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된 위타투바는 석가 족에게 복수할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석가 족을 침략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카필라왓투를 향했다
그날 아침 부처님은 중생계를 살펴보고 석가 족에 임박한 위험을 보았다. 부처님은 동족을 보호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저녁 때 허공을 날아 카필라왓투로 향했다. 그런 후 카필라왓투 근처에 내려서 잎이 다 떨어진 나무 아래 앉았다.
위타투바는 군대를 이끌고 카필라왓투로 향하던 중 부처님을 만나게 되었다. 위타투바는 부처님에게 예를 올린 후 정중하게 여쭈었다.
“존경하는 스승님이시여, 어찌하여 부처님께서는 이리 더운 날 마른 나무 아래 앉아 계십니까? 이쪽에 그늘이 좋은 반얀 나무가 있습니다.”
“대왕이여, 실로 그곳에는 그늘을 잘 드리운 나무가 있도다. 하지만 동족이 제공하는 그늘만큼 시원한 곳은 없느니라.”
위투타바는 부처님이 암시하는 바를 알아채지 못할 만큼 어리석은 자가 아니었다. 그는 부처님이 동족에게 자비로운 보호를 베풀기 위해 마른 나무 아래 앉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부처님에게 다시 공손하게 예를 올린 뒤 군대를 끌고 코살라로 돌아갔다. 이에 부처님은 허공을 날아 제타와나 승원으로 돌아갔다.
그럼에도 위타투바는 석가 족에게 당했던 모욕을 잊지 못해 재차 두 번, 세 번 침략원정을 시도했으나 그때마다 똑같은 자리에 앉아 계시는 부처님을 발견하고는 되돌아오고 말았다.
그 후 위타투바 왕의 마지막 네 번째 출정에는 부처님께서 석가 족의 악업이 열매를 맺을 때가 왔음을 알고는 더 이상 개입하지 않으셨다.
- [대불전경] 교화부 제5권
부처님이기 전에 그도 한 인간으로서 동족의 멸망을 지켜보면서 느꼈을 쓰라린 아픔과 고통의 무게는 우리와 별반 다를 게 없으셨을 것입니다. 다만 부처님께서는 그 아픔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중생과 다를 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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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센트 반 고흐 (레 베스노 마을)
덕혜옹주...
참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조국이 해방되고 정권이 두 번 바뀌도록 그녀는 조국의 품에 안기지 못했습니다. 누구보다도 나라 잃은 슬픔과 무능함을 뼈저리게 자책하던 그녀였기에 8․15 해방은 천신만고 끝에 얻은 다시없는 기쁨이었고 한시가 급한 귀국이었습니다. 그런데 왕족이라는 신분이 끝내 마지막 남은 그녀의 소중한 ‘희망’마저 꺾을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정희(딸)의 손을 꼭 잡은 채 바로 눈앞에 놓인 귀국선에 어서 빨리 오르기만을 학수고대하던 그녀에게 날벼락 같은 ‘입국거부’가 내려지고 말았습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땅이 꺼지고 하늘이 무너진다’는 말은 아마도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라 생각됩니다. 갈기갈기 찢긴 가슴으로 통곡하던 그녀는 생의 마지막 웃음 모두를 그 자리에서 다 토해내고 말았습니다. 그때 저는 하늘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천둥번개 같이 우레와도 같은 큰 소리를 말입니다. 과연 이보다 더한 슬픔이 있을까요? 세상에 이보다 더 가혹한 불행이 또 있을까요? 연신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조국의 존립보다도 한낱 자신의 안위에 눈이 멀어 매국에 앞장서고 그녀의 입국마저 방해하던 그들은 해방 이후에도 여전히 정치의 지배권을 행사하며 나라발전의 걸림돌이었습니다. 개 버릇 못 주는 법이기에 우선적으로 그들은 조국의 해방과 함께 청산해야 할 대상이었음에도 그들의 더러운 침에 기생하는 못난 정권은 애초에 그럴 의지도 용기도 없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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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블로 피카소 (울고 있는 여인)
회복 불가능한 절망감에 세상과 맞서보지도 못하고 세상 밖으로 도망 나와 자기 자신 속으로 깊이 숨어든 그녀는 이역만리 차가운 정신병동에 갇힌 채 경직된 죽음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그마치 15년을 말입니다. 마치 물을 만나지 못하는 화초가 말라가는 것처럼 그렇게 하루하루 속절없이 죽어가고 있었지요.
나라를 빼앗기고 가족이 해체되고 그들의 모진 수모와 굴욕, 시시각각 느껴지는 신변의 위험 속에서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희망’이었습니다. 귀국이라는 심장 뜨거워지는 희망 말입니다. 그간의 설움과 피맺힌 한을 보상해 주리라 굳게 믿었던 자신의 마지막 기대와 희망이 무참하게 짓밟히고 꺾였을 때 그건 더 이상 삶이 아니었습니다. 어리고 여린 아이가,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소녀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부모와 떨어져 걷잡을 수 없는 불가해한 폭류에 휘말리고 정신없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고 말았으니 어찌 정서적으로 온전한 성장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소화되지 않은 기억은 공포가 되어 온 세포를 물들이고, 생을 지배했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짓누르고 있던 공포와 두려움, 분노가 끝내 그녀를 소생 불가능한 깊은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땅이 꺼지는 아픔과 절망을 느꼈을 그녀를 생각하면 지금도 목이 메입니다. 길어야 백 년 사는 인생이건만 생의 대부분을 불안과 공포로 지새운 것도 모자라 끝내 타의에 의해 정신적인 끈마저 놓아버렸다는 사실이 더욱 더 저를 슬프게 했습니다.
봄날 아지랑이처럼 짧고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 소녀는 세월의 어느 길목에서 자신을 도둑맞은 채 반백이 되어서야 그리던 조국의 품에 안길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남은 여생을 낙선재에서 머물던 덕혜옹주가 실 날 같은 마음의 위안이라도 얻으셨던 것일까요? 영화는 말미에 그녀의 친필을 보여줍니다. '나는 낙선재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다'는. 하지만 불행하게도 삐뚤삐뚤 씌어진 글씨는 좀처럼알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끊어져가는 기억의 파편들을 주워 모아 얼키설키 엮어놓기라도 하는 것처럼 힘없고 초라한 글씨는 절로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새삼 깊은 참회와 함께 덕혜옹주의 안심입명을 간절히 기원해봅니다.
불교의 생사관은 삼세윤회 업인과보의 법칙입니다. 그러므로 선하지 못한 행위를 경계하고 두려워해야 합니다. 행위는 버릇을 만들고 그 버릇은 과거 미래 현재를 만들뿐만 아니라 결정적으로 그 삶을 지배하기 때문이지요. 다시금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것은 우리가 잘 살고 잘 죽어야겠다는 것입니다.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에 입각해 살고 정견을 확립한 채 죽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삶이란 반드시 현재의 버릇이 만들어가게 마련이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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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슬픈 영화라던데 보고 오셨군요 스님..
쟂빛 하늘 위 날개 잃은 한 마리 새가 되어버린 그녀가 내겐 목에 걸린 가시가 되고 말았어...
우리 민족의 비극이고,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