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향토사탐방 -20-석보면소계리와 김녕김씨종택 및 오류정을 소개합니다.
*석보면소계리石保面素溪里 마을유래
소계리는 북쪽으로 영양읍 화천리, 서쪽으로는 입암면의 양항리, 남쪽으로는 옥계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소계리는 소박하고
작은 시내가 흐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 영양군 석보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을 개편할 때 산막골과 용두골, 마차골을 합해서 소계동이라고 부르고 석보면에
들게 하였다.
소계리는 소계, 마차골, 사마곡, 은행정, 잿마, 용우골의 6개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계는 약 400년 전에 김구흥(金九興)이 임진왜란을 피해 들어와 정착하여 개척한 마을이다.
그 뒤 김구홍의 후손인 김두행이 근처의 금화산 기슭으로 거주지를 옮기면서 김씨 일가가 집성촌을 이루어 살며, 동네 이름도 금화
촌 또는 굼못이라고 바꾸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과 함께 소계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마을에는 김두행이 1774년에 후학을 가르
치기 위해 세운 금계서당의 유적과, 김두행의 후손들이 김두행의 유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오류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마차골은 옥계와 소계의 경계를 이루는 곳으로 소계의 제일 마지막 골짜기라는 뜻이다.
산막골은 김녕김씨들이 집성촌을 이루어서 이 마을에 거주할 당시 이곳에서 말을 길렀다고하여 처음에는 사마곡(飼馬谷)으로 불
렀다. 그러나 나중에 말을 기르던 곳에 산막을 지어 한두 집씩 들어 살면서 마을의 이름도 산막골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산막골
북쪽에 못이 있는데, 이 못을 팔 때 옛 기와와 쌀알, 화살촉 등이 많이 나왔다고 한다.
은행정은 지금은 없어졌으나, 옛날에는 은행정이라는 정자가 있어서 부르게 되었다.
1300년 무렵에 세워진 이 정자는 1940년쯤 이 마을 사람이 땅을 일구어 논을 만들 때에 정자의 주춧돌이 수십 개 발굴되었으나,
그 뒤 파묻혀 없어져 버렸고, 지금은 그 터만 남아 있다. 그리고 그 정자가 있던 자리 옆에 오래도니 은행나무 뿌리에서 새로 어린
나무가 뻗어 나와서 자라 현재 제법 큰 나무가 되어 있다.
잿마는 석보면과 입암면의 경계가 되는 산 밑에 자리잡은 마을로, 옛날부터 화전민들이 개척하여 살던 마을이다. 재를 넘는 마을
이라고 하여 잿마라고 부른다고 한다.
용우골은 이 마을의 골짜기에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 귀 달린 이무기가 살았다는 바위굴이 있다.
*김녕김씨종택 및 오류정五柳亭
-명 칭:김녕김씨종택 및 오류정(五柳亭)
-소 재 지:경상북도 영양군 석보면 소계리 318번지
-건 축 주:김두행(金斗行, 1705~1789)
-건축시기:1735년
-중건시기:1965년 오류정 중수
-소 유 자:김호봉(金鎬鳳, 김두행의 8대손)
-문 화 재: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82호, 1985. 8. 5 지정
*건축 이야기
오류정종택은 지극한 효성으로 이름난 김두행이 1735년(영조11)에 건립한 가옥이다.
집을 지은 뒤에 김두행은 집 뒤뜰에 버드나무 다섯 그루를 심고 정자를 지어 오류정(五柳亭)이라고 불렀다. 오류정은 1965년에
후손들에 의해 중수되었는데, 현재 오류정은 종택의 서쪽 200m가량 떨어진 산등성이에 자리 잡고 있다. 오류정종택은 안동을
중심으로 한 양반집의 전형적인 양식인 ㅁ자형 건물이다.
*현판
오류정(五柳亭) 정자의 어칸에 걸려 있다.
무송헌(撫松軒) 오른쪽 협실의 퇴칸 오른쪽 대들보에 걸려 있다.
이안실(易安室) 왼쪽 협실의 퇴칸의 왼쪽 대들보에 걸려 있다.
개갈공로기(改碣功勞記) 김두행의 비갈(碑碣)이 100여 년 동안 바람과 비에 노출되어 훼손되어 글자를 알아볼 수 없는 지경이
되자,1986년 김두행의 문중에서 비갈을 새로 세우고, 예전의 비갈은 그 곁에 묻었다는 내용의 기문이다.
기문은 국한 혼용문이다. 김두행의 묘소는 종택에서 1km떨어진 맞은 편 금화산에 위치하고 있다.
권오인(權五寅)이 비문을 짓고, 고동주(高銅柱)가 글씨를 쓰다. 비석은 7대손 김명기(金命基)와 8대손 김호봉(金鎬鳳)이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오류정중건기(五柳亭重建記) 1965년 순천(順天) 김철희(金喆熙)가 지은 기문이다.
성취문(成就門) 정자의 진입문의 이름이다. 현재는 정자의 마루에 놓여있다.
오류정상량문(五柳亭上樑文) 1965년 오류정을 중건했을 당시에 지은 상량문이다. 권오인(權五寅)이 지은 글이다.
*석보면소계리素溪里 금계서당金溪書堂
오류정(五柳亭) 김두행(金斗行 1705~1789)이 건립한 서당으로 평지마을 건너편의 동쪽 산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서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기와집이다. 평면은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 1칸씩을 연접시킨후 온돌방과
대청의 전면에는 반칸규모의 퇴칸을 두었는데 대청의 전면에는 사분합문을 설치하여 마루방을 이루게 하였으며 퇴칸의 주위에는
평난간을 세운 헌함을 둘렀다. 가구는 오량가의 소로수장집이며 처마는 홑처마이다.
문화관광해설사 박원양.
영양 오류정종택(五柳亭宗宅)오류정종택(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82호) 경상북도 영양군 석보면 소계리 오류정종택 안내판
이 집은 조선 영조 때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낸 오류정(五柳亭) 김두행(金斗行, 1705~1785) 선생이 영조 11년
(1735)에 지은 고택blog.daum.net
화천리, 서쪽으로는 입암면의 양항리, 남쪽으로는 옥계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소계리는 소박하고 작은 시내가 흐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 영양군 석보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을 개편할 때 산막골과 용두골, 마차골을 합해서 소계동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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