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아지랑이 추억
누구나 저마다 가슴속에 담고 머릿속에 각인 돼 있는 그림이 있다. 특히 고향에 대해 아련한 추억 몇 가지씩은 다 가지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고향이란 향수는 평생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지리산 자락 아래가 고향인 나 역시도 그렇다. 멀리 바라보일락 말락 하는 지리산의 눈은 4월이 되어도 아직 다 녹지 않았다. 그런데도 고향 집 마당가 텃밭 가장자리를 따라 꽃나무가 만발한 모습, 때로는 냇가 버들강아지의 뽀송한 털 눈망울이 터오를 쯤 가지를 뚝 잘라 피리를 만들어 불며 골목 길을 깡충 깡충 뛰어다니던 추억의 꼬마친구들의 모습과 나른한 정오쯤의 낮닭 소리에도 봄 풍경이 떠오르는 그런 곳이 고향의 봄 풍경이다. 말하자면 마치 아지랑이처럼 그칠 줄 모르고 자꾸만 하늘로 피어오르는 추억이고 꽃잎 사이로 멀리 눈(雪)을 바라보는 풍경인 것이다.
그 여러 풍경 중에서도 내가 가장 궁금했던 진짜 ‘아지랑이의 진실’ 사건을 잊을 수가 없다.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것이 아지랑이다.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지랑이를 모르는 아이들도 많다. 아니 있어도 정취가 안 날 뿐이다. 운전을 하는 도로 저만치 앞에서 아스팔트위로 무언가 아른아른 피어오르는 것, 그것이 바로 도시의 아지랑이일 텐데, 그런 풍경으로 봄을 설명하기에는 무언가 삭막해 보인다.
아지랑이 하면 내 어릴 적 시골의 보리밭부터 떠올린다. 그런데 요즘은 시골에 가도 보리밭이 거의 없다. 있어도 군데군데의 논이나 밭에 조금씩 심어 놓았을 뿐 넓은 들판에 보리를 파종하지 않는 것이다. 보리는 가을에 심고 그 싹이 제법 푸르게 올라올 무렵 서리가 내리고 곧 눈이 덮어버린다. 때로는 추운 겨울에 언 서릿발이 땅거죽을 밀어 올리고 이때 뿌리가 얼지 않을까 염려해 온 식구들이 논에 나가 그 솟구친 흙과 보리뿌리를 꼭꼭 눌러 밟던 기억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봄기운이 깃들면 다시 눈 녹은 자리에서부터 파릇파릇 새싹이 올라오는데, 그것은 확실히 잔디의 ‘파릇파릇’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봄 아지랑이의 추억은 언제나 보리밭에서 피어오른다. 새봄 보리 새순이 한 10cm쯤 자라 올랐을 때, 보리밭 저만치에서 무언가 아른아른 눈길을 흔드는 증기 같은, 또는 연기 같은 것이 피어올라 신기루 같은 느낌을 내게 준다. 참 이상하다. 저기 보리밭에서 누가 밭 밑에서 불을 지피고 있어 모락모락 눈길이 흔들리는 것일까. 내 성격상 궁금하면 참지 못하는 법. 꼬마친구들을 한 둘 불러 보리밭으로 아지랑이를 찾아 나선다. 그러면 아지랑이는 또 저만치 달아나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눈 어림으로 다음 다음논두렁으로 짐작해두고 다시 다가가면 또 저 멀리 아른거릴 뿐이다. 아무리 들판을 헤매고 뛰어다녀도 잡히지 않는다. 참 신기하다. 그런 상황이 되풀이 되며 어린 상상 속에 소년기(少年期)가 지나가는 것이 아니던가. 한편 생각해 보면 낭만적인 어린 시절의 설익은 춘몽이다.
꽃잎 사이로 잔설(殘雪)을 보던 소년시절, 나는 이 세상 모든 곳의 봄 풍경이 다 그런 줄만 알았다. 매화꽃이 피고, 산수유가 피고, 산에 진달래가 피고, 고은 복사꽃과 살구꽃이 피어날 무렵, 그런데도 먼데 높은 산에 아직 마당가 꽃잎 사이로 눈 쌓인 자태를 드러내는 그런 환상에 젖어 있었다. 그런데 도시의 봄을 지배하는 게 아지랑이가 아닌 황사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어릴 적의 순진한 이미지가 싹 가셔버리고 말았다. 도시에 올라와 아지랑이를 잊어 버렸다. 사회생활을 하기 시작해 직장 따라 서울로 거처를 옮기고 난 후 승용차를 하루만 밖에 세워두면 거기에 자동차 색깔조차 뿌연 색으로 바뀔 만큼 미세모래먼지 같은 게 쌓여 있다. 하기는 4월 말인데도 금년엔 눈이 도처에 쌓여 나무 꽃눈이 쪼그라들기는 하였지만... 그리고 외출을 삼가라는 기상예보도 하루가 멀다 하고 경고를 발하는 것을 보면 이것 참 도시라는 게 마치 군더더기 삶 같다고 느껴진다.
도시에 올라와 잃어버린 것은 그런 전원적 풍경의 아지랑이뿐만이 아니다. 산수유가 피고 매화꽃이 핀 다음에 개나리와 벚꽃과 진달래 등이 시간 따라 피어나야 하는데 도시온난화와 기후 변화로 모든 꽃들이 몰아 피는 등 변해가는 계절을 잊어버렸다. 봄이 오고 가는 시간의 길목을 잃어버리고 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금년처럼 날씨가 춥다가 갑자기 폭염으로 대지가 더워져 계절의 변화를 순서대로 느끼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꽃을 보고 자연의 변화를 보고 계절이 오고감을 알던 시절 감각을 잊어버린 지 오래다. 다만 자신의 옷차림과 이웃아낙들의 옷차림으로 계절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알지 자연의 변화를 보고 계절을 알기 힘들게 된 것이다.
어느새 벌써 초여름이다. 짧은 봄으로 여름을 성큼 초청해 따갑고 후덥지근한 날씨로 대지가 타 들어간다. 권하건대 시골의 봄과 풍경은 아직도 큰 변화를 겪지 않고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으니 고향을, 아니 시골을 한번 탐방해 아지랑이와 계절을 느껴 봄도 삶의 변화와 어떤 동기의 부여도 되지 않을 가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