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캐는 날 붉고 실한 고구마가 아내 뒤에서 올망졸망 탐지게 꼬리를 문다 소풍 나온 유치원 아이들 마양
이랑사이에 먹때왈 농익어 군침돈다
천년수 형과 어린 동생 둘과 땀 잠방이에 밀짚모자 눌러쓰신 아부지와 일찍 가슴에 묻은 다섯 자식들이 당신의 뗏목이라 시던 보살, 우리 어매와 참 이고 저만치서 걸어오는 딸엽이 누나와 숲속 어딘가에서 엿보고 있는 당신의 뗏목, 뻐꾹새와 가을을 가득 담은 소쿠리와 아부지의 바지게
먹때왈 몇 알 따먹고 한주먹 따 ''임자''하고 내밀자 응당 그럴 줄 알고 기다렸다는 듯 아내 얼굴에 사랑이 흐른다
나는 고구마 순을 걷어내고 아내는 고구마를 캐고
옛날에 그옛날 그때에도 고구마 밭에는 아부지와 아부지의 임자와 먹때왈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5.도가니 속 예술
타석에 선 3번 타자 보이는 것은 18.44m 앞 투수
침묵의 강 건너 궤적을 쫓아 날아오는 0.3초의 긴장
탁
홈런 관중의 환호성
요변窯變이다 장인이 빚은 도자기 아무나 만들어 낼 수 없는 무지개
역전의 드라마
6.빗자루
마당을 쓸고 있습니다
솨악 솨악
내 마음속에 번뇌를 쓸어 내고 있습니다
7.연탄 리어카
런닝머신에 올라 한시간 뛴다 그중에서 마지막 10분은 어린시절로 돌아가 연탄 리어카를 민다
정능천 옆 우물가 미아리 달동네 오르막 길 아저씨는 연탄 리어카 지그제그로 끌고 부끄러워서 모자 푹 눌러쓰고 뒤에서 밀고 따라가는 중학생
구비길 돌아 8부 능선 아저씨는 ''됐다 힘들다 그만해라'' 하지만 비지땀 쏟으며 혼신을 다해 힘을 보탠다 가끔은 친구들도 함께 도왔었지
고개를 꼴딱 넘고 손잡이에 걸터 앉아 가쁜숨 몰아쉬며 땀을 훔치는 아저씨
아버지 미안합니다
8.숨과 심박
절친이다
말은 없어도 마음까지 읽고 있는 세상 끝나는 순간까지 함께한 친구
잠자리에서는 자장가를 비탈길 오를 때는 펌프질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도 하고 주거니 받거니 쌔근 덩둥 쌕은 등당 새근 동징
종자기種子期와 백아伯牙
숨이 멎자 거문고 줄을 끊는다
(*백아(伯牙): 고사성어 지음(知音)의 주인공.마음이 서로 통하는 절친한 친구, 종자기(種子期)의 죽음에 거문고 줄을 끊었다는 춘추(春秋) 시대(時代) 거문고 명인(名人). )