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저비터(Buzzer Beater). 경기 종료를 알리는 버저소리와 함께 성공된 골을 의미하는 농구용어다. 특히 승부를 가르는 '역전 버저비터'는 스포츠 하이라이트의 단골 메뉴이기도 하다. 하지만 버저비터를 농구만의 히트상품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추가시간 개념이 있는 축구에서도 경기 막판 종료를 알리는 주심의 휘슬이 울리기 직전에 터지는 '버저비터 골'이 팬들을 뜨겁게 열광시킨다. 올 시즌 첫 맨체스터 더비에서 마이클 오웬이 후반 51분에 터뜨렸던 결승골처럼 말이다. 축구에서 버저비터는 토너먼트나 최종전에서 더 극적이고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확실한 버저비터였던 '골든골'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버저비터의 감동과 전율은 축구팬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하다. 1990년대 이후 축구 경기에서 나온 대표적인 버저비터들을 살펴본다. (골든골 제외)
Ⅰ. 누 캄프의 기적 - 맨체스터Utd. 솔샤르
1998-99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바이에른 뮌헨이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홈구장인 누 캄프에서 만났다. 기선을 제압한 쪽은 바이에른이었다. 전반 6분만에 마리오 바슬러가 프리킥골을 작렬시키며 한 발 앞서 나갔다. 경기 초반 선취골을 내준 맨유는 추격에 나섰지만 후반 막판까지 바이에른의 견고한 수비망을 뚫지 못했다. 추가시간 3분이 주어졌지만, 바이에른이 그대로 우승의 영광을 누릴 가능성이 점점 더 높아졌다. 하지만 이때부터 드라마가 시작됐다. 추가시간이 시작된 후반 45분 데이비드 베컴의 코너킥이 혼전 끝에 라이언 긱스에게 연결됐고, 긱스의 어색한 오른발 슈팅이 테디 셰링엄에게 향하면서 절묘한 어시스트가 됐다. 극적인 동점골을 기록한 맨유는 또 한 번의 코너킥 상황에서 기적을 만들어냈다. 똑같은 위치에서 얻어낸 코너킥을 다시 베컴이 올렸고, 셰링엄의 머리를 거쳐 솔샤르의 마무리로 결승골이 작렬됐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가운데 가장 극적인 역전드라마로 평가받는 이 경기는 '누 캄프의 기적' '맨유의 3분의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축구팬들의 머릿속에 확실히 저장이 되어 있다. 물론 바이에른 팬들에게는 '누 캄프의 비극'으로 자리 잡고 있다.
Ⅱ. 모리뇨의 환호 - 포르투 코스팅야
맨체스터Utd.와 FC 포르투가 2003-04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격돌했다. 팀의 네임밸류와 전체적인 전력을 비교해볼 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맨유의 승리를 점쳤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포르투는 예상보다 훨씬 더 강했고, 1차전 홈경기에서 맨유를 2-1로 격파하면서 만만찮은 모습을 선보였다. 맨유의 홈에서 펼쳐진 2차전. 배수의 진을 치고 나선 맨유는 전반 31분 폴 스콜스가 골을 터뜨리면서 승기를 잡았다. 그대로 경기가 끝난다면, 맨유가 원정경기 다득점 원칙에 따라서 포르투를 제치고 8강행 티켓을 거머쥐게 되는 스토리였다. 후반 45분에 이를 즈음 스코어는 그대로 1-0 맨유의 리드. 패색이 짙던 포르투가 프리킥 기회를 잡았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프리킥이 맨유의 골키퍼 팀 하워드의 방어에 막히자 문전으로 쇄도하던 코스팅야가 리바운드 슛을 터뜨리며 천금 같은 동점골을 잡아냈다. 그대로 경기는 종료됐고, 포르투는 1승1무로 맨유를 누르고 8강에 올랐다. 이후 최고의 라이벌 사령탑 관계가 된 조세 모리뇨 감독과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순간이었다. 맨유를 잡은 포르투는 기세를 올리면서 결국 해당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최고의 신데렐라 팀이 됐다.
Ⅲ. '안티풋볼' 복수극 - 바르셀로나 이니에스타
2008-09시즌 막바지 유럽에 때 아닌 '안티풋볼' 논란이 거세가 불어 닥쳤다. 첼시와 바르셀로나의 UEFA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1차전이 득점 없이 무승부로 끝나자, 바르셀로나 팬들이 '안티풋볼'에 성난 목소리를 드높였다. 첼시 같은 빅 클럽이 오로지 수비에만 치중하면서 경기를 펼친 것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들이었다. 첼시의 홈에서 펼쳐진 2차전. 첼시는 '안티풋볼'에 대한 비판을 잠재우려는 듯 초반부터 거센 공격을 퍼부었다. 전반 9분 만에 마이클 에시앙이 중거리포로 선취골을 잡아내며 앞서 나갔고, 이후에도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바르셀로나를 압도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심판의 석연찮은 판정이 몇 차례 나오면서 첼시는 불안한 리드를 지켜나갔다. 추가시간이 흐르던 후반 48분. 첼시의 불안한 예감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바르셀로나의 마지막 공격에서 극적인 동점골이 터진 것. 바르셀로나는 우측과 좌측을 크게 흔들면서 찬스를 엿봤고, 메시가 중앙에서 수비수 여러 명을 자신에게 끌어들인 다음 후방의 동료에게 패스를 건넸다. 동점골의 주인공은 1차전 이후 첼시의 '안티풋볼'을 비난했던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이니에스타의 오른발을 떠난 볼이 첼시의 골망을 흔들면서 1-1 동점이 됐고 경기는 곧 종료됐다. 준결승 2경기 모두 무승부였지만 바르셀로나가 원정경기 다득점 원칙에서 앞서면서 결승에 진출하게 됐다. 경기 후 " 이니에스타가 안티풋볼에 시원한 복수극을 펼쳤다 " 는 평가가 나오면서 더 큰 눈길을 끌었다.
Ⅳ. 무적함대의 기사회생 - 스페인대표팀 알폰소
유로2000 C조 예선 3차전 스페인 vs 유고. 8강 진출을 위해 두 팀이 물러설 수 없는 대결을 펼쳤다. 경기는 유고가 도망가면 스페인이 곧바로 쫓아가는 양상으로 펼쳐졌다. 전반 30분 사보 밀로세비치가 선취골을 잡아내며 유고가 앞서자, 8분 뒤 알폰소 페레스가 골을 터뜨리면서 스페인이 균형을 맞췄다. 후반 초반에도 장군 멍군이 이어졌다. 5분 만에 유고의 데얀 고베다리카가 골을 작렬시키자, 1분 뒤 스페인의 페드로 무니티스가 다시 동점골을 만들어냈다. 후반 30분 유고가 다시 한 발 앞서 나갔다. 슬로보단 코믈제노비치가 골을 터뜨리면서 3-2 유고의 리드. 이후 시간은 그대로 흘러 후반 45분까지 유고가 한 골 차로 앞서 나갔다. 이대로 경기가 끝나면, 유고가 조 수위로 8강에 진출하게 되고 스페인은 탈락의 고배를 들어야 했다. 승리를 거둬야 8강에 오를 수 있었던 스페인은 2골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경기가 다소 많이 지연되어 추가시간이 무려 6분이나 주어졌고, 여기서 스페인은 거짓말 같은 승리를 만들어냈다. 후반 48분 아벨라르도가 얻어낸 페널티킥을 가이즈카 멘디에타가 침착하게 성공하며 동점을 이뤘다. 그리고 후반 51분 호셉 과르디올라가 후방에서 길게 올린 프리킥이 이스마엘 우르사이스의 머리를 거쳐 알폰소에게 연결됐다. 알폰소는 몸을 뒤로 눕히며 그림 같은 왼발 발리슛으로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4-3 스페인의 역전승. 스페인은 기사회생했고, 하지만 유고도 승자승 원칙으로 노르웨이를 제치고 8강행을 확정지었다.
Ⅴ. 지단의 마법 - 프랑스대표팀 지단
유로2004 조별예선 최고의 빅카드로 손꼽혔던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경기. 지네딘 지단이 '버저비터 마법'을 발휘하며 조국 프랑스를 승리로 이끌었다. 기선은 잉글랜드가 제압했다. 전반 38분 프리킥 기회에서 베컴의 프리킥을 프랑크 램파드가 헤딩골로 연결하며 리드를 잡았고, 이후에도 짜임새 있는 모습으로 앞서는 경기를 펼쳤다. 하지만 후반 28분 베컴의 페널티킥이 프랑스의 수문장 파비앙 바르테즈에 막히면서 잉글랜드에 불안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위기에서 벗어난 프랑스는 맹추격전을 펼쳤고, 지단을 앞세워 '3분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후반 46분 문전 23m 부근에서 잡은 프리킥 찬스에서 지단이 볼 앞에 섰다. 그리고 지단의 오른발 인프런트 프리킥은 수비벽을 넘어 절묘하게 잉글랜드의 골문 구석으로 빨려 들어갔다. 2분 뒤 지단은 페널티킥을 성공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지단의 마법에 걸린 듯 스티븐 제라드가 어이없는 백패스를 하면서 티에리 앙리가 페널티킥을 얻어냈고, 이를 지단이 깔끔하게 성공하면서 프랑스의 대역전극이 완성됐다. 프랑스는 '지단의 마법'에 환호성을 내질렀고, 잉글랜드의 자랑인 베컴과 제라드는 고개를 숙인 채 그라운드를 빠져 나갔다.
Ⅵ. 슬픈 버저비터 - 이탈리아대표팀 카사노
유로2004에서 이탈리아는 승리를 확정짓는 버저비터를 터뜨리고도 웃지 못했다. 불가리아와의 C조예선 3차전. 이탈리아는 승리를 거두면 8강 진출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이미 탈락이 확정된 불가리아를 제압하지 못하면서 가슴을 졸였다. 전반 45분 마르틴 페트로프에 페널티킥 골을 허용하며 끌려갔고, 후반 3분 시모네 페로타가 동점골을 잡아냈지만 경기 종료 직전까지 역전골을 성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악동' 안토니오 카사노가 일을 냈다. 후반 49분 카사노가 극적인 역전골을 터뜨리면서 환호작약했다. 8강행을 결정짓는 역전골을 터뜨렸다는 생각에 카사노는 기쁜 마음으로 벤치로 달려갔다. 하지만 이내 멈춰서면서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같은 시간에 열렸던 스웨덴과 덴마크의 경기가 2-2무승부로 종료가 됐기 때문. 1-2로 뒤지고 있던 스웨덴이 후반 44분에 동점골을 터뜨리면서 이탈리아의 운명은 결정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탈리아는 스웨덴, 덴마크와 함께 1승 2무의 성적을 거뒀지만 결국 골득실에서 밀려 탈락의 아픔을 맛보게 됐다. 당시 이탈리아 언론들은 북유럽 국가들인 스웨덴과 덴마크가 고의적으로 무승부를 연출해냈며 '승부조작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기도 했다.
Ⅶ. 터키 극장 - 터키대표팀 센투르크
유로 2008의 히트상품 가운데 하나였던 터키는 '7초의 기적'을 연출해내면서 준결승 고지에 올라섰다. 터키는 조별예선부터 무서운 뒷심을 선보였다. 스위스와 체코를 상대로 거짓말 같은 후반 대역전극을 펼쳐내면서 극적으로 8강에 진출했다. 8강전에서 터키가 만난 상대는 크로아티아. 터키는 연장전까지 헛심공방을 펼치다 경기 막판 결정적인 한방을 얻어맞고 말았다. 연장 후반 14분 이반 클라스니치에 골을 내주면서 패배의 수렁으로 빠져드는 듯했다 . 하지만 터키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한 번 '터키 극장'을 만들어냈다. 연장 후반 17분. 시간이 없어 어쩔 수 없이 크로아티아 진영으로 길게 띄운 볼이 혼전을 거쳐 세미 센투르크에 연결됐고, 센투르크의 슛이 거짓말같이 크로아티아의 골문으로 파고들었다. 1-1 동점. 정확하게 7초 뒤에 주심은 휘슬을 길게 불면서 승부차기를 알렸고, 기세가 오른 터키는 외나무 승부에서 크로아티아를 3-1로 제압하면서 준결승행 티켓을 손에 넣었다.
Ⅷ. 위대한 주장 - 잉글랜드대표팀 베컴
2002한일월드컵 본선행 티켓을 차지하기 위한 유럽지역 9조 예선 잉글랜드와 그리스의 최종전. '데드볼 스페셜리스트' 베컴이 전매특허인 부메랑 프리킥으로 버저비터를 쏘아 올렸다. 독일과 본선 직행 티켓을 다투던 잉글랜드는 홈에서 펼쳐지는 그리스와의 최종전에 필승을 다짐했다. 그러나 그리스의 저력이 만만치 않았다. 전반 33분 안젤로스 차리스테아스가 선취골을 터뜨렸고, 후반 23분 베컴의 프리킥을 셰링엄이 헤딩골로 연결하며 잉글랜드가 동점을 만들었으나 1분 뒤 데미스 니콜라이디스가 골을 잡아내면서 잉글랜드를 괴롭혔다. 이후 잉글랜드는 매우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동점골을 노렸지만 그리스의 수비에 막히면서 플레이오프로 떨어질 위기에 처했다. 1-2로 계속 뒤지던 잉글랜드는 후반 추가시간에 마지막 프리킥 찬스를 얻었다. 문전 25m 정도의 거리에서 베컴이 프리킥을 준비했다. 그리고 왼팔을 크게 휘젓는 특유의 동작에 이어 오른발 부메랑 프리킥을 쏘아 올렸고, 그림 같은 곡선을 그리며 그리스의 골문을 파고들었다. 이 골로 잉글랜드는 조 수위를 확정하면서 본선 직행 티켓을 거머쥐게 됐고, 핀란드와의 최종전에서 무승부에 그친 독일은 베컴의 버저비터로 플레이오프로 미끄러졌다.
Ⅸ. 바레인의 반전드라마 - 바레인대표팀 라티프
2010남아공월드컵 아시아지역 플레이오프. 사우디와 바레인이 혈전을 펼쳤다. 1차전 바레인 홈경기에서 0-0 무승부를 기록한 두 팀이 2차전 사우디 홈에서 운명의 일전을 치렀다. 후반 45분까지 스코어는 1-1 동점. 원정경기 다득점 원칙에 의해서 바레인이 뉴질랜드와의 플레이오프행 티켓을 거머쥐는 듯했다. 하지만 이때부터 반전드라마가 펼쳐졌다. 홈팬들의 열화와 같은 응원을 등에 업은 사우디가 천금 같은 골을 성공한다. 후반 46분 알 몬타사리가 헤딩골을 터뜨리면서 경기장을 가득 메운 홈팬들을 열광시켰다. 이대로 경기가 끝나면 사우디의 극적인 승리. 그렇지만 역시 승부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추가시간 막바지였던 후반 49분. 바레인이 맞이한 마지막 코너킥 공격. 이스마엘 라티프가 믿을 수 없는 헤딩골을 작렬하면서 바레인이 반전드라마의 주인공이 됐다. 결국 경기는 그대로 끝났고, 바레인이 사우디를 제치고 플레이오프행 티켓을 손에 넣었다. '중동의 맹주'였던 사우디는 16년 만에 월드컵 본선행에 실패하면서 바레인의 반전드라마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Ⅹ. 한국판 '3분의 기적' - 대한민국 U-20대표팀 백지훈
2005년 네덜란드에서 펼쳐진 20세 이하 청소년월드컵에서 한국은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3분의 기적'을 일궈냈다. F조예선 1차전에서 스위스에 덜미를 잡힌 한국은 2차전에서 나이지리아를 꼭 꺾어야 16강 진출이 가능했다. 하지만 전반 18분 아부오에게 선취골을 얻어맞고 끌려갔다. 이후 공세를 펼쳤지만 신영록의 슛이 골대를 맞고 나왔고, 박주영이 페널티킥까지 놓치면서 좀처럼 경기를 잘 풀지 못했다. 패색이 짙어가던 후반 44분. 한국은 '3분의 기적드라마'를 시작했다. 문전 25m 정도의 거리에서 얻어낸 프리킥을 박주영이 절묘하게 감아 차면서 동점골을 작렬했다. 그리고 추가시간이 흐르던 후반 47분 박주영이 수비수 여러 명을 달고 터뜨린 오른발 슛이 상대 골키퍼에 막히면서 옆으로 흐르자, 쇄도하던 백지훈이 사각에서 멋진 왼발슛을 연결하며 극적인 역전골을 잡아냈다. 한국의 청소년 태극전사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투지를 발휘하면서 '슈퍼 이글스' 나이지리아를 침몰시켰다.
일본을 상대한 이라크가 경기 종료 직전에 동점골을 터뜨렸던 것. 남북대결은 이미 끝났지만 일본과 이라크의 경기는 추가시간이 적용되고 있었고, 이라크의 마지막 공격에서 움란 자파르가 헤딩골을 터뜨리면서 경기는 2-2로 종료됐다. 한국은 18초 동안 지옥을 헤매다 천국으로 올라섰고, 일본은 다 잡았던 월드컵 본선 티켓을 눈앞에서 놓치고 눈물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