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전라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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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의 약초산책 43>
“재생불량성빈혈·범혈구감소증” - 지황(生地黃, 熟地黃)
재생불량성빈혈은 골수의 기능부전으로 조혈모세포가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 등 인체가 필요로 하는 혈액세포를 정상적으로 생산해내지 못하는 질환이다. 이로 인해 빈혈이 일어나고 인체 방어능력이 떨어지며 말초혈관에서 반점상의 출혈이 나타나기도 한다. 현대의학은 이 병의 원인으로 선천성 내지 자가면역기전에 의한 조혈모세포의 장애를 꼽고, 항암제나 항생제 같은 약물 중독, 방사선의 과다노출, 바이러스성 간염, 메탄올 같은 유기용매, 살충제나 염색제 등의 화학물질 등을 들면서 반 이상은 원인을 모르므로 특발성으로 분류한다.
재생불량성빈혈은 급만성골수성백혈병, 악성림프종, 다발성골수종, 골수섬유증 등과 함께 보통 혈액암으로 인식한다. 혈구 감소가 진행성 경증이거나 중등도일 경우 맨 먼저 안드로겐 제제가 선택되는데 3~6개월 투여한 환자에서 양성 간종양 및 악성 간종양의 부작용이 보고되어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악성림프종은 림프조직에서 발생하므로 기본적으로 항암화학요법을 시행하지만 나머지는 주로 조직적합항원이 일치하는 가족이나 타인의 골수를 이식하는 방법으로 고용량항암화학요법, 전신방사선조사, 면역억제제를 병합하여 시행한다. 항암요법은 머리카락, 구강점막, 위장관점막 등 비교적 빨리 성장하는 정상세포에도 영향을 주어 탈모, 구역, 설사가 시작됨은 물론 치료방법이 없는 이식편대숙주질환으로 폐렴, 간염 같은 합병증을 피할 수 없게 한다. 이식편대숙주질환이란 조혈모세포 이식 후 공여자의 T세포가 이식환자의 여러 장기를 공격하거나 이식환자에서 자가면역이 유도되기 때문에 발생하는 질환이다. 이때는 면역억제제를 사용하여 일시 염증을 완화시키는 정도가 치료의 전부이다. 병의 원인물질로 여기는 독한 화학약물과 방사선을 다시 병을 고치는데 사용하는 모순이 반복되는 동안 인체는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위험에 빠지게 된다.
동의고전 《황제내경 소문》에서 ‘골수는 신에서 생성되며 뇌는 골수의 바다’라 하였다. 또 신에 열이 있으면 요척골을 쓰지 못하는데 이는 골수가 메말라 골위(骨痿, 신정이 소모되어 허리와 등이 시큰거리면서 힘이 없고 잘 걷지 못하는 증상)가 발생하는 연유라 하였다. 우리 몸에서 신의 주요 생리는 바로 ‘장정(藏精)’에 있다. 생명의 발생과 그 활동을 유지하는 데에 기본이 되는 물질(精氣)을 저장한다는 뜻이다. 정은 선천에서 타고나며 후천에서 수곡의 정미로부터 화생하여 신에 저장되고 성장·발육·생식을 추동한다.
재생불량성빈혈 또는 범혈구감소증(골수에서 나타나는 모든 종류의 세포 결손)은 한의학적으로 신허와 혈허의 범주이다. 허(虛)란 기혈, 골수, 진액, 살, 힘줄, 피모가 쇠갈(衰竭)한 상태를 말한다. 골수를 생산하는 신이 허하여 조혈의 원천이 부실해짐으로써 전신에서 열이 발생하고, 열은 혈과 진액을 더욱 말려 골수생성의 조건을 심하게 핍박한다. 따라서 신허가 병기의 본이고 핵심인 것. 신은 적혈구생성소(赤血球生成素, 적혈구계 세포의 생산증가작용을 가진 체액성 인자)를 분비하여 골수의 조혈기능을 촉진하며 호르몬과 유사한 역할의 비타민 D를 합성하여 칼슘과 인의 대사를 조절해줌으로써 골격을 튼튼하게 한다. 그러므로 신의 원음(元陰)과 원양(元陽)을 크게 보하여 정을 채우고, 비를 도와서 화혈하게 하며, 기를 보하여 생진양혈(生津養血)하는 것으로 표준방제를 조성할 수 있다. 예컨대 시호를 써서 골수에 쌓인 열을 내리고, 토사자·파극천·육종용·골쇄보·산수유 등으로 보신보양(補腎補陽)하며, 구기자·천문동으로 보음하면서, 택사·차전자로 신과 방광의 화(相火)를 삭인다. 계혈등·숙지황·당귀·천궁·백작약·하수오·여정자를 더하여 생혈 장혈 통혈하며, 인삼·황기·백출로 보기건비(補氣健脾)하여 적어도 6개월 이상 장복할 것을 권한다. 간편 처방으로는 십전대보탕, 가미귀비탕, 인삼영양탕이 추천된다.
현삼과에 속한 다년생초본 지황이 있다. 가공하지 않은 뿌리를 생지황이라 하고 생강즙에 사인(砂仁)을 넣고 쪄서 여러 번 말린 것을 숙지황이라 한다. 숙지황의 약성은 달고 조금 따뜻하며 간과 신경으로 들어가 양혈자음(養血滋陰, 혈을 기르고 음기를 자양함)하고 전보정수(塡補精髓, 정수의 부족한 것을 메워서 채움)하여 신정을 보익하는 요약이다. 생지황은 성질이 차고 심 간 신경으로 들어가 청열양혈(淸熱凉血, 혈분의 열사를 제거함)하고 자음생진(滋陰生津, 진액을 생산하여 음이 허한 것을 보함)하여 고열, 발진, 출혈을 막는다. 약리학적으로 진정, 소염, 면역촉진, 대사조절, 혈압강하작용이 있다. 허혈성뇌졸중이나 치매에서 기억력회복효과를 나타내며, 활성산소가 증가함에 따라 발생하는 스트레스는 신경세포독성을 일으키는바 파킨슨씨병 동물모델에서 신경세포사멸을 억제한다. 지황의 가공 중에 생성되는 특정성분은 헤모글로빈의 산소친화력을 증가시킴으로써 조직과 세포를 보호하고 악성빈혈증상을 개선한다.
재생불량성빈혈·범혈구감소증은 불치병이 아니다. 혈액과 줄기세포를 생성하는 골수의 조건을 충족함으로써 근원적으로 치유된다. 병인병기에서 허(과소)와 실(과다)이 있고 유사성 또는 대칭적 유사성이 존재하더라도 다발성골수종, 급만성골수성백혈병, 악성림프종, 적혈구과다증, 파킨슨, 치매에도 상기한 방제는 높은 예방과 치료효과를 거둘 수 있으며 한약재 특유의 복합성·다기능성으로 항암화학요법과 방사선치료의 부작용도 감소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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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지황(약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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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지황(약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