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파계봉(八公山 把溪峯/991.2m) 대구시 동구 공산동과 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 남산리에 걸쳐 있는 봉우리
팔공산은 대구의 진산으로 1980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최고봉인 주봉 비로봉을 중심으로 좌우에 동봉과 서봉을 거느리고 있으며, 마치 봉황이 날개를 편 것처럼 뻗쳐있다.
정상의 남동쪽으로는 염불봉, 태실봉, 인동, 노족봉, 관봉등이 연봉을 이루고 서쪽 으로는 톱날바위, 파계봉, 파계재를 넘어 여기서 다시 북서쪽으로 꺾어져 멀리 가산을 거쳐 다부원의 소아현에 이르고 있다.
팔공 능선상에 있는 파계봉은 한티재와 서봉과 한티재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는 봉우리로 파계봉 아래에는 조선조 영조 대왕의 출생 설화가 전해지는 파계사(把溪寺)라는 유명한 절이 있다.
산행코스 : 파계사 공영주차장 - 해일봉(657m) - 도각봉(812m) - 삼갈래봉(834m) - 파계재 - 파계봉(991.2m) -
파계재 - 쉼터 - 산불감시초소 - 파계사 - 일주문 - 팔공학생 야영장 - 파계사 공영주차장
산행거리 : 약 8.5km
산행시간 : 5시간
산행들머리인 파계사 공영주차장옆에 있는 커피숍 뒤로 가야할 해일봉 능선자락이 보인다
파계2주차장에 차량 주차후
파계삼거리에 설치된 산행 안내도
산행 들머리, 한티재갈림길 방향으로...
묘지 앞에 곱게 핀 붓꽃
산과 들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잎과 꽃봉오리가 붓글씨 쓰는 붓을 닮았다. 키가 30~60cm정도 자라고 땅속줄기가 있어서 옆으로 뻗어나가며 거기에서 새싹이 나오며 수염뿌리가 많이 붙어있다. 잎은 창 모양으로 위로 곧게 뻗으며 길이 30~50cm, 너비 0.5~1cm 정도 된다.
해일봉(656.8m)
성진암 갈림길
도각봉(806m)
삼갈래봉(834m), 도각봉, 한티재, 파계재로 갈라지는 갈림길
삼갈래봉 이정표
대구 파계사 원당봉산표석(大邱 把溪寺 願堂封山標石)
파계재에서 한티재 방향으로 약 400m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원당봉산은 '원당'과 '봉산'이란 두 단어를 조합한 것이며
원당은 왕실의 안녕(安寧)이나 명복(冥福)을 빌던 장소를 뜻하며 봉산은 나무를 함부로 베지 못하게 금지한 산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표석은 원당으로 지정된 사찰의 나무를 함부로 벌목하지 못하게 하고 주변 산림도 보호하고자 세운 것이다.
1806년 작성된 "파계사원당사적"에 따르면 파계사는 1696년(조선 숙종22년) 세자(영조)의 탄진을 기원하기 위해 왕실의 원당을
설치 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1696년 이후 파계사가 원당으로 지정되면서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원당봉산표석에서 약 5분거리에 있는 봉우리 정상에 몇해전 까지만 해도 노송 2그루가 있었는데 최근에 한그루가 어떤 연유인지는 몰라도 베어져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파계재, 파계사, 파계봉, 한티재, 군위 제2석굴암으로 갈라지는 길목에 자리한 재, 가야할 방향은 파계봉(직진)
파계봉(把溪峯/991.2m)
파계봉에서 다시 되돌아온 파계재, 가야할 방향은 파계사(좌측 방향)
파계재에서 약 1km(30여분 소요)정도를 내려오면 파계사 도착전에 있는 쉼터
쉼터와 파계사 중간쯤에 있는 산불감시초소
파계사 극락전
파계사 원통전(把溪寺 圓通殿)
파계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다. 1984년 7월 25일 대구광역시의 유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되었다가,2014년 12월 29일 대한민국
의 보물 제1850호로 승격되었다건축물이다.
석가탄신일을 앞두고 원통전앞에 형형색색 등들이 매달려 있다
파계사 진동루(把溪寺 鎭洞樓)
대구광역시 동구 중대동 파계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다.1984년 7월 25일 대구광역시의 문화재 자료 제10호로 지정되었다.
영조(英祖) 임금나무
파계사는 왕실의 원당(願堂)이자 현응스님의 도움으로 영조 임금이 탄생했다는 설화와 그가 입었던 도포(중요 민속자료 220호)를
간직한 절이다. 따라서 사찰내 가장 크고 아름다운 수령 약 250년된 이 느티나무를 골라 '영조(英祖) 임금나무'라 이름 지었다.
파계사 (把溪寺)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804년(애장왕 5)에 신라 헌덕왕의 아들인 심지왕사가 창건한 절로 그 연혁은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그뒤 1605년(선조 38)에 계관법사가 임진왜란 때 소실된 원통전을 중건하고, 1695년(숙종 21)에 현응대사가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76년 6월 원통전의 목조관음보살좌상을 개금할 때 불상 안에서 영조의 어의가 나와 영조대왕과 인연이 깊은 절이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경내에는 2층 누각인 진동루에 들어서면 법당인 원통전(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7호)이 높은 기단 위에 서 있고 그 좌우에 적묵당과 설선당이 있다. 이 건물 뒤쪽으로 기영각·산령각·응향각·미타전 등이 있는데 그중 기영각은 숙종·영조·정조의 어필을 보관하고 있다고 해서 어필각이라고 했으나 지금은 어필이 전해지지 않는다.
중요문화재로는 원통전에 봉안되어 있는 목조관음보살좌상(보물 제992호)을 비롯해 삼장보살도(1707)·팔각석 등이 있다. 또한 절의 서쪽으로 200m 떨어진 곳에는 원의대사의 부도와 비(1648), 전명대사의 부도와 비(1658), 현응대사의 부도와 비(1701)가 있다.
파계사 종합 안내도
팔공산 파계사 일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