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을 자아내는 시"를 주제로 한
시창작론 강의를 할 때 사용한 시를 다시꺼내보며
한 10년도 더 지난 그때를 떠올려봅니다.
울 임들도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얼라들과의 하루 중에
하품 나시거들랑 기지개 펴면서
읽어보세요.
*
*
*
마부가 말했다.
지금 마차는 사십 오세 역을 지나고 있습니다.
나는 마부에게 항의했다.
왜 이렇게 빨리 지나는 거요, 이건 내가 원하는 속도가 아니오.
마부는 말했다.
이봐요, 손님. 속도는 당신 주민등록증에 써 있소. 쯩을 까보시오.
나는 쯩을 쥔 손을 부르르 떨며 마부에게 떼를 썼다.
억울해요, 좀 천천히 가거나 마차를 멈춰주시오.
마부는 근엄하게 말했다.
이 마차는 속도를 늦추는 법이 없소. 내리면 다시 탈수도 없구요.
나는 더욱 놀라서 마부에게 졸랐다.
그렇다면 시간을 파는 가계를 찾아주시오. 돈은 얼마든지 있어요.
몸과 영혼과 시간을 다 바쳐서 번 돈 말이오.
시간을 살 수만 있다면 모든 걸 당신에게 주겠어요.
마부는 심각하게 말했다.
글쎄요, 이 마부조차 시간을 파는 가게가 있다는 얘기를
아직까지 들어본 적이 없소.
그러나 당신의 용기가 가상하니 찾아보죠.
마부는 채찍을 마구 휘둘러대고, 마차는 더욱 빠른 속도로
시간을 파는 가게를 찾아서 달리고 달렸다.
마차의 속도는 갈수록 더 빨라졌고, 시간을 파는 가게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중에는 너무 빠른 나머지 나는 겁이 나서 마부에게 소리쳤다.
여기서라도 당장 내려주시오, 어서! 제발·
마부는 냉정하게 말했다.
그러죠, 늙은이. 이 마차에서 내리는 순간 당신은 꽥이요.
-공광규, <시간의 마차 위에서> 전문
*
*
*
*
일요일 아침, 아이들은 거실에서
만화영화에 눈이 빠져 있고
나는 안방 문을 잠그고 아주 오랜만에
아내와 그걸 시도한다
덜그럭거리는 아내와 관계에
기름을 쳐보려고 그걸 세우나
오늘도 잘 안 된다
결혼 십 년 만에 물건이 닳은 걸까
아내와 같이 시집 온 물건들도
덜그럭거리기 시작한다
화장실에 갇혀 있는 세탁기는
자기를 수리해 주지 않는다고
가슴을 텅텅 치며 불평한다
비디오 겸용 14인치 삼성텔레비전도
테이프를 뜯어먹거나 뱉어내지 않아
젓가락을 아가리에 찔러 넣고
그것도 아내가 신경질을 부려야
뜯어먹던 콩나물을 꾸역꾸역 토해낸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멈춘 시계는
건전지를 바꿔 끼워도 돌아가지 않는다
음극판이 부식되어 드라이버로 벗겨내도
마누라를 닮아 전류가 통하지 않는다
아랫도리에 코드를 꽂아도
권태의 곰팡이가 슬어
전기가 안 온다고 불만인 마누라
똥과 오줌을 꿀꺽꿀꺽 잘 받아먹던 변기도
과식하거나 체했는지
계속 게워내다 마침내
화장실을 똥 바다로 만들어버린다
자기 똥이 섞인 가족의 똥이면서도
도망치는 아내와 아이들
결국 가장만이 똥과 대결해야하는
비겁한 가족을 거느린 장수의 슬픔
이빨이 빠지고 대가리가 굵어지느라
말을 안 듣는 아들놈 코를 비틀 듯
몇 번 비틀어야 겨우 말을 알아듣는 가스렌치
보일러 모터도 나처럼 힘이 떨어졌는지
겔겔거리다 이내 죽어버린다
수동복귀를 눌러주러
팬티차림으로 보일러실을 들락거려야 하는
참을 수 없는 번거로움
내 몸에도 수동복귀 단추를 달아
하루 밤에 몇 번을 세웠으면 좋겠다
신혼의 첫 다짐처럼 하얗던 벽지도
때가 탈대로 타고
방구석에는 무관심이 거미줄을 쳤다
부부싸움 때 잘못 들었던 폭언은
아들놈이 몰래 타다 남겨놓은
장판 위 롤러브레이드 자국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쥐꼬리만한 내 수입에 목구멍을 의존하면서도
나를 쥐꼬리만큼도 존경하지 않는 가족들
정말 돈과 존경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속썩이는 남자와 십 년
똥배와 쪼글쪼글한 유방만 남았다고 불만인 아내
시어머니에게 빽빽대는 고장난 스피커
명절과 제사를 없애자고 주장하는 광신자
호주제 폐지를 주장하는 여권운동가
일요일에 주부에게 휴식을 달라는 가사노동자
애정이 생길 때까지 별거해보자는 사르트르 애인
가사와 육아를 공동분담하자는 남녀평등주의자
누가 마누라 수리업을 개업한다면
아주 멋진 산업훈장을 받으리라
나는 그게 안되고
아내는 그것도 못하냐며 핀잔을 주고
나는 더 쪼그라들고
아내는 이내 돌아눕는다
아이들은 거실에서
나의 무능을 알아차렸는지
깔깔거리며 만화영화에 환호를 보낸다
결혼의 생산품은 저 징그러운 사고뭉치들과
중고 가구와
부서져 가는 관계들
무척추동물처럼 이불에서 빠져나와
후라이팬에 찬밥과 남은 김치를 몰아넣고
참기름을 붓고 깨소금을 뿌린다
부부관계란 이렇게 잘 굽고 잘 섞고
잘 데우고 정성스러워야 하는 건 데
요리의 상상력인데
이제는 너무 늦었다
서로 버리는 음식이 되었다.
얘들아, 오늘 아빠 특별요리다?
아이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텔레비전 속의 광고를 먹고 싶다 맛있겠다 한다
돈버는 기계
자본의 소금에 절여진 파김치
밥을 찾아 굽실거리는 벌레
기계와 파김치와 벌레를
아이들이 존경할 리 없다
살림이 싫증난 아내가 운전하는
엉망인 주방 서랍을 뒤지는데
낯선 남자의 명함이 튀어나온다
휴일 아침부터 아내를 바꿔달라는
당돌한 남자의 전화
누워있는 아내를 깨우려다 그만 둔다
허구헌날 문화건달들과 술 처먹고 지껄이다
새벽에 들어와 쿨쿨 자는 아내
여러분, 이 귀한 분을 어떻게 모실까요?
-공광규, <휴일, 권태> 전문
도시 중년 부부 가정의 일상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숨겨진 부부의 권태로운 성과 남편의 재미없는 생계를 위한 의무적인 직장생활,
아내의 지겨워진 가사노동과 방황, 한참 말을 안 듣는 아이들, 상황의 노골적인 드러냄과
“술처먹다”의 등의 비속어, 맨 마지막 행에서 청자의 대상을 갑자기 돌변하여
“여러분, 이 귀한 분을 어떻게 모실까요?”에 와서 웃음을 유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