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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文藝春秋 . 詩人部落 원문보기 글쓴이: 김광한
詩評에 즈음하여>
정동진의 햇살 시(詩)가 된 세월의 나날들
글 김광한 소설가 문학평론가
맨끝분
일찌기 전웅(戰雄)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오랜 군대 생활을 마감하면서 미(美) 의회(議會)에서 마지막 연설을 했다.그는 평생을 세계적인 전장(戰場)을 누비면서 국가의 흥망과 전쟁의 비참함, 인간의 악과 선을 지켜본 군인이었다.미조리 함상에서 일본천황으로부터 항복을 받기도 했고 한국전에 참전해서 인천 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 우리나라가 공산치하에 점령당하는 것을 저지한 참군인이었다.
그는 "노병은 죽지 않고 다만 사라지는 것이다"란 말을 했다. 이 말은 그가 미 위스트 포인트 시절 그 학교의 교가의 한귀절이었다고 한다.비록 몸은 늙어서 은퇴를 하지만 마음은 초심(初心)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그리고 푸시킨의 청춘이란 시를 매우 좋아한 시심이 가득한 사람이었다.늙음은 얼굴에 주름을 가져다 주지만 진정 늙음이란 이상과 정렬을 버림에 있다는 것이다. 또 20대의 늙은이가 있는가하면 60대의 젊은이가 있다는 것이다.그는 80이 넘는 생애를 살면서 삶의 전부를 군인의 길을 걸어온 사람이었다.
그러나 80대, 그가 삶을 마감할때까지 젊은이로서 살아온 것이다.
<정동진의 햇살>이란 제하(題下)의 시집을 간행한 정동진 시인 역시 30년이 넘는 군대 생활을 한 우리 문단에 몇 안되는 문(文)과 무(武)를 겸비한 시인이기도 하다.오랜 군대 생활을 한 노병(老兵)들의 얼굴을 보면 대부분 절제된 생활에서 오는 근엄함과 어쩐지 자연스럽지 못한 몸짓과 자신의 고정된 관념의 노예가 되다 시피한 보수적인 기질이 몸에 배어있어서 보통 사람들이 접근하는데 다소 무리가 있을법하지만 정동진 시인의 몸에서 풍기는 것은 천진스런 순수함과 누구든지 소통할 수 있는 친화력, 그리고 과거의 군대행적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문학적인 분위기 같은 것이 오늘의 그를 시인이 되게한 요소였는지도 모른다.그의 시 틈틈이 나타나고 있는 과거속의 어느 순간들은 세상을 보는 부정적인 눈이 아니라 긍정적이고도 삶을 사랑하고 가족과 이웃을 아끼는 마음이 가득 들어있어서 참으로 착한 일생을 살아왔고 그렇게 나머지 인생도 살아갈 것이라 의심치 않게 된다.
일찌기 젊은 시절 부사관(副士官)으로 입대하여 고된 훈련과 번복되는 일과를 보내면서 경험한 고독과 가족에 대한 미안함,그리고 부하들에 대한 자애로움을 그는 틈틈이 시라는 이름으로 적어 기록해 그것이 오늘의 시인이 되게한 밑거름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자칫 규격적인 삶속에서 헤어나지 못할 단체 생활에서 그는 유머 감각을 잃지 않고 사회로 나오면서 가져온 것은 그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시심이었던 것이다.문학단체를 이끌면서 군대생활에서 보여준 탁월한 지도력과 아래위를 아우르는 소통,그리고 친화력같은 것이 그의 시를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요소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연대(年代)를 불문하고 어렵지 않게 친해질 수 있는 몇 안되는 50대 사람이란 것이다.동안(童顔)에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는 그에게 시는 그를 대신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분신이나 다름 없다.
아래의 시는 정동진 시인이 지나온 오랜 세월동안 겪은 군대 생활의 감회를 시로 읊은 것이다.한 삶의 전부를 독자에게 보여주기 위해 전재(全載)한다.
길고도 짧은 세월 (군인의 길 30년, 푸른 제복 30년) 호흡조차 힘든 폭염 속에서 새 군복 새 군화 신고 부사관학교로 행군하던 75년의 여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돌아보면 고개 저으며 망각 속에 가두고 싶은 짧지 않은 반년의 후보생 생활 30년 생활의 밑거름이었어라 빛나는 하사 계급장이 무척이나 어울리던 혈기왕성한 꽃띠 총각은 호연지기로 청운의 뜻을 품고 삼각지에서 터전을 잡았다네 삭막하기만 했던 80년의 3월은 점봉산밑에서 나를 맞이했고 하늘 밖에 보이지 않는 산동네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선물 받았네 언어와 풍습이 달랐던 동두천 생활에서 든든한 아들 지용이를 얻었다네. 맹호부대에서의 수많은 추억들은 하나라도 버릴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그 시절을 회상하며 혼자 미소 짓게 하네. 단잠을 설치도록 극성스런 매미소리 준위라는 영예의 교항곡이 될 줄이야 눈물을 훔치며 계급장을 달아주던 아내의 내조가 아니었던들.... 동해안의 검푸른 파도를 보며 힘차게 솟아오른 붉은 태양과 함께 조국사랑 가슴에 품고 2미터가 훨씬 넘는 철책선의 폭설과 땀으로 목욕을 하던 무더위 속에서 통일의 염원을 키워 왔다네 관악산, 불국산, 계룡대에서 진정한 참 군인의 길을 향해 혼신의 노력을 다 했다네 이제 여기 삼각지에 다시 둥지를 틀어 길지도 짧지도 않은 30년을 맞이하니 참 군인으로 다시 태어나 조국의 통일위해 남은 여생을 바치리라.
자신의 지나간 모든 날들을 자전적으로 풀어놓은 시에서 엿보이는 것은 나라 사랑과 가족 사랑, 그리고 국민들에 대한 애정과 같은 것들이다.1975년 부사관으로 출발해서 준위(准偉)계급장을 달때까지의 험한 군인의 길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 하나하나의 화면속에는 인고(忍苦)의 시간들이 박혀있다.부대를 전속 다니면서 함께 가족을 동반한 군인의 삶은 어쩌면 한 장소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부평초와 같은 삶의 연속이지만 이때마다 그것이 자신이 국가에게 할 수 있는 의무이자 나라 사랑이라고 여겨서 오히려 자랑으로 생각한 지난날들의 모든 것, 그것을 시로 만든 정동진 시인의 순박한 시심은 아무에게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가 세월따라 지나쳤던 모든 지역은 그에게 추억으로 남아있고 추억은 시가 되어서 많은 사람들과 공유를 하게 된 것은 그가 시인이 된 것보다 오히려 자랑스러울지도 모른다.새벽 단잠을 물리치고 일어나 부하들과 군가(軍歌)를 벽력같이 부르면서 구보를 하고 그 나이에 남들은 양복에 한껏 멋을내고 젊음을 만끽할 때 푸른 제복을입고 병영에서 일상적인 생활을 반복하면서 박봉에 남들처럼 잘 해주지 못햇던 가족들에 대한 죄송함,특히 아내의 뒷바라지에 시인은 인간적인 눈물을 흘린다. 어쩌면 그가 쓴 이 모든 시들은 그를 좌절과 절망에서 새로운 용기를 가져다준 가족, 특히 아내에 대한 헌시(獻詩)인지도 모른다.
"이제 여기 삼각지에 다시 둥지를 틀어 길지도 짧자도 않은 30년을 맞이 하니 참 군인으로 태어나 조국의 통일 위해 남은 여생을 바치리라"
<본문 시중(詩中) 일부>
군인생활 30년이 되는 해에 쓴 국가 사랑으로 일관된 결사의 의지를 담은 시속에서 그의 참된 군인정신을 엿볼 수가 있다.정년이 되어서 시속말로 늙은 군인이 되어서 사회로 나온 이 군인에게는 다른 군인들에게 볼 수 없는 시라는 또 다른 정신적인 계급장을 달고 나왔다.그 계급장 속에는 현역 생활을 할때는 아무짝에도 쓰지 못하던 시어들이 가득 들어있다.그 시어들, 하나하나의 어휘(語彙)들은 마치 영롱한 무지개 빛깔로 승화가 되어서 피어 올라 찬란한 빛을 발휘하게 되었다.군가를 목청껏 부르고 사나이들 틈에서 청춘을 모두 보낸 그가 병영에서 갖고 나온 밀알같은 시에는 그런 딱딱하고 규격적인 언어들이 야들야들하고 감칠맛 나는 시어들로 변했으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그것은 그의 아래 위를 토닥이는 그의 친화력과 누구에게나 소통할 수 있는 열린 마음 때문일 것이다. 군대를 주제로 한 시들도 많지만 사회로 진출해서, 특히 그가 속해잇는 문학회에서 늘상 쓰고 있는 시어들은 그의 반듯한 성품을 입증시키는 증거이기도 하다. 휴전선
동족상잔 비극의 씨로 그어진 휴전선 쓰러져가는 목책이 십리 띠를 가로지르며 한 맺힌 사연 담아 남북을 갈랐는데 철책마저 인적 막아 태고 신비 살아 있다. 원망과 한숨 섞어 북녘 산하 바라보며 보고 싶은 부모형제 목이 메여 애타게 소리쳐 불러 봐도 부르는 소리마저 휴전선에 막혀 운다.
휴전선은 우리 민족의 아픔을 대신해주는 보이는 철책선이다.전쟁을 잠시 쉬면서부터 이곳은 철책안의 넓은 공간에 수많은 생명체가 뿌리를 내려 자신들의 삶을 일구고 있는 현장이다. 정동진 시인은 관광객의 일시적인 눈이 아니라 이곳에 근무하면서 보고 느낀 진솔한 마음을시로 담았다는데 의의가 있다. 남과 북으로 갈라진 산하에 불러봐도 메아리조차 없는 인간의 소망을 철저히 외면하는 냉혹한 지역에 시인은 따뜻한 인간의 정을 풀어놓는다.비록 오랜 문장 연습에세련이 되고 윤활우가 섞인 어휘들은아니지만 그에게는 인간적인 우직함과 교활함을 침묵 시키는 정직함이 배어있다. 이 정직함은 그이 모든 시어들에 고루 분포되어있고 누구나 읽어도 공감이 되는 문구로 우리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온다.
비록 현란(炫亂)한 어휘들은 보이지 않지만 독자들의 눈을 어지럽히는 진실되지 않은 어휘보다 흔히 일상적으로 대하는 어휘들을 동원해서 독자들에게 쉽게 읽을거리를 제공해주는 소박한 시인의 모습이 바로 정동진의 참모습이 아닌가 한다.
내 마음 때 이른 코스모스 부끄러운 듯 고개 돌리며 늦더위를 시샘하듯 실바람에 살랑살랑 풍년을 재촉하는 길목을 지킨다. 황금 들판 꿈을 향한 농부들의 손길은 구슬땀을 훔치며 결실을 재촉해 보지만 태풍에 휩쓸리고 수입 개방에 목조여 골 깊어진 주름살을 그 누가 펴 줄까? 한숨과 허탈 섞어 내 뿜는 담배 연기 검게 탄 가슴 담아 허공으로 날려 본다.
한곳에 정착해 오래 있다보면 그곳의 정서와 문화는 잘 접해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지만 정동진 시인은 군인으로서 가족을 이끌고 다니면서 군부대가 있는 우리나라의 여러 곳을 전전했다. 농촌에서는 농부의 땀방울을, 가뭄과 폭우에 근심스런 얼굴을 하는 농부들의 마음을, 어촌에서는 흉어(凶漁)에 주름살 펴지 못하는 어부의 마음을, 탄광촌에서는 광부들의 검은 얼굴에 배어있는 한가닥 가족들에 대한 희망을 누구보다 잘 눈여겨 보아온 사람이다.
잠시 쉬는 시간을 틈내 코스모스가 그림처럼 군락(群落)을 이룬 길가를 거닐면서 상념에 젖어보는 푸른제복의 정동진 시인의 시심과 시심속에 스며있는 농부들의 아픔을 생각하는 자애로운 마음을 시로서 엿볼 수가 있다. 생활은 무인(武人)이었지만 생각은 문인(文人)으로서 감성이 있고 누구보다 이웃과 자연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 그것이 그를 시인으로 만들어 주었는지도 모른다. 일찌기 미당(未堂) 서정주 시인은 내 시의 팔할은 바람이라고 했듯이 정동진 시인의 시의 전부는 시간의 방랑자로서 스쳐지나가는 사물에 대한 파노라마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영원한 동행 볼 수는 없어도 느낄 수는 있어 만져지지 않아도 생각할 수는 있어 설명하진 못해도 기억은 할 수 있어 스쳐가는 인연이라 잊으려 해 보지만 못내 그리운 임 생각 뿐 푸름이 우리 앞에 활짝 펴지면 그땐 우리 웃으면서 포옹할 수 있을까? 사랑해요 사랑해요 말뿐 아닌 사랑이기에 캄캄한 하늘 아래 잠을 잊은 채 보이지 않는 임을 그려 봅니다 내 맘 속의 임 영원한 나의 임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영원히 사랑을 놓지 못하리.
아내에 대한 사모곡(思慕曲)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어쩔 수 없이 떨어져야하는 상황에서도 시인은 아내를 그리워하면서 병영에서 틈틈이 사모곡을 쓰고 붙여서 자신의 마음을 전달한 자애로운 남편이자 어버이로서 인생에 대한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한 시인,아내가 있기에 그의 길고 긴 군대 생활을 무리없이 마치게 한 그 아내, 그에게 있어서 아내는 태양이자 힘의 원천이었을 것이다.그래서 인생의 후반기에 이른 지금 그가 가는 곳에는 어김없이 아내가 따른다.아내가 있기에 자식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고 무섭도록 적막한 밤 공기에도 훈훈한 바람을 일으키는 마음의 바람을 일으켜 그에게 알곡같은 시어를 선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의 시는 사랑 그 자체로서 충분한 것을 그는 잘 알고 있다. 여기에 다소 어려운 수식어를 붙여보아야 사랑의 마음이 오히려 희석(稀釋)이 되기에 원천적인 용어로서 아내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전달하려는 그의 의도,참으로 순박한 천진함이 엿보여 오염이 된 사랑의 단어를 남발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을 주는 알곡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건봉산의 아침 병사들의 함성에 새벽이 깨어나고 검푸른 동해 수평선 위로 웅장하게 솟아오르는 희망의 태양은 전선을 지키는 초소를 밝혀온다 힘껏 잡은 총검에 부모형제 사랑 담고 부릅 뜬 두 눈에는 나라 지킴 가득한데..... 함초로이 피어나는 이름 모를 들꽃들이 분단의 아픔을 꽃잎에 새기고서 철책을 넘나드는 가을 철새들에게 평화의 아침 향기 전해 달라 재촉한다 건봉사의 종소리에 조국 사랑 다잡으며 부모 형제 평안위해 응시하는 철책선엔 희망의 아침이 새하얗게 밝아온다.
강원도 고성, 최전방에 자리잡은 건봉산, 여기에 부릅뜬 눈초리의 병사들이 새벽마다 함성을 지른다.북한군으로부터 나라를 방어하기 위한 우리 젊은 군인들의 힘찬 구호들이다. 시인은 소대장으로서 자식들과 같은 병사들을 지휘하며 나라사랑에 대한 올곧은 정신을 함양했고 이를 아직 철이 덜든 국가관이 미약한 사람들에게 나라 사랑에 대한 정신을 전달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왔다.건봉사의 종소리는 마냥 평화롭지만 보이지 않는 전쟁의 살기가 있다.이를 몸으로 느끼면서 민족분단의 아픔을 온몸으로 체험한 군대 시절,그래서 그의 시들은 광의(廣意)로 보아 애국시가 되고 이 애국은 군복을 벗으면서 이웃을 사랑하는 사랑의 시로 변질이 되었다.
홍안(紅顔)의 시인 정동진
그의 아호 일출(日出)은 해가 뜨고 진다는 의미이다. 정동진이라는 이름은 강원도 정동(正東)쪽에 위치한 포구를 이름하는데 우연의 일치인지 정동진에 새벽을알리기 위해 뜨는 해처럼 그의 개방된 성품이 많은이들에게 밝음을 주고 있다.이번에 그가 펴낸 정동진의 햇살은 어둠속에서 꺼낸 보석처럼 많은이들의 어두운 마음에 한줄기 빛이 되어 선물할 것으로 보인다.후반기 삶에서 시인으로서의 삶은 축복받은 삶이 아닐 수 없다.삶을 관조하면서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발길처럼 행복한 것이 없기에 그의 시처럼 삶도 한 단계 아닌 몇단계 업그레이드 하기를 바라면서 신통치 않은 시평을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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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람은 순간은 고통이 되지만 먼 세월 후에는 보랏빛의 찬란한 시가 탄생이 됩니다,,
시가 된 세월의 나날들,,,그러니 모란은 피었지요,,, 훌륭한 서평 뜻있게 읽었읍니다
이 먼데까지 오셔서 답글을 다시고 고맙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