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린시절 크리스마스를 제일 좋아했지 그저 예수님이 나셨으니 좋은것도 있었으나 그때 교회생활은 삶의 전부 였다. 라디오 텔레비존 전화기 까지 없던시절 문화 생활 공간 이라 고는 아주 열악한 시대였지요. 군 소재지에 단 하나뿐인 경산극장은 군민들의 유일한 문화공간 이였다 일년에 한번쯤 전교생이 단체로 입장하는 것이 고작 이었고 그것도 십리길 신장로를 걸어서 갔다 그래도 그날은 신나는 날이었다 담임선생님과 같이 대화하며 줄을서서 걸어 보는 날이 었다. 일년에 봄 소풍과 가을 운동회가 전부였던 시절 무성영화 흑백 활동사진에 변사가 분위기에 따라 신나게 변사가 하는 말 소리는 정말 엿장수 마음대로 였다 구슬픈 변사의 말에 눈물도 흘리고 웃음도 웃고 그래서 그날은 가장 즐거운 날이였다 그러던 시절 교회 크리스마스는 가장 즐거운 날이다 평소에 잘 못먹던 과자며 엿이며 과일 떡을 먹을 수 있고 특히 어른들은 별등을 만들어 한지로 바른다음 빨간 물감을 칠해 그 속에다 촛불을 꽂아두면 신기하고 좋아서 처다보고 좋아했다. 촛불이 넘어지는날에는 별등은 홀라당 금방 태워 먹었지 한지는 순식간에 훌훌 다 타버리고 뼈대만 앙상하게 남었지,
크리스마스 이브날 저녁에 성탄축하 행사를 위해 약 십오일간 매일 저녁 교회 모여 연습을 한다 나는 달랑 요절 한절 암송 하는것 가지고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요절을 반복해서 외웠으니 나는 이 성경 요절말씀은 평생 잊지않고 기억한다. "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 ( 누가복음 2 장 11 절 ) 누나는 연극, 독창, 합창, 병창 을 했고 나는 합창과 요절암송, 동생들은 어린이 율동과 동요를 불렀다.
그 추운 겨울 밤 마다 오리길이 넘는 길을 왕복 하면서도 요절 한절 외우는것과 합창한곡 부르는 것을 뽑내고 다녔다. 다른 아이들은 많이 해보고 싶어도 교회학교 선생님이 뽑아주지 않아서 못했다. 그때 겨울은 왜 그렇게도 춥고 눈도 많이 왔는지...... 양말도 옳은것 이 없었고 검정 고무신도 마음대로 못 신고 다닐때 장날 이나 문구점에 가서 나무 개다를 싸와서 끌고 다니면 바닥도 잘 닳아지고 개다 끈은 그렇게 잘 떨어지는지 길에서 연장도 없어 못을 칠수가 없어서 못고치면 끈이 떨어진 개다는 손에들고 한쪽만 신고 쩔뚝 그리며 걸어갔다.
얼마나 발이 시린 것인지 아픈것인지 분간이 않되고 손과 발에 불이 활활 나는것 같았어, 눈이 많이오면 개다짝 밑에 눈뭉치가 붙어서 산봉우리 같았어, 개다를 벗어서 돌에다 대고 두드리면 눈덩이가 떨어지게 되면 다시 신고 걸어 갔다. 친구들과 싸울때는 제빨리 개다를 벗어들고 상대방의 머리를 내리치면 싸움에 이겼다. 성탄절 이브 행사 시에는 시골 작은교회가 터져 나간다 완전 면소재지 잔치였다 교회안에는 꽉차서 자리가 없고 창문밖에 서서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평소 준비한 것들을 마음껏 발표했다.
행사를 마치면 전도실에서 쇠고기 국밥을 끓여서 모두 같이 나누어 먹고 성가대를 중심으로 셋팀으로 나누고 각각 별등을 한개씩 들고 동네별로 나누어 출발하면 우리들은 친구들이 가는 동네로 따라가다 눈길에 미끄러 지기도 하고 개울물 얼음 구멍에 빠져 신발도 배리고 했다 그때는 신이나서 고생이라고 생각 못했다. 그져 즐거웠기만 했으니까 집집마다 칮아가서 몇십리를 걸었는지 손발이 시리기도 하고 춥기도 했다. 옳은 내의도 없었고 요즘처럼 오리털 파카나 점퍼도 없었다 잘해야 합바지, 양복에 외투를 걸치면 끝이다. 그래도 성도의 집을 찾어가서 별등을 대문 안에 넣고 새벽 잠을 깨우는 " 고요한밤 거룩한밤, 기쁘다 구주 오셨네 " 케롤송을 합창 하면 집주인은 자다가 나와서 같이 찬송 부르고 박수를 치고 과자나 과일 사탕 엿 같은 선물 봉지를 하나씩 주면 우리는 자루에 모아 둘러매고 다녔지.
크리스마스 이브날 밤을새고 새벽송 까지 마치고나면 이십오일 성탄예배는 참석을 못하고 하루종일 누워자고 어른들만 교회 가서 성탄 예배를 드리고 왔지요, 이브날 교회 난로는 정말 따뜻했다 세월따라 난로불도 모양이 자꾸 바뀌어 변모를 하였다. 초등학교1학년때는 장작을 때었고 그 중간에는 이승만 대통령 임기초기에 석탄 난로를 피우기 시작 했다. 나보다1년 선배인 문종술 학생은 산림록화 표어 짓기 응모에 전교 1등을 해서 상을 받었다 공부도 우등생 이었다. " 토탄 때고 나무 심어 한재 수재 막으세 " 나중에 고등고시에 합격해서 문판사가 되었지만 그의동생 문성규는 나하고같은 반 이었다.
육이오 동란 이후에는 톱밥 때는 난로가 등장해서 톱밥이 떨어져 지자분 했지만 참 따뜻 하였다 이발소에 가면 톱밥난로 구멍에다 남자 고대기를 넣어서 달구어 고대를 할때 입으로 후후불어 식혀가면서 했는데 머리카락을 태우는 냄새도 나고 했지만 머리카락을 태우지 않고 고대를 잘하는 이발시가 인류 이발시 였어 세월따라 석유 난로가 전환 했다가 이제는 온풍기로 바뀐 12월의 크리스마스 이브에 교회 난로 모양이 바뀌었다. 모든 환경이 다 좋아 졌으나 그때만큼 흥미없고 어른이된 크리스마스 이브는 그져 시컨둥 하기만 하다.
어린시절 나는 항상 교회 난로 바로 옆자리 에서 난로불 을 쪼이고 했다 아버지가 교회 장로로 계셔서 그랬는지 뱃짱이 두둑 했나보다. 가문에서 종손이라고 집안 어른들이 귀하게 생각하니 남들도 나를 귀히 봐 주는 느낌이 들었다, 가정 형편도 왠만 해서 그랬는지 옛날에 시골에서 과수원집이나 정미소, 술도기를 하는 사람은 부자 소리를 들었다. 어렵던 시절 얼마나 배를 골았으면 안녕하십니까 인사말 대신에 동리 어른을 만나면 아침 잡수었습니까? 점심 잡수셨어요? 저녁 잡수었습니까? 그래도 그때 인심은 이웃간에 좋았다.
오랫만에 친한 친구를 만나면 어른들은 아이고 이 문디야 어디갔다 왔노 ! 아이고 이 문둥아 안죽고 살었띠나 ! 이래서 경상도 보리 문둥이가 그래서 좋은 기 라예, 그럭 저럭 크리스마스 행사는 지금 까지 꾸준히 이어 오나 요즘은 모든 사람들이 평범한 명절로 만 생각하고 향락에 빠져 해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주님의 성탄 크리스마스를 정말 경건되게 보내며 다시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예비해야 될 것이다.
첫댓글 참 좋은 글입니다 ★ 5개 드립니다 ㅎㅡ 저도 톱밥난로와 새벽송, 성탄축하발표회가 생각납니다~*^^*
ㅎㅎㅎ 고마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