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근무
최봉호
초임 시절이다. 상급자 한 분과 잡업 처리를 위해 야근을 하다 자정을 넘기게 되었다. 당시는 통금이 있던 시절이라 집에 가기가 어려웠다. 자정부터 새벽 네 시까지가 통행금지 시간이었다. 눈 좀 붙이려고 어디 드러누울 데 없나하고 사무실 안을 둘러보았다. 바닥은 시멘트바닥이라 너무 차가울 것 같았다. 전에 늦은 여름 시멘트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잠을 자보려고 한 적이 있는데 바닥이 딱딱하기도 하고 추위로 고생한 적이 생각났다. 과장 좌석 앞의 소파가 안성맞춤인데, 상급자가 이미 떡하니 자리를 잡고는 누워 있다.
나는 이리저리 들러보았다. 대안으로 책상들이 눈에 들어온다. 당시 사무실에는 업무를 추진하는 세 개의 계가 있었다. 우리 계원은 일곱 명으로 계장과 여섯 명의 계원이 같이 근무했다. 마주보고 근무하니 여섯 개가 붙은 책상 위는 상당히 넓었다. 그런 책상 위로 올라 가 잠시 눈을 붙이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상 위에 드러누워 삼십 분 정도 있어보니 잠은 오지 않고 한기가 밀려왔다.
뭐 다른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다가 다시 묘안을 찾을 수 있었다. 여기저기 의자에 있는 방석들을 이용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섬주섬 십여 개를 모았다. 방석 재질과 무늬는 모두 다 달랐다. 가만히 살펴보니 주인 성격과 많이 닮은 것 같다. 푹신푹신한 털로 덮여있는 방석, 인조가죽으로 밋밋하게 만들어진 방석, 실크재질의 방석 등 주인 얼굴이 오버 랩 되어 떠오른다. 내 방석은 천으로 된 것인데, 두껍지는 않았고 빵빵하지도 않았다. 10년 전 입사할 때 어머니가 마련해준 것이다.
우리가 딱딱한 의자에서 온종일 앉아 일할 수 있는 것은 방석들의 희생 때문이다. 방석들은 엉덩이 밑에서 자기 주인들을 뒤받쳐 준다. 그러다가 주인이 자리를 비우면 공기가 차 빵빵해지고 모양을 뽐내다가, 주인이 앉으면 바람이 빠져 납작해진다. 앉았다 일어나도 자국 하나 남지 않는 방석. 그래도 그들은 주인의 방구소리를 죽여주고 가스냄새는 퍼지지 않도록 품어 안고 간다. 방석이란 존재를 어머니와 등치시키고 싶을 수도 있겠다.
그런 애환이 서린 방석 몇 개를 등 밑으로 넣어 요로 삼고, 몇 개는 이불로 삼았다. 내 것은 얼굴 쪽으로 가져다 놓았다. 묘한 냄새는 났는데, 내 것이라 생각해서 그런지 그다지 역겹지는 않았다. 방석 중 푹신한 털로 되어있는 방석을 택해 꼭 껴안고 잤다.
꿈을 꾼 것 같았는데,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겠다. 일장춘몽이었으리라. 아무튼 비몽사몽 서너 시간 눈을 붙인 후 깨보니 내게 온기를 주며 꿈까지 꾸게 해주었던 방석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몇 개는 그 모양이 아주 꾀죄죄해졌다. 색깔도 우중중해 보였다. 방석들을 제 자리로 갖다 놓았다. 다들 다시 빵빵한 모습을 되찾았다.
나는 서둘러 앞 단골 음식점에 나가 아침 식사로 해장국을 비우고는 들어와 내 방석에 앉아 다시 일을 시작했다. 한참 지나니 많은 직원들이 표정 없는 얼굴로 출근을 한다. 출근한 직원들은 자기 방석이 깔린 의자에 무심코 앉아 서류를 꺼내고 업무를 시작한다. 자기가 깔고 있는 방석들이 밤새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알려고 하지 않고 관심이 없다. 그저 묵묵히 앉아 일을 할 뿐이다. 물론 방석이 밤새 내게 해준 역할을 알 리 없는 동료들이다. 정년을 한 지도 여러 해, 지금은 퇴직해 노년을 살고 있지만 열정을 가지고 야간근무도 마다하지 않았던 그 시절이 문득 그립기만하다.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그날들을 추억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