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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일 개천절입니다. 공휴일입니다. 이동장터 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장사는, 고객과 꾸준하면서도 반복적인 행위를 쌓아감으로서 신뢰를 얻어가는 과정이기에 오늘도 출발합니다.
9시 15분,
지난주에 이어 이번주도 이 마을은 조용합니다. 아무래도 명절 직전 2주간 너무 많이 사셨나봅니다. 더불어 농사가 한창 바쁠 시기이다보니 여유있게 물건 사러 나오는일이 쉽지 않으신가봅니다. 지난번 어머님께서 이야기 하시기로,
"벌레와 사투를 벌이고 있어" 라는 말씀. 나락은 눕고, 벼멸구가 창궐하고, 배추는 말라죽어가고 벌레에 뜯겨가는 지금의 시기. 그러다보니 마을이 더 조용한가보다 싶습니다.
9시 35분,
오늘은 어르신이 문 앞에 안나와 계십니다. 문을 두들겨보니 문은 잠겨있습니다. 티비소리는 밖에까지 들립니다. 아마도 티비소리 때문에 점빵차 소리가 안들리나 싶습니다. 평소 티비소리를 80까지 키워놓으시는 우리 어르신. 필요하시면 또 나오시겠지 싶습니다.
9시 45분,
불가리스 2줄 들고 집으로 찾아뵙니다. 어르신도 집에서 티비 보고 계십니다. 저를 보시곤 오늘이 목요일인줄 몰랐다며 깜박하셨다고 합니다. 서둘러 지갑 챙겨나오시는 어르신. 고맙다고 인사해주십니다.
9시 55분,
조용히 지나가야겠다 싶은 그 순간, 윗집 문이 열리고 손짓 해주시는 어르신. 근 1달 만에 뵙는듯 싶습니다.
"아휴, 그간 바빴어~ 약도 해야하고, 고추도 말리고~ "
어르신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 속에 1달 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휴.. 이번 명절엔 손지들도 많이 안왔어. 고3이라고 공부한다고 안오고, 저기는 또 아프다고 안오고, 평소 반 밖에 안왔어. "
"어르신 그러면 이번 명절엔 적자에요?" 라고 우스갯소리고 농담 건네드리니,
"아니지~ 적자는 안봤어~ 허허" 하십니다.
명절에 많은 식구들이 와서 시끌벅적 해야하는데, 이번엔 그러지 못해 내심 아쉬우신듯 싶으셨습니다. 어르신은
"카스 깡맥주 있지? 그거 하나 좀 갖고 와바~" 하십니다.
"내가 일할 때, 물보다 요게 최고더라고~ 울 남편하고 일하다 하나 반절씩 나눠마시면 그게 최고여~"
아직까지 함께 할 내 편이 있는 것이 어르신에게 좋아보이셨습니다. 때론 일이 힘들어서 누워만 있는 모습도 보겠지만, 그래도 살아가는 집에 나 말고 또 다른 누군가가 함께 계속 있다는 그 존재만으로도 위안이 되고 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10시 10분,
다른 마을로 가던 찰나 길가에서 붙잡는 어르신, 우리 주간보호센터 이용하시는 어르신입니다.
"오늘은 안가서, 일 좀 했네." 하십니다.
"공병 이제 안갖고 가지?" 하는 어르신.
어르신은 공병을 다른데서 모아오셔서 저희 동락점빵으로 주십니다. 많은 고민 끝에 어르신에게 공병을 받지 않기로 하였는데, 공병을 수거하는 일과 이를 다시 반납하는 일 이 모든 과정에 들어가는 품과 시간들이 생각보다 많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공병을 저희 매장에서 술을 사주시는 분들에 한해서 수거하는데, 어르신은 그러하지 않다보니 이런 분들은 안받기로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어르신께서 공병으로 생계를 이어나갈만큼 어려운 경제상황이 아니라는 판단도 함께 있었습니다.
어르신께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며 공병이 어딧는지 여쭤보니,
"아니, 아직 안갖고 왔어~ 저기 다른데 있어~" 하십니다. 어르신께 공병은 다른 고물장수가 오면 넘겨드리라고 말씀드리며, 나서봅니다.
주간보호를 안갈 때는 자기 일을 하시느라 바쁜 우리 어르신들. 부지런함의 끝판왕입니다.
10시 15분,
처음보는 남자분이오셨습니다.
"콩나...물? 콩나?... 나무?.. 천원?.. 천 오?.."
인지에 약간 어려움이 있으신것 같으셨습니다. 외관상 말하지 않으면 모를정도 였는데, 콩나물 사는 일이 쉽지 않아보였습니다.
천천히 설명해드리고 콩나물 2봉지 드렸습니다. 콩나물 확인하고 갖고 가시는 중년의 남성. 이름을 받아두었으니, 나중에 마을분들에게 집안 사정을 여쭤보고 필요한 일이 있다면 의논해봐야겠다 싶습니다.
10시 25분,
오늘도 맛난거 드시고 계시는 우리 어르신들.
감과 대추로 안주삼아 한 잔하고 계십니다. 대추가 빨갛게 너무 잘익었는지, 사과보다도 더 답니다. 맛나게 먹다보니 어르신들께서 한 봉지 움켜주십니다. 우리 아버님,
"울 각시가 콩나물 하나 사오라했는데, 차에 하나 넣어주쇼~" 하십니다.
"나는.. 저 공병 다 갖고갔지? 그걸로 카스 한 박스랑 두부, 콩나물 좀 줘봐~" 하십니다.
지난번 수거해간 카스 맥주병만 143개, 소주병이 59개...
카스 한 박스 값보다 훨씬 많이 나왔습니다.
늘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일을 자주하다보니 맥주를 자주 드시는 어르신. 공병값으로 공짜 술 마신다며 좋아라하십니다.
11시,
마을을 배회하는 어르신께서 손짓하십니다.
"저기 나올테니깐 기다리세요~"
오랜만에 봽는 우리 어르신. 최근 병원 입원 소식도 들었었는데, 어찌 지내시는지 여쭤보니,
"내가 지난번 가니 이석증이 있다고 하네. 거 땜에 고생좀 했네." 하시며
"요구르트 있나? 요구르트랑 콩나물 하나, 그리고.. 막걸리도 있으면 하나 주시게" 하십니다.
물건 받고 별 다른 이야기 없이 가시는 어르신.
비오는 오늘, 우산도 안갖고 오셨습니다. 우산도 깜박했다며 걸어가십니다. 예전 같으면 많은 이야기를 하셨겠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는 어르신.
여유있게 집에 한 번 들려야겠다 싶습니다.
11시 10분,
회관에 도착하니, 어르신 한 분이 오십니다. 같이 따라들어갑니다.
"날 궂어서 왔는디, 암도 없어~"
"불도 안넣어놨구만"
전기장판에 불넣어드리며, 여까지 걸어오시느라 고생많으셨다고 말씀드리며 이야기하던 찰나 어르신 한 분 또 오십니다.
저희 주간보호센터 다니시는 어르신이었습니다.
"여민동락 여 물건 비싸다며? " 하시는 어르신.
이제는 저희가 물건이 비싸다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듣다보니 어르신께 한 말씀드렸습니다.
"어르신, 비싸시면 싼 곳 찾아 읍에가서 사세요. 저 물건 못드리겠어요. " 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라면 하나 달라고 하시는 어르신,
"내가 웃으라고 하는 소리여~ 아우 괜찮아~" 하시는 어르신.
유통과정을 이해하기가 어려운 어르신들, 아니 어르신들 뿐만 아니라 일반 성인들도 비슷합니다. 동락점빵에서 파는 물건은 읍보다 더 싸야하지 않겠냐며, 왜 비싸게 파냐고. 물건을 떼오는 입장에서 왜 가격을 더 붙이냐며. 저희가 지원금이라도 받는 줄로 오해를 하셨을까요? 자체적으로 장사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마진' 이라는 개념을 생각하지 못하시겠지요.
"어르신, 우리 동네 유일하게 남아있는 슈퍼, 우리 사라져도 괜찮아요? 우리가 이렇게까지 와서 파는 이유가 무엇이에요~. 우리 정말 힘들어요~" 라고 말씀드리니 어르신이 미안하다고 하십니다.
내심 2주동안 장사가 잘 안되었던 마음이 어르신께 서운함으로 표출됬던것 같습니다.
(몇일 후 어르신 아드님 전화오셨습니다. 우리 어머님께 필요한 거 있으면 모두 다 갖다주시고, 결제는 본인이 하시겠다며, 적극적으로 물건 놔주세요~ 하시는 아드님. 감사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어르신들은 돈이 아깝다며 필요한거 이야기 하지 않으시겠지요.)
13시 40분,
"어이!! 어이!! " 어디서 소리가 들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잠깐 멈춰서니 어르신 뒷집 담벼락 뒤에서 들리는 소리. 담타고 넘어오십니다. 옷이 다 젖어있습니다.
"일 하다보면 어쩔수 없어. 비 맞고서라도 해야지." 하십니다.
그 사이 우리 어르신도 나오십니다.
"그 음료수 있어?" 하시는 어르신.
지난번에 못산 불가리스 1줄 사십니다. 한 줄 더드릴까요? 하니, 더 달라고 하십니다.
불가리스보고 흐뭇해하시는 어르신. 아들 줄 생각에 그렇게 좋으신가봅니다. 어르신 잔돈 꺼내려던 찰나, 800원은 포인트로 하겠다고 말씀드리며 나섰습니다.
13시 50분,
쓰러지고 벼멸구에.. 논이 난리네요. 수확이 얼마 안남았습니다. 더번지지 않고 끝까지 잘 버텨가길 바래봅니다.
14시 10분,
아드님은 요 근래 계속 컨디션이 좋아보이지 않습니다.
술에 계속 취해있는 것일지, 무엇 때문인지... 오늘도 댓병 하나 사고 가십니다.
50대의 아드님이 농촌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요.
14시 30분,
오늘도 어르신 댁에 두부 두개 놓고 옵니다.
일상이 반복됩니다. 잘 지내시고 계신다는 것이겠지요.
14시 40분,
어르신, 지난주 못봽고 오늘 봽습니다.
두유 한 박스 들고 가니 방 안쪽에 윗마을 어르신 주무시고 계십니다. 두분다 홀로 지내시는 여성 어르신. 서로의 기운을 느끼고 싶으셨던것일까요? 늘 오시면 밥도 같이 먹고 잠도 같이자고... 온기가 필요할 때라 생각합니다. 더 먼 윗집 어르신 밑반찬 여부 확인하니,
"내가 연락처 받아놨어. 이제는 오면 갖고 가라고 할려고, 연락처를 안알려줘서 힘들었어`" 하십니다.
어르신께서 도와주신 덕분에 밑반찬 배달이 조금 더 수월해지리라 생각해봅니다. 더 윗집에 계시는 어르신 집은 가는길이 외지고 거리가 멀어 배달하는 일이 쉽지 않는데, 이렇게라도 나와주시니 다행이다 생각합니다.
15시,
오늘은 공휴일이라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안오시는 날입니다.
어르신댁에 가니 침대에 누워계십니다. 침대 바닥이 냉골입니다. 잠시 나오려던 찰나 어르신이 부르십니다.
"내 좀 전에 누웠어~ 와줘서 고맙네~" 하십니다.
어르신께 냉골이라고 불좀 넣으라고 하시니, 넣었다고 하는데 장판은 꺼져있습니다. 장판 키고 불 올리고 어르신께 인사드리고 나오려고 하니 식용유 작은거 하나 달라고 하십니다. 얼마 안남았다고 합니다. 어르신께 식용유 드리고, 불 온도 올라오는거 만져보고 나옵니다. 난방비 아낀다고 보일러도 안트시는 어르신들.
"어르신, 난방비 아끼다가 병원비 더 많이 나와요" 하니,
"울 선생도 똑같은 말 하네~" 하시며 웃으십니다.
15시 10분,
이제 어르신들께서 시정에 계시지 않습니다. 날이 추워졌습니다. 회관에 모여계시는 어르신들. 나오시는 발걸음에 회관에 계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갑작스러운 찬 바람에 감기걸릴수도 있으니, 회관 안에서 주문 받습니다. 주문 받고 갖다드리니 좋아하시는 어르신들. 따듯하게 커피 한 잔 마시고 가라고 하십니다. 커피 한 잔 마시며 어르신들 안부 확인하고 나섭니다.
15시 30분,
지난번 공병 소주 200개 넘개 주신 전 총무님. 나오실줄 알았는데 안나오십니다.
연락이 오실것으로 기약하고 넘어갑니다.
15시 40분,
우리 어르신댁 올라가니 어르신 고구마 캐는데 여념없으십니다.
오늘도 손짓하시는 어르신. 인사 드리고 넘어갑니다.
15시 45분,
어르신 댁 앞에신발이 많습니다. 마을 분들이 모두 여기 계십니다.
어르신이 평소 몸이 많이 불편해서 내려가는 일이 쉽지 않았는데, 어르신을 모시고 다니셨던 총무님도 교통사고가 나서 차를 폐차시키게 되어 더욱 이동이 어렵습니다. 그걸 아시는것인지 우리 마을 어르신들 이곳으로 자주 모이십니다. 그 덕에 어르신 외롭지 않습니다.
어르신께서 플라스틱 통 우유를 달라는 말씀에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낱개로 떼오는 입장에 마진까지 붙이다보면 만원가까이 하는 우유를 드릴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마트에서도 1.8l 우유 8000원에 납품하는데, 우리에게 오면 9천원까지 오를 수 있기에 이는 어르신에게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어르신도 부담이 된다고 하십니다. 팩 우유로 대체하지만, 양이 적절치 않고, 여러개를 사자니 유통기한이 애매하다고 하고.. 신선 식품을 적정가로 드리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어르신도 이해를 하십니다. 소량도 최소한의 가격으로 물품을 구매할 수 있는 유통구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늘 듭니다.
16시 40분, 가을입니다.
배달 오며가며 시선을 뺏았던 그곳, 우리 반장님이 열심히 일궈놓은 논입니다.
농민 덕분에 눈 호강하며 삽니다. 그 덕에 오늘 하루 힘든 일 잊습니다. 고맙습니다 어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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