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따라잡기] 콩쿠르
국제 규모만 120개… 한국은 1960년대부터 1위 차지했죠
콩쿠르
김성현 문화전문기자 기획·구성=오주비 기자 입력 2024.06.24. 00:30 조선일보
한국의 젊은 연주자들이 국제 음악 콩쿠르(concours)에서 빼어난 성적을 거뒀다는 기쁜 소식을 종종 접하지요. 프랑스어로 콩쿠르는 ‘경연 대회’를 일컫는 말입니다. 콩쿠르의 어원을 보면 ‘함께(con) 뛴다(cours)’는 의미가 깃들어 있어요. 마라톤 대회에서 선두 그룹이 함께 뛰면서 치열한 순위 경쟁을 벌이는 모습과 닮은 셈입니다. 어원 자체에 경쟁이라는 의미가 숨어 있는 것이지요. 영어로는 콩쿠르 대신에 아예 ‘경쟁(competition)’이라고 표기합니다. 비단 힙합이나 트로트에만 경쟁이 있는 것이 아니지요.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 정명훈의 소련 차이콥스키 콩쿠르 피아노 부문 2위 수상 소식을 보도한 본지 1974년 7월 4일 자. /조선일보 DB
따지고 보면 노래자랑이나 악기 연주를 통해서 예술적 솜씨를 뽐내고 겨루는 관습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습니다. 프랑스에서는 17세기 루이 14세 시절부터 국가 차원에서 예술 분야 우승자를 선정하는 대회를 열었는데 그 대회를 ‘로마 대상(Prix de Rome)’이라고 불렀어요. 1663년 회화·조각 분야에서 시작됐고 건축·음악 등으로 분야가 확대됐지요. 이 대회는 1968년까지 무려 300여 년이나 지속됐습니다.
프랑스 대회인데 ‘로마 대상’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 흥미롭지요. 분야별 우승자에게 3~5년간 로마의 메디치 빌라에서 체류할 수 있는 부상을 선사했기 때문입니다. 요즘 식으로는 ‘해외 유학 특전(特典)’을 줬다고 볼 수 있지요. 음악 분야에서는 베를리오즈(1830년), 샤를 구노(1839년), 비제(1857년), 드뷔시(1884년) 같은 쟁쟁한 작곡가들이 우승을 차지했어요. 반면 모리스 라벨 같은 작곡가는 5번이나 연거푸 고배를 마셔서 판정의 공정성을 놓고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20세기의 산물
반대로 지금 열리는 음악 콩쿠르들은 대부분 20세기의 산물입니다. 흔히 ‘3대 콩쿠르’로 불리는 쇼팽 콩쿠르(1927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1937년), 차이콥스키 콩쿠르(1958년)의 창립 연도를 보면 알 수 있지요. 피아니스트 선우예권과 임윤찬이 연이어 우승한 반 클라이번 콩쿠르(1962년) 역시 스탈린(1879~1953) 사후 미국과 소련의 화해 기류를 뜻하는 ‘해빙(解氷)’의 산물입니다. 1958년 소련에서 열린 제1회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미국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1934~2013)이 우승을 차지하면서 세계적 스타로 부상했지요. 그의 우승을 기념하기 위해서 4년 뒤에 창설된 대회가 반 클라이번 콩쿠르입니다.
지난해 차이콥스키 콩쿠르 수상자들의 갈라 콘서트 장면. /차이콥스키 콩쿠르
20세기에 콩쿠르가 급증한 이유가 있습니다. 음악교육 방식의 근본적 변화 때문이지요. 이전까지 스승 문하에서 도제식으로 공부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전문 음악학교를 의미하는 ‘컨서바토리(conservatoire)’가 정착하면서 악기마다 연주자들이 쏟아졌습니다. 자연스럽게 옥석을 가려낼 장치가 필요해졌지요. 그 검증 장치가 바로 콩쿠르입니다. 콩쿠르가 젊은 연주자들의 등용문으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크게 보아서 콩쿠르는 축구처럼 하나의 종목만 열리는 ‘월드컵형’과, 여러 종목에서 번갈아가며 열리는 종합 대회인 ‘올림픽형’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피아노의 시인’ 쇼팽을 기념하기 위해 피아노 분야에서만 열리는 쇼팽 콩쿠르가 월드컵형이라면, 피아노뿐 아니라 현악·성악 등 여러 분야에서 돌아가면서 개최되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와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올림픽형에 가깝지요. 현재 ‘콩쿠르의 유엔’으로 불리는 국제 음악 콩쿠르 연맹(WFIMC)에 등록된 대회만 120여 개에 이릅니다. 러시아 정부의 지원을 받는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직후 WFIMC 회원에서 퇴출되기도 했지요. 이처럼 콩쿠르 역시 국제정치의 영향을 받기 마련입니다.
2015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조성진. /쇼팽 콩쿠르
국제 콩쿠르가 120여 개에 이르다 보니 경중(輕重)을 따지는 일도 만만치 않습니다. 하지만 콩쿠르의 역사와 권위를 알려주는 힌트는 적지 않습니다. 우선 역대 입상자를 보면 콩쿠르의 전통을 가늠할 수 있지요. 대표적인 경우가 쇼팽 콩쿠르입니다. 1927년 1회 우승자인 레프 오보린부터 마우리치오 폴리니(6회 1위), 마르타 아르헤리치(7회 1위), 크리스티안 지메르만(9회 1위), 한국의 조성진(17회 1위)까지 이 대회 우승자는 명(名)피아니스트의 명단과 사실상 일치합니다.
또한 상금 액수보다 중요한 건, 대회 수상자가 부상으로 받는 ‘리사이틀과 협연 기회’입니다. 선우예권과 임윤찬이 연이어 우승한 반 클라이번 콩쿠르가 권위를 지니고 있는 것도 뉴욕 카네기홀을 비롯한 미국 유수의 무대에서 독주회를 열고 미국 최고의 악단들과 협연할 기회를 부여받기 때문이지요. 상장과 상금을 받고 끝나는 ‘일회용’보다 ‘애프터서비스’에 강한 콩쿠르가 대접받는 건 음악계도 마찬가지입니다.
2022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자인 피아니스트 임윤찬. /반 클라이번 콩쿠르 조직위
한국의 연주자들
한국은 피아니스트 한동일과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가 1965년과 1967년 레번트릿 콩쿠르에서 각각 우승하면서 세계 음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정경화의 동생인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 정명훈은 냉전 시절인 1974년 소련 차이콥스키 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서 2위에 올랐지요. 당시 그가 귀국했을 때 김포공항에서 서울시청까지 카퍼레이드 행사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사나흘이 멀다 하고 젊은 연주자들이 입상 소식을 쏟아낼 만큼 한국은 ‘음악 강국’이지요. 2000년대 들어서 임동민·동혁 형제를 필두로 손열음·김선욱·선우예권·조성진·문지영·박재홍·임윤찬까지 콩쿠르를 통해서 화려하게 데뷔하는 피아니스트들도 크게 늘었습니다.
해외 유학 경험 없이도 대회 정상에 오르는 경우도 적지 않지요. 한국예술종합학교 산하 한국예술영재교육원에서 ‘음악 신동’을 조기에 발굴하고 금호영재콘서트 같은 무대를 통해서 이들을 꾸준하게 소개하고 기량을 점검하는 체계적 시스템이 갖춰졌기 때문입니다. “만약 클래식에도 올림픽 금메달이 존재한다면 정상에 오르는 것은 단연 한국일 것”(영국 더타임스) “한국 음악교육 시스템은 세계에서 놀라운 성과를 내고 있어서 클래식 본국인 유럽에서 배워야 할 정도”(피터 폴 카인라드 WFIMC 회장)라는 격찬도 쏟아집니다.
김성현 문화전문기자 편집국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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