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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의 수필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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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2 풀어야 할 숙제
청석 임병식 추천 0 조회 61 17.07.23 11:12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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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7.07.23 12:17

    첫댓글 이순신장군은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1년 전인 1591년에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임명되었고, 5관(순천, 흥양, 광양, 낙안, 보성), 5포(사도, 여도, 녹도, 방답, 발포)를 둔 작은 수군기지였지만 이순신장군이 연전연승을 하고, 통제사를 겸하게 되면서 통제영 역할을 수행하였고, 이순신장군 후임인 이시언 수사까지는 여수가 통제영 역할을 수행했으니 여수가 본영입니다. 충무공 사후 경상도 세력이 크니 1603년 류형이 신임 통제사로 부임한 이후에는 경상우수영에 그 지위를 넘겨주게 되었으니 임진왜란 7년 전쟁과 이순신장군은 오로지 여수를 근거지로 해서 연전연승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 작성자 17.07.23 14:11

    몇가지 점은 반드시 정리를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른 장르의 사람은 모르지만 지역에서 수필을 쓰는 사람은 지역의 역사도 남보다는 조금은 더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17.07.23 17:46

    마치 이웃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옆 동네들이 삼도수군통제영을 두고 억지 주장을 해대는 꼴을 봅니다 진남관 이전에 진해루가 있었고 오죽하면 당신의 자당님까지도 여수에 모셔 살게 하셨고 웅천 정씨가문은 공과 함께 혁혁한 전공을 세웠으며 나아가 거북선을 건조한 선소가 여수에 있었건만 통제영이다 거북선이다 하며 나팔을 불어대고 있으니 이건 뭐 역사를 왜곡하겠다는 심뽀인지 뭔지 참 한심스럽습니다 대체 어느 고장 장졸들이 충무공과 함께 나가 싸웠는지요 통영 사람과 한산도 사람들이 나가 이룬 공이었을까요 조금만 생각하고 돌아다보면 빤한 일을 왜곡하니 어이가 없군요 꼽사리나 끼면 또 모를까

  • 작성자 17.07.23 18:03

    그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당초에는 구국의 문 대신 통제영 조형물을 새우려고 읬는데 의의를 제기하는 바랍에 바꾼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대로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20.07.25 18:55

    자기가 사는 고장의 역사와 유래는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저도 공부 좀 해야할 거 같습니다.

  • 작성자 20.07.25 19:51

    글은 결국 그 지역에 살면서 그 지역의 자양분을 받아 쓰는 것인만큼 자기가 살고 있는 역사는 꿰뚫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자기 정체성이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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