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9일
제목 모두 함께 예배하기
본문 출애굽기10:1-11
다음 주일은 추수감사절이자, 온 교회가 함께 예배하는 주일입니다. 이렇게 함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더욱 좋은 것은 항상 함께 예배함입니다. 교회공동체는 늘 함께 예배함이 성경의 정신이며, 한 몸인 교회에 잘 어울리는 일입니다. 함께 예배함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배워보려고 합니다.
예배를 거절한 바로
3절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들어가서 그에게 이르되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느 때까지 내 앞에 겸비하지 아니하겠느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라.” 모세는 8장~9장에서 여섯 번 이스라엘 남녀노소 모두 함께 절기를 지킬 수 있기를 요구했으나 바로는 거절합니다. 바로는 종으로 부리는 히브리 사람들이 예배한다고 노동을 멈추면 경제적인 손실이 크기 때문에 거절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방해한 바로의 나라 애굽에 10차례 재앙을 내려 재산과 장자의 생명을 빼앗습니다.
저의 큰딸이 고등학교 다닐 때 주일에도 학업의 진도가 나갔기에 결석하면 손해를 봅니다. 또 담임에게 밉보이면 생활기록부에 어떤 내용이 담길지 모릅니다. 그러니 주일에도 결석할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학교에 가지 않은 딸은 이상한 교회에 다니는 학생으로 취급했습니다.
주일예배 대신 공부하면 이익이 있지만, 믿음이 식어져서 수능을 마쳐도 회복하지 못합니다. 믿음의 무장이 덜된 채 대학에 들어가면 하나님 없는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한 교인이 식당을 열더니 종종 주일예배를 건너뛰었습니다. 결국은 교회를 나오지 않았습니다. 몇 해 후 몸이 망가져서 식당 경영을 포기했으나 교회 다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모세는 바로의 핍박과 거절했으나 절기를 지키겠다고 집요하게 요구합니다. 신앙의 자유는 투쟁으로 얻어내야 가치가 큽니다. 일제강점기, 6,25 전란 때 신자들은 큰 핍박을 받았으나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 믿음의 순결을 지켰습니다. 국가가 신앙을 챙겨주길 바라는 것은 위험합니다. 로마는 기독교 국가가 된 이후 타락했습니다. 영국과 독일의 교회도 국가의 지원을 받은 후 순결을 잃었습니다. 신앙의 자유는 투쟁으로 얻어야 힘이 있습니다.
지금도 사단은 예배를 방해합니다. 예배를 훼방하는 여러분의 바로는 무엇입니까? 공부, 일, 돈, 게으름, 쾌락이 예배를 방해하던가요? 예수께서 피 흘림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열었는데, 이를 가볍게 여기는 것은 그분의 죽음을 헛되게 하는 큰 악입니다. 예배의 방해꾼과 선한 싸움 싸워서 믿음의 순결을 지키고 예배자의 영광을 지켜내는 성도님들이 되십시오.
장정만 예배하라는 바로의 타협안
바로는 모세의 예배 요구를 거절하다가 타협안을 제시합니다. 11절 “너희 장정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 바로는 여자와 아이들과 소와 양을 볼모로 잡아 두려고 했습니다.
모세는 바로의 타협안을 거절합니다. 하나님은 즉시 애굽 땅에 재앙을 내립니다. 12-14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애굽 땅 위에 네 손을 내밀어 메뚜기를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여 우박에 상하지 아니한 밭의 모든 채소를 먹게 하라.” 바로의 꼼수는 애굽의 멸망을 재촉하였습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바로는 장정만 예배하라고 했는데, 우리는 아내만 예배하거나 부모들만 예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로처럼 악의적인 의도는 아니지만, 가족의 일부만 예배하는 일이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교회는 국회처럼 가정의 대표만 예배해서는 안 됩니다. 장정만 예배하라는 바로의 타협안을 지워내야 합니다.
“피리 부는 사나이”란 동화책이 있습니다. 독일의 하멜른시에 쥐 떼들이 출연하여 골치를 앓습니다. 하멜른 시장은 쥐 떼를 퇴치하는 사람에게 포상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한 남자가 나섰습니다. 그 남자가 피리를 불자 신기하게도 도시의 모든 쥐 떼가 피리 부는 사나이의 뒤를 따르다가 강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그러나 하멜른 시장은 약속을 깨고 포상금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 남자는 동네 앞에서 다시 피리를 불었습니다. 그러자 130명의 동네 어린이가 피리 부는 사나이의 뒤를 따라 산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 사라지고 맙니다. 그런데 피리 부는 사나이의 보복은 주일날 어른들이 모두 교회에 간 시간에 일어납니다. 아이들과 함께 교회에 가지 않음이 화근입니다.
이제 시선을 우리에게 돌려보겠습니다. 피리 부는 사나이에 나오는 시대상은 마치 우리의 현재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교회마다 아이들은 줄고 어른들만 모여 예배합니다. 어른들이 교회 간 사이에 아이들은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 게임과 야동에 영혼이 실종되고 있습니다. 어른들이 교회에 가는 시간은 집에 있는 아이들에게 해방구가 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과 손자들은 어떤가요? 불신앙에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사랑하는 부모님들은 어떤가요? 불신앙 가운데 두면 소망이 없습니다. 우리의 자녀와 손자들이 그리스도밖에 머물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어른들만 예배하면 희망이 없습니다. 장정만 예배하는 오늘의 상황을 벗어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모두 함께 예배하겠다
9절 “모세가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인즉 우리가 남녀노소와 양과 소를 데리고 가겠나이다.” 모세는 남녀노소와 소와 양까지 다 데리고 가서 예배하겠다고 했습니다.
오늘 교회도 그 정신을 따라야 합니다. 미국에서 예배를 드린 적이 있는데, 가족들이 다 함께 예배하다가 설교 전 아이들만 데리고 나가서 저들끼리 성경을 배우고, 끝날 무렵 다시 들어와 함께 마칩니다. 제 생각은 어린이도 설교를 알아들으니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함도 좋다고 봅니다. 온 가족이 함께 예배함이 성경적이며 교회의 정신입니다.
출12:26-27 첫 번째 유월절에 온 가족이 함께합니다. 예수께서 설교하실 때,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또 오병이어 이적에서도 어른과 어린아이들이 함께 모였습니다.
몇 년 전 80세 된 할머니 성도의 장례를 할 때입니다. 같은 시간 믿지 않는 분의 장례가 함께 진행되었는데, “아버지, 얼마나 외로우셨어요”라며 자녀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복도를 메웠습니다. 그런데 교회 할머니는 외로울 틈이 없었습니다. 주일마다 시내에 사는 아들, 며느리, 손자들과 함께 예배했습니다. 주일마다 설날이나 추석처럼 자녀들과 손주들을 보는 행복을 누렸습니다. 자녀나 손자들도 부모와 조부모가 함께 예배하던 기억이 신앙을 지탱하는 큰 힘이 될 것입니다. 평생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이 될 것입니다.
함께 사는 자녀와 손자들은 물론이고, 함께 살지 않더라도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부모님, 조부모님들과 예배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본 교회 출석만큼 부모님과 예배하며, 부모님을 외롭지 않게 해줌도 귀합니다.
함께 예배하면 신앙을 전수할 수 있습니다. 또 한 몸 공동체인 교회의 모습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남녀노소가 함께 예배함이 성경의 정신입니다. 모든 세대가 함께 예배하면 비효율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실적과 효율을 우선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7일이면 가나안에 도착할 수 있는 빠른 길이 있었지만, 40년을 걸리게 하셨습니다. 광야를 이동할 때도 어린이, 노인, 시각장애인, 지체장애인이 느리지만 함께 움직이게 하므로 한 몸임을 배우게 했습니다. 교회는 함께 예배하므로 한 몸 공동체의 정신을 구현해야 합니다. 함께 예배해야 어린이와 장로님 권사님을 서로 알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남녀노소 함께 예배하는 그런 믿음의 공동체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가족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가족 모두가 함께 예배하는 뜻을 이룰 차례입니다. 그간 혼자 예배자로 사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온 가족이 함께 예배하겠다는 선한 뜻을 간절하게 품으십시오. 하나님은 가족 중 한 사람만 예배함이 아니라, 너와 네 집을 구원하여 함께 예배하게 해주마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을 믿고 힘을 내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의 선한 뜻을 응원합니다. 온 가족이 예배하는 소원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결론
하나님은 함께 예배하기를 원하십니다. 남녀노소, 부모와 자녀, 손주가 함께 예배 하여 한 몸을 이루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배는 세대와 세대를 잇는 믿음의 통로이며, 교회를 지키는 방패입니다. 이번 통합예배를 기회로 우리 교회가 “모두 함께 예배하는 공동체”로 서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