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도 빠르고 몸도 빠르고 마음도 빠른 교도님이 계신다.
저녁을 먹고 있는데 전화가 온다. 받아보니 그 분이시다.
'교무님! 식사하세요?' 라고 한다. 그래서 '예'라고 하니 '겉절이 해서 가져가려고 하는데' 라고 한다. 내가 겉절이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전화를 끊고 내가 말하기를 '하여튼 빠르기는 해. 말도 빠르고 행동도 빠르고 몸과 마음이 함께 해' 라고 하는 순간 '어, 이것이 지행합일이네'라고 한다.
그래서 내가 '교도님이 그런 줄 알면 성자인데' 라고 하는 순간 또 '어, 그러고 보니 그 분이 성자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행동하니 모두가 성자네!'
즉 '마음과 행동이 같이 움직이잖아?' 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중생은 마음만 부처라'고 생각했다. 그랬는데 알고 보니 몸과 마음이 함께 부처임을 아는 순간이다. 그래, 요란함만 없애면 되는구나. 몸과 마음이 같이 행동하는 것은 성자와 같은데 중생은 요란한 것이 문제이고 그것이 바로 다른 것이구나.
그래서 끌려 다니고 끌고 다니는 차이구나. 이 요란함은 바로 무의식이 조장하는 것이구나 싶다. 그래서 그 무의식을 의식화 시켜야 한다.
의식화란 내가 그러고 있는 나의 속마음을 알고 찾아내는 것을 뜻한다.
이것이 바로 공부다. 이런 마음들은 꼭 일기를 써야 나온다.
그러면 이 몸과 마음이 함께 어울려 부처구나 싶다.
그래, 지행합일 이라는 말씀은 무의식을 알아내기만 하면 되는구나.
그러면 이미 아는 것과 행동이 함께 하고 있으니 함께 하고 있는 그것을 알면 지행합일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올바른 것만이 행동으로 옮겨져야 지행합일이라는 것으로 알았다. 그리고 모두가 그런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착각이다.
그래, 지행합일이 무위이화 자동적으로 이미 되어지고 있구나.
알기만 하면 되는구나 그래서 '知' 즉 그런 줄 '알라'는 말씀이구나.
행동하는 줄 알면 벌써 합일이다. 그래서 행동과 마음이 하나구나.
그러고 보니 이것이 바로 법신의 작용들이구나 싶다.
옛날에는 법신은 가슴에서만 작용하는 줄 알았는데 가슴의 반응은 요란함의 소식을 알려주는 곳임을 알았다. 그리고 마음은 머리에서도 작용한다.
우리가 생각이 일어난다는 말을 할 때 모두가 머리를 가리키며 말을 한다.
이는 바로 머리에서 생각이 일어난다는 뜻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슴의 반응은 요란함의 반응이고 머리의 반응은 요란함이 없는 자성의 정이 세워진 자리다. 그래서 화도 나오고 욕도 나온다는 말이 이 말이구나 싶다.
그래, 성자님들이 천상에 살고 계신다더니 머리가 천상이고 그 생각대로 사는 것이니 얼굴은 화락 천 수족은 타화 자재천이라는 것이 바로 요란함이 없으면 모두가 하늘이고 천상이구나. 요란하면 바로 땅 즉 지상이며 괴로움이다.
하늘에는 잡초가 없고 깨끗하고 텅 비어있다. 이것이 바로 요란함이 없는 경지를 말한다. 그리고 땅은 온갖 잡초가 무성하다. 이는 요란하다는 뜻이다.
그러고 보니 가슴에서 요란함이 없으면 머리에서 무슨 생각이 나오든지 요란할 것이 없구나 싶다. 그래서 화는 화가 아니고 욕도 욕이 아니라는 것이구나 싶다.
첫댓글 법신을 알았네요 ... 그러나 끝 부분을 다시 살펴 보아요 ...하늘에는 잡초도 없지만 곡식도 없지요?.. 경계따라 잡초도 곡식도 있지요 .. 그리고 있는 것인 줄만 알면 ..요란함 자체가 하늘이지요 ... 요란함이란 있어진 곡식도 요란함이니까요
또 화가 화가 아니지만 화이고 ... 욕이 욕이 아니지만 욕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