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무공전서 권5-8에 있는 난중일기를 보면 공께서는 평소 틈만 나면 습사를 많이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일기를 시작한 첫날(1592년 1월 1일)부터 ‘長片箭을 받는’
것이 나온다. 난중일기에는 공이 활을 쏜 것으로 기록한 날이 270여회로 집계된다.
약 7년간의 일기 중에 약 571일의 일기는 아예 없거나 빠져있다. 일기를 쓴 날을 살펴
보면 몸이 불편했거나 배를 타고 출병했거나 옥사나 백의종군 기간, 겨울철이나 하루
종일 비가 오는 날, 제삿날이라 활을 쏠 사정이 아닌 한 거의 매일 활을 쏘는 일이
하루일과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습사에서 하루에 10순을 쏘는 경우가 많았는데 어떤 날은 15순 또는 20순을 쏘는 날도
많이 나타난다. 1596년 6월 여름의 일기를 보면 하루 내내 비가 내린 3일과 제삿날 3일
(할머니 기일 전일과 당일, 그리고 명종의 제삿날)과 기타 2일을 빼고는 29일 중 21일은
매일 활을 쏜 것으로 나타난다.
세 가지 화살(보통화살 이외에도 철전과 편전)로 활을 쏜 일기도 있다. (1596년 6월
27일 .....안골포 만호 등과 철전 5순, 편전 3순, 보통 화살 7순을 쏘았다.)
또 흑각궁과 향각궁의 활 이름도 나온다.
1592년 3월 28일의 일기를 보면 그날은 모두 10순을 쏘았는데 5순 몰기, 3순은 4중
2순은 3중을 했다고 시수를 기록하고 있다. 50矢 중에서 43中을 한 것이다. 공이 자기가
한 시수를 정확하게 기록한 것은 이 날이 유일한데 그것은 시수가 특별히 좋아서 기록
을 남긴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이것은 1595년 5월 10일의 일기에 “활 10순을 쏘았는데
많이 맞혔다”라고 쓴 것을 보면 미루어 짐작 할 수 있다.
당시 군관들의 활쏘기 실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아보려면 부북일기(http://blog.daum.
net/yjhmk/4183457 赴北日記를 통해 본 17세기 出身軍官의 赴防生活’ 禹仁秀 글)를
통해 알 수 있다.
부북일기는 박계숙‧취문 부자가 약 40년의 시차를 두고 각기 함경도 동북 변방지역에
1년간 부방하였을 때의 일기이다.
박계숙의 일기는 선조 38년(1605) 10월 15일 울산에서 출발한 때부터 1년간 함경도
會寧 甫乙下鎭에서의 부방생활을 마치고 집에 도착한 선조 40년 1월 1일까지의 일기
이다.
그리고 박취문의 일기는 인조 22년(1644) 12월 9일 울산에서 출발한 때부터 1년간
함경도 會寧府와 鏡城의 兵營에서 부방생활을 마치고 집에 도착한 인조 24년 4월 4일
까지의 일기이다.
박계숙이 赴北日記를 쓸 때 선조 38년은 임진왜란이 끝나고 8년 후이고 그의 아들 박취
문은 그 후 40년 후이니 시대적으로 임진왜란과 동시대라고 볼 수 있으니 충무공의
활쏘기 실력을 비교하는 데는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자료일 것이다.
(이하는 위 인터넷 주소에 있는 우인수 글 일부 인용)
박계숙과 취문 부자는 명사수였다.
박계숙의 경우 활쏘기 시합에서 1등을 하여 상을 탄 예가 종종 눈에 띄는데, 10巡 즉
50발 중 48발을 명중시켜 46발의 보을하진 첨사를 무안하게 만든 경우도 있었다.
이에 박계숙은 시합이 있을 때 첨사를 배종하고 원정 경기를 하러 가기도 하였는데,
한번은 첨사를 배종하고 회령에 갔을 때 50발 중 50발을 모두 명중시켜 입회한 병마
우후로부터 크게 칭찬받은 일도 있었다. 그 외에도 활쏘기 시합에서 우승하여 상을
탄 예가 많이 보인다.
박취문은, 적어도 일기에 나오는 내용만으로 미루어 판단한다면, 아버지를 능가하는
명사수였다.
그는 뒤에 나오듯이 활쏘기 대회에서 수차에 걸쳐 1등을 차지했으며, 50발을 쏘아 모두
명중시킨 경우도 매우 많았다. 그의 활 실력은 다음의 두 예에서 잘 드러나 있다.
첫번째 예는 회령부사를 모시고 군관들끼리 활쏘기를 하는 자리였는데, 마침 開市로
인해 회령에 와있던 청나라 差使도 구경차 입회하였었다.
10순 즉 50발을 쏘아 박취문과 토착군관 허정도가 나란히 50발을 다 맞추었다.
쏘는 것마다 다 명중하니 보는 재미가 없다며 지금부터는 과녁 가운데에 있는 검은
부분 즉 貫鵠을 맞춘 것만을 인정하자는 차사의 제의를 받아들여 다시 10순을 쏘았다.
역시 박취문과 허정도가 50발을 과녁에 명중시킨 가운데, 관곡에 명중시킨 것은 취문
이 46발, 허정도가 44발이었다.
또 한 예는 취문이 행영에서 근무할 때 병사를 위시하여 근처 수령들을 모신 자리에서
군관들끼리 한 활시합이었다. 이 시합에서 첫 10순을 쏘았을 때 취문과 이시복‧김낙
등 3명이 50발 명중이었다. 우열을 가리기 위해 다시 10순을 쏘았는데, 취문과 이시복
이 또 50발 명중이었다. 다시 또 10순을 쏘았으나 두 사람 모두 또 50발 명중이었다.
마지막으로 10순을 또 쏘았을 때, 취문이 제 8순 5번 화살을 명중시키지 못해 49발 명중
으로 아깝게 패하였다. 그러나 취문은 30순 이상, 정확하게는 38순의 4번째 화살까지
즉 189발까지는 연속으로 명중시킨 것이었으니, 가이 신궁의 경지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군관 이시복은 200발 연속 명중이었다.
그러면 군관들의 대체적인 실력은 어느 정도 되었는지를 살펴보자. 활쏘기 실력은
군관들 사이에 편차가 있었겠음은 충분히 짐작되는 일이겠는데, 그 점은 실력에 따라
3등급으로 나누어 각 등급끼리 시합케 한 경우가 있었던 데서 잘 드러난다.
또 군관 중에는 솜씨가 신통치 않아 아예 시합에 참가하지 못한 사람도 물론 있었겠다.
큰 규모의 시합이든 작은 규모의 연습 삼아 한 시합이든 간에 시합에 참가한 군관들의
활쏘기 솜씨는 50발을 쏠 경우 40여발 이상을 명중시키는 실력이었다.
그래서 꼴찌의 구체적 성적이 나와 있는 경우, 그들의 성적을 파악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박취문의 일기 중에 인조 23년 5월에 있은 한 시합에서 꼴찌였던 군관 김신의 성적은
50발 중에서 43발을 명중시킬 정도의 괜찮은 성적이었다.
12월에 군관들끼리 4명씩 편을 갈라 시합했을 때 8명의 성적이 모두 나와 있는데, 50발
명중이 2명, 49발‧48발‧47발이 각각 1명, 45발이 2명, 43발이 1명으로 꼴찌의 성적
이 역시 43발이었다. 그리고 인조 24년 새해에 경성 병영의 군관들이 병사 입회하에
활쏘기 시합을 하였는데, 꼴찌였던 군관 강성일과 김여해의 성적도 역시 43발을 명중
시킨 성적이었다.
인조 23년 6월 군관들끼리의 시합에서는 과녁이 아니라 과녁 중간의 흑점인 貫鵠에
명중시킨 것만을 인정하는 특이한 조건을 내걸었었는데, 꼴찌였던 군관 박경간의
성적은 50발을 쏘아 35발을 관곡에 명중시킨 우수한 성적이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애초에 활쏘기 시합에 참석하지 않은 군관도 일부 있었겠으나
꼴찌들의 성적으로 미루어 볼 때 전반적인 군관들의 활쏘기 실력이 뛰어났음을 짐작
할 수 있겠다.
1592년 3월 임진왜란 발발 직전 공이 습사에서 50시 43중을 한 시수는 부북일기에 나타
난 활쏘기 시합에 참여해서 꼴찌를 한 어느 군관과 같은 시수임을 알 수 있다.
당시의 군영에서 활쏘기는 중요한 훈련의 하나였음을 알 수 있다.
또 활쏘기 시합에 참가해서 우승을 할 정도의 군관(이시복)의 실력은 200시 200중이란
신의 경지에 이르는 수준으로 매우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당시 무과시험에서 활쏘기는 중요한 취재과목을 차지하였고 공도 무과에 급제한 후
동북부 변방에서 복무한 경험이 있어 활쏘기는 일상사 몸에 배었을 것이다.
50시 43중을 한 시수를 한 당시 공의 나이 48세이고 전라 좌수사인 점을 고려하면
활쏘기 실력은 결코 남에게 크게 뒤처지지 않는 수준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수장이 무리 중에서 활을 가장 잘 쏜다는 것보다는 부하 장수들로 하여금 활을 열심히
쏘도록 훈련시키며 솔선수범 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 아니었을까?
난중일기에 나타난 공의 활쏘기 일기를 잘 관찰 해 보면 사정이 손님맞이 장소이고
활쏘기는 손님맞이 행사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같이 활을 쏘면서 새로 만든 활과 화살을 시험하고 왜놈에게 짖밟히고 있는 나라와
무능하고 부패한 조정대신에 대해 걱정하고 한 때 시름을 달래보려는 것이리라.
첫댓글 조선시대 무관들의 활쏘기 실력이 대단했군요. 요즘 처럼 좋은 활도 아니었을 텐데..
그런데 조선시대처럼 어렸을 때부터 활을 쏘았다면 매산님은 연속 200중 이상도 가능했을 거란 생각도 해봅니다.
나라걱정으로 살을 날리던 선열들에 경의를 표합니다. 저는 무슨 걱정으로 살을 날리는지~ 비온다고, 바람분다고, 심지어 꽃피었다고 불나는~ 그래도 단전에 힘을 주고 흉허복실!!
정말 대단한 실력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