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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를 극복하는 믿음
(눅 12:22-32) 목숨과 몸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22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23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24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25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 26 그런즉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하면서 어찌 다른 일들을 염려하느냐 27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큼 훌륭하지 못하였느니라 28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29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30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31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2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염려하지 않고 염려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누구나 염려라는 질병을 앓고 있습니다. 주위에 너무 가까이 있어서 그 폐해가 잘 느껴지지 않을 뿐이지, 인간에게 큰 치명상을 입히는 것이 염려라는 독한 병입니다. 인간의 오랜 역사 가운데서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염려라는 질병 때문에 고통스러워했는지, 염려라는 장막에 갇혀 인생을 허비했는지 모릅니다.
인간의 삶을 불행으로 만드는 단초에는 늘 염려라는 독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염려처럼 끈질긴 것도 없습니다. 왜 염려할 필요가 없는지, 그 내용을 잘 설명해 주고 위로해줄 때는 고개를 끄떡이지만, 그 설명이 끝나기도 무섭게 돌아서면 또다시 ‘하지만…’이라며 염려하는 게 우리의 실상입니다. 염려처럼 전염성이 강한 것도 없습니다. 마음과 생각에서 염려가 시작되지만 결국 이 염려가 모든 인격과 몸을 지배하게 됩니다. 즉 인간의 모든 영역에서 염려가 힘을 발휘합니다.
더 나아가 어떤 사람이 염려하게 되면, 옆에 있는 또 다른 사람도 염려하게 되고, 이어 또 다른 사람도 염려에 전염됩니다. 게다가 염려처럼 우리의 믿음을 흔드는 것도 없습니다. ‘worry’라는 단어의 어근의 뜻은 ‘물어뜯다’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물어뜯어서 우리로 찬송과 기도를 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이 염려라는 것입니다.(김경진 목사 설교에서 발췌)
오늘 본문은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염려하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염려할 일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제자들에게도 먹고사는 문제가 있었고,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염려할 일이 없을 것이다’가 아니라 ‘염려할 일이 있어도 염려에 사로잡히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늘 걱정과 염려가 많아서 사업을 하기가 쉽지 않았던 아서 랭크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염려하느라 매일매일 힘들고 불안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다 한 가지 좋은 생각을 합니다. 일주일 중 하루를 ‘염려하는 날’로 정하는 것입니다. 염려 상자를 만들어 염려나 걱정거리가 생기면 내용을 적어 상자 안에 넣었습니다. 그리곤 그 염려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하지 않기로 합니다.
일주일 중 단 하루, 수요일에만 염려 상자를 열어 적어둔 내용을 읽으며 염려하기로 정한 것입니다. 드디어 수요일이 되어 염려 상자를 열어보았습니다. 과연 많은 염려 종이들이 나왔습니다. 한 장씩 한 장씩 읽어 가면서 본격적으로 걱정을 하려 하는데, 놀랍게도 며칠 사이에, 한 주간도 안 되는 그 사이에, 저절로 많은 염려가 해결되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더는 걱정거리가 안 된 것들이 70% 이상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우리가 너무 일어나지도 않을 일들을 자주 걱정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우리는 염려에 대하여 세 가지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첫 번째로, 염려 속에 살아가는 인간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염려하며 살아갑니다.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염려하고, 건강 때문에 염려하고, 자녀 때문에 염려합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염려하고, 이미 지나간 일 때문에 마음 아파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염려를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29절) 먹는 것, 마시는 것, 입는 것, 즉 삶에 필요한 의식주에 대한 염려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염려가 완전히 없어질 수는 없습니다.
어린아이는 어린아이대로 염려하고 학생은 공부와 진로 때문에 염려합니다. 부모는 자녀 때문에 염려하고 직장인은 직장과 미래 때문에 염려합니다. 사업하는 사람은 사업 때문에 염려하고 나이가 들면 건강과 노후를 염려합니다. 문제 하나가 해결되면 또 다른 염려가 찾아옵니다. 그래서 사람은 평생 염려하면서 살아갑니다.
한 농부가 농사를 지으면서 늘 걱정이 많았습니다. 봄이 되자 “비가 제대로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비가 적당히 내렸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비가 너무 많이 오면 어떻게 하지?” 비도 적당했습니다. 그러자, “병충해가 생기면 어떻게 하지?” 병충해도 잘 지나갔습니다. 이번에는 “태풍이 오면 어떻게 하지?” 태풍도 별 일 없이 지나갔습니다. 농사가 잘되었습니다. 그런데 수확할 때가 되자 또 걱정합니다. “올해 농산물 가격이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가격도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농부는 마지막에 또 걱정합니다. “내년에는 어떻게 하지?” 이것이 염려하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염려할 문제가 없어져도 또 다른 염려를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염려는 환경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결국 마음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염려는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염려가 무서운 것은 단순히 걱정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염려가 시작되면 우리의 생각이 한 가지 문제에 붙잡힙니다. ‘어떻게 하지?’ ‘앞으로 잘될까?’ ‘혹시 잘못되면 어떻게 하지?’ 그런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마음은 더 불안해집니다. 처음에는 작은 문제였는데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점점 커집니다. 염려는 작은 문제를 크게 만들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오늘의 문제로 만들어 버립니다.그래서 염려하는 사람은 오늘을 살면서도 마음은 내일의 문제 속에 가 있습니다.
2. 두 번째로, 염려의 쓸데없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염려의 무익함을 아주 간단하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25절)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염려의 본질을 말씀하십니다.
➀ 염려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염려한다고 해서 우리의 삶에 실제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염려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지만, 실제로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합니다. 키가 작은 사람이 아무리 염려한다고 키가 커지는 것이 아닙니다. 돈이 부족한 사람이 아무리 걱정한다고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건강 문제를 염려한다고 건강이 좋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자녀의 문제를 밤새 걱정한다고 자녀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에너지만 빼앗아 갑니다. 시간을 빼앗아 가고 평안을 빼앗아 갑니다. 그런데도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염려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삶의 문제를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염려의 허무함입니다.
➁ 염려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사는 것입니다.
염려에는 재미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마치 이미 일어난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자녀가 아직 건강한데도 부모는 앞으로 자녀에게 무슨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까? 걱정합니다. 아직 사업에 문제가 없는데도 앞으로 사업이 잘 안되면 어떻게 할까? 걱정합니다. 아직 건강한데도 혹시 큰 병에 걸리면 어떻게 할까? 걱정합니다. 물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미래를 준비하는 것과 미래를 미리 걱정하는 것은 다릅니다. 준비는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고, 염려는 오늘 할 수 없는 일을 붙잡고 씨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염려하는 사람은 오늘을 살면서도 마음은 아직 오지 않은 내일에 가 있습니다. 결국 오늘의 삶을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마태복음 6:34)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오늘이라는 시간을 주셨습니다.그런데 우리는 오늘을 살면서 내일을 걱정하고, 내일이 오면 또 그다음 날을 걱정합니다. 그러다 보면 평생 염려만 하다가 인생을 마칠 수도 있습니다.
➂ 염려는 오늘의 평안을 빼앗아 갑니다.
더 큰 문제는 염려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오늘의 평안까지 빼앗아 간다는 사실입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다가 오늘의 기쁨마저 잃어버립니다. 가족과 함께 있으면 그 기쁨 속에 살아야 하는데 오히려 걱정합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도 기쁨보다는 걱정이 앞서고 예배를 드리면서도 걱정하고 기도하면서도 걱정합니다. 그러면 몸은 현재에 있지만 마음은 미래의 문제 속에 갇혀 있는 것입니다. 염려는 미래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현재의 평안만 빼앗아 갑니다. 이것이 염려의 가장 큰 허무함입니다. 염려는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의 고통을 오늘 미리 당하는 것입니다. 또한 염려는 없는 것을 걱정하다가 하나님께서 오늘 주신 것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옛날 차가 드물 때의 이야기겠습니다만 어떤 사람이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마침 트럭 한 대가 지나가다가 그 사람을 태워주었습니다. 그런데 한참 가다가 운전자가 뒤를 보니 그 사람이 여전히 무거운 짐을 등에 짊어지고 있었습니다. 운전자가 말했습니다. “왜 짐을 내려놓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차를 태워주신 것만 해도 고마운데 짐까지 맡길 수는 없지요.” 우리는 이 사람을 어리석다고 생각합니다만 때로 우리의 모습도 이와 같을 때가 있습니다. 기도할 때는, “하나님, 이 문제를 맡깁니다.” 라고 합니다. 그런데 기도를 마치고 나면 다시 걱정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지?’ 하나님께 맡겼다고 하면서 다시 내가 짐을 짊어집니다. 염려는 우리의 삶에 백해무익합니다. 염려하는 것처럼 쓸데없는 것은 없습니다.
3. 셋째로, 염려를 해결하는 길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쓸데없는 염려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염려하지 말라”고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염려를 해결하는 적극적인 방법을 말씀하셨습니다.
① 하나님이 나를 돌보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중의 새를 바라보게 하십니다.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24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하나님께서 새도 돌보시는데 하나님의 자녀를 돌보시지 않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염려를 이기는 첫 번째 길이 나옵니다. ‘나는 하나님의 돌봄을 받고 있는 사람이다.’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염려합니다만 그러나 하나님은 미래를 아십니다. 우리는 앞날을 볼 수 없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앞날을 보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미래를 아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➁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염려를 해결하는 가장 중요한 방향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31절) 우리의 관심이 무엇에 집중되어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세상만 바라보면 염려가 커집니다. 돈을 바라보면 돈에 대한 염려가 생깁니다. 건강만 바라보면 건강에 대한 염려가 생깁니다. 자녀만 바라보면 자녀에 대한 염려가 커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면 믿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염려를 이기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염려 자체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염려는 문제를 바라보게 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하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염려는 “어떻게 하지?” 말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하나님께 맡기자.”고 말합니다. 염려는 말합니다. “앞으로 큰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그러나 믿음은 말합니다. “앞으로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 염려는 미래를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미래를 하나님께 맡깁니다. 그래서 염려를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억지로 염려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중의 새를 보라고 하시고 들의 백합화를 보라고 하신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저것들도 돌보신다. 그런데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때 염려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③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염려를 해결하려면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5:7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라는 말입니다. 작은 염려만 맡기는 것이 아닙니다. 큰 염려도 맡겨야 합니다. 건강도 맡기고, 자녀도 맡기고, 미래도 맡기고, 경제적인 문제도 다 맡겨야 합니다. 물론 맡긴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하고,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염려할 일은 계속 생길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염려할 일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그 염려를 누가 가지고 있느냐?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으면 염려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맡기면 기도가 됩니다. 내가 붙들고 있으면 걱정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맡기면 믿음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염려할 일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염려할 일이 있어도 염려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없는 일까지 붙들고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공중의 새를 먹이시는 하나님, 들의 백합화를 입히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를 돌보십니다. 그러므로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는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십시오.
2026.09.06
▲권호만 목사

첫댓글 한분이라도 도와주시길 거듭 부탁드립니다..
카페에 후원이 필요합니다 카페지기는 아주 어렵게
지냅니다 투병중에 생활고로 어렵습니다
도와주신 분들께 박경옥 전도사가 하루 두번
기도해드리고 있습니다 다
먹을것도 없습니다 한 분이라도 도와주셔서...
용기릏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후원이 없다 보니 공과금도 못내고 먹을것도 못삽니다
1만원 이라도 도와주시면 카페지기는 큰힘을 얻습니다
건강문제로 박스나 고물도 줍지 못합니다
앿값이 없는데 먹을것을 사야합니다 오늘은 도와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용기를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먹을것도 못사고 공과금도 밀리고 치료비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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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병으로 투병하며 카페일로 소일하며 지냅니다 수입이 전혀 없이 살고 있습니다
예수 코리아 카페를 도와주실분을 기다리고 작정기도합니다 매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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