럼, 우리는 우리가 세운 계획대로 하나님께서 결재해주시기를 기대하고 있다.
우리가 이처럼 인생의 계획을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하나님께 네 인생
을 걸면, 너는 그때부터 망하는 거야! 그야말로, 인생의 재미는 다 끝나고 마
는 거다. 그리고 네가 하고 싶었던 모든 일도 포기해야 되는 거야!’하고 말한
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고 말씀하시는 이유
는, 우리가 그것들을 내려놓았을 때에, 그것이 진정으로 우리의 것이 되기 때
문이다. 우리가 그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
장 좋은 축복은, 그야말로 세상이 줄 수 없는 참 자유와 평강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던 그 축복을, 오늘 우
리도 받아 누릴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윗이 하나님
의 마음에 들도록 살려고 노력했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또한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삶을 살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야말로, 우리의 접시 안테
나를 하나님께 향하고, 그분이 원하시는 뜻을 이루어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요?
1.지난 모든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과 가까워져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시다. 그분은 우리와 이
방 사람들을 한 가족으로 만들고 우리 사이를 갈라놓았던 벽을 허물어뜨리셨
다(엡2:14)’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서 우
리 사이에 있던 강한 적대감과 분노를 제거하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자신이 희생제물이 되심으로써 사람들을 화목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알다시피, 예수님은 아무런 죄가 없으셨습니다. 하지만, 우리
로 하여금 서로가 화목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하려고, 우리의 허물을 대신 뒤집
어쓰셨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이 우리 대신 희생양이 되신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6절 말씀을 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말하
기를 ‘우리는 이제 한 몸이 되었다. 서로간의 분노는 사라져버리고, 양쪽이 다
하나님과 화해했다. 불화는 십자가에서 드디어 끝이 난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우리 속에서 분노가 완전히 사라졌습니까? 사실 예수
를 믿는다고 하지만, 아직도 우리 속에는 분노가 남아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누군가를 향한 분노가 우리 속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죄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 죄를 없애시기 위해서 그 아들 예수를 희생제물
삼으셨건만, 우리는 그 무엇이 그토록 억울하고 속상한지, 우리 속에서는 분노
와 억울함이 이글이글 끊고 있습니다.
이 분노가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는 하나님과 가까이 지낼 수가 없습니
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통로가 막힌 그대로 지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행복한 인생을 살
고자 원한다면, 우리 속에 있는 분노를 제거하도록 해야 합니다. 어떻게 말입
니까? 그거야 물론, 아무 잘못도 없으신 예수께서 우리 대신 죽으셨다는 사실
을 기억하고, 우리 죄를 일체 따지지 않고 무조건 용서하신 하나님의 그 사랑
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자신이 참으로 억울하며 속상하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은 아주 냉정하게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자신은 다른 사람을 억울하게 하거
나 속상하게 한 일이 없는지 말입니다. 대개 일반적으로, 분노가 많은 사람일
수록 다른 사람을 분노케 하거나 속상하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프랑스의 철학자인 ‘폴 사르트르’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지성인 중의 한 사
람이고 실존주의 철학자였습니다. 그는 또한, 무신론자로서도 아주 유명했습니
다. 그는 말하기를 ‘인간은 종교적인 가르침이 없이도 충분히 선하게 살 수 있
다’라고 하면서, 천국과 지옥에 관한 기독교의 교리를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그
사람 때문에, 많은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르트르는 노년에 ‘폐수종’이라는 병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담당
의사는 프랑스의 자랑인 대철학자에게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렸습니다.
그러자, 사르트르는 의사에게 욕을 하면서 물건을 마구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이런 발악은 임종을 맞이할 때까지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병원에서는, 그가 인생철학을 정립한 노학자이기에 담담하고 품위 있는 죽
음을 맞이하리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보통 사람보다 더 크게 반항하고 행패를
부리는 모습을 보고서는 아주 몹시 당황하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는 그의 명
성을 지켜주기 위해서 사람들의 면회를 제한했습니다.
얼마 후, 사르트르는 결국 죽었습니다. 그리고 죽음 앞에서 보여준 그의 반응
이 세상에 알려지자, 사람들은 매우 실망하면서 의아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인
간의 선한 의지와 자긍심을 주창한 대철학자가, 그 누구나 겪는 죽음 앞에서
그토록 두려워하면서 아주 비굴하게 죽어갔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의 한 지방 신문 기자가 그의 그런 모습을 보고서 이렇게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아마 어쩌면, 그가 심판의 하나님을 만날 생각을 하니, 그 사
실이 두려워서 그토록 공포와 두려움에 떨면서 죽음을 거부했던 것이다’라고.
오늘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잘못이나 허물 때문에 분노하기보다는, 자신의
죄를 생각하고 분노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 때문에 분노하게
될 경우에는 하나님과 결코 가까워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의 잘못을
생각하고 분노하게 된다면, 그는 곧 하나님과 가까이 지낼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죄와 잘못을 깨닫고 분노할 줄 아는 사람은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
이 얼마나 값지고 보배로운 것인지를 쉽게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은혜에 감사하면서, 다른 사람의 허물이나 잘못을 쉽게 용서할 수 있는 믿음과
능력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처럼 자신의 죄와 허물을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허물 때문에 분노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허물을 고치려는 노력
을 계속 기울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노력을 기울이다 보면, 어느 순간, 하나님께서 내 곁에 가까이 와 계
신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따뜻한 미소를 띠우면서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 붙잡아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과 손을 마
주 잡게 된다면, 우리 마음은 기쁨과 평안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해결 안 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우리의 문
제가 모두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2.우리는 주님께 속한 자라는 것을 잊지 말고, 예수님 중심으로 하나가 되
어 살아야 합니다.
대개 우리의 모든 문제는 나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심 때문에 발생한다
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고로, 내가 먼저 상대방의 입장과 처지를 생각
하면서 이해하려고 힘쓴다면, 우리의 문제는 거의 반으로 줄어들게 될 것입니
다.
다윗은 왕궁에서 편안히 지내면서 살 때, 텐트 안에 모셔둔 하나님의 법궤
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미안하게 생각한 나머지, 성전을 지으려는 계
획을 세웠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전쟁을 많이 했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성전
건축을 포기해야 했지만, 다윗의 그런 마음을 기쁘시게 생각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엄청난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마가복음 6장 34절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많은 군중이 모여 있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마치 목자 없는 양처럼 측은히 여기셨다.’고 했습니다. 이
것이 바로, 우리가 본받아야 할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잘못을 행하고 있는 사
람들을 비난하기보다는, 그들을 불쌍히 여길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중심으로 생각하고 살기 때문에, 다른 사
람의 입장을 먼저 돌아보는 일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는
아무런 허물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을 열심히 비난하거나 흉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주님께 속한 우리가 취할 태도가 아닙니다.
우리가 다윗처럼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면, 내 입장과 내 형편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내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일수록, 주님의 제자인 우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를 위해서 기
도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사랑을 베풀거나, 아니면 나에게 잘해주니까 사
랑을 베푼다면, 그런 것은 하나님의 관심을 끌만한 일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
아야 합니다. 주님께 속한 사람이란, 주님께서 그랬던 것처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할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그런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닌 사람들 중에는 각종 병을 앓고 있는 병자들이 많았습
니다. 그 사람들 중에서 어떤 이들은 ‘주님의 옷자락만이라도 만지게 해달라고
간청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주님의 옷자락을 만졌을 때에 그들의 병
이 치료되었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옷자락만 만졌어도 그 병이 나았으니, 오
늘 우리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가까이 하면서 열심히 기도한다면, 우리의 그릇
된 성품은 물론이요, 온전치 못한 인격까지도 깨끗하게 되고 성숙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위하여 좋은 계획을 세움으로써 큰 축복을 받았다고 했
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좋은 계획은, 마음 둘 곳이 없어서 방황하고 있
는 심령들을 위해서, 그들의 마음이 편안히 쉴 수 있는 처소를 만드는 일이 아
닌가 싶습니다.
어디에다가 그 처소를 만들 수 있을까요? 바로 우리 마음의 한 구석을 비
우고, 그곳에다가 세상에서 방황하고 있는 이들의 마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따지지 말고 그냥 받아들여야 합니다. 주님께서 병든 자와 가난한 자를 가까이
하셨던 것처럼, 우리 또한, 영적으로 병들고 지쳐있는 사람을 가까이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깨끗이 고침 받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은혜가 아니었으면, 영락없이 지옥형벌을 면할 수 없
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언제나 잊지 말고, 다른 사람을 향한
분노를 거두어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가 주님께 속한 자라는 사실
을 긍지로 여기면서, 허물이 많은 우리의 이웃을 불쌍히 여길 줄 아는, 축복된
심령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아무쪼록, 주님을 위하여 좋은 계획을 더 많이 세우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