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꽃이 하얗던 날 김인숙
가을이 왔다
종일토록 물감 풀어낸다
썼다가 지우고 그렸다가 지우고
귀뚜라미가 무대를 꾸며 주는 일
다시 지우고 그리라는 소리
그대 그리움에 풀잎 허리 꺾으며
하늘은 바다를 출렁여 놓다가
언덕 허리춤에 가물가물 섬을 보여 주다가
이따금 어깨를 건드리는 빗방울의 갈 빛 노래
귀뚜라미야 여치야
이제 그만 울자
벼꽃이 환하게 피었잖니?
들판에 붉은 고추도 거두어야 하고
서리 내리기 전에 고구마도 캐야 한다
이제 참자
아름다운 가을이 왔잖아
참는다는 것 또한 아름답지만은 않구나
얼마나 얼마나 아픈 일인지
가끔 울고 싶기는 한데 울어야 할 일 없고
누군가 그리운데 그리운 이도 없구나
뜨락에 분꽃 해바라기 필 때
가을 화선지에 그림을 그려야지
하늘 가려진 솔잎 사이로 끊기지 않은 삶이 보인다
이어지는 시간
가을이 들어 왔다
첫댓글 아, 우리 카페 김인숙 시인님 시가 실렸네요.
감사히 감상하겠습니다.
누군가가 나도 모르게 이렇게 보이지않는곳에서 열심히 노력하여 낭송영상을 만들고 낭송을하고있다는것에 무한한 고마움과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 합니다
풍경님 마음에 들었으니 선택되신 거지요.
권인숙 교수님은 우리나라 최고의 낭송가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