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에 피는 장미
어제 집으로 돌아가는 길...
KBS 1FM 93.1MHz [이루마의 세상의 모든 음악]에서
Harry Belafonte의 Erev Shel Shoshanim<밤에 피는 장미>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밀폐된 좁은 공간에서 듣는 음악은 그 파급 효과가 무척 크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이화여대 다니던 언니를 따라 연극을 즐겨 봤었다.
팝송이란 것도 모르며 여대생이던 언니들이 부르던 노래를 따라 불렀었다.
맨처음 안 팝송이 아마 [Sad Movie]였을 것이다.
후렴으로 나오는 구절을 아기 때 "쭈삐쭈비"하며 따라 불렀으니까...
철 들고 들었던 팝송이 이화여대에서 한 연극 제목과 같은 [Matilda]였다.
Harry Belafonte의 허스키한 보이스에 빠져든 건 아마 그때부터가 아니었나 싶다.
[Try to remember]나 [Jamaica Farewell], [Day-O(Banana Boat Song)],
[Cu Cu Ru Cu Cu Paloma], [Scarlet Ribbons(For Her Hair)] 등은
내가 대학생이 되어서 참 많이 좋아했던 노래들이다.
[Shenandoah]를 정말 잘 부르던 산악부 형이 있었다.
어둠이 내린 산에서 캠프화이어를 하며 듣는 아마추어 싱어의 [Shenandoah]는
다른 어떤 명가수의 노래보다 좋은 추억으로 기억되고 있다.
1927년 뉴욕의 할렘가에서 태어난 Harry Belafonte의 부모는 자메이카 출신이었다.
카리브해의 섬나라 자메이카는 노예제도 폐지 전까지 노예무역의 중심지였다.
그런 곳에서 탄생한 음악, 칼립소에 재즈를 곁들여 미국에 소개한 Harry Belafonte를
사람들은 칼립소의 제왕이라 불렀다.
칼립소뿐만 아니라 재즈, 민속음악을 넘나들며 빌보드 차트를 석권하는 Harry Belafonte는
영화, 드라마에도 출연하게 되고 미국에서 흑인 최초로 PD가 되는가 하면
카네기홀에 서는 흑인 최초의 인물이 된다.
유니세프 친선대사로도 활동했던 그는 1960년대부터 밥딜런, 존바에스 등과 함께
인권운동을 펼쳤으며 인종차별 반대운동에도 앞장섰다.
어제 이후 자꾸만 입가를 맴도는 노래
Erev Shel Shoshanim<밤에 피는 장미>...
Erev shel shoshanim
Nitzeh na el habustan
장미가 가득한 저녁에
우리 작은 숲으로 함께 나가보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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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yla yored le"aht
Veru"ach shoshan noshvah
Havah elchash lach shir balat
Zemer shel ahavah
이제 서서히 밤이 다가와
산들바람에 향긋한 장미 향이 풍겨오면
당신에게 조용히 노래불러 주고 싶어요
당신에게 바치는 사랑의 노래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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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분간 이 노래를 계속 흥얼거릴 것 같다.
2010. 8. 10. 오후 5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