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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어느 간이식 환자의 가족이 작성한 글을 그대로 옴겨온 것입니다...
(긴글 주의) 저희 아빠가 의료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희 아빠는 2015년 11월 14일 약 한달전 만 49세 젊으신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본론 들어가겠습니다. 너무 억울하고 화가나고 할수있는 방법이 없기에.. 이렇게라도 긴글 써봅니다.
음슴체로 쓸게요..
2014년 9월 전주에있는 'ㅈ'대학병원에서 담낭 수술 도중 간쪽에 이상 소견이 보여 MRI 사진을 찍음
10월 20일 간암 말기 판정
10월 30일 간암 절제 수술 성공적으로 받음.
11월 11일 퇴원하고 6개월후 추적검사결과 절제한 부분에 암이보임
2015년 5월 간 색전 시술 도입하고 진전없음.
9월 13일 서울에 있는 간 전문 병원 'ㅇ'산병원 가서 검사를 다시 받음.
병원측 → 남아있는 간도 간경화가 있는 간이라서 내버려두면 위험하다고 간이식을 권이함.
간이식을 해줄 동생과 아빠는 보름에 걸쳐 준비를 마치고 추석 이틀전 원래 살던 전주로 다시내려옴.
추석을 쇠고 열흘후 'ㅈ'대학병원에서 뇌사자 가 있다고 간이식 할 의향이 있냐는 연락옴
수술하기전 'ㅈ'대학병원에 뇌사자 간이식에 대한 장점과 단점을 물어본결과
교수님 말으로는 장점은 뇌사자의 나이가 매우 젊고 (당시 만15세) 온전한 간을 통째로 받는다는 것과 혈액형이 맞는다는 것으로 모든 여건이 좋다고 말함.
*당시 단점은 하나도 말을 안해줌.*
가족끼리 의논결과 저희는 서울에 있는 'ㅇ'산병원에서 하자고 권유를 했었는데 아빠는 딸의 몸에 수술흉터를 내지 않게 되서 감사한 일이고
집앞으로 가까운 병원이니 배우자인 엄마와 저희가 병 간호 하기에 수월할 것이고 경제적 부담도 훨씬 좀 덜 할 것이라는 판단하에 어쩔수 없이 'ㅈ'대학병원 뇌사자 간이식 수술 결정.
10월5일 'ㅈ'대학병원 입원후
뇌사자 간이식 수술 동의서 작성 중 거부반응에 대한 설명 내용 → 거부반응은 있으나 면역억제제의 균형을 잘 맞추면 괜찮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드물게 발생하는 거부반응은 없을것이라고 *바로 조치*할것이니 걱정 안해도 된다고 말함
이튿날 바로 수술에 들어갈줄 알고 준비를 했는데 'ㅈ'대학병원에서 뇌사자 부모님이 허락을 안한다고 해서 아빠는 5일간을 대기하며 금식을 함 (5일간 금식중 간단하게 2번정도 밥을 먹음)
기적적으로 수술동의서를 받고
10월 9일 AM9:00 뇌사자 간이식 수술 시행.
10월 10일 AM:1:00 수술 마치고 중환자실로 옮김.
다음날 수술 결과를 들어보니까 교수님께서 수술이 잘되었다고 하셔서 저희가족은 또한번 모든이 에게 감사한 눈물을 흘렸습니다. 앞으로 간이식을 하고 잘 치료받고, 관리를 잘하면 정말이지
잘사시는 분들도 많고하셔서 우리 가족에게도 그토록 바라던 현실이 왔구나 좋아했습니다.
아빠도 이제 "나 살게 됐어"라고 하시면서 정말 좋아셨습니다..
그렇게 저희 가족은 마냥 꿈에 부풀어 있었는데 그꿈이 처참히 묻혔습니다.
저를 포함한 딸4명과 그리고 엄마를 두고 영원히 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셨습니다...
아빠는 뇌사자 간이식 수술후 중환자실에 5일간 있다가 회복이 빨리 진행되어 1일실 무균실로 옮겨 10흘을 지냈습니다.
교수 님께서는 회복상태가 빠르다고 하셔서 일찍 퇴원 처방을 내려주셨습니다.
10월 26일날 병원에서 퇴원 면역억제제를 처방했는데 입원시 보다 약의강도를 높혀서 처방후 퇴원을 했습니다.
면역억제제가 이식환자에게는 아주중요한 약품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약의 강도를 높였으면 수술한지도 얼마 안되었고 꼼꼼히 환자 상태를 체크해 본다음 여부 확인을 하여 퇴원 처방을하는게 우선아니겠습니까... 그때 퇴원 처방을 내리지 말았어야 했다고 너무 많은 생각이 듭니다...
후에 간호기록 일지를 본 결과 26일 혈액 수치와 25일 혈액수치과 확연히달랐습니다.
만약 빨리 알았다면 정말이지 퇴원처방을 내리지 말았어야 맞다고 봅니다..
퇴원하고 하룻밤 집에서 일어나니 머리가 아프고 온몸이 저리고 맞은것 처럼 아프다 하시고
근육통에 대해 호소했습니다. 아빠는 아는 지인에게 물어보면서 처음에는 거부반응 인줄 알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저희도 괜히 병원에게서 복잡떠는게 아닌가 싶어 며칠 기다려 보기로 했는데 3일간 증상은 똑같았습니다. 어차피 3일후 외래가 있어서 참아보기로 하였지요.
그렇게 3일밤을 꼬박 앓다가 외래 가면 입원하기로 맘먹고 병원에 가서 교수님을 뵙는데 교수님께서는 "아주 좋은데 무슨 걱정이냐"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희를 그렇게 안심시킨후
진통제 처방만 받고 병원에서의 별다른 처방과 말씀은 없었습니다. 할수없이 처방해준 진통제를 먹고 괜찮아지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증상은 한치의 차도도 보이지 않고 똑같았습니다.
그이튿날 안되겠다 싶어서 입원하려고 갔는데 똑같은 말씀이셨습니다. 수치도 좋고 혈액도 좋은데 무슨걱정이냐고 하면서 그날도 마약패치 처방만 받고 집으로 복귀했습니다.
진통제도 안듣고 하면 병원에서도 의심을 갖고 더 세심한 조치와 주의를 기울여 주셨어야 맞지않은가요, 단순 수술 후유증이라고만 하시고 이게 도대체 어느나라 법의 처방일까요..
지금 생각하니 교수님들이 정말 너무 밉습니다.
환자도 자기 가족이고 한 가정의 소중한 생명이고 사람입니다. 이런 식으로 아무렇지 않게 성의없이 방치하며 계속 집에 되돌려 보냈다는게 너무 분합니다.
병원에 입원했을때는 필요해서 조치를 해주고 외래때는 병원에 돈 이익이 없어서 그랬던것일까요
10월 29일(목)30일(금) 외래 갔다가도 토,일요일 고통속에서 보내다가 일요일에는 급기야 설사를 시작했습니다. 병원에 전화를 해도 전화받지도 않고 응급실에 와서도 별다른 조치가 없었습니다.
퇴원당시 병원측에서는 환자가 응급상황일때 외래나 응급실을 사용하라고 설명했는데
응급실엔 교수님도 안계시고 와도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하시니 정말 속이타들어갔습니다.
병원 측은 교수님과 서로 연락망이 제대로 되지 않는듯 했습니다. 서로에게 책임회피만 하였지요.
저희는 너무 급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간절하게 부탁을 하였지요 간이식 환자가 너무 고통받고 있다고.. 설명을 해도 외과 자체에서는 미루는 식이었습니다... 할수없이 그렇게 고통을 참고
11월2일 (월) 아침까지 기다리다 교수님을 뵙게 되었고 교수님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시며 입원하라고 하셨습니다. 입원을 하여도 중환자실이나 무균실1인실은 없고 특실만 있다고 하여서
다급한 마음에 특실로 입원을 결정했습니다.특실은 일반 5인실보다 훨씬 넓고 큰방이었습니다.
입원첫날.. 아빠의 상태는 집에있을때와 증상이같고
둘쨋날.. 열이 38도가 넘고 피부발진(열꽃)이 심해지고, 집에서 설사를 3번씩이나 하셨는데
설사는 안하고 배가 쓰리고 칼로 도려내듯이 아프다고 하였습니다.
입원한지 2일 3일.. 진통하나 잡지 못하고 증상도 차도가 없었습니다..
셋쨋날.. 설사를 다시시작하였습니다. 피부발진은 가라앉지도 않고 이번엔 하반신으로까지
즉.. 전신으로 번져갔습니다.. 머리는 계속 지끈지끈아프다고 하셨고 열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오한이들면서 열을 호소하였지요.. 그럴때마다 그냥 배아프면 진통제 설사를 많이하면 이뇨제 머리랑 아프면 항생제 등 간단한 조치만 하였습니다. 완전 마루타 식이었죠..
약을 넣을 때 환자의상태를 지켜봐야 된다는것도 알고있지만 환자가 죽을듯이 아픈데 기록이나 하고 앉아있고 그리고선
좀더 검사를 해야하니까 이비인후과,비뇨과,피부과,엑스레이,CT등 각종 검사를 움직이지도 못하는 아빠에게 너무도 냉정하게 시켰습니다.. 고통과 진통속에서 벗어나고 싶은 아빠의 의중은 져버려둔채, 그렇게 저희는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11월 5일(목) 교수님은 학예회때문에
뵙지 못하고 다른 레지던트 의사님이 소견상 '이식 편대 숙주증'이라는 증상을 설명하였고 치명적이라고 하였습니다.
그얘기를 들었을때는 정말 어떡할지도 모르겠고.. 막막했고 받아들이기엔 너무나도 큰 현실이였습니다.. 저번에 퇴원하고 응급실에서 그냥 돌려보내지 않고 조금더 조치를 해주셨으면.. 이런병이 우리아빠에게 왔었을까요.. 흔히들 말하는 골든타임을...저희는 그렇게 병원때문에 놓친것이었습니다...
교수라는 사람은 학예회가서 일요일이나 온다고 하면서 레지던트 의사들이랑 전화로 환자의상태를 체크했습니다. 11월7일(토)에는 이망할 병원에서 계속 치료를 받을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서울'ㅇ'산병원으로 갈지 고민을 하다가 저희 가족 입장에서는 고통을 덜어주고 후회없이 치료 받다가 보내야겠다 싶어 옮기기로 하였습니다.
옮기기로 해도 이 대학병원에서 교수의 마지막 의뢰와 오더가 필요하다고 해서 기다리고있는데
11월8일(일)2~3시에 교수님한테 전화가 와서 좋은 방책이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식편대 숙주증을 가진 환자는 서울 'ㅇ'산병원에도 있었고 다른 병원에도 있었는데 'ㅇ'산병원의 예를 들면서 'ㅇ'산병원의 6명 환자중 5명은 사망했고 1명만이 생존했는데 사망하신 분들은 기존에 통상적으로 해오던 치료를 해서 결과가 안좋았고 산 사람 1명은 다른 방법을 썼더니 이방법으로 지금까지 잘 살고 있다는 얘기를 하셨습니다.
'ㅇ'산병원에 가도 치료방법은 똑같을 것이고 자기를 믿고 맡겨달라고 본인도 최선을 다해서 치료하겠다고 하시기에 마음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게 환자에게는 "이식편대 숙주증" 이라는 병을 말하면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이유인 즉. 환자가 알면 생명의 끈을 놓아버릴 확률이 높기때문에
말하지말고 희망적인 말만 하라고 하셔서 저희는 병원에서 하라는대로 아빠에게 "잘될거야 잘될거야 아빠" 등등 그런 말만 했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아빠의상태가 날로 갈수록 심각해져갔기에 교수님께 그리고 의사선생님들께 마지막 부탁을 했습니다. 치료받다가 아니다 싶으면 저희 가족에게 마지막 시간을 달라고 애원을 하였지요.. 집에가서 같이 실컷울고, 애들이랑 다하지 못한 말 정말 그간에 해오지못한것들, 한가지만이라도 같이 하다 보내겠다 하면서 울면서 부탁했습니다.(두번씩이나 부탁했다는점..)
그러나 의사선생님은 그런일 없을거라 하시며 치료가 우선이니 중환자실로 가서 최선을 다해보자고 하였습니다. 11월 8일(일) 교수님 결정하에 중환자실로 내려왔습니다.
지금부터는 중환자실 간호기록부 소견상 내용과 중환자실 면회시간 때 저희가 아빠한테 들은얘기입니다.
11월9일(월) 물설사를 2L씩 하고 속이 타는 듯이 아프다고하고 입안이 다 헐어서 침을 삼키지도 못하고 입술은 불어 터져서 피가 고여있고 혀는 나무 껍질 처럼 단단했습니다 목은 침으로 맞는 것처럼 아프다고 했습니다. 그상태에는 어디가 아픈지 자기상태를 제대로 설명하기 조차 힘든 쇼크상태였습니다. (당시 백혈수치가 600정도..) 정상인 백혈수치는 4000..
11월10일(화) 설사를 더 심하게 하고 복통은 바늘로 찌르듯이 아프고 찢어질듯이 아프다고 호소
기침할때 피와가래가 섞여나옴 열은 여전히 심하며 피부발진 진전 없음.
11월11일(수) 정맥 도관 삽입한다고 함. 열은 차도가 없이 38도 를 넘음. 오한 호소하며 열도 같이호소 온몸이 쑤시고 자기몸이 아닌것다고 해서 엄마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계속 주물러줌.
11월12일(목) 진통도...고통도..전혀 차도가 없고 병원 측은 수혈을 했다고 함.
두드러기가 심하게 나있는 상태였고 죽을만큼 아파도 다 참은 저희아빠였는데..처음으로
모든게 참기 힘들다고 말하셨습니다. 하지만 좋은 간을 이식받아서 오는 고통이니 참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날도 소중한 아빠의 고통도 아픔도 같이 나누지 못해 저희는 미안하고 또 미안했습니다.
서럽고 안쓰러워 창문으로만 보는 내내 가슴이 터져버릴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그날 중환자실 간호사가 의사 선생님께 환자가 힘들어 보이는데 무엇을 해야 되냐고 물어보니 대충하라 한걸 들었습니다...
그날도 마지막 시간은 가족과 보낼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럴때마다 "보호자가 이렇게 나약하면 안되니 환자에게도 격려를 많이해주라고" 만 대답하더군요..그 대답이 저희에겐 답답했고 왠종일 집에서 아빠생각에 아무생각 없이 울기만 했습니다.
11월 13일(금) 전에비해 아주조금 괜찮은 것 같다고 아빠는 말했습니다. 처음으로 편해보였지요.
저희는 그간 아빠에게 하지못한 말을 전지에다가 4등분을 하여 편지를 썼습니다. 편지지도
코팅을 해서 소독을 해놓고 엄마가 가지고 들어가 누워있는 아빠에게 읽어주는 식으로 저희 의 편지를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그간 제대로 잠도 못자서 수면제 처방을 받고 잠좀 자야겠다고 했습니다. 이날만은 면회가 끝나고 울지 않고 나왔습니다.
11월 14일(토) 저와 언니의 출근길을 데려다 주는 엄마차에 타고 가고 있는데 응급실에서 아침 7시45분에 응급전화가 왔습니다.
차를 돌려서 정신없이 병원에 도착해보니 아빠는 심정지 된 상태에서 심폐소생술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
그렇게 떠났습니다...저희아빠 그렇게 떠났어요..
멀쩡했던 사람이 간 이식한다고 병원에 들어가 떠났습니다. 그렇게 말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얼마나 얼마나,, 할말이 많았겠습니까 ..
교수님 본인 당신이나 당신의가족이 이식편대 숙주증이라는 병을 알고 있었으면 생애 마지막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냈을 겁니다. 당신만 아니였으면... 당신네 병원이 아니였으면..
짧은 시간 이지만 치료 마다하고 가족과 못다한 말들 나누며 가족 품에서 따뜻하게 생을 마감하며 가셨을 겁니다. 당신네들은 작은 우리 가족의 소망까지도 묵살시키며 아무렇지 않게 고개만 까딱숙이며 미안하다고만 하죠.. 야속합니다 ..정말 분하고 너무 억울합니다.
저희아빠 4남3녀중 여섯째입니다. 친할머니 할아버지는 아빠가 초등학교 들어가시기 전에 암으로 여윈탓에 누나, 형들 손에 자랐습니다.또 형님 두분도 암으로 일찍 돌아간거 생각하면 피눈물이 난다고 입버릇 처럼 말씀하시면서 저희 집 가장만이 아닌 시댁일들도 도맡아서 이끌었습니다.
딸 네명 키우면서 10년넘게 프렌차이즈 햄버거 가게를 운영했습니다. 그렇게..
그렇게 열심히 살았습니다.
아빠는 다리한쪽이 굉장히 많이 얇은 지체장애 5급 이였습니다. 하지만 아빠는 장애인 혜택도 받지도 않고 저린다리를 끓며 저희를 키우면서 정신은 누구 못지 않게 건강하게 살아왔습니다. ..
간암 수술후 프랜차이즈 가게를 팔고 골재 사업에 전념에 많은것을 투자했지만.. 잃은것이 더 많고 지금 아빠 없는 와중에 투자했던 모든것들이 날아가 버릴지경입니다..
당장에 유언이라도 한마디 해주셨다면 지금에 처해있는 상황을 수습할 기회도 있었으니까요..
엄마도 저희 덕분에 하루하루 악착같이버티고 살고있지만 저희가 보기엔 엄마.. 많이 불안정하십니다.
퇴원하고 일주일동안 집에 있으면서 많은 고통을 겪고 외래에 가면 남일 인듯 아무렇지 않게 방치한 행위와 외래갔을당시 그렇게 아프다고 호소하면 혹 의심이라도 갖고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의심을 해야하는 것이 교수 당신이 환자를 대하는 최소한의 당연한 마음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이라도 더 귀를 기울여서 마음으로 보셨다면 어땠을까요?
불성실한 교수들의 의중과 태도 이해할수 없는 외래처방 ...... 이식편대 숙주증은 뇌사자 간이식 환자에게 75%의 높은 빈도율을 보여주고 있다고 나옵니다. 근데 동의서 작성할때 아무런 걱정말라구요? 당신네들은 이러한 병조차 모르고있었단게 말이됩니까? 바로 조치 한다면서요?
이게어떠한 조치입니까?
지금생각하면 정말 너무 어이없는 처방이라고 생각이됩니다.
49살 너무도 할일이 많고 많은데 간이식을 해서 단 5년 만이라도 새로운 인생을 기대하며 꿈꿔온 우리아빠... 지금도 우시면서 "나 이제 살게 됐어"라는 말이 자꾸.. 자꾸 떠오릅니다.
아빠.. 그동안 정말 미안했어..우리가 미안해.. 정말..아빠 생각하면 아직도 웃으면서 우리한테올거같은데.. 그렇게 올거같은데...안오네 우리아빠가.. 영정사진만 보면..그렇게 젊은데..
그니까 우리 걱정하지말고 서울에서 간이식 잘하는 병원에서 하지.. 그치 아빠..
우리가그때 못말려서 미안해 아빠뜻대로 하지말자고 할걸...아빠
우리가 엄마 잘지킬께 이제 고통없이..우리 지켜봐줘 ,,
읽어주신 분들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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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
이식편대숙주병(Graft-versus-host disease, GVHD)은 면역력 저하 등의 이유로 수혈 등의 이유로 타인의 면역세포가 들어오면 이것을 죽이지 못하고 오히려 숙주 안에서 증식한 타인의 면역세포가 숙주를 공격하는 병으로, 만약 발병시에는 치명적이어서 사망률이 100%에 가깝다.
첫댓글 너무 슬프네요 같은 이식인으로써 가슴이 아픕니다 젊은 나이신데 힘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